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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프 대디의 아이 윌 비 미씽 유 다.

호주에서 지겹도록 들으면 흥겹게 몸을 흔들던 바로 그 노래.

케언즈에서겠다.

케언즈 비치스에서 이 노래에 얼마나 몸을 흔들며 열광을 했던지,


가끔 그 때 생각이 난다.

다시 돌아갈 수없기에 더욱 간절하기까지 한 그 기억들은 케언즈다.


비치스,

피얼스,

콜스,

...

케언즈. 그래도 내겐 희망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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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

굴곡이 많았던 생활에 익숙해서 인지는 몰라도 금방 안정을 찾고 케언즈에 적응해 지려던 쯤이었을 거다.job도 구했겠다. 저렴한 쉐어를 구했고 다국적 환경에서 영어를 익히기는 수월하다 할 수 있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바로 옆방의 일본여자와는 거의 그 여자가 나갈때까지 몇 마디 나눠본 기억이 없다. 각자간의 생활을 누구도 침범하지 않았고 또 근무시간이 달랐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거 같다. 금요일에 가끔 맥주와 함께 담소를 나누곤 했다. 류와는 특히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류는 여자친구가 가끔 집에 와 아래층 거실에서 함께 자곤 했다. 외국에서 연인끼리 함께 있다는 것은 나에겐 정말 부러움 그 자체였다. 혹시 여러분중에서도 기회가 된다면 연인끼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해서 가 보는 것도 서로에게 정말 크나큰 경험과 서로를 더욱 믿을 수 있는 반석이 되어 주리라 생각을 해 본다. 중국식당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까지 걸어 돌아오면서 부딪치는 일상들에 익숙해 지면서 난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가까운 peers 뒷편 선착장에서 싸게 주고 산 낙싯대를 드리우고 시간을 낚는다고 했던가? 강태공이 말이다. 그런 여유를 부릴 수도 있었다. 


그 때 우연히도 시드니에서 만났던 영숙씨를 만나게 되었다.케언즈로 간다고 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혼자서 며칠만에 질려버린 기름기가 유난이도 반짝이는 중국식사를 하고 있는데 저 만치서 걸어들어오는 일단의 일행들. 한국인이구나 하면서 보는데 그 중 영숙씨가 보이는 것 아닌가. 나는 영숙씨에게 다가가 나를 기억하냐고 물으며 반가워 했다. 그 녀 또한 반갑게 맞이 했고 일행이 있는지라 짧은 대화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일행은 같은 여행사의 직원이었고 귀국하는 직원이 있어서 같이 식사중이었나 보다. 이제는 케언즈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하는 그녀는 곧 한국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며 내가 귀국하거든 한국에 있을거라며 연락처를 적어주었다.그 녀를 통해서 지영이 영국인과 결혼해서 영국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연한 섭섭함이 드는 건 무언지 몰라도 말이다. 


잘 된 거겠지. 그리고 또 한 명의 한국여자는 결국 영어가 안되서 한국인의 베이비 시터를 하다가
귀국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소식을 접하며 나두 한국에서 아무것도
준비를 해 오지 못했는데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이 감사했다.공연한 뿌듯함마저도 들기도 했는데 말이다. 정말 호주가 좁기는 좁은가 보다. 쿠~ 그런데 나에겐 황당한 일이 다가올 줄이야. 5일째인 것 같다. 일을 하러 나왔는데 예전에 테이블을 부지런이 오가며 접시를 나르던 일본인이 보이지 않고 다른 이가 앉아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난 가게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는데 그 날 돌아오는 접시는 내가 닦을 필요가 없었다. 다 기계로 닦이어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 것 저 것을 나르고 썰고 자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던 일을 하지 않고 그런 것들을 할래니 공연히 보이는 눈치. 결국 다음날도 마찬가지. 일을 다 마치고 주급을 주면서 여사장 왈!

담주부터 나오지 마라.
우리가 또 사람이 필요하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
으~~~이 황당함. 3주간 놀다가 구한 일자리인데 일주일만에
짤리다니 난 또 어디서 일자리를 구해야 할지....

