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털나고 처음으로 접하는 ONLY KBS만이 전하는 보신각 타종 행사.
시민의 외침은 KBS의 조작방송에 환호하는 시민으로 둔갑하고...
아니 세상에 타종행사를 조작하는 그런 일도 벌어지는구나.
놀래노짜가 따로 없다.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찰인지...
새해 첫날 부터 이런 글을 올려야 하는 나도 참 답답하다.

2009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참 암담하다 못해 참담하다.

그냥 2009년 이렇게 보내야 하는 거야?
확실한 건 언젠가 방송들이 지난 독재정권의 침묵과 땡전뉴스에
반성했던 모습처럼 이 보신각조작은 또 매번 나오겠지.
KBS는 정녕 그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임영박씨.

행복하십니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42193&CMPT_CD=P0000
오마이뉴스가 되살린 그 때 그 영상

아! 또 궁금한 사람들.
임영박씨를 지지했던 그 사람들. 연예인?
정치인의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들?

각 당에서 이*박을 지지하며 선거유세를 도와주고 있는 연예인은?

이덕화를 비롯해 유인촌, 정흥채, 이종원, 이계인, 임대호, 배도환 등은 이명박 후보를 일찌감치 지지한다고 밝혔었습니다.
변우민, 이덕화, 김재원, 이지훈, 정흥채, 독고영재, 소유진 등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지난 6일 한나라당사에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식을 했습니다.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가 밝힌 이멍박 후보 지지 연예인은
 :김건모 김민종 김보성 김선아 김원희 김유미 김응석 김재원 박상규 박선영 배한성 변우민 성현아 소유진 신동엽 안재욱 안지환 에릭 유진 윤다훈 이경규 이덕화 이순재 이지훈 이창훈 전혜빈 정선경 정준호 차태현 최불암 최수종 한재석(가나다순)

행복하니? 아..정준호는 빼달라고 했다.
정말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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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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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나 됐을까.
시드니에서 첫 날밤을 어떻게 보냈는 지 기억에 없다.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부석부석해지는 기분.
세수하고 라면에 밥 말아 먹고 킹스크로스로 향해 난 창가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영이에게 찾아갔다. 노크를 하자 문을 여는 일본 여자.
아 마나미지. 굿 모닝을 하며 미소를 만들고 머리에 정리아니
암기된 지영이 어디갔냐고 영작을 하자 그녀는 지영? 지영?
고개를 갸웃 댄다. "나하고 같이 왔던 한국여자"
그러자 그녀는 아! 하는 제스춰와 함께 아침에 나갔다고 한다.
아침에? 어딜 갔지? 나는 딱히 더 할 말도 없고 없는 게 아니라
말이 안 되니 문을 닫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영어 교재를
들척이고 있었다. 귀에 익은 한국말 소리. 앗! 반가운 마음에
나가보니 두 명의 한국남자. 그들은 어딘가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로의 소개끝에 그들은 어제 저녁에
도착했으며 지금은 워킹 홀리데이 협회에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안 반가울리가 있겠는가) 그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시드니의 시내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이었다.
얼마나 걸었는 지 모른다. 그들 영어나 내 영어나 바닥을
기고 있었고 간신히 질문을 하면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이해가 빨랐다. 그들과 대화중에 저 만치 보이는
다리가 하버 브리지라는 것도 알았고 시드니 인구가 어떻고
하는 것을 알았으니, 어쩜 이 글은 읽는 분중에는 정말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지 모른다. 어쩜 그게 당연하다.

어쨌든 그들과 함께 워킹 홀리데이 협회를 찾아가게 되었고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마자 보이는 구인광고와 쉐어광고등이
덕지덕지 붙은 게시판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 여기서 일자리를
잡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사무실 안에는 한 무리의 떼거리들이
있었고 그 들중에는 정희의 모습도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었더니 어느 호주인집에서 쉐어를 하고 있는 데 너무 좋다나
어쨌다나. 이그.. 그리고 학원은 다음 주부터 다닌다는
속 뒤집어 놓는 소리들이었다. 흠...나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냥 씩~웃음 짓고 말았지만, 곧 그들은 헤어졌고 그 것이
정희와의 마지막이다. 사무실 아가씨에게 어제 한국에서 왔다고,
이 곳에서 통장도 만들어주고 일자리도 알선해 주고
세미나같은 것(초기 체류자를 위한 안내같은 것)도 해 주냐고
-이 것들은 한국에서 협회 가입당시 안내문에 명시된 내용들이었다.
회원 혜택이라는 이름으로- 물었을 때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저 사람들은 다 만들었다고, 일자리는 알선해주는 것은 아니고
단지 정보만 주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미나에 대해선
기억이 안난다. 단지 기억에 남는 건 너무 큰 실망과 허탈감에
황당해 했던 기억뿐. 게시판에 대해 물었을 때 그 것은
단지 한국 정보지(교차로 비슷하지만 책자 형태)가 발행되기 전날
미리 정보를 입수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좀 더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일 뿐 협회에 따로 일자리가 들어오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가씨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에서였는지 은행에 전화를
해 주겠으니 가면 알아서 해 줄 것이라는 배려?를 해 줬다.
우리는 털레 털레 common wealth bank를 물어 물어 갔더니
은행원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여권번호와 두리하우스 주소등을
적고 통장을 만들었다. 1주일 뒤에 주소지로 보내 진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한가지를 했다는 만족감에 두리로 돌아왔다.
시드니 시내를 걸어오며 어떻게 해야 할 까라는 난감한 기분과
까짓 설마 여기서 죽기야 하겠냐라는 생각등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난 지금도 시드니는 별 기억이 없다. 물론 그 곳에서 어떤 비치와
하버 브리지를 건너고 오페라 하우스를 가고 그랬지만
기억에 남는 건 마나미함께 했던 킹스크로스에서 가까운
윌리암 스트리트와 옥스포드 스트리트뿐이다.
여기서는 내 기억에 있는 내용만 담을 것이다.
그렇게 두리로 돌아왔을때 지영이가 있었다. 지영이에게 통장을
만들었다고 하며 아까 어디 갔냐고 했을 때 그 녀는 방을 구했으며
내일 방을 옮긴다는 것이다. 맙소사! 이 놀라운 일이 아닌가?
역시 여기서는 영어가 최고다. 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놈이 최고지만
나이트에선 춤 잘추는 놈이 최고 아닌가.
그 녀는 자기도 통장을 만들어야겠다며 같이 은행에 가게 되었다.
은행원과 예의 그 유창한 대화끝에 그 녀는 신청을 마쳤고
나는 카드를 직접 은행에 가서 찾으면 더 빨리 가질 수
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두리로 왔을 때 멜버른에서 왔다는 유학생을
만났다. 그는 올 해 졸업하게 되어 귀국을 앞두고 있다는 학생이었다.
그는 자신의 호주 생활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말하는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거북스러울 수도 있는 자칭 cosmopolite
였지만 그런 말들이 모두 나에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는 다른 곳에서 머물고 있는데
예전에 이 곳에서 머물렀던 기억이 있어 놀러 왔다는 것이다.
그 날 밤,
우리는 그리피스(Greefith)에서 올라온 두 명의 시커먼스를
만나게 되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로 필리핀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그들이 내게 준 정보.
그 건 번다버그(Bundaberg)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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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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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성장률에 따른 스펙트럼 개요.

 

2008년 2/4 분기 내 외국계 보고서 인용- 한국 경제 성장률에 따른 스펙트럼 개요 분포도.

 

나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  경제 펜더멘탈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경제 펜더멘탈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나 규모가 될려면 말 그대로 G7 내의 국가 정도 . 혹은  자원+ 내수 시장 잠재 여력이 있는 단 두 가지경우로써 한정해서 사용하는게 통상적인 관례였다.

 

왜 이 말이 이렇게 난립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한국 경제의 현재 규모상 5%의 성장률이 깨졌다는 건 이미 온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지금 이 시점에서 대략적인  한국 경제 성장률에 따른 파급 여력 스펙트럼 개요도라는걸  볼 필요성이 재기 된다.

 

이런 한국 경제 파급 여력에 대한 2008년 2/4 분기....5월 말경으로  보는데...에 자세하게 조사한 외국계 보고서가 있었다.

 

경제 성장률 5% = 일반적인 정상 순환 경제 시스템

 

경제 성장률 3%= 기업내 구조 조정 압력

 

경제 성장률1%= 산업 경쟁력 조정 압력

 

경제 성장률 -1%= 산업 구조조정 압력으로 인한 기술/산업 경쟁력= -3년

 

경제 성장률 -2%=산업 구조 조정 압력으로인한 기술/산업 경쟁력= -5년

 

경제 성장률 -3%= 산업 구조 조정 압력으로 인한 기술/산업경쟁력=-7년.

