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터치바이터치

도쿄걸도 나오고 코리안걸도 나오고...

국뽕 차오르던 적도 있었는데 내 기억 최초의 원힛트싱어가 아닐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내 기억에 있잖아.

 

휴... 이태원 미8군 배터리가게, garage 에서 일했을 때 얼마나 난리가 아니었는지...

중학교 다닐때인가? 약간 헷갈리긴 한다. 그들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또 그게 기가막히다.

아후 아쉬워라.

 

 

이 건 확실하다. 오락실 가면 모터사이클 타는 듯한 오락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항상 나오는 음악이었다.

그 땐 왜 그리 좋았는지, 이 음악을 들으면 무언가 뻥 뚤리는 듯한 기분, 그 거였다.

찾아보니 흠..동영상은 메구미 모리의 음악뿐이네. 

 

Megumi Mori - Tokyo Town

 

 

다른 가수의 이미지가 있는 것을 보면...그런데 왜 동영상이 없지?

사라음악 찾긴 힘드네.

 

좋은 시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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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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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샤우동 생방에 윤석열 지지한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미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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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방송통신고등학교는 사라졌다. 아름다운 학교들.

처음 나이트 클럽을 수학여행을 강원도 경포대로 갔을 때 방문했다.

내 인생 처음의 나이트클럽이다. 해수욕장의 나이트클럽이 뭐 시설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지금 상상해 봐도 참... 수더분 했다. 당시 나는 용산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 때다.

중학교 졸업이후 이태원의 개러지샵(지금의 카센타)에서 일하다가 정수직업훈련원에 들어갔고

훈련원을 다니는 와중에 고등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것이 방송통신고등학교다.

아마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자율형 사립고도 있고 과학고니 기술고니 있지만 방송통신고등학교도 있다.

그리고 방송통신대학교도 있다. 어쩌면 방송통신대학교를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이 곳에 가는 사람들은 100프로 정말 학교를 가고 싶어 가는 사람들이다.

다만 거의 모두가 경제적인 이유로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기에 선택을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학비가 엄청 쌌다. 2주에 두 번 출석을 하고 매일 라디오를 통해 학습을 듣는 형태이다 보니 당연히 저렴하다.

더구나 방송통신고등학교의 취지가 어떻게 보면 지금의 온라인 학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이 제한이 없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는 어른들을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분같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한 참 어린 동생, 혹은 조카뻘과 함께 학교를 다닌다는게 말이다.

 
 

 

ㅎㅎ

그렇게 살았다.

삼겹살을 고등학교때 처음 먹어봤다.

고기를 먹으면 배가 아파오는 통증. 이거 아는 사람 있을래나?

ㅎㅎ 이런 말 하면 쑥쓰럽지만 그냥 늙다리의 라떼다 싶으면 된다.

 

 

내가 검정고시가 아닌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소풍, 수학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소풍을 간 곳이 서오릉이다.

지금에 돌아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이런 인연이. 신기하지?

방송통신 고등학교는 전국구다.

 

방송통신대학교 출신들을 볼 때마다 한 편으로 참...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대한민국의 대학중 유일하게 입학하긴 쉬워도 졸업하기 어려운 곳이다.

방송통신고등학교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입학하는게 어렵다. 정말 그 곳을 선택할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지금은 더 그럴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방송통신고등학교출신들을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 마음뿐이다. 대한민국 방송통신소등학교 출신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아마도 2학년때 수학여행을 갔다. 1박2일로 경포대를 간 것으로 기억을 한다.

방송통신고등학교의 학생들 대부분이 직장인이다 보니다로드는 영계였다.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그런 스케쥴이다. 지금 돌아봐도 가슴 설레인다.

당시는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 했고 ... 아마 학교도 그러지 않았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박2일이었지만 다른 것은 기억이 없는데 나이트클럽은 기억이 난다.

딱 두 가지 장면이 생각이 난다.

 

 

 

하나는 클럽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같은 반, 하지만 40대쯤 되었던 분이다.

그 분이 소주를 따라 주시면서내 기억엔 소주다. 나이트클럽에서 소주.

술은 어른들에게 배워야 하는거다.