Peers로 자주 갔다. 십 몇불짜리 낛싯대를 들고 터벅 터벅 들고가서 낛싯대를 드리우고 저 멀리 바다를 쳐다보곤 했다. 어느쪽이 한국이 있는 곳인지도 모른체 저 어딘가에 있겠지 하며 쳐다보았다. 내 미래를 생각해 본다. 어딘가에 있겠지. 저기 어드메에 말이야. 가진 것도 없으니 잃을 것도 없고 재산이라던 자신감과 용기는 나의 경험으로 다 남아 있겠지.
아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낛싯대를 드리우고 있을까? 수염이 텁수룩하니 멋있게도 생겼군. 나두 저렇게 좀 멋있게 수염이 나면 좋겠다. 내가 나이 들어도 지긋하게 늙는다면 좋을텐데...션코네리 처럼 말야. 참 리차드 기어도 멋있던데. 이런 맛에 낛싯대를 드리우는 지 모르겠다. 일본청년이 여자친구와 함께 걸어와서 내 옆 저 만치에서 자리를 잡는다. 난 일본말로 아침인산지 점심인산지 모를 간단한 인사를 한다. 그들도 방긋 미소를 지며 내게 인사를 한다. 햇살이 따갑다. 피얼스에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고독을 날려 버리려 애썼다. 아무도 아는 이는 없었던 케언즈.
이 작은 도시에서도 고독감을 느끼는데 서울에선 어떻게 생활을 할까. 난 서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유년의 그리 좋지 못했던 기억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누굴 원망해. 제길.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 겨울바다를 많이도 찾았는데 말이다. 이젠 그럴 여유도 없다. 그리 깨끗한 바다는 아니었지만 투어에 이용되는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고즈넉함이 좋았고 가끔 귀항하는 배들에서 토해져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 환한 미소가 좋았다. 대리 만족하는 걸까? 나를 편안하게 해 준 몇 군데중 한 곳 Peers.
또 돌아 다녀야 겠군. job을 구하려면 말이야. 정말 돌아다니기는 지겨운데 말이야. 쿠쿠. 머 할 수 없지. 그래도 모처럼 담배를 비록 제일 싼 것이지만 40개비짜리 박스담배를 피곤 했는데 다시 말로보 말이 담배를 펴야 되려나 보다. 피얼스에서 부터 바닷가를 따라 쭈욱 내려오다가 어떤 노년의 신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싱가포르에 자주 간다고 했다. 지금은 휴가중. 홍콩이라 했던가? 홍콩이군, 어렵게 해석해 본 걸로는 그는 중계무역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호주에서 굴러다니는 한국산 차에 대해서 애기했다가 그 건 싸니까 사는 것이라며 다른 나라에서 더 싸게 팔면 그 걸 사람들은 찾을 것이라고 말해서 별로 자랑스러울 것도 없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말이야. 어쩜 동남아에 굴러 다니는 우리차도 가격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그 분과 나는 나이차도 상당한 차이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먼저 말을 부쳐왔고 쉽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건 정말 좋은 거 같다. 쉬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여는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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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이 많았던 생활에 익숙해서 인지는 몰라도 금방 안정을 찾고 케언즈에 적응해 지려던 쯤이었을 거다. job도 구했겠다. 저렴한 쉐어를 구했고 다국적 환경에서 영어를 익히기는
