오랫만에 보는 이연결 액션영화
성룡만 나이든 줄 알았는데 이연걸도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전광석화와 같던 그 발차기와 현란한 몸놀림, 기술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연걸씬이 작다.
비중이 적다고나 할까.
이걸 이연결표 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쩝.


이게 볼만한데 이연걸은 없다. 이연걸이 최대액션씬이라고 할 수 있는 철창 결투씬은 정말.... 아..이연걸.

그래도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어가야 하니...
에혀...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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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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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보기엔 아주 재미있는 유치발랄 엽기에 싸가지 없는 영화.
미국에서 만든 코미디로 이런 류가 아마 총알탄 사나이가 아닌가 싶다.
아~~ 그 이전엔 폴리스 아카데미 정도?
아무 생각없이 배꼽빠지도록 웃는 것 말이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아 어쩜 역겹다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또는 유치하다? 하지만 영화는 원초적인 코드를 아무 거리낌없이 내세우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어가며 영화진행상 무난하게 받아들인다.
섹스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보여?주지만 전혀 야하지 않는 영화,
키득대고 본다.

이스라엘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금 거슬리는 면도 없지 않지만 미국영화네?

볼 만 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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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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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애기를 듣습니다. 외국나가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한국사람이다.

제가 이 말을 들은 건 약 10년전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갔을때였습니다.
정확히는 12년이 되었군요. 호주에 입국하기 전 해 여름방학,
필리핀의 라살대학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생긴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통해 가는 것이었기에 무척 저렴하게 갔었지요.
생전 처음 가는 외국이었기에 기대도 컸었고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는 저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세상은 넓구나라는 단순한 사실을 발견한 정도지만
20년 넘도록 실제를 접하지 못하고 지식으로만 있었던 것이 체험되는 순간이었으니
말이죠. 일과후엔 펜숀 근처의 말라테공원에 아이들과 짧은 영어로 대화를 하거나
필리피노들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접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말고도 어학연수로
온 다른 한국 학생들을 만나곤 했는데 처음  봤을때 정말 반갑더군요.
아마 처음 외국에서 한국인을 처음 보는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보다 먼저 왔을지도 모르고 또 필리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요량으로
"한국인이세요?"라며 반가운 마음으로 물었는데 전혀 반가운 기색없이
감정없이 무미건조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어색해지는 경험을 몇 번 한 뒤로는
그냥 그런가보다 저도 그렇게 지나갔으며 한국인을 만나도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나 외국 처음 오는 촌놈이네 하는 식이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누가 물어보면 반가운 대답을 했지만 말이죠.
아마도 그 학생들은 워낙 많은 한국인들이 나와같이 하니 아마도 귀찮을 만도 하겠다.
이 것이 나름 제가 생각한 그들의 이유가 아닐까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호주에 가서 지역교민잡지-교차로같은 형태의-를 보게되었는데
호주 무슨 노인회라는 이름으로 광고가 하나 실렸더군요. 노인회장선거가
적법성을 거치지 않은 선거이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로 노인회를
만들었다는 공고같은 것이었습니다. 같은 잡지의 다른 면에서는 새로생기는
노인회를 비난하는 내용의 공고역시 실려 있었고 말이죠.
당시 시드니의 두리하우스라는 백패커스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오너가 한국인이라
한국학생들이 많이 왔습니다. 물론 저같이 갓 물건너온 이도 있었고 유학생도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 잡지를 보며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한국사람들은 꼭 어딜가나 파벌을 조장한다" 는 내용이 오고 가다가
외국나가서 한국사람 조심해라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 단순한 한마디에 대부분이 공감하더군요.
그 자신들이 한국인이고 이국땅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다소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필리핀에서의 한국학생들이 생각이 나더군요.
아! 그들도 그런 생각을 했나 보다. 그래서 나와 대화를 피했나 보다. 라는 생각이요.

