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 역사를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보고 그런 슬픈 역사는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덮어두면 오늘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맙니다. 마음이 아프더라도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겨서 그것이 확실하게 기억되도록 합시다.

그러면 거기서 화해라는 것이 나옵니다. 과거 청산 없는 화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뼈아픔을 절대로 피해서는 안 됩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독립군가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낼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건가

정의의 날쌘 칼이 비끼는곳에 이길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너 살거든 독립군의 용사가되고 나죽으면 독립군의 혼령이됨이

동지야 너와 나의 소원 아니냐 빛낼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친일파의 역사]

 

남한의 경우 이승만 정권의 반역사성 때문에 한 사람의 친일파도 제대로

숙청되지 않았다. 4·19는 그런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렸으나 그 주체세력이

정권을 쥐지 못하고 오히려 친일색이 짙은 장면정권이 서게 되었으며, 그것을

뒤엎고 성립된 것도 구일본군 장교출신 박정희 정권이었으니 친일파 숙청이

단행될 리 없었다.

 

그래서 과거의 친일세력이 아직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60년에 걸쳐 성장한 친미세력도 사실상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이 한국을 예속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 냉전적인 이승만과 손잡으며

친일파를 등용했고 이들이 주인만을 바꾸어 친미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미세력의 정신적인 뿌리는 친일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주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미국만을 쳐다보고 미국이 모든 일을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착각한다.

그래서 우익 집회에서 무슨 사안만 생기면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점은 친일을 하건 친미를 하건 독재를 하건 잘살기만

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식이 한국국민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으로는 바르고 희망찬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친일파의 10대 궤변과 그 반론]<펌>

 

1. 색깔론

 

해방 직후에도 친일파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산당 사람들이거나

이들과 가까웠다. 친일파 비난하는 것은 북한의 단골 주장이다.

지금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자들은 죄다 빨갱이다

 

(반론) 대체로 이들의 조상에는 전직 친일 경찰 군인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은 6 25 때 자신들의 부친이 '북괴의 남침'을 막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애국자(founder)인데, 빨갱이들이 이를 미워해 친일청산 명분을

들고 나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한민국을 만든 주인공이 결코 아니다. 독립국가 건설을 막기

위해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의 최일선에서 활동한 일제의 주구들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이들의 반공은 생존 본능이었으며,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이 주장은 가장 충실하게

과거 친일파의 논리를 순혈주의로 이어받고 있다 하겠다.

 

2. 공과론(功過論)

 

비록 한때 친일을 했더라도 민족에게 끼친 공로가 많으니, 한때의 친일로 한

인간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 식민지 시기 교육, 언론, 학술, 문화

다방면에서 선각자로서의 활동이나, 한때의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후

반공활동이나 기득권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활동들을 공으로 든다.

 

(반론) 친일파들이 부분적으로 공이 있더라도 민족 전체에 대한 범죄행위가

심각할진대 정상참작이 아닌 면죄부로서 공을 격상시키는 것은 주와 종이

바뀐 것이다. 나아가 이들의 공과론에는 '공'은 내세울지언정 '과'는 결코

스스로 언급한 적이 없다.

 

모 신문사 사주처럼 친일 행적은 감춘 채 민족운동가로 묘사하는 것은 공과론을

넘어서는 기만행위다. 김동길이 말하는 16인의 각 분야의 업적이란 것도

일제시기 그들이 친일의 대가로 보존해 온, 그리고 해방 후 반민특위가

와해되면서 고스란히 유지된 그들의 사회적 기득권을 말한다.

제대로 친일세력을 청산했으면 이런 기득권이 그들에게 남았겠는가?

지금의 조선일보, 동아일보처럼 언론의 위세를 빌어 이렇게 설칠 수 있었겠는가?

 

3. 공범론(共犯論)

 

그 때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주장. 공범론자들이 곧잘 드는

예가 창씨개명. 대부분의 사람이 창씨개명을 했으니 이들도 일제에 '협력'했다,

다 친일했는데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냐는 주장이다. 당신도 그 때

태어났으면 친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협박도 여기에

포함된다.

 

(반론) 친일파 청산 세력들은 창씨개명이나 말단 생계유지형의 소극적 친일을

한 사람을 친일파라 한 적이 없다. 친일파는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으로

일제에 협력하고 민중에 대해 해악을 끼친 적극적인 인자들을 뜻한다.

 

우리 또한 일제시기 태어났으면 친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100%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은 누구나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따라서 살인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기막힌 논법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4. 망각론

 

과거는 흘러갔다는 논리. 50년이 지난 이 시점 당사자들도 다 죽었는데

친일파 청산은 궤변이라는 주장이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의 해체로 친일파

청산 재론은 일사부재리에 해당한다는 '법리적 주장'도 포함된다.

 

(반론) 친일파들에 대한 법적 제재는 불가능해도 이들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속죄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해방 후 이들이

기득권을 포기, 자숙하지 않고 온갖 기념사업까지 전개하면서 또 한번

역사 왜곡을 저지르는 한 친일문제는 잊혀진 과거사가 될 수 없다.

 

5. 범부피해론(또는 호구책론)

 

권력의 강제에 의해 친일을 했기 때문에 연약한 개인(범부)이 이를 감당하기엔

무리였다는 주장. 서정주는 해를 따라 살아가는 무지랭이인 '종천순일파'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반론) 당시 친일은 강요도 있었지만 본인의 의지도 매우 중요했다.

또 백번을 양보해 범부로서 불가항력이었다 할지라도 그에 따른 타인(민중)의

피해에 대한 속죄는 상식이다. 가난하다고 도둑질하면 용서를 빌지

않아도 되는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제시기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서

공인적 성격이 강했다. 그들이 해방 후 반성하고 범부로서의 삶으로 자숙했으면

이 주장은 성립된다. 그러나 해방 후 이들은 범부의 삶보다 '민족지도자'의

화려한 영광을 그대로 누리고자 했다. 다른 모든 행위는 민족지도자로서의

비범함에서 나오고 친일행위만은 범부의 것으로 자신을 분해시키는

몰염치성이 더 큰 문제라 하겠다.

 

6. 직분충실론(또는 희생론)

 

'박정희는 군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다녔다. (어느 시민)', '민족언론(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다.

(김활란, 모 언론사주)'는 주장.