수월하다 할 수 있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바로 옆방의 일본여자와는 거의 그 여자가 나갈때까지 몇 마디 나눠본 기억이 없다. 각자간의 생활을 누구도 침범하지 않았고 또 근무시간이 달랐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거 같다. 금요일에 가끔 맥주와 함께 담소를 나누곤 했다. 류와는 특히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류는 여자친구가 가끔 집에 와 아래층 거실에서 함께 자곤 했다. 외국에서 연인끼리 함께 있다는 것은 나에겐 정말 부러움 그 자체였다. 혹시 여러분중에서도 기회가 된다면 연인끼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해서 가 보는 것도 서로에게 정말 크나큰 경험과 서로를 더욱 믿을 수 있는 반석이 되어 주리라 생각을 해 본다. 중국식당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까지 걸어 돌아오면서 부딪치는 일상들에 익숙해 지면서 난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가까운 peers 뒷편 선착장에서 싸게 주고 산 낙싯대를 드리우고 시간을 낚는다고 했던가? 강태공이 말이다. 그런 여유를 부릴 수도 있었다. 그 때 우연히도 시드니에서 만났던 영숙씨를 만나게 되었다.케언즈로 간다고 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혼자서 며칠만에 질려버린 기름기가 유난이도 반짝이는 중국식사를 하고 있는데 저 만치서 걸어들어오는 일단의 일행들. 한국인이구나 하면서 보는데 그 중 영숙씨가 보이는 것 아닌가. 나는 영숙씨에게 다가가 나를 기억하냐고 물으며 반가워 했다. 그 녀 또한 반갑게 맞이 했고 일행이 있는지라 짧은 대화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일행은 같은 여행사의 직원이었고 귀국하는 직원이 있어서 같이 식사중이었나 보다. 이제는 케언즈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하는 그녀는 곧 한국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며 내가 귀국하거든 한국에 있을거라며 연락처를 적어주었다.그 녀를 통해서 지영이 영국인과 결혼해서 영국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연한 섭섭함이 드는 건 무언지 몰라도 말이다. 잘 된 거겠지. 그리고 또 한 명의 한국여자는 결국 영어가 안되서 한국인의 베이비 시터를 하다가 귀국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소식을 접하며 나두 한국에서 아무것도 준비를 해 오지 못했는데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이 감사했다.공연한 뿌듯함마저도 들기도 했는데 말이다. 정말 호주가 좁기는 좁은가 보다. 쿠~ 그런데 나에겐 황당한 일이 다가올 줄이야. 5일째인 것 같다. 일을 하러 나왔는데 예전에 테이블을 부지런이 오가며 접시를 나르던 일본인이 보이지 않고 다른 이가 앉아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난 가게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는데 그 날 돌아오는 접시는 내가 닦을 필요가 없었다. 다 기계로 닦이어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 것 저 것을 나르고 썰고 자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던 일을 하지 않고 그런 것들을 할래니 공연히 보이는 눈치. 결국 다음날도 마찬가지.
일을 다 마치고 주급을 주면서 여사장 왈!

