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안 한다던 장제원···왜 이 타이밍에 내려놓았을까

입력 : 2023.12.12 15:18 수정 : 2023.12.12 15:48
조문희 기자

“나를 밟고 윤 정부 성공시켜달라”

혁신 대상 윤핵관서 혁신 선봉으로

“총선 승리의 밀알 될 것” 호평 속

“정치 안해야 될 사람” 등 비판도

여당 혁신 도화선 될 수 있을지 주목

김기현 대표 ‘희생’ 압박 더 커질 듯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거 22대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친윤석열계 핵심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22대 국회의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중진 의원들을 대상으로 불출마·험지 출마를 압박하던 당 혁신위원회가 해산한 지 하루 만이다. 자진 불출마 선언으로 당을 위한 ‘희생’ 모양새를 갖추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혁신 대상이던 윤핵관 장 의원이 혁신의 선봉에 서면서 김기현 대표 등에 대한 희생 압박도 커지게 됐다.

장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또 한번 ‘백의종군’의 길을 간다. 이번엔 제가 가진 마지막 공직인 국회의원직”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성공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나. 총선 승리가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래서 제가 가진 마지막을 내려 놓는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역사의 뒤편에서 국민의힘의 총선 승리를 응원하겠다”고 했다.

장 의원은 “버려짐이 아니라 뿌려짐이라고 믿는다”며 “당원 동지 여러분, 부족하지만 저를 밟고 총선 승리를 통해 윤석열 정부를 성공시켜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언제부터 불출마를 고민했느냐’는 질문에 “당선인 비서실장 되는 순간부터 모든 각오는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운명적인 것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 또는 김기현 당 대표와의 논의 여부 및 내용을 묻는 질문엔 답을 하지 않았다.

장 의원은 “제가 가지고 있는 하나 남은 거라도 다 내어놔야지 않겠나. 그런 마음”이라며 “지역 주민에 양해를 구하고 사죄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고, 그리고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당 안팎에선 의외라는 반응과 예견된 행보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온다. 앞서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3일 친윤·중진·지도부의 불출마·험지 출마를 권고했으나 장 의원은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장 의원은 인 위원장의 권고 일주일 뒤인 지난달 11일 자신의 외곽조직인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저보고 서울에 가란다. 저는 제 알량한 정치 인생을 연장하면서 서울로 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내에선 장 의원이 불출마 의사를 표현한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장 의원은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제 잠시 멈추려 한다”는 글을 남겨 총선 불출마를 암시했다. 같은 날 인요한 혁신위가 조기해산을 선언한 이후 시점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불출마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면서 “(장 의원은) 자기 결단이 부각되는 모습으로 하고 싶어서, 혁신위가 밀어붙일 때는 오히려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의원은 지난 6일 부산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및 당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했는데, 전후로 유무언의 메시지를 전달받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내에선 장 의원이 차기 부산시장 선거에 나서거나 대통령비서실 내지 내각에 합류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거 22대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마친후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3.12.12 박민규 선임기자

장 의원은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차남으로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부산 사상구에 당선됐다. 19대 총선 때는 공천 과정에서 탈락했고, 20대는 무소속으로, 21대는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당선됐다.

장 의원은 2021년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시절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윤핵관 가운데서도 핵심으로 꼽혀 왔다. 윤 대통령 입당 직후엔 대선 캠프 총괄실장을 맡았고, 지난해 3월 대선 이후에는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는 지난해 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에 반대하는 강경 기조를 보였다. 올 하반기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아 ‘언론 탄압’ 이력과 ‘아들 학폭’ 의혹으로 논란이 된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청문회에서 적극 방어전을 폈다.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인 우주항공청 설치를 위해 야당과 갈등도 무릅썼다. 현 정부 인사·정책 기조를 밀어붙이고, 정부의 ‘약한 고리’는 앞장서 방어하는 행동대장의 면모로 평가된다.