 

(반론) 이 같은 직업의 탈윤리화 속에는 기득권의 영속화와 역사의 면책

욕구가 숨어 있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친일의 핵심이다.

일제가 추구한 친일세력의 구조화는 바로 문필보국, 언론보국, 황도예술 등

'직업봉공'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족 언론을 살리기 위해 친일을 했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7. 순교자론

 

당시 자신들의 친일 행위를 민족의 선각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난이라고

주장하는 '역사의 희생자(순교자)'라는 주장. 대표적인 논자가 3 1절 명단

발표 후 이른바 문제의 16인을 월간조선을 통해 적극 옹호한 김동길 교수.

 

(반론) 김 교수는 16인의 친일을 일종의 순교 행위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해외 망명 독립운동가에 대한 멸시와 국내 친일파에 대한

순교자적 숭배라는 뒤바뀐 역사관을 확인한다. 따라서 친일파에 배한 비판은

민족반역이라는 희한한 논리가 나온다.

 

8. 연좌제의 부활

 

이제 와서 친일파 명단을 거론하는 것은, 죄 없는 후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반론) 연좌제를 잘못 해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친일파 청산의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친일파 청산의 의도는 친일파의 후손을 벌주고 보복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행여 조상의 친일 문제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을까 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9. 국론분열론

 

친일청산은 양육강식의 세계화 시대에 민족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소모하는

불필요한 담론이라는 주장.

 

(반론)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친일만이 아니라 모든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이나

논쟁은 민족 통합의 적이 되는 셈.

 

10. 정치적 음해론

 

정치권에서 종종 나오는 정치인을 음해하기 위한 정치적 모략과 결합된

음해라는 주장.

 

(반론) 물론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친일문제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치음해론을 빌미로 친일청산 그 자체의 필요마저 부정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고 검증된 민간단체에 친일문제를 위임함으로써

민족 성원 모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극적 대안일 것이다.

 

이밖에 "친일파 청산은 퇴행적 민족주의 담론이며, 국제화시대, 탈민족국가

시대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 논리"라는 주장,

여성친일파에 대한 비판을 "여성운동에 대한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탄압"이라고

논박하는 견해들도 친일파 옹호의 궤변들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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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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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본은 경제뿐만 아니라 순수학문에 이르기까지

        경쟁력있는 정보와 지식을 갖춘 영어 못하는 선진국입니다.

 

 

                        [일본의 경쟁력]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번역이 앞선 나라다. 그러면 왜 이렇게 번역을

열심히 하는 걸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한국에서는 악명 높지만

일본에서의 평가는 다르다. 이토는 초대 조선통감을 지냈고, 외교관 출신

이노우에는 명성황후 시해를 기획·조종하는 등 조선 병탄에 앞장섰지만

두 사람 모두 일본 국력 팽창에 일조했던 인물로 간주된다.

 

150여년 전 영국 유학을 떠난 두 사람은 런던브리지 난간에 걸터앉아

“영국인은 훌륭하다. 아이나 거지도 영어를 하는데…”라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영국인 학생들이 “동양의 노란 원숭이”라며 어찌나

놀려대던지, 두 사람은 영어도 못하는 동양인이라는 콤플렉스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고 후일 회고했다.

 

이토 등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총리직에 오른 뒤 근대화 교육의 핵심으로

영어수업학교를 전국 곳곳에 세우는 등 영어 올인 교육정책을 폈다.

이들의 영어 콤플렉스 덕분에 일본은 이미 100여년 전 영어 몰입 공교육을

실천에 옮긴 꼴이 됐다.

 

1800년대 후반 일본에서 모리 아리노리라는 사람이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바바 다쓰이라는 사람은 “일본에서 영어를 채용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상류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라는 반대의견을 내놓는다.

 

이런 주장이 점차 힘을 얻어 일본은 ‘번역주의’라는 입장을 택하게 되고 이것이

오늘날 뭐든지 번역되어 나오는 일본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번역을 하면 뭐가 좋은가. 자기네 나라말로 편하게 읽으니까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번역이 습관되면 그것은 단순히

문헌번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문물 전반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것으로 ‘번역’하게 된다. 일본의 이러한 번역주의는 세월의 두께를

얻으면서 서구의 근대를 나름대로 소화하여 독자적인 근대를 이룰 수 있게

한 정신적 바탕이 된다.

 

이것이 사실 오늘날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든 힘일 것이다.

 

전문 학자들이 대중을 위해 많은 번역을 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외국인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 주고받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콘텐츠’를 흥미진진하게 습득한다. 2007년에 한국에서 클래식음악

돌풍을 불러일으킨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 것은

또 어떤가. 이런 게 되어야 선진국인 것이다.

 

 

                         [진중권 교수]

 

 

영어가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에서

영어만큼 안 중요한 게 있을까?

영어 실력과 국가 경쟁력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은,

영어 못 하면서 경제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웃 나라 일본의 예가

반박해준다.

 

게다가 이들의 말이 옳다고 해둘 경우,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왜? 한국어는 불행히(?)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서, 국민들이 아무리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서구인들만큼 유창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 언어적 숙명을 곧바로 경제적 숙명으로 뒤바꾸어 놓는 걸까?

영어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려면 먼저 상황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즉 영어 실력의 부족이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낳고 있는지

파악하고, 거기에 대한 솔루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본과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때문에 그 유한한 자원을 최적의 방식으로 투입하는 것이 일처리의 기본이자

상식이다. 이런 상식이 없다 보니, 일단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몰입 교육의

생체실험을 하겠다는 무차별한 접근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6년 영어공부 끝에 간단한 회화능력을 갖춘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게 도대체 국가경쟁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가령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할 때가 되면,

국가경쟁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까?

영어가 중요한 것은 중요한 정보의 상당수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굳이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려면, '그 정보에 어떻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 하느냐'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쉽게 말하면, 과학과 기술, 경제와 경영,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 '경쟁'을

하는 데에 요구되는 외국어 정보를,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그것을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적, 사회적 공학의 문제다.

혁신은 사유에서 나온다. 인간은 모국어로 사유한다.

 

아무리 영어에 능통해도 사유는 한국어로 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자기 언어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끊임없이 외국어로 된 최신의 정보들을 입력할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한 마디로 이는 국어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소유한 국

어 사용자와, 외국어로 접근 가능한 정보 사이에 효율적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문제로 사고해야 한다.