담주부터 나오지 마라.
우리가 또 사람이 필요하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
으~~~이 황당함. 3주간 놀다가 구한 일자리인데 일주일만에
짤리다니 난 또 어디서 일자리를 구해야 할지....

Peers로 자주 갔다. 십 몇불짜리 낛싯대를 들고 터벅 터벅 들고가서 낛싯대를 드리우고 저 멀리 바다를 쳐다보곤 했다. 어느쪽이 한국이 있는 곳인지도 모른체 저 어딘가에 있겠지 하며 쳐다보았다. 내 미래를 생각해 본다. 어딘가에 있겠지. 저기 어드메에 말이야. 가진 것도 없으니 잃을 것도 없고 재산이라던 자신감과 용기는 나의 경험으로 다 남아 있겠지. 아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낛싯대를 드리우고 있을까? 수염이 텁수룩하니 멋있게도 생겼군. 나두 저렇게 좀 멋있게 수염이 나면 좋겠다. 내가 나이 들어도 지긋하게 늙는다면 좋을텐데...션코네리 처럼 말야. 참 리차드 기어도 멋있던데. 이런 맛에 낛싯대를 드리우는 지 모르겠다. 일본청년이 여자친구와 함께 걸어와서 내 옆 저 만치에서 자리를 잡는다. 난 일본말로 아침인산지 점심인산지 모를 간단한 인사를 한다. 그들도 방긋 미소를 지며 내게 인사를 한다. 햇살이 따갑다. 피얼스에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고독을 날려 버리려 애썼다. 아무도 아는 이는 없었던 케언즈. 이 작은 도시에서도 고독감을 느끼는데 서울에선 어떻게 생활을 할까. 난 서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유년의 그리 좋지 못했던 기억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누굴 원망해. 제길.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 겨울바다를 많이도 찾았는데 말이다. 이젠 그럴 여유도 없다. 그리 깨끗한 바다는 아니었지만 투어에 이용되는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고즈넉함이 좋았고 가끔 귀항하는 배들에서 토해져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 환한 미소가 좋았다. 대리 만족하는 걸까? 나를 편안하게 해 준 몇 군데중 한 곳 Peers. 또 돌아 다녀야 겠군. job을 구하려면 말이야. 정말 돌아다니기는 지겨운데 말이야. 쿠쿠. 머 할 수 없지. 그래도 모처럼 담배를 비록 제일 싼 것이지만 40개비짜리 박스담배를 피곤 했는데 다시 말로보 말이 담배를 펴야 되려나 보다. 피얼스에서 부터 바닷가를 따라 쭈욱 내려오다가 어떤 노년의 신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싱가포르에 자주 간다고 했다. 지금은 휴가중. 홍콩이라 했던가? 홍콩이군, 어렵게 해석해 본 걸로는 그는 중계무역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호주에서 굴러다니는 한국산 차에 대해서 애기했다가 그 건 싸니까 사는 것이라며 다른 나라에서 더 싸게 팔면 그 걸 사람들은 찾을 것이라고 말해서 별로 자랑스러울 것도 없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말이야. 어쩜 동남아에 굴러 다니는 우리차도 가격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그 분과 나는 나이차도 상당한 차이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먼저 말을 부쳐왔고 쉽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건 정말 좋은 거 같다. 쉬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여는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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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언즈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호주를 상상할때 그 상상과 가장 호흡이 잘 맞는 곳을 순전한 내 기억으로 뽑는다면 그 곳은 케언즈이다.


다행히 쉐리단 스트리트에서의 생활은 순조로웠다. 일본인들을 가까이 지켜 볼 수 있었고 그들의 생활이나 주위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그들의 습성을 눈여겨 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회였다. 더군다나 일본인 요시다와 류. 여자 한 명, 그리고 이태리인과의 생활은 흔치 않는 기회일 것이다. 아래층 거실에서 류가 자고 2층 큰 방에서는 나와 요시다, 그리고 이태리인이 생활을 했다. 이태리인은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태리인은 참 재미있는 친구였다. 이태리인 성격이 호탕하고 박력있다고 한다. 민족성이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는 길을 가다가도 여자들에게 how's it going! 을 외치는 친구였다. 좀 밝힌다고 해야 하나? 크~~ 웃음을 참 호탕하게 웃곤 하는 개구장이 같은 친구였다. 하지만 뒷날 이 친구는 한 달 정도 생활을 하다가 자기의 친구집으로 옮기게 된다. 한 번은 모처럼 쉐어하는 이들끼리 비치(예의 그 유명한)에 놀러갔다. 케언즈에서 제일 잘 나가는 디스코텍 말이다. 우린 맥주를 간단히 마시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자기 아는 친구를 만났는지 다른 팀과 합류해서 즐기는 줄 알았는데 그 것이 아니고 모르는 여자들과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류, 그리고 또 한 일본인(와세다 대학생)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못보던 여자가 다가와서 노골적인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쩌비... 난 몇 번을 돌아서서 동료들과 추었다. 아마 동료가 없었다면 모르지만..^^; 그런데 이태리 친구의 눈빛이 나와 몇 번 마주친 것이었다.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길래 애써 피하고 말았는데, 그 와중에도 이 여성은 쩝... 이태리 친구가 다가와서 속삭인다. " 재 건들지 마라. 내가 찍어놨다" 난 그냥 웃고 말았는데 그 여자가 나에게 묻는다. 나 싫냐고, 난 싫지는 않지만 난 친구들과 왔고 그 중에 한 명이 너를 맘에 들어하는 거 같다며 사양?의 뜻을 표했다.. 누구냐는 물음에 그 이태리 친구를 알려줬더니 하는 말. "난 재 싫다. 너가 좋다"
그 아가씨는 유고슬라비아 아빠와 일본 엄마를 둔 혼혈아였다.