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그 말이 지금까지 이렇게 남아있고

나는 술버릇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름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다지 점잖치 않은 술버릇이 그 잊혀지지 않음으로 인해 이나마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같은 반이었던 누나와 춤을 췄는데 그 누나가

너 춤 잘 춘다, 나이트클럽 자주 다니는 거 아냐? 라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그 곳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그냥 정신없이 흔들었는지 모른다.

그 누나는 잘 있는지 그냥 궁금하네.

당시 방송통신고등학교에 학생들이 없다보니 2학년에서 3학년도

같은 학생들이 학년만 올라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

어느 날 하교길에 갑자기 팔짱을 끼는데 얼굴이 나도 모르게 빨개져서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을 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한 동안 나이트클럽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보통 당시 어느 도시에서나 있던 줄리아나, 한국관, 월드컵 등...

그래, 그런 곳들이다.

다로드 한 때는 참 춤 잘 췄다. 비록 족보는 없는 막춤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 춤으로 중국의 칭다오, 단동,광저우, 심천, 종산, 하이먼까지 두루 두루 놀아다녔다.

 

나이트클럽에서 부킹도 참 열심히 했고 돈 떼먹고 도망간 적도 있고 그 웨이터에게 사과를 이 자리에서나마

그냥 젊은 날의 객기, 혹은 추억, 뭐 그런 것들이다.

 

지금은 나이트클럽하면 우리 동네에는 한국관이 그나마 있더라만,

이제는 나이가 나이니 만큼 잘 안 다닌다.

ㅎㅎ 한 창때만 해도 자리에 앉지를 않았는데 말이다.

단지 담배피기 위해서 앉을 뿐이었다.

다, 기억이다.

 

참, 열심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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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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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때를 생각해 본다.

당시의 김대중 대통령후보는 호남과 서울권외에는 보루가 없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런 그는 김종필후보와 연정을 제안하며 통합을 하고 충청권을 안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의 또 다른 맹주가 있었다.

바로 이인제.

이인제는 충청권의 거물이었으며 경기도지사를 보낼 정도의 대중적인 인지도또한 갖추고 있었다.

김대중, 이회창, 그리고 이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회창 자제의 병업비리, 론 김대업의 정치공작이니 어쩌니 하지만 당시의 언론상황을 본다면

단순히 그 것만으로 이회창이 무너졋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안일한 사고가 아닐까.

지금조차도 윤석열과 김건희의 끊임없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움직임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이제 김건희가 터졌다.

그렇게 윤석열이 논란이 되었음에도 레거시 미디어의 쉴드에 넘어갔다. 

김건희는? 넘어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재명은 어떻게 해야 되나.

김대중을 돌아보자.

우리는 역사를 보며 현재를 발전한다.

안철수는 끝까지 가야 한다.

보수의 분열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혼돈하는 그들의 심리를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대한민국이 잘 되고자 할 것이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한 표를 행사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어쩔 것인가. 우리는 1인 1표제가 아닌가 말이다.

 

 

지금을 생각하면서 당시의 김대중을 생각해 본다면 추락하는

엘리베이터에 있는 자신을 생각해 보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어쩌면 대한민국이 그러할 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지혜를 지금 이재명 후보가 가져본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물론 나는 이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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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빗물을 받아서 빨래도 하고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바다위의 바자우족에겐 소중한 물이다.

 

바자우족도 육지와 교류를 이런 방식으로 한다. 

아빠가 가는 곳에 아이들도 함께 따라간다.

식수를 구매하고 돌아온다.

 

생강과 천연향신료를 이용해 훗날 사용하기 위해 해풍으로 말린다.

바자우족중엔 배위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바다가까이 해변에서 집을 짓고 사는 바자우족도 있다.

미끼도 없이 줄낚시로 참치를 낚는다.

이렇게 바다위에서 살다보니 누군가 아프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다. 

아이가 아프다. 

아갈아갈을 판다. 상인은 무게를 계산해서 지폐를 주지만 바자우족은 지폐를 세지 않는다.

믿음이다. 아니 그냥 삶이 그렇다. 너무나 순수한 사람들.

 

달걀은 귀한 특별한 음식이다. 집안이나 마을의 행사가 있을때 이 달걀을 바치며 기도를 한다.

먼저간 자식들에게 기도를 한다.

그래, 우리는 원래부터 함께 했고 나누었으며 그냥 그렇게 존재해 왔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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