장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함에 따라 함께 불출마·험지 출마 압박을 받아온 당 지도부·중진·친윤계 의원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사퇴 요구에 직면한 김 대표의 거취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 의원들은 장 의원 불출마에 일단 고무적인 분위기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당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본인이 희생하는 결단”이라고 했고, 성일종 의원은 “장 의원의 멋진 결단을 환영한다”며 “총선 승리의 밀알이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반면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정치를 안 해야 될 사람이 정치를 안 하겠다는데, 그게 뭐 대단한 것이냐”며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별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안철수 의원은 “윤핵관 리더로서, 대통령실과 당이 처한 현재의 엄중한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결심에 감사드린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차가워진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안 의원은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를 통해 당 대표를 만든 책임도 지는 모양새”라는 뼈있는 말도 남겼다.

 

 

이거 하나 뿐이겠나?

단독] 장제원 의원에게 동서대 청소업체 대표 부부 ‘쪼개기 후원’ 의혹

[제1647호] | 23.12.01 15:25
 
학교는 지켜야겠지. 거기에 아들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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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전 의원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손잡고 창당을 선언한 '새로운선택'이 남녀 병역 평등 문제를 성별 갈등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금 전 의원과 류 의원은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사회 젠더 갈등의 해결책으로 '병역에서부터 가사까지 성평등'을 추진하겠다며 "병역 성평등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것과 남성 육아휴직 전면화를 제안한다"고 선언했다.

금 전 의원은 "최근 학계 논의를 보면 '어정쩡한 성평등'이 초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며 "성평등을 더욱 분명히, 전면적으로 이뤄내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이 같은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병역 성평등에 대해 "가정에서 성평등을 이루려면 병역 성평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할 것"이라며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검토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류 의원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국방 보고에 따르면 인구절벽으로 인해 병력 자원이 실제로 부족해진다"며 "분단국가 시민으로서 이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여성 징병제나 모병제를 논의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현행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북한, 이스라엘, 스웨덴처럼 여성 의무 복무제를 도입할지, 아니면 병역 제도를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남녀가 같은 의무와 기회를 받을지는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다룰 문제라는 얘기다.

금 전 의원은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선 "국가가 육아휴직 비용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기업은 의무적으로 그것을 실천하자는 것"이라며 "육아휴직 기간 정부가 통상임금을 100% 보전하겠다"고 선언했다.

류 의원은 "'모든 남성은 가해자'라는 명제에 기초해 페미니즘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온라인 페미니즘 내에서 통용되는 일부 표현이나 상징에 '조롱이나 혐오가 없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왜 똥볼을 차지? 

지금이 총들고 싸우는 전쟁인가? 모병제논의를 해야 할 시기에 무슨 남녀병역평등제란 말인가. 

여성들에게 병역평등을 이야기하려면 출산으로 인한 산전후 경력단절에 대한 해결책부터

내 세우고 난 뒤에 이야기해야 하는거 아닌가?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여자라고 모두가

군대를 가는 것은 아니다. 군대갈 나이대에 출산을 하게 되면 군대가 면제된다.

그 것이 일정부분 이스라엘의 출산률이 OECD수위를 차지하는 일정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출산시 15주간의 유급출산 및 육아휴가가 인정되며 불임치료중인 여성에게도 연간 최대80일간의

휴가가 주어지며 절차가 복잡하지만 대리출산도 인정이 되고 있다.

또한 여성의 유연근무제도, 7시출근 오후2~3시에  출근하고 아이를 직장에 데려오기도 하며 재택근무도 정착되어 있다.

미국도 최대 12주이지만 그 조차도 전체 근로자의 60%만이 적용을 받는데 무급휴가다.

대한민국은 미국 따라쟁이면서 그 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스웨덴은 어떤가. 출산후 480일(약 16개월)의 유급출산휴가를 받을수가 있다.

월급의 80%, 게다가 최소 90일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사용해야 하는 등 촘촘하다.