 

영어로 된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것을

필터링하고, 거기에 접근할 유저 인터페이스를 구축하며, 중요한 자료는

한국어로 번역, 축적하여 모든 이에게 접근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쟁력은 경제 주체 각각의 능력이 총합되어 나타나는 창발의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영어의 접점에서 정보의 검색, 선별, 전송을 담당할 기술인력,

번역과 통역을 담당할 어학인력은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들을 어떻게

양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의 경우 웬만한 책은 두 세 달 만에 자국어 번역이 나온다.

덕분에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생력을 갖고 있다.

 

물론 한국어 사용자는 일본어 사용자 수의 절반도 안 되므로, 그저 시장에 맡겨

놓았을 경우에는 중요한 정보의 번역이 제대로 될 수 없다.

그래서 거기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고, 그거 하라고 국민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세금은 골빈 머리에 입력시켜 'good morning' 썰렁 개그나

출력하는 데에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돈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후퇴했지만, 전 과목 영어 수업이라는 발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저 그것이 민족 감정을 해친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한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언어는 본질적으로 한국어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한국에서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 축적은 모두 한국어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지탱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국어인지도 모른다.

 

가령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인의 고급 문헌 해독 능력이

꼴찌라고 한다. 한 마디로 정작 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고급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한국어로 된 고급정보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것이 한국이 가진 경쟁력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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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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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함.

1759년 유럽에 명성을 떨치게 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발표하였다.

1776년에 국부론 발표 ,.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으로 나라의 부(富)를 증대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자유방임 경제를 주장하였다. 최초로 자본주의 사회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였으며,

고전 경제학 이론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국본론이 환영받은 시대적 배경]

 

16세기 이후 18세기까지 유럽의 지배적인 경제사조는 중상주의(重商主義)

였다. 중상주의자들은 수입 규제, 가격 규제, 임금과 금리 규제, 산업육성, 사업

인허가 등의 각종 방법으로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경제발전에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런 중상주의를 비판하여 스미스는 정부 규제가 철폐된 자유방임의 경제를

주장하였다.

 

‘국부론’은 출판되자 즉시 큰 호응을 얻어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의 생각을

중상주의에서 자유방임주의로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19세기 중반 서유럽 전체에 자유주의 경제가 실현되었다.

 

이 책이 큰 지지를 얻은 것은 당시 사회 주도층으로 자리 잡은

상공인들(부르조아지)의 생각을 대변하였기 때문이다. 자유방임주의는

중상주의의 간섭 때문에 경제활동에 방해를 받던 이들이 강력히 원하던

것이었다.

 

 

                      [국부론 1권의 결론 ]

 

국부론 1권 제11장에서, 애덤 스미스가 꼽은 자유시장경제의 위협요소에

대한 언급한다

 

"이 계급이 제안하는 상업적 법률 규제들에 대해서는 항상 큰 경계심을 가져야

하며, 오랫동안 신중하게 검토한 뒤 채택해야 한다."

즉 기업가들이 하자고 하는 것은 아주 꼼꼼하게 검토한 다음에야 시행해야 할

것이며, 엄청나게 의심스럽게 이들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익은 공공의 이익과 결코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회를 기만하고 억압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언급한 '이 계급'이란, 노동자도, 정부도 아니었다. 바로,

당시 국부론을 지지했던 '신흥 자본가 계급'이었다.

 

즉 기업이 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대중을 속일 것이므로 그들에게

절대로 속으면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진정한 의미]

 

<국부론>에서 단 한번 언급된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과 관련해 “스미스가 말한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는 개인이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려고 자연스럽게

노력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의미지만,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몇몇

개인의 자연적 자유의 행사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스미스는 강조하였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은유나 ‘자연적 자유’를 통해 스미스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사회철학은,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한도 안에서 개인에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예컨대 독점자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연적 자유는 제한되어야 하고,

독점자의 사적 이익은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은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현재의 부르주아경제학은 독점자본이나

다국적 자본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엄청나게 훼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스미스를

모독하는 행위다

 

 

                   [국부론의 인간관]

 

스미스의 출발점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인간성'은 종래의 전통적인 인간을 상징한다. 그것은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는

것외에도 다양한 차원의 도덕적 실천까지도 고려하는 인간의 종합적인

성품이다.

그런데 스미스는 그러한 가치기준을 점잖게 없애 버린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이익을 따질줄만 알면 '인간'인 것이다.

 

스미스의 출발점이 인간의 이기심이라면, 그것은 <<국부론>>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이며, 동시에 그가 서술하는 자유방임 경제 체제의 핵심 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체제에서는 이기심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의도적인

계획도 수립되어서는 안된다. 스미스는 그것을 강조하여, 역설적으로 이기심의

충족이 보편적인 이익, 즉 국부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부론의 구체적인 내용]

 

“국부론”의 핵심사상은 상업사회에서 모든 개개인은 상인이고, 개개인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단지 자기자신에게만 이익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 분업의 강조

 

“국부론”의 서두에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교환자이다”라고

주장한다. “국부론”의 1편 1장에 다르면, 노동생산력의 향상, 곧 노동과정에서

발휘되는 숙련 ․ 기교 ․ 판단의 향상의 대부분은 분업의 결과였다.

 

그런데 수많은 이익을 가져오는 분업은 그것이 낳을 일반적 풍족을 예상하여

인간이 자신의 지혜로 사회에 도입한 것은 아니다. 분업은 인간성의 어떤 성향으로

부터 매우 천천히 나타나게 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결과이다.

 

인간은 교환하려 하지만 동물들은 교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인간인 것은 교환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즉 인간은 교환자일 때에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다.

 

그는 『국부론』에서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 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생산의 기초를 분업에 두었다. 그는 분업과 이에 수반하는

기계의 사용을 위해서는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며, 자유 경쟁에 의해서 자본 축적을

꾀하는 것이 국부 증진의 정도(正道)라고 역설하였다.

 

 

■ 보이지 않는 손과 개인의 이기심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가격의 자동 조절 기능,

가격의 매개 변수적 기능을 말한다. 이 기능에 의해 경쟁 시장에서는

수요, 공급의 균형이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라는 경제의 기본 문제를 결정짓는 요인이 바로 가격이다.