그렇게 조용히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한동안 이태리 친구가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크...그래서 몇 일동안 풀장 옆에서 발차기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다시 좋게 지냈다. 흐미~ 아래층에서 자는 류는 한 동안 면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뒷날 몇 년전에 개봉한 베트남전 배경의 씬레드라인이라는 영화에 일본군으로 엑스트라 출연을 하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그 영화에 촬영할 정도로의 매력적이었던 것은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한다는 그리 흔치 않은 경험과 페이또한 하루 120~150불을 받을 수 있었으니 여행객에겐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 영화 촬영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요시다는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고 그저 어학원을 계속 다니는 풍족한 환경의 학생이었는데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를 하는 성향이었던데 반해 요시다는 목소리도 크고 웃음도 크고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스타일의 젊은이였다. 이들과는 지난 한일의 과거에
대해서 애기도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무관심한 이들의 태도에 공연한 열만 내던 내 모습이 철없던 거 같기도 하다. 일본의 보통 젊은이들은 한 일의 과거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다. 독도가 다케시마가 어디에 붙어 있는 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품어 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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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언즈. 나의 호주 경험담중 가장 자랑? 스럽게 내 놓을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다른 경험보다 더욱 소중하다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타인일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중 가장 귀기울 일 만한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부분 이란 것이다. 어쩔 수 밖애 없는 타인 이란 거! 노래 제목인가? 사회생활 초년병으로 느껴지는 생각이다.