최소 90일은 어머니 혼자, 또는 아버지 혼자가 보며 상대방은 사회활동을 하는 것다.

출산휴가는 아이가 8세가 되기전까지 사용을 할 수가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보육시설이 확보되어 있어 출산휴가후에도 안심하고 맡길수가 있다.

 

엉뚱한 짓들 하지 말자. 똥볼좀 그만 차라. 씨바!

 

유럽선진국들의 출산지원금이다.

 

출산 지원금과 관련된 정책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으며, 국가의 경제 상황과 정부의 인구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출산 지원금은 출산휴가나 양육 지원, 교육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됩니다. 다음은 출산 지원금을 상대적으로 높게 지급하는 몇 가지 국가이다.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는 출산 지원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출산 지원금을 한 번에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 전후와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 정기적으로 지급된다. 일반적으로 출산 후 지급되는 지원금은 약 6,000유로(900만원정도) 이다.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출산 지원금을 지급하는 나라 중 하나로, 출산 후 한 번에 약 4,000유로를 지급한다. 이 외에도 노르웨이 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양육 지원과 보육 시설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핀란드: 핀란드에서는 출산 지원금을 지급하는 대신, "유아 상자"를 제공합니다. 이 상자에는 아기의 옷, 기저귀, 이불 등 필요한 물품이 들어 있으며, 상자 자체도 아기 침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지원은 핀란드의 출산율 증가와 아기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스웨덴: 스웨덴은 출산 지원금을 지급하는 나라 중 하나로, 출산 후 한 번에 약 2,000유로를 지급한다. 이 외에도 스웨덴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보육 시설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 프랑스, 독일 등 많은 국가에서도 출산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별로 지원금의 금액과 지급 방식이 다르므로, 각 국가의 정부 웹사이트나 관련 기관에서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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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명대표님이 지금까지 걸어오셨던 것처럼 꿋꿋이 이겨내시길 응원합니다.

꼭 이겨내십시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심사 탄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심사 기각요청 탄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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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터치바이터치

도쿄걸도 나오고 코리안걸도 나오고...

국뽕 차오르던 적도 있었는데 내 기억 최초의 원힛트싱어가 아닐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내 기억에 있잖아.

 

휴... 이태원 미8군 배터리가게, garage 에서 일했을 때 얼마나 난리가 아니었는지...

중학교 다닐때인가? 약간 헷갈리긴 한다. 그들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또 그게 기가막히다.

아후 아쉬워라.

 

 

이 건 확실하다. 오락실 가면 모터사이클 타는 듯한 오락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항상 나오는 음악이었다.

그 땐 왜 그리 좋았는지, 이 음악을 들으면 무언가 뻥 뚤리는 듯한 기분, 그 거였다.

찾아보니 흠..동영상은 메구미 모리의 음악뿐이네. 

 

Megumi Mori - Tokyo Town

 

 

다른 가수의 이미지가 있는 것을 보면...그런데 왜 동영상이 없지?

사라음악 찾긴 힘드네.

 

좋은 시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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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샤우동 생방에 윤석열 지지한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미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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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방송통신고등학교는 사라졌다. 아름다운 학교들.

처음 나이트 클럽을 수학여행을 강원도 경포대로 갔을 때 방문했다.

내 인생 처음의 나이트클럽이다. 해수욕장의 나이트클럽이 뭐 시설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지금 상상해 봐도 참... 수더분 했다. 당시 나는 용산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 때다.

중학교 졸업이후 이태원의 개러지샵(지금의 카센타)에서 일하다가 정수직업훈련원에 들어갔고

훈련원을 다니는 와중에 고등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것이 방송통신고등학교다.

아마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자율형 사립고도 있고 과학고니 기술고니 있지만 방송통신고등학교도 있다.

그리고 방송통신대학교도 있다. 어쩌면 방송통신대학교를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이 곳에 가는 사람들은 100프로 정말 학교를 가고 싶어 가는 사람들이다.