각 경제 주체는 가격의 변동에 따라 행동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

변동의 신호에 따라 소비자는 효용(만족)이 최대가 되도록 소비하고, 생산자는

이윤이 최대가 되도록 생산한다.

 

아담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하는 자연적인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모든 경제 활동이 조정되고

개인과 사회의 조화가 실현된다는 낙관론을 펼쳤다. 즉 가격의 능동적인 자동

조절 기능에 의해 경쟁 시장은 수요, 공급의 균형이 부지불식간에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이에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 추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들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개인의 이익 추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산물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자원을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공익을 증진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며 또 얼마나 증대시킬 수 있는

지도 알지 못한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하여 행동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행동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는 가운데 사회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증대 시킨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리는 신적 존재는 개인의

경제행위가 사회전체의 경제적 효율성과 안정성을 가져오도록 보장함으로써,

상업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개개인의 도덕적 부담이나 책임을 감면 해주기에

이른다.

 

상업사회에 살고 있는 개인은 자신의 경제행위에 대하 도덕적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상인은 도덕적 고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사익만을 추구하더라도

결국에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대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도덕적

으로 정당한 행위를 하는 개인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힘은 다름 아닌 보이지 않는 손이다.

 

결국 국가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으로 하여금 자기의 본성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발휘하도록 해 주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저서 『국부론』의 또 다른 핵심이다. 정부는 국토를 방위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법질서를 유지하며 개인이 할 수 없는 공공사업을 수행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그 나머지의 분야는 모두 개인에게 맡겨 두라는 자유방임주의를

추구한 것이다.

 

 

■ 중상주의 배격

 

사실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 연구를 시작하던 1750년대는 시장 경제 체제가 확립된

환경이 아닌 중상주의 시대로서 자유로운 영업 활동을 막는 규제가 많은 시대였다.

스미스는 이러한 규제를 철폐해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므로,

『국부론』의 시대적 의미는 중상주의 비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중상주의에 의해 주로 진행되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뿐이다. 가난한 자와 빈궁한 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은 너무나 자주

무시되거나 억압받고 있다."

 

아담 스미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국가 중심적 무역 패러다임이란,

국가가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증대해야 한다는 책임과 목표를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경제 활동에 간섭하며 무역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일종의 보호 무역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규제는 시장 중심적인 패러다임의 입장에서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국가의 통제에 따른 부작용은 곧 가난한 자에게 피해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대안은 결국 자유방임이었던 것이다.

 

중상주의자들은 권력이 부를 창조하고 부는 다시 권력을 증대시키며, 이렇게

증대된 권력은 더욱 많은 부를 가져와 결국 안전과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는 권력과 부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결국은 권력과 부의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파악했던 것이다.

그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는 동시에 극복하고자 자신의 경제 이론을

강조했다.

 

 

                     [도덕감정론]

 

“도덕감정론”은 타인을 고려하는, 역지사지하는 동감의 원리에 기초하여

도덕철학 체계를 세우고 있다

 

어떻게 인간이 도덕적으로 될 수 있는가? 무엇이 도덕 덕목인가? ,

인간이 도덕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도덕적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 모든 도덕적 감정의 근원에 놓여 있는 감정은 ‘동감’ 이라 불리는 감정이다.

 

동감이란 모든 사람들이 동인한 존재(인류)로서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갖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심리상태의 변화를

의미한다.

 

“도덕감정론”은 보이지 않는 손이 부의 평등한 분배 혹은 최소한의 물질적 생존

조건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해줄 것이므로,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참되다고 하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익을 추구하면서도 도덕적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상인에게 위안을 주는 “국부론”의 기본 주장과 완전히 다르다.

 

도덕감정론의 세계에서는 비록 권력과 부의 불평등이 존재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러한 불평등에 개의치 않고 신의 섭리가 보장하는 기본적인 물질적 삶에

만족하면서 도덕적 덕목과 행복을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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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대중은 거짓말에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 요제프 괴벨스 , 나치 선전 부 장관 -

 

침묵의 나선이론(沈默 - 裸線理論: the spiral of silence theory)

 

■ 정 의

 

여론형성의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여성커뮤니케이션

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Noelle-Neumann,1974)이 제시한 이론으로

침묵의 나선이론 또는 와선이론이라고도한다.

 

1980년대에 이르러 미디어는 다시금 강력한 효과를 미친다는 견해로 선회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유멍한 이론이 바로 침묵의 나선형 이론이다.

매스미디어의 여론형성 기능을 설명하는 이 이론은 매스미디어가 여론의

지지도와 반대로의 의견분포를 전달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의견이

우세한 여론에 속하면 더욱 밝히고 열세에 속하면 침묵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정보의 소외를 두려워하는 심리적인

요소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말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여론의 형성과정에서 가장 관건이 되고 있는 요인은 그들의 주위에서

어떤 견해들이 지배적이거나 우세해 가고 있느냐에 대한 개인들의 지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유일한 요인은 아니며 이것과 함께 여론형성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매스미디어다.

 

 즉 여기에 매스미디어를 통한 여론 조작의 위험성이 있다

여론 조작을 통해 정부나 대기업이 악용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대선때 이명박후보가 일방적으로 우세하다는 방송의 보도를

통해 여론몰이를 한 것도 일례라 생각한다

 

■ 예 시

 

한 마디로 모기향 같은 나선 하나 그려놓고 그것 을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빗댄

것인데, 말하자면 이렇다. 월드컵 응원 전에서 무리한 태클을 시도한 우리나라

선수에게 ‘경기 똑바로 하라 ’고 목소리 높일 대한남아는 없을 것이고,

수업 종료시간을 앞두고 끝내달라고 아우성치는 학생들 속에서 ‘질문 있습니다’라고

외칠 학생 눈뜨고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사람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중심의견이나 공론에 비교적 ‘안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심의견은 나선의 바깥으로 돌면 돌수록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반면,

다수의 의견과 분위기에 반하는 의견들은 모기향 안쪽의 작은 나선으로 돌고

약한게 된다는 게 이 이론의 요지다

 

 

■ 여 론 조 작 (선전 모델)

                      

                         - 노엠 촘스키 -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자 미국의 양심으로 일컬어진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악용한다

 

언론은 대중에게 메시지와 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으로서 기능한다. 개인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며, 가치관ㆍ신념ㆍ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그들을 통합시키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다.