 

이 상황에서 만약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0%~ -1% 대 내외로 접어 들 경우 2010년 이후 대중국 무역 수지=-45% 감소.

 

그 이유는 현재 한국은 초간단하게 말해서 중국에 팔아서 일본에 돈을 갔다 주고==>> 차익= 무역 수지 흑자 구조 였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즉. 현재 중국의 빠른 산업 경쟁력의 확충에  말 그대로 중국 애들은 지금 조 단위로 돈을 퍼 붓고 있다는 접이다. 그로 인한 2008년 2/4 분기 내의 상-중- 하 로 산업 /기술 경쟁력 분석과 한국 10대 주력 수출 품목을 매칭 시켜서 볼 경우에 나올 수 있는 결론은.

 

2010년 이후에 현재  대중국 무역 수지 흑자가 1/2  이상 줄어 든다는 사실이다. 현재 중국의  하이테크 제조업 산업 매출액은 매출액 기준으로 중국 자국 기업: 외국계= 4:6 으로 상당 부분 극복을 해 왔다는걸 알수 있다.

 

이 상황에서 현재의 주요 대기업+ 중소 기업의 재투자 여력 축소에 따른  산업 /기슬 경쟁력 격차가 2년 내외인걸 감안하면 2011년 경 부터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상정하고 지금 일본 내에서는 정부 주도하의 대규모  기술 개발 R&D  예산 확충에 따른 자본 확충으로 2015년~2017년 이후의  새로운 경제 호황 싸이클에 대비한  국자 전략  산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 핵심은 결국 에너지 분야로 요약 된다. 1998년에 한국에서 IMF 를 극복한 결정적인 원동력은 다들 아시다 시피  달러 유동성+ IT 였다. 즉 한 마디로 IT 버블 확대를 기반에 둔  자본 유동성의 시중 공급으로 인한  중산층 이하의 소비 여력의 회복에 기인한   수출==>> 내수 순환 시스템의  정상 복구로 비록 그 후유증으로 2004년에 카드 대란으로 신용 불량자 500만을 맞았으나  진흙더미 만신 창이 98년 IMF 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이였다.

 

더구나 2004년도에 고조된 경제 위기설로 사회가 난리가 나고 심지어는 토론에 까지 한나라당에서 나와서 노무현 타령을 할 그  당시.

 

총 자영업 도산률= -5% 내외 였다는 걸 볼때 현재 자영업 도산률이 얼마인지는 자료를 못 봐서 정확히 이건 모르지만 2004년도에 -5%  도산으로 그 난리가 났는데.

 

그럼 지금은?.........과연 뭐지?

 

무조건 비난을 하고 까자는게 아니라. 개인별 대응 전략이라는게 나오기 떄문이다. 

 

여기서 개인별로 회사별로 대응 조치라는건  대중국 사업 전략, 그리고 지금 이미  기업 구조 조정이 이미 가시화 된 마당에 자영업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그 시기는 언제로 잡을 것인가.  그런것들을 빨리 캐치해 내는 자만이 2015년 이후의 경기 순환 싸이클상의 다시 찾아 오는 경제 호황기의  금맥을 잡을수 있기 떄문이다.

 

일반 가계 가정에서 제일 많은 지출 항목은 학원비+ 금융 비용 이다.  그런데 현재 학원비를 줄일 정도라면  그야 말로  일반 가정내의 소비 여력이 거의 바닥이라는걸 의미 한다.

 

여기에 환율로 인한 기업 구조 조정 여파와  부동산 자산 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 여력 감소라는건 대략 주식: 부동산 자산 가치 변동에 따른 레버리지 효과= 1:6.5배 로 보는게  보통이다.

 

한 마디로 한국적 상황에서 일반 가계들은  주가 하락에 다른 자산 손실 보다는  부동산 보유 자산의 가치 하락 변동에 따른 역 레버리지 효과로  인한 심리적/외생적 소비 감소 비율이 그에 대략 6배 정도의 파급 효과가 미친 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단순히 집값 하락 그 하나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의 경제 시스템 메커니즘이라는 것은 대학 기초 경제학만 보고 정책 하나 만들고 밀어 부치면 만사 장땡인 70년대 경제가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일반 가계 소비 여력 감소===>>자영업 붕괴 로 이어진다.

 

이게 다시 역 싸이클로 자영업 붕괴==>> 금융 시장 부실 간접 파급 여력+ 연체율 상승=  금융 리스크 비용 증가라는 걸로 이어져 정부 재정 압박 요인으로 추가 작용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 폭락에 난리 부르스를 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은행이 리스크 비용 증가로 삐끄덕 거리면  추가 공적 자금을 퍼   부어야 한다.. 근데  문제는 초간단하게 말해서 지금 돈이 없다.

 

그럼 남는 돈 안드는  방법은? 정책 수단을 동원하는 수 밖에 없는데  지금 문제가 되는건 이것도 안 먹혀 들면  마지막 최후의 저지선은 결국 " 돈 싸움" 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내수 경기부양이라고 사방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튀어 나온다.  근데  이 때 한가지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다 좋다.. 이거야............ 근데.... 돈은 어디서 가져 오느냐 + 어느 계층을 희생량으로 삼아서  위기 극복을 하느냐...

 

그래서 지금 오만 가지  머리를 쓰면서 종합 재산세까지 들먹 거리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심지어는 개 한테까지 세금 매긴다고. 지금 한국 경제 수준으로 2008년 2/4 분기 정도의 내수 구매 여력을  보존 하려면 최소 7조 이상만 단독 예산으로 집행해서 뿌려야 한다.

 

SOC 사업이 아니라.  근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확신이 없기 떄문이다.

 

한 마디로 돈을 뿌려서  중산층 이하의 서민 소비  구매 여력 확보==>> 내수 시장 보존으로  이런 불경기를 뛰어 넘는 상황에서는  정부 조정이라는건 경제학에서 거의 기본 베이직 룰인데.

 

확신이 없으니까 결국   예산 투입 여력에 따른 시물레이션 모델 결과  산출을 일본.......아니면 과거 70년대 나 80년대에서 찾으려고 한다. 근데 이 떄도 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이미 지난 과거의 모델 데이터라는 것이다. 흔히 이런 데이터를 보면 과거값을 보여 주고  향후 결과가 이럴 것이다...라는게 통상적이다.  근데  그건 경제가 이미 발전 될 대로 발전 된 선진국에서는 가능한 애기지만.

 

한국이나 대만 같은 5% 대 성제 성장률을 했던.... 나르는 예외다..........이미 폐기될 과거의 자료다. 그래서 결과 또한  전혀 다르게 나온다.  이 점이 굉장히 까다로운 점이다.

 

왜 돈 이기 이전에 인간 관찰이 우선이냐 하면 인간의 행동 패턴을 예상 한다는건 굉장히 어렵다.  더구나 이젠 지금과 같은 경제 불황을 뛰어 넘는 시기에는  통상적인 일반 경제학이라는게 안 먹혀 든다.

 

금리를 내리면 대출로 돈이 풀려서  소비로 내수가 살아 나고  구매 여력이 활성화 되야  정상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는 애기지.  전문 용어 집어 치고.

 

근데..............돈을 안 써... 돈도 안 풀려....정책 효과는 이제 의심스런 수준........이러니  경기 부양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이미 검증이 된......

 

과거 모델.......SOC 투자에 집중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모든 비극은 시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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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종 사촌 조카 중 막내 하나가 말 그대로 노가다다.  건설 회사 다니면서 지방 다니는 애가하나 있는데 .

 

 그래... 다 양보해서 SOC 로 내수 경제 부양을 해 준다고 하자고. .

 

차라리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는데 뭐라 하겠냐.. 근데 문제는  지방 토목 공사만 보자면 이젠 지방에는 조선족들 조차 안 갈려고 하는게 지방 현장이란다.

 

즉 한 마디로 지방에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에 딱  가 보면 소장,  중장비 기사.  일부 핵심 기능공.  사무실 직원..... 빼면 전부 다 .....

 

90%가 외국인인데  도데체 무슨 내수 경제 활성화라는 건지 현실성도 덜어질 뿐더러.  대형 토목 공사를 한다고 쳐도  1930년대  미국처럼 사람이 하는개 아니라 중장비로 공사를 한다.