다만 거의 모두가 경제적인 이유로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기에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학비가 엄청 쌌다. 2주에 두 번 출석을 하고 매일 라디오를 통해 학습을 듣는 형태이다 보니 당연히 저렴하다.

더구나 방송통신고등학교의 취지가 어떻게 보면 지금의 온라인 학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이 제한이 없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는 어른들을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분같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한 참 어린 동생, 혹은 조카뻘과 함께 학교를 다닌다는게 말이다.

 
 

 

ㅎㅎ

그렇게 살았다.

삼겹살을 고등학교때 처음 먹어봤다.

고기를 먹으면 배가 아파오는 통증. 이거 아는 사람 있을래나?

ㅎㅎ 이런 말 하면 쑥쓰럽지만 그냥 늙다리의 라떼다 싶으면 된다.

 

 

내가 검정고시가 아닌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소풍, 수학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소풍을 간 곳이 서오릉이다.

지금에 돌아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이런 인연이. 신기하지?

방송통신 고등학교는 전국구다.

 

방송통신대학교 출신들을 볼 때마다 한 편으로 참...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대한민국의 대학중 유일하게 입학하긴 쉬워도 졸업하기 어려운 곳이다.

방송통신고등학교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입학하는게 어렵다. 정말 그 곳을 선택할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지금은 더 그럴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방송통신고등학교출신들을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 마음뿐이다. 대한민국 방송통신소등학교 출신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아마도 2학년때 수학여행을 갔다. 1박2일로 경포대를 간 것으로 기억을 한다.

방송통신고등학교의 학생들 대부분이 직장인이다 보니다로드는 영계였다.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그런 스케쥴이다. 지금 돌아봐도 가슴 설레인다.

당시는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 했고 ... 아마 학교도 그러지 않았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박2일이었지만 다른 것은 기억이 없는데 나이트클럽은 기억이 난다.

딱 두 가지 장면이 생각이 난다.

 

 

 

하나는 클럽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같은 반, 하지만 40대쯤 되었던 분이다.

그 분이 소주를 따라 주시면서내 기억엔 소주다. 나이트클럽에서 소주.

술은 어른들에게 배워야 하는거다.

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그 말이 지금까지 이렇게 남아있고

나는 술버릇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름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다지 점잖치 않은 술버릇이 그 잊혀지지 않음으로 인해 이나마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같은 반이었던 누나와 춤을 췄는데 그 누나가

너 춤 잘 춘다, 나이트클럽 자주 다니는 거 아냐? 라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그 곳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그냥 정신없이 흔들었는지 모른다.

그 누나는 잘 있는지 그냥 궁금하네.

당시 방송통신고등학교에 학생들이 없다보니 2학년에서 3학년도

같은 학생들이 학년만 올라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

어느 날 하교길에 갑자기 팔짱을 끼는데 얼굴이 나도 모르게 빨개져서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을 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한 동안 나이트클럽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보통 당시 어느 도시에서나 있던 줄리아나, 한국관, 월드컵 등...

그래, 그런 곳들이다.

다로드 한 때는 참 춤 잘 췄다. 비록 족보는 없는 막춤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 춤으로 중국의 칭다오, 단동,광저우, 심천, 종산, 하이먼까지 두루 두루 놀아다녔다.

 

나이트클럽에서 부킹도 참 열심히 했고 돈 떼먹고 도망간 적도 있고 그 웨이터에게 사과를 이 자리에서나마

그냥 젊은 날의 객기, 혹은 추억, 뭐 그런 것들이다.

 

지금은 나이트클럽하면 우리 동네에는 한국관이 그나마 있더라만,

이제는 나이가 나이니 만큼 잘 안 다닌다.

ㅎㅎ 한 창때만 해도 자리에 앉지를 않았는데 말이다.

단지 담배피기 위해서 앉을 뿐이었다.

다, 기억이다.

 

참, 열심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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