 

돈과 권력이 뉴스 보도를 여과하고 반대의견을 무시하며, 정부와 우세한 사적

이익집단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중에게 전달하도록 한다

 

즉 선전모델은 언론의 ‘사회적 목적’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특권 집단의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의제를 대중에게 주입하고 옹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론은 주제 선별, 관심 분산, 쟁점 설정, 정보 여과, 강조와 논조를 통해,

그리고 수용할 만한 전제의 범위 안에 논쟁을 제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러한 목적에 봉사한다.

 

아래와 같은 여과 장치를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첫 번째 여과장치 : 언론의 규모, 소유권, 수익성 지향

 

정부, 통신사와 더불어 뉴스 의제를 결정하고 상당 건수의 국내 및 국외 뉴스를

하위층의 언론과 대중에게 공급하는 장본인이 최상위층에 속한 언론사들이다.

이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업체들이며 대단한 부자들이 소유ㆍ관리하고 있다.

거대 언론사의 경영진은 이사회와 사회적인 유대를 통해 재계의 주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또한 거대 언론사들은 이사들과의 유대 이외에도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 종사자들과 협력하면서 신용 대출을 원활하게 받고 주식 매각과 채권

문제, 그리고 인수 기회와 인수 위협을 다루는 데 대한 조언을 듣고 도움을 받는다.

은행과 타 기관투자자들 역시 언론사의 대주주들이다. 이런 언론기업은 다른

대기업, 은행, 정부와 긴밀하게 얽혀있고 상당한 공통 관심사를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뉴스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방법이다.

 

▶ 두 번째 여과장치 : 사업 허가서로서 광고

 

광고가 호황을 누리기 전에는 신문사들이 판매수익으로 영업비용을 충당했다.

그러나 한층 성장한 광고의 유혹에 넘어간 신문사들은 생산비용을 한참 밑도는

가격으로 신문을 팔아도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언론은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싼 판매가격으로도 이윤을 남길 수 있으며, 광고를 하지

않는(광고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약한 경쟁자들을 침식해 들어간다.

광고주가 TV 프로그램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간단히

그것을 구매하고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광고주들은 비우호적인 언론기관을

차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원칙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별하기도 한다.

대기업 광고주들은 환경 파괴, 군수산업, 혹은 제3세계의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이익을 챙기는 기업 활동에 심각한 비판을 가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일이

거의 없다.

 

▶ 세 번째 여과장치 : 뉴스의 정보원

 

언론은 경제적인 필요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정보 제공자와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뉴스가 자주 발생하고 소문과 비밀이

무성하며, 정식 기자회견이 열리는 곳에 자원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는 뉴스의 구심점이다. 재계 역시 뉴스 거리를 꾸준하고

믿을 만하게 공급한다. 마크 피시먼(Mark Fishman)은 이를 “관료에 대한 친화성

원칙”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관료 조직만이 뉴스 조직의 정보 공급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부와 기업의 뉴스제작자들은 정보 제공자라는

굳건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뉴스를 발표하는 언론 조직의 편의에 모든 것들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 네 번째 여과장치 :플랙과 외압

 

플랙(flak)'은 언론의 표현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인 대응을 일컫는다.

플랙이 대규모로 발생하거나 상당한 재력을 지닌 개인이나 단체에 의해

제기된다면 언론은 그 때문에 불편할 수밖에 없으며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

특히 큰 희생을 치르게 할 만큼 위협적인 플랙을 생산할 능력을 가진 주체는

권력층이다. 광고주들도 지원을 철회할 수 있다. 플랙을 만드는 사람들은 서로의

힘을 보강하면서 뉴스 활동의 정치적 통제력을 강화한다. 주요한 플랙 생산자인

정부는 언론을 공격하고 협박하고 ’교정하면서‘ 정해진 테두리 밖으로 일탈을

막으려고 애쓴다.

 

▶ 통제 메커니즘으로서의 반공주의

 

마지막 여과장치로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다.

공산주의는 궁극적인 악으로서 항상 재력가들을 따라다니는 망령으로 취급받았다.

이 이데올로기는 적에 대항하도록 대중을 선동할 수 있으며, 모호한 개념을

바탕으로 재산권을 위협하거나 공산국가, 급진주의와의 화해를 지지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을 견제할 수 있다.

반공주의의 통제 메커니즘은 제도를 통해 언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빨갱이 소동이 벌어진 시기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라는

둘로 나뉜 세상을 기준으로 논쟁이 형성된다. 경쟁하는 양편에 이익과 손실이

할당되고 ‘우리 편’을 옹호하는 것이 완전히 정당한 뉴스 보도로 간주된다.

 

▶ 이분법과 선전캠페인

 

다섯 가지의 여과장치는 문을 통과하는 뉴스의 범위를 좁히고, ‘빅뉴스’가 될 수

있는 것을 크게 제한한다. 1차적인 정규 정보원에서 나온 뉴스가 중요한

여과장치의 요구조건을 충족하면 언론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반대자, 약하고 조직되지 않은 개인이나 단체에 관한

정보는 정보비용과 신뢰성에서 일차적인 불이익을 받으며, 여과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통제자를 비롯한 여러 권력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따른다

 

언론의 일반적인 이분법은 여과장치가 작용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가치 있는 희생자들을 박해하는 일은 여론조작의 지속적인 근거가 된다.

정부, 재계, 언론은 어떤 이야기가 극적이면서도 유용하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치중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대중을 계몽한다. 이것은 1983년 9월에 발생한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을 보아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사건은 공식적인 적을 비난하는 분위기를 확산시켰고 레이건 행정부의

무기 계획을 크게 진전시켰다.

 

▶ 가치 있는 희생자와 무가치한 희생자

 

선전 시스템은 적국의 학대받는 사람을 ‘가치 있는’ 희생자로, 자국이나

우방국에서 똑같이 혹은 더 가혹하게 학대받는 사람을 ‘무가치한’ 희생자로

취급한다. 가치의 유무는 언론이 보이는 관심 혹은 분노의 범위와 성격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차별적인 보도가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동안에도 언론,

지식인, 대중은 진실을 모른 채 매우 도덕적이고 정직한 성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선전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잘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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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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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의 입

또가고싶다 2008. 10. 19. 13:22


"우리는 국민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댓가를 치르고 있는 거다

 

 

                    [ 괴벨스의 말 ]

 

아마도 우리는 역사상 유래 없는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남길 것이다.