 

그럼.......과연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이걸 위해서 이제 중장비 전문 학원을 다녀야 한단 말인가?

 

100번 양보해서 이것까지도  오 케이라고 일단 치자.

 

그럼 이 외국인 근로자가 그 지방에서  돈을 쓰고 다니면 막말로 내수 경기라는 목적에 부합을 하게 된다.

 

문제는......................... 모조리 다 돈을 자국에 송금을 한다는거지. 심지어는 컨테이너에  스펀지 깔고 숙식은 현장에 있는  식당 함바 집에 가서 다 먹고 해결하고 식권?...이라고 하나?..

 

식권 주고 담배 사 피는데 뭔 놈의 내수?.....이러는데.......이건 좀 웃기는거 아닌가?.

 

 

그럼 이제 도면 쫙 펼쳐 놓고  중장비를 쓰지 말고  사람이 인력으로 공사를 하도록  전체 공정을 변경 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

 

외국에서는 IT==>>BT==>>RET  라고 해서 일본  애들은 지금 독일에 떼거지로  다 몰려 가서 특허 쇼핑에 기술 제휴까지 쌩 쑈를 하면서  같이 먹어 볼려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이건............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그나 저나 요즘 중장비 포크레인  3개월 자격증 따는데 원비가 얼마인지 모르겠군.  여기 병원에 있는  누구 아들래미가  고등학교 졸업반인데 이거 배울려고  한다는 아줌마가 하나 있어서.

 

대충 굴러가는 바닥이라는게 이 정도 수준이고. 자영업은 지금 현재 상황으로써는  집에서 놀고 있다고 조급증 느낀다고  가계 차리면 안 된다.  2011년까지는 일단 참고  있는거 지켜야지.

 

그리고 고등학생 애들도 지금 1~2학년이라면 과도한 쓸모없는 경쟁 체제에 뛰어 들어서 시간 낭비+돈 낭비를 할께 아니라   전략을 대폭 수정해서 외국어에 올인 해야 한다.

 

학교에서 40등 하던 애가 중국어나 일본어 배우겠다고   학교 공부 안 될꺼 같으니까 포기 하고  외국어에 올인 하겠다는데 안 된다고 말릴 선생은 없을꺼라고  본다.

 

나 같으면 현재  입시 경쟁에서 상위 15%  밖으로 밀려 났다면 지금 고등학교 학교 공부는 포기 한다.  그리고 2015년 이후를 대비해서  제 2 외국어에 올인할 것이다. 이젠 얼치기로 있다가는  당하는 수준이 아니라  굶는다.

 

왜냐면 이제  한국 국내에서 산업 별로  잉여 인력을  더 이상 흡수 시켜 줄 수 있는 경제 규모가  한국은 안 된다..

 

남는 방법은  인구가 줄어 드는 방법 뿐인데 ..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고 그럼 결국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완벽한 차별화 전략이 이젠 내 아들  딸 자식들에게 밥 숫가락이라도 쥐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 버렸기 떄문에.

 

한국 나가면 매국노라는데. 한국  땅에서 손가락 빨고 있을수는 없잖아?

 

그럼 방법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돈 벌어서 그 나마 극도로 이젠 사회적 기회 비용이라는게 없어진 나라에서  먹고 사는건 결국  수출입 무역 종사자 되는 길  뿐이지.

 

한국에서 이제 진짜로 돈 버는건 수출 관련 무역업  아니면  전문직이나 대기업 종사자... 그런 부류 밖에는 없어.  내부 메트릭스 안에서 집어 먹는 건 더 이상 없다는거지.

 

 

한 마디로 총 자본 총량이라는 걸 100이라고 할때 자본 배분 여력<<< 인구 대비 로 이미 과도하게 역전된 사회라는거지.

 

그럼......  나 같은 부모 세대는 그냥 일단 산다고 치자....그럼 내   애들은 어쩔래?..

 

물려줄 유산이  많은가?  아니면 먹고 살게 해줄 방법이라는건 한번 생각해 봤는가?

 

이제는 내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집에 중고등학생 정도 되는 애들이 있다면 내가 먹고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과연 내  애들은 뭘 먹고 살게 해 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지.

 

이걸 배부른 소리라고 하면 그건 이젠 무책임한 소리고....

 

옛말에  공부만 잘하면 다 잘 먹고 살수 있다.......그래 맞는 말이지......... 내 부모 세대가 바라 보던 ( 나 같은 노인네 말고 젊은 애 아빠들)  세상에서는  일자리가 계속 만들어 지던 때거든.. 고급 일자리도 마찬가지고........

 

근데.....지금은?................그 때가 아니니까   지금 세대의 부모라면 내 애들한테 그렇게  똑같이 전 세대 부모에게 학습된 그대로 말하면 안 되지.

 

 

바로 그런 차이라는 거야...지금 애들한테는 막연하게 무조건 공부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면 안 되고 구체적으로  먹고 살 방향 제시나  구체적인 걸 애기 해 주면서 부모의  경험적 지식이나 그런걸 전수해 줘야지.

 

시대가 변하면 생각이 변하고 관점도 변한다..

 

하지만 관점이  정체되면 나 뿐만이 아니라 3대가  고생하는 세상이다.

 

-오늘은 병원에서 해 주는  비디오 시청 시간이라   끄적 거렸음.  -

 

 

난 정부 정책이고 나발이고 그 딴건 다 관심 없다.

 

하지만  젊은 애 아빠들  애 엄마들은 애들을 계속 키우고 자기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그러자면 흐름을 알고 대책 세우고 대비 하는 수 밖엔 더 이상 방법이 없기  떄문이다.

 

난 강만수가 외계인이라고 해도... 안드로 메다에서 산다고 해도 이젠 내 알 바 아니다.

 

 

강만수나  나경원 유인촌 같은 사람들은 귀족들이다.

 

나 같은 천민들이 먹고 살려면  이 정도 그 이상으로 더 약아 빠져야  살아 남을 수 있는 나라기 떄문이다.

 

귀족하고......나 같은 천민 하고 어떻게 동급이냐!!!

 

당연한 거 아니냐?

 

미국에서도 월 스트리트= 금융 귀족 하고 메인 스트리트=  일반 서민 경제로 계급이 나눠진다.

 

그런 마당에 앞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평등 국가 라고 떠드는 놈이 있다면 난 가서  싸대기를 날려 버릴 것이다.

 

그와 더불어 이젠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국어 사전에서  지워 버려야 할  용어다.

 

그건 나 같은  노인네들 세대에서나 먹혔던 애기지 지금은 아냐!... 정신 차려라.

 

 

지금 자기  사회 계급적 지위가  뭔지 부터 똑바로 알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떄문이다.

 

이건 결코 아니꼬운 애기가 아니다.  내가 지금 천민인데 귀족 행세 해 봐야 파산이다.  그 땐 노예로 추락 하는 것이다.

 

 

사실 까 놓고 애기 하는 거지만  근대 서구 민주주의 150년.... 한국은 일제 병합기 -60년 전만 해도 철저한 계급 사회였고 아직도 그 사회적 뿌리라는건  이제 드러나지만 않을 뿐이지  그대로다.

 

반드시 명심해라. 

 

꽝!!!!!!!!!!!!




존경하는 강만수 장관님께

 

강만수 장관은 솔직히 말하겠다.

 

학교 다닐때부터 천재라고 불려 온 말 그대로 재원이였다. 이건 일단 인정을 해야 한다.  거기에 학교 다닐 때는  소설인지 뭔지 글까지 쓴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는건 분명하다.

 

그리고 80년대 미국 월 스트리트를 누비고 다니면서 국제  금융의 감각을 나름대로........키웠다고 한다면 키운 사람이다.

 

 정부에서는 고급 재원들은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자체적으로  유학을 몇 년씩 보내 준다.

 

이건 일단 은행이나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말은 안 하지만  서류 심사를 할 때부터 임원급으로 키울 핵심 재원 10%는  미리  뽑아 놓고 면접을 보는게  보통이다.

 

이건 외국도 그리 큰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은행 같은 경우도 현장 업무 경험을 몇 년 쌓고 본점으로 가거나  대기업 같은 곳에서도 그룹 차원에서   핵심 인재 보호와 관리는  인사부에서 필수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협조 공문이건  정부 업무 명령이건 다 좋은데....

 

 

왜  거짓말을 하냐 이거지....  자꾸 통계 수치 오류와  뻔한 거짓말을 대 놓고 하면...

 

일반 기업이나 국민이나 경제 개별 주체간에  서로 믿을 수가 없다.. 솔직히 지금 나라 망하자고  할 수는 없잖아?