케언즈의 햇살은 무덥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마를 훔치며 땀을 닦는게 하루의 시작이다. 제길, 선풍기라도 한 대 달아 줄 것이지. 찌뿌드한 몸을 몇 번 뒤틀고 일어난다. 유리창 아래로 보이는 케언즈 시내는 여느 날과 변함없다. 저렇게 큰 도로에 한산한 차들과 사람들. 한 밤에 esplanade나 가면 시원하겠지. 시내는 여전히 북적 거린다. 오늘도 나가봐야 겠지. 머 언제 잡히지 않겠어? 어짜피 호주에 올때보다야 더 나은 현실이지. 그 중국 식당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오늘쯤 한 번 가보면 알 수 있겠지. 한 손에는 간이 지도. 그리고 작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도무지 식당밖에 당장 발 붙일 곳이 없을 거 같아 보인다. 식당,...음...흠. 할 줄 아는게 없으니 이렇게 폭이 좁아지는 구나. 영어라도 멋들어지게 구사한다면 다른 곳도 도전 해 볼텐데 말야. 몇 군데를 가다가 esplanade의 중국식당에 간다. 한국인과 비슷한 인상의 중국인 아줌마가 미소를 띄운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나올 수 있냐고 묻는다. 눈이 휘둥그래 진다. 꿈이냐 생시냐, 케언즈에 온지 2주도 안돼서 job을 구하다니,.. Wow~!! 너무 기쁘다.
당연하져. 나올 수 있져. 넵!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환한 미소를 띄우며 그 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을 기다렸다. 곧 퇴근 시간이 되어 그녀에게 물어보니 그 아줌마가 사장이며 주방장이 남편이지만 여자가 실세라고 한다. 그 녀는 곧 Airs Rock으로 간다고 한다. 그 녀 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도 가고 싶은 곳이지만 현재로선 그 곳 가는 경비만도 장난이 아니었고 또 그 곳의 물가는 이 곳과는 달리 비쌌다.
내륙지방은 사막지방이어서 여러모로 고생이지만 그런 고생이 남을 정도의 여행이란 말을 들었다. 사진 한 장 덩그러니 놓여있고 유치 찬란한 온갖 미사여구를 들여가며 알려진 Airs rock. 갈만 한 곳은 사실인 것 같다. 누가 그랬는데, 아~! 썬형이 그랬구나. 호주 와서 다른 데는 못가도 Fraiser island하고 Airs rock만큼은 꼭 가보라구 말이다. 난 이내 그 녀에게 share 정보를 물었다. 마침 그 녀는 자기의 이태리 친구가 share를 구한다고 한다. 1주일에 40$. 와우~! 백팩 1주일 요금이 100$가까이 되었는데 반값도 안된다. 흐흐~! 이런 게 행운이 아닐까? 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이름이 수희라고 했다. 수희는 부산아가씨였다. 수희는 남자 친구라는 그 이태리인을 만나기로 했다면서 잠시 에스플레네이드의 벤취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수희의 남자친구인 듯한 내 키정도의 외국인이 싱글 거리며 다가온다. 노랑머리의 그 이태리인과 수인사를 나누었다. 무척 장난꾸러기 인듯한 그 친구는 마침 쉐어를 구한다고 한다. 우린 같이 케언즈 시내를 지나 한 30여분정도를 걸었다. Sheridan St.사이로 들어서 잇는 공원과 백패커스, 그리고 모텔들. 이 곳에는 많은 Homeshare가 있다고 한다. 주로 일본인과 한국인 학생들이 이 곳에서 생활을 한다고 한다. 깨끗한 도로와 어울리는 한적한 곳. 케언즈 시내와는 다른 한적한 주택가다. 어느 2층 집으로 들어서니 작은 pool이 보였다.
마침 방안에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 두 명이 TV를 보고 있었다. 요시다와 켄. 요시다는 어학교에 다니는 게이오 공대의 학생이었고 켄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호주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켄은 아래층 거실에서 잔다고 했고 나와 켄, 그리고 이태리인(아쉽게도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내 그 때의 다이어리엔 적혀 있겠지만,)은 2층 큰 방. 그리고 2층의 작은 방엔 일본인 아가씨가 산다고 한다. 케언즈에서 최근 건설된 제일큰 쇼핑센터인 Cairns Central에서 파트 타이머로 일하고 있어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태리인 친구가 말하기를 까다로운 성격이라 조심해야 할 거라고 웃으며 말한다. 참 웃기 좋아하는 친구다. 집을 둘러보니 거실인 아래층엔 TV와 부엌이 돌아가면 있고 그 입구엔 세탁기가 놓여 있다. 이 곳에서 케언즈 생활을 하겠구나. 이제 job만 구하면 된다. 다음주에 오기로 하고 백패커스로 돌아가는 케언즈의 한적한 거리가 평화롭다. 어떤 사람들일까? 세명의 일본인과 1명의 이태리인. 기대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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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팩으로 돌아와 넓은 창으로 바라본 케언즈는 참 아름답기만 하다. 저 화려한 야경속에서도 누군가는 울고 있겠지. 누군가는 웃고 떠들테고 말이야. 백팩을 이리 저리 서성이다가 침대에 누웠다. 삐그덕거리는
녹슨 침대 소리라도 들린다는 게 어딘지, 이곳은 쥐죽은 듯이 고요하기만하다. 농장과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그 곳에서는 많은 대화가 있었는데, 내가 농장생활에서만 익숙해서 그런가 보다. 케언즈에서의 생활이다. 내일부터는 돌아다녀야겠지. 어디부터 가야 하나. 케언즈에도 한국인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는데,...