혹은 가장 악랄한 범죄자이거나.

  - 요제프 괴벨스 , 나치 선전 부 장관 -

 

'당신은 누굴 사랑하나?'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가?

 

'99가지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에게 한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괴벨스의 일생 ]

 

언론이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파악하고 그를 이용했던 이가 바로 나치 선전부 장관으로 군림했던

요제프 괴벨스 박사였다.

 

요제프 괴벨스는 상당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한 집에 셋째 아들로 태어나 네 살 때 골수염을 앓아 그는 평생 그로 인해

신체 불구자라는 딱지를 안고 살아야 했고 콤플렉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있어 장애가 되었다.

1922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독일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괴벨스는

문학·연극·언론계에서 거의 무보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동시대인들이 그러했듯이 패전으로 말미암아

더욱 뜨거워진 민족주의의 열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대학시절 한 친구의 소개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에 눈뜨게 된 그는 나중에 상류계급 흉내를 내기는

했지만 계속 반(反)부르주아적 태도를 지켜나갔다.

 

괴벨스는 처음에 반유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가 존경한 스승은 유대인들이었으며

당시 그는 반(半)유대계 소녀와 약혼한 상태였다. 괴벨스가 이때쯤 정계에

입문했더라도 그의 정치행로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나치스에 입당하게

된 것은 전혀 우연한 일이었다.

1924년 가을 괴벨스는 국가사회주의자들과 사귀게 되었다. 천부적으로 달변이었던

그는 이내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SDAP)의 엘버펠트 지구 사무장이자

격주로 발행되는 국가사회주의 잡지의 편집장이 되었다. 괴벨스는 내면의 신념과는

반대로 히틀러를 지지했다.

 

괴벨스의 영향력은 1937~38년에 약화되었다. 1931년 중상류층 여성과

결혼하여 이미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던 그는 이 기간 동안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고, 이로 말미암아 자신의 일과 가정을 거의 돌보지

않았다. 그의 처지는 제2차 세계대전(괴벨스는 이 전쟁을 달가워하지 않았음)이

일어났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승리하고 있을 때는 선전책임자가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와 아프리카에서 패배하여

전세가 역전되면서 괴벨스는 절정기를 맞게 된다. 비로소 그는 패배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선전의 대가로서 진면목을 보일 수 있었다.

 

1944년 7월 20일 감행된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은 히틀러가 괴벨스를 자기

곁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8월 25일 괴벨스는 '총력전을 위한 제3제국

전권위원'이 되었으나 그가 곧 탄식했듯이 모든 것이 너무 늦게 왔다.

1945년 5월 1일 괴벨스는 베를린의 포위된 벙커 안에서 초창기 나치 지도자들

가운데 유일한 심복으로 히틀러를 보좌하고 있었다. 이 재능있는 나치의

무대감독은 아내와 6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함으로써 가장

소름끼치는 잔혹극의 연출을 마쳤다. 전날 그는 히틀러의 뜻에 따라 제국의 총리로

임명되었다. 단 하루 동안, 불과 몇 평방미터의 공간 속에서 그는 그렇게

마지막 후계자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괴벨스의 언론이용 ]

 

괴벨스는 히틀러를 총통으로 만들기 위한 신화를 창조했으며, 당의 행사 및

시위의식을 제정하고 정력적인 연설을 행함으로써 독일 대중을 나치즘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나치당이 집권에 성공하자 괴벨스는 국가선전기구를 장악할 수 있었다.

'국민계몽선전부'가 그를 위해 만들어졌고 신설된 제3제국의 '문화원' 원장도

겸임했다. 괴벨스는 문화원 원장으로서 선전은 물론 언론·연극·영화·문학·음악·

미술계까지 손을 뻗쳤다. 그러나 국외선전·출판·연극·문학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통제권만을 행사했는데, 그 이유는 관할권을 놓고 심한 마찰을 빚은 까닭이었다.

 

괴벨스는 교조주의보다는 효율성을, 원칙보다는 편의를 우선시하는 인물이었다.

 

괴벨스는 곧 언론을 통제하고 이용해서 대중들의 인기를 사로잡는 비법을

무기로 이용했다.

불과 몇 년 전에 발명되었던 라디오를 전국민들에게 싼 가격으로 보급하게

한 것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독일인들은 찢어지고 갈라지는 듯한 히틀러의 목소리를 이젠 라디오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독일 각지 어디에서고 전당 모임이 있거나 연설이 있을

경우 라디오 중계차량이 그 뒤를 따라 전국 방송을 하게 했다.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날려버리기 위해 괴벨스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밝고 유쾌한 음악들을 흘러보내도록 했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고 아늑하게 만든다.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의 최신 유행곡들이 악단에 의해 연주되어 라디오 방송을

타기도 했다.

 

전쟁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히틀러가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기가 무섭게

선전상은 즉각 그것을 잠재울 만한 효과적인 방법도 연출했다.

즉 히틀러의 살아있는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격려 연설을 끊임없이 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도부 쪽에서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고 두려워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식으로 세뇌시킨 것이 주효했던 지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국민들의 대부분은

히틀러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 방편으로 괴벨스는 역사적인 예를 들고 여러 사례들을 비교했으며, 소위

불변의 역사법칙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최후수단으로 어떤 종류의

비밀병기들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괴벨스의 활동은 특히 후방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었으며 바야흐로 총력전의 주창자가 되었다.

히틀러는 때때로 괴벨스가 만약 옆에 없었더라면 나치 정권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언론장악]

                            당신의무의식을 파고든다

 

그의 정치성공의 기반은 ‘방송장악’에 있다. 그는 방송을 정치에 이용한

이탈리아 최초의 정치인으로 거론된다.

 

새로운 뉴스보도 방식을 이용한다. 이른바 ‘샌드위치 뉴스’ 정치적 공방이

큰 사안에 대해 ‘정부-야당-여당’ 순으로 입장을 듣는 것이다.