 

젊은  애 아빠들은 이제 애들 키워야지.. 갓난 애기들 3살...7살 짜리에  이제 초등학교 4학년..5학년짜리 애들 다 커서 대학 보내고  기반 잡아 줄려면.

 

솔직히 지금 노후 준비는  한국적상황에서 40대부터 해야 하지만 그럴 여력도 안 되는게 거의 대부분이다.

 

까 놓고 애기 해서...............

 

 

 제발............... 거짓말은 하지 말자......... 그래야 어떻게든 마음 잡고 이제 잘해 볼려는 국민들도  많은데 여기에 등에 비수를 박아 넣는거 아니니?

 

 

 

장관님................ 요즘 애들 말대로.......킹 왕 짱 먹으세요.......

 

 

그리고  아무리 구라 쳐 봐야  거짓말은 100%  다 알어.... 요즘에는 실시간으로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보다 영국  런던에서 더 빨리 아는 세상이야.

 

근데 자꾸 왜곡 하고 속일려면   일반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어.

 

 

증말........거짓말은 하지 말자.......... 그게 개 구라인지 진짜인지는  전화  2~3 통만 하면 금방 다 아는 세상니까.

 

이런말 하기 전에 재경부 내부 스파이 부터 잡을 생각부터 해라.

 

외국계 금융 회사 하고 내통하고 있는 놈들이 없을꺼 같지?....... 에~  혀....

 

 

이런걸   정부 기관이나 회사나 보안 라인 누수 현상이라고 하는데 지금 모건 놈들이 한국 상황을 한국 국내에서 보다 더 잘 스캔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개  썅.년들이지.  

 

장관님......일단   자기 부서 보안 라인부터 당장 조사해 보세요.... 농담 아니라 진심 어린 충정에서 드리는 말입니다.

 

 어쩌겠어....장관 안 바꾸겠다는데 설득이라도 해서 먹고 살 생각 해야지.

 

난  그래....좌빨 빨갱이라고 치자고.......근데 내부 정보 누수도 관리가 안 되는건 좀 웃기는거 아니냐?

 

만약  조사해서 없다면 천만 다행이지만 장관님도  이제 바보가 아니시라면 정보가 세고 있다는건   아실꺼 아닙니까?

 

 

 

강만수 장관님............. 제발.............. 부탁 드릴께요.................. 꾸벅..

 

이제 노인네  저녁 먹고 약물 치료 받으러 가야 하니까.............이젠 쓸 일 없을꺼야......

 

 

그리고 난 자꾸 좌빨 빨갱이라고 하는데.   나 만큼 목숨 걸고 달러 벌러 쌔 빠지게  다닌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나 같은 노인네들이  브라질.. 중동.. 사우디..  이스라엘.. 6일전쟁인지 뭔지 터져서  억류 된 적에.. 남아공...일본은 제집 들락 거리듯이 가서 여권 위조 한거 아니냐고 심문까지 받을 정도에.

 

 증말  나 같은 열혈 애국자 늙은이들이 쌔 빠지게 중동 모래 바람  맞아 가면서 몸 다 망가지도록 일해서 달러 벌어 왔다.

 

근데 보상이  ......... 바른말 했다고....

 

좌빨 빨갱이냐?.

 

 

참 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왜 나 같은 늙은이들이 나이 먹고 고생 하는 줄 알아?.. 젊어서 몸을 막 굴려서 그래.

 

심지어는 브라질에서는  같이 간 애들  두 명 하고  길거리에서 노숙까지 했어.  달러 벌어 온게 애국이지.

 

그럼........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나도 부동산 투기질 했다. 진짜 억울한  역사의 희생량은 나 같은 노인네들이야.

 

이거 왜 이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말헌건데

 

아니..... 나라를 사랑 하는 마음에서 열혈 애국자 입장에서 피를 토하면서 나라 사랑에 국가 경제를 걱정해서 말을 하는데도.

 

 나쁜 영감이라고 매국노라고 하네........

 

아~ 놔....진짜.

 

내가 너무 밖으로만 돌아서 그런건지.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난  진심으로   나라 사랑 하는 마음에서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열혈 애국자의 입장에서 말한 것 뿐이다.

 

 

그래서  애들 키우고  한 번 아름다운  잘 사는 나라 만들어 보자는게  이렇게 나쁜 건지 몰랐다.

 

진짜  무섭다는 생각이든다.

 

나도 이제 생각 고쳐 먹고 다 같이 살아 보자는 입장으로 생각 고쳐 먹기로 한 사람이다.   근데 왜 이 열혈 애국자의 뜨거운 마음을 몰라 주는지 모르겠다.

 

 

나라 사랑한게  죄는 아니잖아.   이젠 부담 스러워서 뭐라고 쓰지도 못하겠네.

 

이제  나 같은 천민들도 애들 키우면서 다 같이 살 길 찾아 보자는 것 뿐이다.     참 마음  짠 해 지는  한겨울이다.




속 상하다.... 그리고 사과 드린다.

 

난 닭은 닭이라고  하고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한 거 밖에 없는데 약간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강만수 장관님께  사죄 드린다. 

 

그리고 이제  다 지우고  2월달에  퇴원하면 얌전하게 청량리나 서울역 같은데 가서 사랑의 밥 나누기   행사 같은 데나 다니겠다.

 

 

난   열혈 애국자로써 쓴 거 밖에 없는데 나쁜 영감이라니.   잘못이라면 잘못 인정 해야지 .

 

다만  젊은 애들 아빠나 엄마들이 건강하게 갓난 애기들을 잘 키웠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올리고 싶으면  고양이 사진이나 올리겠다.

 

강만수 장관님이 알아서  잘 해 주시겠지 . 뭐. 어쩌겠냐.   많이 배우시고 똑똑하신데. 

 

괜히 썼다... 후회한다.   자진 삭제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뭔지 알수가 없는 이 미묘한 문화적 차이가 뭔지 이해는 못하지만 일단 문제가 된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겠다.

 

다시 한번 사과 드린다.  고의는 아니였다. 

 

그리고 난  달러 송금 보내는 외국에 자식 보낸 학부모나  소규모  장사 하는 수입상들 보고 참고 하라고 말한 것 뿐인데 왜  못 잡아 먹어서 난리를 치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하지만 이것  또한 문제가 된다면 이해 하겠다.. 이것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꾸벅...... 스미마셍.

 

 

- 사과문-

 

-폐업-

 

 

그러길래 조용조용 쥐 죽은 듯이 소규모 모임처럼 했으면 이런 일도 안 터지고 좋았을 텐데.

 

 사방팔방에 이름 팔리는 바람에...완전 꽝 되 버렸다..  그럼 아줌마들 아들한테  달러 보내거나  소규모 수입 결재나  채권이나 국채 거래 하는 것 같은 금융 정보 커뮤니케이션 주고 받을 수 있는데., 쯧..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건지. 원.

 

하지 마라니까  내부 참고용으로 만들어 논 걸 잡지사에 가져다가 팔아 먹는 놈이 있지 않나.  들 쑤는  놈이 있지 않나. 에이그.

 

그래서  다시  쥐 죽은 듯이 개업 할 때 그렇게 아무것도 누르지 마라니까.   결론은 ................폐업이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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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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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
  • 감독 : 진가신
  • 상해 토박이 여소군은 성공의 꿈을 안고 홍콩에 도착한다. 어리숙한 여소군(여명)은 같은 대륙 출신이지만 사리에 밝은 이요(장만옥)를 만난다.. 더보기
많은 사람들이 참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이걸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뒤늦게서야 봤는데 하..이제야 보는구나.

등려군의 음악이 이렇게 영화를 아름답게 한다는 것이 말이야.
영화가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다소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영화연출을 이렇게 해내었다니... 참 영화잘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참 장만옥이라는 이름을 얼마나 되뇌었는지
연기 정말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나다.
세새한 부분에까지 감성을 쥐어짜내는 연기. 감수성이 그만큼 풍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꿈, 희망, 눈물, 웃음... 뭐 나이들어가면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이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라 쉽게 버릴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첨밀밀.
왜 사람들이 첨밀밀, 첨밀밀 하는지 알겠다.
흐뭇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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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대한신문화예술교류회에서

 뜸사랑 회장이신 구당 김남수 선생님을

침뜸의 명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사진출처: http://www.chimtm.net/    


 

“일자무식도 침쟁이가 될 수 있소, 다들 배워서 남 주자고요!”
사람의 몸 안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으며, 아픈 자리에 믿음의 나무를 심는 사람.
6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치료해준 역사의 증인.
그는 수천년에 걸쳐 내려온 민간요법인 침과 뜸을 통해 나눔과 희생의 정신을 실천해왔다.
오직 낮은 데로 임하며 ‘침뜸 전파’에 앞장서온 아흔의 침쟁이는,
아이 같은 환한 미소로 삶을 긍정한다.
뜸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내가 사로잡혀 있는 생각이 있으니 우선 구당 선생의 환자 이야기에서 출발하겠다. 1915년생이니 선생은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역사의 증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초야에 묻힌 촌로가 아니었고 60년 이상, 역사 현장에서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을 안방에 눕혀둔 채 만났으니 할말이 숱할 수밖에 없다.
 