햇살이 눈에 부시다. 땀을 흘리고 있다. 침낭을 개고 세수를 하고 부엌에 가서 그릇과 팬을 준비하면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눈다. 정말 한가한 사람들 같다. 잠시 케언즈에 레포츠 목적으로 잠시 머무르다 가는 사람들이 많군. Pub에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만 빼고 왜 사람들은 잘 나가는 거 같아 보이는 거 같다. 기분 나쁘게,... 후다닥 점심을 해치우고 지도와 가방을 짊어진채 거리를 나섰다. 깨끗한 거리,현대식 시설을 갖춘 쇼핑센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유명 브랜드를 내 건 상점들, 최신 기종이 가득찬 오락실. 도시의 모든 색깔을 갖고 있는 케언즈에서 돌아다닌다. job을 구하기 위해, 우선 미팅 플레이스로 갔다. 식당에서 디쉬워셔라도 해 볼양으로 말이다. 자신없는 영어로 인해 디쉬워셔가 가장 만만해 보인다. 태국, 중국, 일본, 말레이지아, 한국등 각국 식당이 모여 있는 곳. 한국식당으로 가보자.. 인사를 단정이 하고 사정을 말했지만 얼마전에 다른 이가 채용이 되어 있었다. 아깝다. 그 사람과 간단한 수인사를 하고 혹시라도 난중에 일을 그만 두게 되면 내가 종종 올 테니 알려달라고 했다. 7$을 받는다고 한다. 한 시간에 7$. 농장보다는 작군,옆의 일본 식당에 가 보았다. 우동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밥을 먹고 왔는데, 쩝! 간단한 인사와 함께 혹시 사람을 구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직 구하지 않는 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한다. 아르바이트 구할 만한 테 없냐는 물음에 씨익~ 웃으며 좀 힘들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에스플러네이드에 가면 Food Court가 있다고 그 곳에 한 번 가보라고 알려준다. 씨익~ 나도 웃음을 지었지만 답답해져 왔다. 에스플러네이드라, 어떤 곳일까,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긴 했지만 아직 바다구경할 엄두는 내지도 못한 터였다. 투어 에이전시의 광고가 요란한 거리를 지나치며 50여m를 걸었다. 길 건너 한 아름 은 될 듯한 나무들이 마련한 그늘 아래로 탁자들이 놓여있고 선글라스와 티와 반바지를 입고 웃고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 뒤로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잔디가 깔려 있다. 바다가 보인다. 백팩과 식당, 그리고 상가들이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저 만치에 Pears 라고 쓰여있는 하얀 건물이 보인다. 부둣가를 배경으로 서 있는 컨물 앞으론 여러 수목들이 작은 공원을 만들고 있다. 쇼핑상가인가.
저 곳에도 한 번 가 봐야 겠군. 푸드 코트를 들어섰다. 미팅 플레이스보다 훨씬 깔끔했고 그 곳을 통해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시장으로 들어 설 수 있어 밤이면 더욱 붐비는 곳이다.

여러 식당을 돌던 끝엔 만난 중국식당. 마침 그 곳에는 한국인 여성 두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 사정을 애기 했고 마침 그 중 한 명이 곧 일을 그만 둘텐데 아마 자기 대신에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며 사장한테 애기를 잘 해보란다. 사장은 다음주 월요일에나 다시 한 번 와보라고 한다. 와우 이~ 얼마나 다행 스런 일인가. 마침 아가씨가 한 시간 쯤 뒤에 일이 끝난다고 해서 난 부둣가를 서성이다가 그 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나온 애기들. 그리고 그 녀의 계획.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말이다. pears로 가 보았다. 그 곳은 부둣가에 위치한 쇼핑몰로 꽤나 사진의 배경장소로는 적격인 장소였다. 부둣가에 정박한 유람선들과 갖은 배들이 바다위 갈매기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잠시 부둣가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그래도 일자리를 수월하게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디쉬워셔라고? 쉬는 시간이 없이 바쁘다고 하지만 머 농장에서도 했는데 여기는 쉬울거야. "하~ 난 잘 할 수 있어. 그리고 케언즈 생활도 잘 할 거야. 넌 운이 좋은 놈이니까 말이야." 피어스 안으로 들어가니 일본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이 무리지어 다니고 있다. 그리고 상가 어느 곳을 보아도 보이는 일본어들. 일본어로 안내 되어 있는 각종 브로셔들. 한글이 여기에 걸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2층으로 올라가면서 어디에 일자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음, 저기 식당이 있구나. 우선 식당가는 다 돌아다녀 봐야지. 난 그 중 한 식당의 웨이터에게 사정을 애기 했고 그는 곡 점장으로 보이는 듯한 이한테 안내를 해 주었다. 난 그애게서 기회가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이력서를 남겨두고 왔다. 몇 군데를 가 보았지만 마찬가지의 답변과 이력서를 남겨놓고 오는 정도다. 이젠 어디로 가나.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무언가 나올 지 모르겠다. 에스플러네이드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케언즈 시내를 돌아다니며 처음 도착했던 터미널에도 걸어가 본다. 백팩으로 돌아오니 늦은 밤. 여전이 내겐 말보로 말이 담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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