야당의 입장도 방영되기에 얼핏 공정한 보도일 듯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청자들은 ‘마지막 입장’을 옳게 느끼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공정히 보도되지만 늘상 정부가 일방적으로 승리할 뿐이다. 정부 권력에게

‘사유화’된 방송으로 전락한 것이다.

 

사람들은 방송의 신뢰도를 믿는다. 그것이 바로 영상매체의 힘이다.

내 눈으로 보면서 내 귀로 들었다. 방송에서 저렇게 대통령의 쾌활한

미소와 함께 적극적인 칭찬을 이어가고 있는데, 설마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이끌겠느냐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설마, 방송이 저렇게 칭찬하고 있는데

내 삶을 파괴할 정책에 대해 방송이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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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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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캐나다 정책 대안센터 국장): “미국은 항상 세계 제 1의 시장을 내세우며

다가옵니다. 어서 미국으로 오라고 유혹하죠. 그렇지만 FTA로 미국 시장의

진입권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미국에는

국제법보다도 우선에 두고 언제든지 적용할 수 있는 매우 보호주의적인

무역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내용]

 

북미FTA가 체결된 이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게 실제 멕시코 후아레즈의 현실이랍니다.

 

영화 대사중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FTA는 정부와 재벌 그리고 그밖에 인원들을 위한 법이라고" " 또한

노동자 보호조항은 전혀 없다"

 

돈만 밝히는...부패한 정부...

멕시코의 언론은 모두 정부로부터 장악당했습니다.

 

                [FTA이후 여성의 삶]

 

FTA는 노동권을 더 값싼 임금의 '착취당할 권리'로 만들어버린다

 

NAFTA 체결 이후 많은 미국기업들은 세금 혜택이 존재하고 노동기본권 보장

의무가 없으며 저임금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이웃 나라들로 생산시설을 대거

이전했다. 이에 따라 제조업 미숙련노동에 종사하는 미국여성의 실업률이

대폭 증가했다. 실업자 지원프로그램에 지원한 여성의 수는 NAFTA 체결 이전

1만 4천여명에서, 그후 10년 동안 무려 150만명으로 늘어났다.

 

FTA가 자유무역의 허울을 내세운 미국의 자국 보호주의일 뿐이라는 비판에

비추어볼 때 최대 이해당사국인 미국에서조차 실업이 증가하며,

특히 여성의 빈곤문제가 심화되고 노동권 차별이 강화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나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성 노동자 4명 중 1명이 정부기관이나

학교, 병원 같은 공공부문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NAFTA 이후 급격한 공공부문

사유화로 실업자 또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공공써비스의

축소가 다른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 또한 심각하다. 캐나다 정부는 NAFTA

체결 전부터 서서히 공공의료 써비스체계를 민간영리체계로 전환해왔는데,

NAFTA 체결로써 사실상 전면적인 사유화로 접어들었다. 이로 인해

빈곤층의 70%를 차지하는 여성의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기 시작했다.

 

 

          [참고로 FTA이후 멕시코의 모습]

 

[인터뷰]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 연출 KBS 이강택 PD

 

"멕시코 정부도 한국정부처럼 장밋빛 약속 했었다"

 

 

■ 국민경제 개념이 사라진 멕시코…미국 글로벌 경제 편입

 

한마디로 얘기하면 멕시코에 국민경제가 없다, 국민경제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적인 상호연관성을 갖는, 최소한의 통합성을 갖는 국민경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파편화, 개별화돼서 미국 중심의 글로벌

경제에 편입된 것이다. 적응할 수 있는 자들은 개별적으로 편입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배제되고, 그 사이 상호연계성이 전혀 없다.

일부 대기업은 잘 나간다. 우리가 많이 아는 코로나 맥주를 만드는 모델로라는

기업, 식품회사 빔보, 시멘트 만드는 세멕스 등은 세계 시장점유율이 2~3위

정도 된다. FTA를 통해 초국적화를 달성한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짐작하듯이

농민, 노동자, 빈민은 거의 말도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익들은 양극화는 FTA하고는 관계없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멕시코가 살리나스

정부 시절 나프타를 추진할 때 얘기는 이런 거였다. “나프타 하면 선진국 된다.

FTA 해서 선성장 후분배를 하자. 빨리 성장해야지만 사회적 약자도 돌아볼 것

아니냐.” 그런데 이제 와서 우익들은 말을 뒤집고 있다. “그거 원래 관계없는 거다”

라고.

그 당시에 연구소, 학자들이 ‘선진국론’ ‘미국시장선취론’을 바탕으로 해서

통계수치를 조작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거기서 대학교수 한 사람을

만났는데 자기도 그랬었다고, 자기 연구소에서도 그랬었다고 고백하더라.

홍보물을 찍고 국영광고회사를 통해 TV광고를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틀어댔다.

그런 의미에서 한 판의 국민사기극이 벌어졌다. 그 행태라는 게 우리가

추진하는 것하고 얼마나 차별성이 있나.

 

■ 우파들의 거짓말 "FTA와 양극화는 관계 없습니다"

 

멕시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어디를 가나 있는 노점상들이다. 가로마다,

지하철역마다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우리로 치면 옛날 청계천을 생각하면

되는데 종로고, 광화문이고 모든 도로가 다 청계천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도의 양쪽에 빽빽이 노점상이 들어서 있으니까 사람들이 인도로 못 다니고

차도로 다닐 정도다.

 

노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노점상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멕시코는 실업수당이 없어서 잘리거나

회사가 문을 닫으면 뭐라도 팔아야 하는 것이다. 팔지 않으면 굶어죽으니까.

구직활동을 할 여유가 없으니까 바로 비공식 노동시장에 포함되는 것이다.

 

남미쪽에 가면 길거리에 차 유리창을 닦아주는 사람들이 많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한 남미 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멕시코에서는 한둘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 달려든다. 그게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다른 점이다. 1억 인구

중에 경제활동인구를 4천만 명으로 보는데 공식부문 경제활동인구가

1천2백만 명이다. 3분의 2이상이 비공식 부문 등에서 일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나. 농촌에 가보면 알 수 있다. 가보면 완전히 무너졌다,

붕괴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마을이 휑하고 입구부터 농토가 버려져있는 게 보인다.

마을에는 노인하고 애들밖에 없다. 젊은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한 집에 들어가

봤는데 아들 셋이 다 미국에 불법이주를 했다.