 
나는 구당(灸堂) 김남수(金南洙·90) 선생을 인터뷰하면서 그가 쓴 책 세 권을 단숨에 읽은 후 자연스럽게 뜸 예찬론자가 됐다. 나는 실제로 매일 스스로 뜸을 뜨고 있다. 난생 처음 해봤지만 어렵지 않았다. 책에서 본대로, 선생이 일러준 대로, 잘 말린 쑥을 쌀알 반톨만하게 비벼 뜸자리에 얹어놓고 선향으로 불을 붙여주기만 하면 끝이다. 순식간에 타버리니 뜨거울 새도 없다.
 
 
그러나 들인 노력에 비해 효과는 탁월해서, 묵직하던 몸이 순간에 거뜬해지는 것을 매번 경험하는 중이다. 시간이래야 한 10분이면 족하고, 5000원을 주고 쑥 한 봉지를 사면 석 달을 쓸 수 있고, 잠깐 뜨거운 것말고는 부작용이 생길 일도 없다. 이러니 예찬론자가 되지 않고 배기겠는가. 더구나 뜸은 김남수란 특출한 인간이 새로 개발한 비방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이어온 전래 민간요법인 것이다.
 
“장준하는 혼자 산에 갈 수 없었다”
내가 먼저 꺼내고 싶어 안달하는 이야기는 북한산에서 실족사했다고 알려진 장준하 선생에 관한 내용이다. 그해 구당 선생은 장준하 선생에게 왕진을 갔더랬다.
“저기 제기동 청파초등학교 앞에 집이 있습디다. 지붕 바로 위로 고압선이 지나가는데, 어지간히 어렵게 사신다 싶데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집마저 사글세였다고 합디다.
 
허리 디스크로 꼼짝을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거동은 물론이고 앉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기침도 못할 만큼 디스크가 극심합디다. 나한테 침뜸 치료를 받은 후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다섯 번쯤 치료를 받은 후 통증도 많이 사라졌고 지팡이를 짚긴 해도 방 안을 왔다갔다할 정도는 된다고 기뻐했거든요. 그 얼마 후에 산에서 실족사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기가 막혔지요.”
 
 
기사를 읽고 또 읽어도 그건 거짓말이었다. 지팡이 없이는 집 안에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낮은 계단조차 올라서지 못하던 사람이 등산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치료한 사람이 나였을 겁니다. 나는 의술자로서 거짓 없이 증언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그후 오늘까지 아무도 날 찾아와 그걸 물어본 사람이 없어요. 장 선생은 절대로 혼자서 산에 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또 한 사람, 구당 선생을 역사현장에 증인으로 서게 한 인물은 김재규다. 1979년 10월25일 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구당 선생에게 침을 맞았다. 장충동 중앙정보부장 공관에서였다. 그해 봄부터 김재규 부장은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구당에게 침을 맞고 있었다. 침 맞으려고 누워서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옷을 벗고 긴장을 풀고 누웠으니 절로 편안하게 이야기가 오갔다.
 
“김재규에게 갈 때는 거의 자정 넘은 시각에 정보부 차가 날 데리러 와요. 비상등을 켜고 신호를 무시한 채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자기들은 그저 지시를 따를 뿐이라고 해요. 처음 공관에 간 날, 혼자 널따란 방에 앉아 있던 김 부장이 대뜸 ‘나 잠 좀 자게 해주시오’ 합디다.
 
불면증은 원인이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 마음의 병입니다. 심장에 화가 몰리거나 간 경락인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이 흥분해서 일어납니다. 팔뚝과 등을 보니 간질환을 가진 사람에게서 보이는 간반(肝斑)이 아주 심하더군요. 먼저 심장의 화를 다스려놓고 머리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백회혈을 수습하고, 간장에 기(氣)가 흘러드는 간유혈을 잡아 침을 놓았지요. 침 놓고 뜸 뜨는 사이 그 사람은 조용하게 잠이 들더군요.”
 
침뜸으로 효과를 보자 김재규 부장은 밤마다 정보부장 공관으로 구당을 부른다. 거의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그사이 둘은 상당히 가까워진다. 침을 맞고 뜸을 뜨면서 불면증은 치료됐고 간반도 거의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제도가 잘못되어 침구술의 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구당의 울분에 김 부장은 몹시 안타까워하며 박 대통령과 직접 만날 약속을 잡아준다. 1962년 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침구사 제도의 부활을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라는 것이었다.
 
“침구사 제도가 폐지된 이유와 그동안 아무리 침구사법 부활을 청원해도 번번이 폐기되는 이유를 대통령께 직접 설명하려고 했지요. 그 약속날짜가 10월30일이었어요. 10·26사태는 사전에 계획된 모의가 절대 아닙니다. 극히 우발적으로 생긴 사건이에요. 그 전날인 10월25일 밤 김 부장이 나한테 그러더군요. ‘낮에 궁정동에서 부마사태와 관련해 굉장히 치열한 회의를 했다’고.
 
내가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을 명심해야 될 거다. 어딜 가서 들어봐도 똑같은 얘기들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 생각도 그런데 경호실장 차지철이 강경하게 나와서 큰일이라고 해요. ‘부마사태 같은 건 한 200만명을 죽일 각오만 하면 다 해결된다’고 하더랍니다. ‘내일 삽교천 준공식에 다녀와서 다시 회의를 하겠지만 사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고 걱정을 합디다.”
 
10·26사태로 물 건너간 침구사 양성화
그랬는데 바로 이튿날 10·26 사태를 신문에서 읽는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경호실장 차지철과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쐈다는 경악할 사건. 구당 선생에게 그 총성은 침구사 제도 부활이 문턱까지 갔다가 물 건너가는 소리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침의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거죠. 다 포기하고 침뜸을 그만둘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포기가 되는 일입니까.”
그날 물 건너간 침구사 양성화는 여태껏 제도화되지 못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침구사 대학이 나날이 늘어가고 서양에서도 침과 뜸의 효능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며 대체의학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침뜸이 ‘불법 의료행위’다.
 
“물론 ‘한의사가 침을 놓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겠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한의사는 침구사가 아닙니다. 침구사는 침과 뜸만으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지만 한의사는 그렇지 않잖아요. 한의사는 침뜸을 전문으로 하는 침구사만큼 침술과 뜸술에 능할 수가 없어요.
 
설령 능하다고 해도 약으로 처방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품을 팔아야 하고 의료수가가 훨씬 싼데 누가 침뜸만 하고 있겠습니까. 더구나 뜸은 자리만 알면 누구나 직접 뜰 수 있어요. 환자에게는 아주 좋지만 의사에게는 돈벌이가 전혀 안 되는 일이거든요. 뜸을 자꾸 권했다간 의사 폐업하기 십상이지요.”
 
원시적인 자연의술
침과 뜸은 가장 원시적인 자연의술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픈 곳을 누르거나 긁거나 도구를 이용해 자극할 줄 알았다. 돌이나 동물 뼈로 침을 만들어 스스로 제 몸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뜸은 추운 지방에서 불을 쬐면서 찾아낸 의술이다.
 
침뜸은 중국 본토보다 동방과 북방지역에서 먼저 생겨났다는 기록이 ‘황제내경’에 나온다. 바로 한반도와 만주 일대다. 북부지역은 날씨가 매섭고 혹독하니 선사시대 사람들은 불을 가까이 하여 몸을 녹였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차가운 벌판에 살면서 양고기나 양젖을 먹고 살았을 테니 배탈이 자주 났고, 그럴 때 배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었을 터다. 처음에는 불에 데운 돌덩이를 쓰다가 차츰 건초를 몸에 붙여 온열치료를 하는 뜸법이 발전했으리라.
 