뭐 나 같은 경우야 못믿을 것보다는 믿어야할 것이 많은 피끓는 청춘이라는 생각이었고
또 소위 당했다라는 경험이 딲히 없었기에(더욱이 외국에서는)
그냥 그냥 지나갔습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 것조차도 뼈저린 체험끝에 결국은 체화되었다고나 할까?
나 조차도라는 생각. 한심스럽기도 하고 믿음이라는 것이 깨어짐에 있어
내 마음에 불신이라는 벽이 하나 생겼구나라는 자괴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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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합리화를 한다.
가지가지 변명을 한다.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많고 모두와 친한 것처럼 애기한다.
하지만 뒷다마를 깔때와 평소의 모습이 다르다.
자신이 무척 선하고 손해보는 삶을 사는 것처럼 애기한다.

나는 더 강해지겠다.

너같은 인간들이 나를 강해지게 만든다.

처음부터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맨 처음 보는 생명체를 자신의 어미로 아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 것은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의식이라는 것이 아마도 불신보다는

신뢰가 앞서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접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궁금하게 생각하며 접근합니다.

그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아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위험에 대한 자각이 없어서이겠지요.

 

자라면서 돌부리에 넘어지고, 뜨거운물에 데이기도 하면서

위험을 알아갑니다. 세상에 모든 것이 안전하지많은 않구나 하는 것을 말이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다 복잡해 집니다. 저 사람은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이젠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데미지는 오히려 더 큽니다.

 

이제 세상을 알 것 같아 이런 실수는 다시 하지 않을 거 같은데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라서 그런건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아파합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사람을 변화시키니 말이죠.

 

중국에 처음 가는 분이 많이 계실텐데 사람을 쉽게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처음 가는 곳이기에 모든 것이 낯설기에 누군가에게 신뢰를 보내기가 쉬울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 그러하더라도 표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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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이 벌써 1주년을 맞이했다.
주주자격으로 참석요청을 받았는데 쩝. 귀찮아서...
잘 자라는구나. 그래 무럭 무럭 자라서 대한민국의 힘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너와 같은 존재가 부족하단다. 많이 많이 커서
없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많은 일들을 해 냈구나. 편견을 뒤집고 위정자 내지는 위선자들의 가면을 벗겨내고
진실을 파헤치고 희망을 만들어 내고 흔들리는 가치관에 이정표를 내 세워주기를
바라며 1주년이 아니라 100주년...에는 못가겠지만.. 혹 갈수도 있겠지. ㅎㅎ
그 때는 자랑스러운 시사인의 주주로 참석하려마.

집문위로 거미가 집을 지었다. 어딜간들 자릴 쉽게 잡을까 싶어, 친구 하나 두는셈 키우고? 있다. 거미가 해충은 아닌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중국매미를 한 마리 잡았다. 비교를 해 보니 참 크다. 대한민국에 독거미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괜찮다. 아침에 문을 열어보니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데 ㅎㅎ
든든한 건 또 뭐지. 근데 거미들은 무리지어 있지 않고 혼자 있던데...
이 곳에 있으면 짝은 어떻게 구할까? 그 때 떠나나? 근데 무슨 거미일까?
이름이라도 알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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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구제금융에 막 접어든 시기였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살아가기에 바쁜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단지 좀 더 하릴없이
바빠졌다는 것뿐 달라진 것은 그다지 없는 듯 보였다.
미취업자들은 구직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소위 스펙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고진분투하며 도서관을 파고 들었고 여기저기에서는 각종 기관,자치단체등에서
후원하는 취업박람회가 열리고 듣도보도 못한
4.50대 명퇴행렬은 창업박람회로 발길을 분주히 옮기던 때다.
이력서에 한줄도움이 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귀국한 이후 무엇하나 마땅히
내세울 것 없던지라 토익이라도 한 번 보자는 생각으로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생각해보면 IMF라는 것이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백수라는 것이 유흥가의 노래방처럼 많았던 시절이라 불안이나 불편보다는
오히려 쉽게 적응했다면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어쨌든 지금의 대한민국이
분명히 나에게 어떤 기회를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막연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며 무엇이든 해보자는 막무가내식 사고도 일조하고 있었던 시절.
정부는 정부대로 미취업자를 위한 실무적인 훈련이며 국내 연구기관이나
자치단체에서 일꺼리를 만들어 주었다. IMF이후 익숙해진 공적자금이라는 것이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실제 국민에겐 다가오지 않는 부실기업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와 닿지 않았을까. 결국 그 시절에 KITECH이란 곳에서
공공근로사업을 해서 안도하게 되었다. 무엇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절박한 시절이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KITECH은 문서자료가 많다.
업무는 그런 자료들을 스캔해서 전자문서화 하는 것이었다.