 

■ 농촌 완전히 무너졌다. 농토는 버려졌다

 

여기서는 농산물이 원가도 안 나오니까 돈 벌러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멕시코는 옥수수 경작규모가 미국의 80분의 1이다. 게다가 미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주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 하기 전부터 농업을 포기했다.

비료, 종자 등 각종 지원을 없애고 수매 등 가격지지제도를 폐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농산물이 들어오고 가격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니까

경작을 해도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농지를 버려두고 포기한

사람들이 그대로 있으면 굶어죽으니까 어디로 가냐.

마킬라도라(북부의 보세가공단지)나 미국으로 가는 거다.

 

농촌은 그렇고 도시에서도 문닫는 공장이 쉽게 목격된다. 어디나 중소기업이

고용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월마트 같은 할인점에 가보면 멕시코 제품은

얼마 없다.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이 다 망한 것이다. 한 부문이 망하면

다른 부문도 연쇄도산을 하게 돼있다. 왜냐. 미국산 제품이 무관세로

들어오는데다 금융은 95% 이상 장악돼 있어서 금융지원이 안 된다.

그리고 외국기업에 무슨 의무조달 비율이 있어서 멕시코 제품을 사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망하는 것이다. 마킬라도라에 일자리가 60만개나

늘었다고 하는데 국내 제조업에서는 더 많은 일자리가 줄어서 전체적으로

20만개가 줄어들었다.

 

 

■ 수출, 외국인 투자 늘어난다고? 그게 누구 좋은 일인데?

 

하지만 수출이 늘어난 게 아무 의미가 없다. 수출 1위부터 6위 가운데 멕시코

기업은 국영석유회사 하나밖에 없고 다 미국 기업들이다. 미국 기업들이

자기네 부품 가져다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수출이란 이름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마킬라도라에서 현지부품을 사용하는 비율이 3%에 불과하다. 국민경제에 내적

파급력이 없다. ‘섬’ ‘파편화’라는 게 이런 의미다. 그렇게 수출이 늘면 뭐하나.

수입이 늘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무런 파급효과를 갖지 못하는데…. 결국

초국적 자본의 활동이 국경 안에서 벌어진다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통계로

잡은 것이고….

외국인 투자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투자에 대해 대단한 환상을 갖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돈을 들고 와서 새로운 공장을 짓나. 아니다. 쓸만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게 전부다. 경제성장이나 일자리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다.

인수합병하고 나면 하는 게 뭔가. 정리해고 아닌가. 이래서 기존에 있던 멕시코

기업들 중에 몇 개 먹을만한 것 골라먹고 나머진 죽여버리는데 그때 인수합병한

자금이 외국인투자로 잡힌다. 수치가 늘어난 건 너무 당연하다.

바나멕스라는 최대 은행이 있다. 씨티은행이 125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이 은행이 우리나라 은행들처럼 공적자금 엄청나게 퍼부어진 은행이다. 씨티의

인수자금 125억불이 그대로 외국인 투자로 잡혔다. 정부는 이것을 갖고 선전한다.

 

 

■ 폐기물 처리회사 암, 기형아 발생시켜놓고도 멕시코 세금 챙긴 이유

 

 메탈클래드는 처음엔 미국 대사, 관리들을 동원해 압력을 행사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너희네 주에 앞으로 투자 안 한다” “환경부 그따위로 하면 멕시코에

투자 안 한다”고 협박하고 한편으로는 돈으로 매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안 되니까 들고 나온 게 바로 나프타 11장이다.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멕시코 사람들도 이 조항이 이렇게 악용될 줄

몰랐다고 했다. 얼마나 황당한 거냐하면 메탈클래드가 “너희들이 허가했으면

9천억 달러 이득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 그 돈을 배상해라” 이랬다.

세계은행 산하에 국제투자분쟁해결본부(ICSID)라는 중재기관에서 판정을 하도록

돼 있는데 이게 셋으로 구성된다. 멕시코 정부에서 한 명, 기업에서 한 명,

양쪽이 합의한 재판장이다. 비공개로 진행이 됐는데 결국 멕시코 정부가

165억 원을 물어줬다. 예전엔 분쟁이 발생하면 기업이 자국 정부에 얘기해서

양국이 협상을 벌였는데 이제는 초국적 기업에게 국가와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해 주는 것. 이게 나프타의 본질이다.

한 나라의 사법주권이 없어진 것이다. 기업이 사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주민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 공공적 권리와 맞바꾼 것이다. 이게 나프타

11장장인데 이 조항이 한미 FTA 초안에도 들어있다.

 

더 웃기는 게 있었다. 현장에서 접근을 못하게 해서 멀리서 찍다가 나중에 한번

붙어봤다. 정문에 가서 찍는데 수위실에도 방독면이 있더라. 그 안에서 뭘 하나

봤더니 이게 폭발할 위험이 있어서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재안정화 작업이라고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메탈클래드는 이미 돈 먹고

철수하고 멕시코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나프타로 인해 멕시코의 불법이민 문제가 심각해졌다. 실상은 어떤가.

농촌과 도시에서 일자리가 없어지니까 일종의 대이동이 벌어진 것이다.

북부 국경지대로 갔다가 목숨을 걸고 넘어간다. 나프타 이전에는 국경에

장벽이 없었다. 미국쪽에 장벽이 없으니까 그때는 사람들이 리오그란데강을

건너갔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 주변에 장벽이 다 세워지고 경비가 워낙 심해지니까

사막지대로 넘어가고 있다. 사막에는 철조망만 얼기설기 치고 물이 있는 곳은

못 치니까 이쪽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국경을 넘다가 탈수로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이런 사람들 숫자가 1995년부터 늘기 시작했다.

 

멕시코 국경쪽의 티후아나에 가보면 장벽에 십자가들이 수백 개 걸려있다.

죽은 사람들 인적사항이 적혀있고 연도별로 관의 숫자가 기록돼 있다.

나프타가 무엇이었나, 그 나라 민중들에게 무엇을 초래했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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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FTA를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서 중미까지로 확대되었다
노동자 보호조항이 없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주 사막에서 또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17살 쯤 된 여자아이 후아레즈의 여성들은 지금도 계속 살해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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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에바와 멕시코 기업가인 마르코의 입을 빌어서 NAFTA 이후 멕시코의 모습을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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