나 어렸을 적만 해도 열이 나거나 체할 때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는 것쯤은 누구나 할 줄 아는 응급처치법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웃에 병원이 생기면서 우리는 어느새 손을 따기보다 약을 먹거나 주사 맞는 걸 더 신뢰하게 돼버렸다.
 
 수천년 이어지던 그 방법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느새 원시적이고 비과학적인, 배척 대상 의술이 되고 나아가 한의사 아닌 사람이 침이나 뜸을 뜨면 불법의료행위로 고발을 당한다.
실제로 구당 선생은 침과 뜸을 들고 산골이나 섬으로 소외된 이들을 찾아 봉사를 다니다 검찰에 고발당한 일이 여러 번 있다. 붙들려가서 기소유예 처분을 세 번이나 받았다.
 
“붙잡아놓고 벌을 주려고 해도 내가 돈을 받았어야 말이지. 불법 의료행위란 시술한 대가로 돈을 받아야 성립되는 거거든요. 조사관도 너무 안타까우니까 ‘선생님 이제는 봉사활동 좀 그만 다니십시오’ 그래요. 노화도에 가서 마을 노인들을 모아 침을 놓고 있는데 고발이 접수됐다면서 경찰이 나왔어요. ‘다 그만두고 해산시키라’고 합디다.
 
내가 하도 기가 막혀 ‘요즘 한의대에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몰린다던데, 한의사들은 왜 이리 멍청하냐’고 했어요. 우리가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단 하루만 시술하고 떠날 텐데, 침뜸의 효과가 좋으면 결국 자기네 한의원으로 침 맞으러 갈 텐데 그걸 못 참고 안달할 게 뭐냐고 핀잔을 줬습니다.”
  
수천년 내려온 침과 뜸이 우리 시대에 와서 명맥이 끊겨서는 안 된다는 초조감에 나 또한 깊이 공감한다. 누구나 간단한 뜸자리쯤은 알아둬야 한다고, 중·고등학교 체육이나 가정 교과서에 침과 뜸에 관한 언급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명구조의 한 방법으로 구급침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공호흡이나 부목(副木)을 대는 법은 가르치면서 그보다 훨씬 쉬운 구급침과 뜸을 가르치지 않는 처사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렇다. 그건 몇천년 닦아온 조상의 지혜를 낭비하는 일이다.
 
一灸二鍼三藥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전승되는 전통의술의 기본은 흔히 ‘일구이침삼약(一灸二鍼三藥)’이라고 일컬어졌다. 뜸이 첫째고, 침이 둘째고, 그래도 다스려지지 않을 때만 약을 썼다는 의미다. 그런데 상식으로 통용되던 ‘일구’와 ‘이침’이 광복 후 ‘삼약’에 밀려 핍박과 박해만 받아왔다는 사실을 나는 구당 선생을 만나면서 새롭게 인식했다. 그뿐 아니라 종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얽혀 전통의술과 현대의학 사이에 서로 넘어가지 못할 철조망이 높다랗게 쳐져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구당’이라는 호는 짐작하듯 ‘뜸 구(灸)’자, ‘집 당(堂)’자를 쓴다. 호가 그렇듯 김남수 선생은 아무 겉치레가 없다. 말도 아주 유쾌하고 쉽게 한다. 단순하고 짧은 말이 사태의 본질과 핵심을 탁탁 짚어낼 때 듣는 사람의 속은 후련하고 통쾌하다. 노인이니 말의 어미가 느슨해도 좋을 텐데, 정확한 ‘-습니다’체를 단정하고 간결하게 구사한다.
 
“침구는 박사가 하는 게 아닙니다. 글을 한 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라도 침을 놓을 수 있고 뜸을 뜰 수 있습니다. 그냥 쟁이지요. 침쟁이! 뜸쟁이! 어려서는 쟁이라는 말이 그렇게 싫더니만 이제는 참 좋습니다. 침과 뜸은 학(學)보다 술(術)이 앞선다는 의미잖습니까.”
 
의사는 ‘병원 폐문 방지자’
 
“의사가 왜 있습니까. 환자가 없으면 의사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의료인의 목적이 뭐냐고 제가 늘 묻습니다. 환자를 낫게 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게 의사의 존재이유 아닙니까. 내 것은 옳고 네 것을 틀리다고 말해서는 진정한 의사라고 할 수 없지요. 뜸을 뜨든 침을 놓든 약을 쓰든 환자를 고통 없이 빨리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의사의 태도 아닙니까?
 
병 치료는 육체와 정신이 같이 움직여 이뤄내는 겁니다. 의사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병을 못 고쳐요. 나는 의사들을 ‘병원 폐문 방지자’라고 부릅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려고 있는 게 아니라 병원문 안 닫으려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입니다.
 
아주대 이종찬 교수라고, 거기에 맞서 환자권리 찾기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사는 돈을 몰라야 해요. 국가가 월급을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국가가 주되, 대통령보다 더 많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아마 돈 생각 안하고 건강한 정신으로 쓸데없는 약 많이 안 쓰면서 병을 고치려고 할 겁니다.”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을 만큼 직설적인 말을 유연하게 하는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하나다. 생각해보니 나는 아흔 넘은 사람과 얘기해본 게 구당 선생이 처음이다. 구당의 아흔은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을 하게 만들었다. 나이 들면 늙고 쇠하는 게 자연의 이치인 줄 알았더니 그 속도는 얼마든지 완만하게 조절할 수 있는 모양이다.
 
자기 몸을 어떻게 다스리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연령대를 살 수 있다면?
구당은 노쇠는커녕 발랄하달 정도로 기운찼다. 피부가 아이같이 맑고 곱다. 체력과 몸놀림과 사고방식과 일하는 분량이 아흔 아니라 일흔, 아니 마흔이라 해도 믿겠다. 시력도 청력도 순발력도 전혀 감퇴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이런 말도 했다.
 
 
“우리 집사람과 같이 누워 ‘삼십대가 우리만 할까?’라는 얘기도 자주 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지 모르겠네. 하하.”
그는 60여 년간의 임상 경험을 모아 자신만의 쑥뜸요법을 체계화했다. 이름하여 ‘무극보양뜸.’ 무극이란 태극 이전의 우주를 나타내는 개념이지만 쉽게 말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뜻이다. 무극보양뜸은 누구나 어떤 질병에나 쓸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의술로 구당 침뜸의 핵심이다.
 
매일 그 자리에 뜸을 뜨면 몸의 원기가 북돋고 저항력이 길러져 병이 저절로 치료되고 예방된다는 걸 임상에서 수십 년째 확인하고 있다. 8개 경혈 12자리(여성은 13자리)에 뜸뜨기를 생활화하면 국민 누구나 병 모르고 살 수 있다는 복음. 그런데 사람들이 도무지 믿으려고 들지 않으니 허탈하다. 너무 쉽고 비용이 들지 않아 외려 신뢰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있던 것을 뜸자리를 줄여가며 간편하게 정리한 것이지, 내가 새로 발명해낸 건 아닙니다. 나는 120세까지 침뜸 봉사를 하면서 살 작정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 노인이 무슨 힘으로 저렇게 건강하게 오래 사나’ 하고 관심을 가질 거 아닙니까? 그럴 때 내가 만들어놓은 무극보양뜸을 자랑할 겁니다. 그러면 뜸의 효과를 믿어줄 것 아니겠어요? 하하.”
그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다. 평정을 잃는 일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필요해서 일부러 큰소리를 칠지언정 진정으로 마음이 상하지는 않는다니 사람이란 한 분야에 달통하면 도인이 되나보다.
 
무극보양뜸과 화상침법
무극보양뜸
서울 종로구 권농동 ‘시민의 신문’ 건물 침뜸 봉사실 안에서 자그만 체구의 구당 선생이 흰 가운을 입고 환자 앞에 섰을 때 주변이 따사로운 기운으로 데워지는 것을 나는 신기하게 지켜봤다.
 
온화한 기운은 구당에게서 흘러나와 고요하게 환자에게로 스며들었다. ‘의술이란 인술이라더니 그게 바로 저것이로구나’란 탄복이 절로 일었다.
 
그건 정성스러운 몰두와 애정이었다. 무극보양뜸도 그 애정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뜸법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약값은 있어도 침값은 없다’는 말이 있어요. 나이들수록, 곱씹을수록 진리라고 여겨집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침이 무한의 가치라는 겁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구해주고 깊은 병에서 헤어나게 해주는 침이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다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원가가 들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내게 그 말은 침쟁이로서 병 고치는 목적을 잊지 않게 해주고 물질이 정신을 몰아내지 않게 도와주는 경구입니다.”
구당 선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견은 화상침법이다. 침으로 화상을 치료하면 통증이 가시면서 진물이 나지 않는다. 진물은 현대의학으로 말하자면 백혈구다. 상처가 났을 때 인체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백혈구를 증식한다.
 