3개월정도 일하면서 산 컴퓨터가 중고 P MMX 기종이었다.
그 뒤로 Pentiam 3로 업그레이드 하고 P III 750까지 두 번의 업그레이들 하면서
나에겐 애인같았던 정말 소중했던 그런 놈이다. 약 5년여를 그렇게 쓰는데도
말썽하나 부리지 않던 놈인데 ... 그 엄청난 내구성에 질린걸까?
더 이상 업그레이드가 불가하기도 했고 내 인생의 업그레이드가 정착하면서
노트북을 제대로? 써보자는 생각으로 이 컴을 인터파크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기부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쉽지만 휴...
사진이라도 이렇게 남겨놓았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천안에서 갈월동으로 그 좁은 하숙방에서 회사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이 컴을 켜고
리눅스를 몇 번이나 깔기를 되풀이했는지 모르겠다.
이 컴덕에 하드두개 달 줄도 알게 되고 HTML부터 포토샵등 컴퓨터에 대한
기초상식이 많이 늘었다. 또 어떻게 다루는지도 배우게 되고 말이다.
갈월동에서 두 곳의 하숙집을 지나 성수전철역 앞 사무실로 옮겼다가
서대문구 냉천동까지 많이 옮겨다녔구나. 이 컴이 나에게 준 것을 생각하면
물질적인 것 그 이상의 훨씬 큰 가치다. 나의 방에 돌아오면 이 것이 있다는 것으로
나의 미래를 좀 더 확실하게 그려볼 수 있었고 그 것은 꿈에 자신감을 키워주는
자양분을 공급해 주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이 없던 시절에 꿈이 확실해 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그래서 구매한 것이 이 노트북이다. 사실 예전에 노트북이 있었지. 486이었고
제조사는 SK의 U&I . 아마 노트북 제조사로서 SK의 마지막 제품이었을 것이다.
애물단지도 그런 애물단지가 없었다고나 할까.
뭐 결국 IMF시절때 6만원인가 8만원에 팔아버렸다. 사실 A드라이브인 플로피가
고장났는데 업자한테 말 안하고 팔고 줄행랑을  -.-;; 쩝. 배고픈 시절이었다.


삼보 드림북 P-mobile이다. 이 노브북을 90만원가까이 주었는데 중고로 말이다.
1년정도 쓰다가 중고로 팔려고 했는데 45만원. 누군가 42만원에 산다고 했었는데
아... 그 때 팔았어야 했는데 쩝. 결국 지금 사무실에 있다.

내 돈으로 컴퓨터를 산게 펜티엄 16이었던가? LG에서 나왔던 586의 아마도
최초의 프로세서였을 것이다. CD2배속으로 돌아가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집에
영화관 생겼다고 감격도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고 친구에게 인스톨과 셋업이
뭐가 다르냐고 물었던 초보. 컴퓨터 길라잡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사서 통독을 하며
도대체 컴퓨터로 무엇을 하나 가끔 회의도 들기도 했었는데 어느날 PC통신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모든 것을 신기하게만
생각을 했는데 이젠 추억속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렸다.




지금의 인터넷이라는 것. 앞으로 5년뒤에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어디까지 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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