통증이 없어지면서 진물이 걷히면 이미 그 자리가 나아간다는 뜻이다. 침으로 치료하면 조직이 상하지 않는다. 흉터는 조직 파괴의 흔적이니 침으로 하는 화상치료는 흉터가 남지 않는다.
화상당한 부위를 ‘아시혈’이라 부른다. ‘바로 그곳’이란 뜻이다. 아픈 그곳에 침을 놓으면 통증과 가려움증이 사라진다. 이런 탁월한 화상치료법을 찾아내 학술지에 발표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화상전문 병원에서는 침 치료를 여전히 외면한다. 아니다. 침으로 화상을 치료하려는 트인 의사들도 있다.
 
그러나 침으로 화상을 치료하다가 고발을 당해 인천과 부산의 어떤 병원은 45일간 영업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듣고 있자니 참 코미디도 이런 희한한 코미디가 있나 싶다.
구당의 일주일은 온통 봉사활동 계획으로 꽉 차 있다. 홍릉 근처에 남수침술원을 개업했지만 돈 받고 환자를 받는 날은 목요일 단 하루뿐이다. 덕분에 목요일이 되면 뜸집 근처가 새벽부터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700∼800명이 몰려오지만 선착순으로 하루 50명만 치료한다.
 
 
“1인당 5만원을 받아요. 그러니 하루 250만원을 버는 꼴 아닙니까? 일주일에 그것만 벌어도 충분하지요. 젊어서부터 나는 돈을 잘 몰랐어요. 돈을 벌기로 작정했으면 하늘 꼭대기까지 쌓았을 겁니다. 요새는 좀 후회가 되기도 해요. 침구사를 합법화하려고 그렇게 발로 뛰어다닐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차라리 돈을 벌어 로비를 했더라면 지금쯤 성사됐을지도 모르겠다 싶거든요. 우리 집에 사람이 몰리는 건 내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침과 뜸의 효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겁니다.”
 
 
원래는 화·목요일 이틀간 환자를 받았는데, 올봄부터는 화요일 하루를 더 빼서 근골계 질환을 앓고 있는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의 치료를 위해 울산으로 내려가기로 작정했다.
“5만여 명의 직원 중에서 근골계 질환을 앓는 산재보험 대상자가 1만명을 넘는답니다. 병이라기보다는 과로인데 그런 질환에 침과 뜸이 특히 효과가 있거든요.”
 
‘뜸사랑’의 봉사활동
침뜸을 이용한 응급처치비법
월요일은 감사원에, 화요일은 울산 공장에, 수요일은 창덕궁 앞 시민의 신문사에, 금요일은 국회에, 토요일은 그가 만든 봉사단체인 ‘뜸사랑’ 가족들에게 돌아다니며 침을 놓아주고 뜸을 떠준다. 일주일에 하루도 몸 뺄 날이 없지만 그는 지치지 않는다. 침은 직접 놓지만 뜸은 그에게 침뜸을 배운 뜸사랑 회원들이 맡는다.
 
 
구당이 침뜸 봉사를 다니기 시작한 지 올해로 20년이다. 침구사가 제도화되기를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전파하기로 작정하고 침뜸을 교육한 것도 10년째다. 그간 1500명에 가까운 이들이 그에게 침을 배웠다.
 
그 제자들이 모인 봉사단체가 바로 뜸사랑이고 작년 한 해 뜸사랑 회원들이 시술한 사람 수가 무려 8만명이라니 한 사람이 뿌려놓은 씨앗이 펴져가는 속도는 이토록 놀랍다.
 
침뜸 교과서를 쓰다
뜸사랑의 모토는 ‘배워서 남 주자’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덜어내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 구당 선생의 일관된 가르침인 ‘참된 인술은 나눔과 희생’이란 선언을 실천하고 있다.
 
뜸사랑은 지금 창신동 봉사실을 상설 운영하고 있다. 65세 이상 생활보호대상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열린 공간이다. 국회의사당에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도, 재정경제부 청사에도 침뜸 상설봉사실이 개설돼 있다. 누구든 그곳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구당 선생은 증세에 따라 아예 뜸자리를 펜으로 표시해준다. 제자(구당은 제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냥 똑같이 하니까 ‘붕어빵’이라고 부르는 편을 좋아한다)들도 물론 똑같이 한다. 한번만 다녀가면 집에서 가족이 서로 떠줄 수 있다. 누가 뜨던 뜸의 효과는 다르지 않다니 이런 편리한 의술이 다 있나. 이런 의술을 만들어 보급하는 ‘민중의료인’의 위대성을 알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서 수입한 슈바이처만 성자이고 영웅인 줄 알다니, 우리 눈이 너무 어둡고 몽매하다.
 
“동양 삼국을 다 다니며 침뜸을 비교해봤습니다. 침에 대한 교과서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북한에도 2001년 이후 해마다 갔습니다. 북한은 침을 모르면 아예 의사로 인정을 안하더군요. 허익근 세계침구협회 북한회장을 만나 침뜸 교과서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이제 8권이 출간됐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어도 걱정 없습니다. 아, 공부할 교과서가 있지 않습니까. 여태껏 사람으로 태어나 뭔가 해놓고 죽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해 허무하다 싶었는데, 이제는 어딜 가든 침뜸 교과서를 만들고 간다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중국 침은 아프고, 일본 침은 너무 약해요. 우리 것이 효과가 가장 좋습니다. 젊은 사람이 침뜸을 배워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21세기 의료 경쟁에서 침뜸이 단연 최고입니다. 나이든 사람은 배워서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앞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의료비도 점점 더 늘 텐데 무극보양뜸 하나만 익혀놓으면 온 가족이 걱정 없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선생 슬하의 1남3녀 중 둘이 침뜸을 공부한다. 딸은 미국 침구대학원에 유학중이고 아들은 남수침술원에서 함께 일하며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1951년 우리나라 국민의료법이 공포될 때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는 의료업자로, 접골 침술 구술 안마술사는 의료유사업자로 나누어졌다. 질질 끌다 의료유사업자 자격시험 규정이 1960년에 생기기는 했으나 한번도 시행되지 못하고 다시 5·16을 맞는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료법을 개정하면서 의료유사업자 규정을 완전 삭제해버린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는 해방 후 정식 침구사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구당은 물론 광복 이전에 침구사 자격증을 딴 사람이다. 현재 살아 있는 침구사가 100명 정도지만 거의가 연로해서 직접 시술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침구사법이 없어진 후로 그걸 새로 만들기 위해 안 가본 데가 없습니다. 장군들치고 저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군부대마다 찾아다니며 다친 장병들에게 침 놓고 뜸 떠주고 했거든요. 장군들이 힘이 셀 때 아닙니까. 멍석 깔고 지랄하는 것 빼고는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봤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5공화국 때도 침구사 제도 통과가 문턱까지 갈 뻔한 적이 있었다. 1980년 당시 천명기 보건사회부 장관이 “침구사 제도를 부활하겠다”는 발표를 했었다. 너무 기뻐도 쇼크가 되는 법이다. 너무 좋아 가슴이 터질 것 같더니 심장의 화기운이 균형을 잃어 그는 그만 쓰러져버린다. 병원으로 옮겨져 40일을 산소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정신을 잃었으면서도 ‘저혈압에 진통제를 놓으면 안 되는데 지금 진통제를 놓는구나’ 하는 식의 분별은 있었어요.”
  
6개월간 병원에서 심근경색 치료를 받았다. 심장의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죽든지 살든지 집으로 가겠다고 우겼다. 자신의 몸을 임상대상으로 놓고 침뜸을 하기로 결심하고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말한다.
“내게 뜸을 떠다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응급실에 가기 전에 뜸을 떴기 때문이다. 설령 내 명이 다한다 해도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큰 효과이고 축복이니 걱정마라.”
 
건강의 본질은 ‘인체 치유능력’
 
예상대로 그는 살아났다. 뜸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
“건강의 본질은 병이 없는 게 아니라 인체의 치유능력입니다. 살면서 전혀 아프지 않을 수야 없겠지요. 아파도 가볍게 앓고 얼른 회복하면 그게 건강입니다. 뜸은 바로 인체의 치유능력을 높여주는 의술이에요.
 
혈행을 촉진하고 세포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고 신경 및 내장 기능을 조절하고 호르몬의 분비에 변화를 줍니다. 경혈에 자극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피부에 작은 화상을 입혀 일종의 가열 단백체가 생체 각 조직에 화학적 자극을 전달하도록 하거든요.”
우스꽝스럽게도 기껏 발표되어 그를 기쁨으로 쓰러뜨린 침구사 부활건은 나중에 까닭 없이 유보되고 말았다.
 
“왜 갑자기 유보됐는지 그 이유가 늘 수수께끼였는데 천명기 장관 사후에 밝혀졌지 않았습니까. 의사협회로부터 5억원인가를 뇌물로 받았다지요.”
구당 선생이 돈을 많이 벌 걸 하고 후회한다는 대목이 바로 이런 지점이다.
그는 열한 살에 처음 침을 잡았다. 선친도 침을 놓았고 하나뿐인 형님도 침구사였다.
 
 
“우리 형님은 중풍을 특히 잘 고치는 명의셨어요.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노릇 한다고 내가 그 짝이지요.”
의원이신 부친은 화제(약방문)만 낼 뿐 환자에게 약을 지어주지 않았다. 침과 뜸만으로 병이 잘 나으니 굳이 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약 짓는 약방은 따로 있었다. 의원은 침을 놓고 화제를 써주면 그만이었다.
“당시는 그야말로 의약분업이 아주 잘 돼 있었던 겁니다.”
 
 
선친이 따로 치료비를 받는 건 본 적이 없다. 가을이 되면 동장이 자루를 들고 다니면서 모곡을 걷어줬다. 있는 사람은 넉넉히 내고 없는 사람은 내지 않아도 좋았다.
“그게 바로 그 시절의 의료보험이었지요.”
따로 배울 필요도 없이 부친과 형님에게서 보고 들은 대로 그는 28세에 남수침술원을 개업한다. 그후 60년 넘게 한번도 침통을 놓지 않고 살았다.
 
침의(鍼醫) 허임의 재발견
“화타나 편작이 명의라고 하지만 나보다 오래 의원 노릇을 했을까요. 조선에는 허임이라는 걸출한 어의가 있었어요. 허임도 72세 이후로는 종적을 감췄다고 나와 있으니 아마 역사상 침을 가장 오래 놓은 사람이 내가 아닐까 싶어 요.”
 
사극에 나오는 허준이 약을 짓고 침뜸 시술을 동시에 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는 완전히 어긋난다. 그는 약의(藥醫)였고 허임이라는 침의(鍼醫)가 따로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에는 약의 허준과 침의 허임이 선조의 편두통을 함께 치료하는 장면이 나온다.
 
임금이 “짐에게 침을 놓는 게 어떠한가” 묻자 노의(老醫) 허준은 “소신은 침 놓는 법을 모릅니다”라고 물러나고 대신 허임이 병풍 뒤에서 침을 놓는다는 기록이다.
허임은 자신이 일생 축적한 임상 경험을 모아 조선 최초의 본격 침구서인 ‘침구경험방’을 펴낸 걸출한 침의였다. 허준에 견주어 하도 묻혀 있는 인물이라 앞으로 구당 선생과 뜸사랑 회원들은 ‘허임 선생 기념사업회’를 만들 예정이다. 세부사항도 착착 만들어지고 있다. 그 일을 통해 침과 뜸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사랑을 높여나가는 게 목적이다.
 
 
침뜸에 관한 잘못된 속설이 있다. 침뜸을 동시에 하면 기운이 빠져 못쓴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 구당 선생은 속 시원히 해명한다. 예전에는 침 만드는 사람이 귀했다. 침을 만들면 재수없다는 소문이 떠돌아 손 없는 날을 골라 금세공업자가 섣달 그믐날 하루만 침을 만들었다.
 
그러니 가는 침을 구하기가 몹시 어려웠고 할 수 없이 대침을 썼다. 대침은 위험하다. 잘못 찌르면 신경을 손상할 수도 있고 복막염이 될 수도 있었다. 침에 녹이 슬 수도 있었다. 뜸도 크게 떴다. 커야 좋은 줄 잘못 알고 몸살을 앓을 만큼 크게만 떠댔다.
  
지금은 다르다. 현대는 제철기술의 발달로 값싸고 질 좋은 스테인리스 호침이 머리카락 굵기만큼 가늘게 생산된다. 쑥도 쌀알 반톨만하다. 힘들 게 전혀 없다. 경혈을 동시에 자극하면 더욱 효과적일 뿐이다.
경혈이란 인체의 오장육부와 경락의 기가 모이고 출입하는 곳이다. 우리 몸의 초인종인 셈이다. 침뜸은 몸의 급소인 경혈을 자극해 불균형과 이상을 바로 잡아준다는 원리다. 몸이 알아서 저절로 제 균형을 잡아가라고 죽비를 내리치는 것이다.
 
우리 몸 안에 에너지가 다니는 통로를 경락이라 부른다. 동양의학은 병이란 그 선로의 흐름이 고르지 못한 상태라고 본다. 그럴 때 가까운 역(경혈)을 찾아가 자극한다. 그러면 멈춰 있는 기운이 잘 돌아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락 이름은 다 뜻이 깊어요. 머리 가운데 있는 백회(百會)는 100가지 경락이 모여 있다는 의미지요. 이곳에 뜸을 뜨면 머리가 맑아져 집중력이 좋아집니다. 머리칼이 새로 돋기도 합니다. 예전에 백회에 뜸뜨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해서 흔히 서울대 뜸자리라고도 불러요.
 
어깨 아래 고황(膏?)이란 아주 깊은 곳이란 뜻입니다. 병이 깊이 들었을 때 여기다 침을 놓습니다. 천종(天縱)이란 심장과 뇌라는 뜻이에요. 뇌나 심장에 병이 있을 때 사용하라는 자리입니다.”
구당 선생은 침뜸을 ‘종합의료기’라고 부른다. ‘이동병원’이라고도 말한다. 부러지고 잘라진 외과적 상처말고 내인성 질병은 어느 병이든 침뜸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걸 임상을 통해 확신하고 있다.
 
특히 디스크와 당뇨와 중풍에 탁월한 효능을 나타내는 게 침과 뜸이다. 남수침술원은 환자들 사이에 흔히 ‘침 한번 집’으로 불린다. 침 한 번 맞으면 말짱해진다는 건데 물론 다 그렇진 않다. 오래된 병은 오래 다스려야 하지만 침 한번에 거뜬해지는 경우도 많다.
 
YS도 감탄한 ‘침 한번 집
한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상도동 자택으로 구당을 불렀다. 선거운동 하느라 수도 없이 악수를 하다보니 어깨 통증으로 팔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하소연이었다. 어깨 바깥쪽 견우혈에 침을 한 번 찔렀다. YS는 “듣던 대로 ‘침 한번 집’이 맞네” 하며 금방 악수를 청했다. 나중 YS가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도 몇 번 가서 침을 놓아줬다. 침구사는 청와대를 뒷문으로 몰래 출입해야 했다. 효능을 눈앞에서 확인해도 침구술은 여전히 불법이었다. 노쇠한 몇 명만 빼면 지금 침구술을 행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엄밀히 말해 무자격자라는 거다.
“의사가 침구를 활용할 수 없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남한뿐입니다. 의료 서비스가 개방되면 전통의학과 현대의학 사이에 쳐놓은 철조망은 얼마 못 가 무너져요. 그럴 때를 대비해 늦기 전에 의사, 한의사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침구교육을 해야 하는데….”
 
아픈 곳에 믿음의 나무 심는 사람
그는 젊어서 일본 소설 ‘인간수업’을 읽었다. 거기 사람이 하는 짓은 온갖 것을 다 해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름도 잊지 않았다. 린겐노 슈교.
“내가 그걸 동경했어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이젠 거의 해봤어요. 하다 못해 바느질하는 것과 상여 메는 것까지 다 해봤지요.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내 삶에 불만이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金瑞鈴
● 1956년 경북 안동 출생
● 경북대 국문과 졸업
● 중앙중 교사, 매일경제신문·샘이깊은물 객원기자
● 월간 ‘동서문학’ 신인상










구당 선생은 아기같이 고운 볼로 활짝 웃고 허허 웃고 정답게 또 웃는다.
그리고 내 팔의 곡지혈에 쌀알 반톨만한 뜸을 올리고 선향에 불을 붙였다.
 
“자, 뜸맛을 한번 느껴봐요. 맛을 봐야 글을 쓰지.”
박노해 시인이 선생을 위해 쓴 시가 있어 여기 두 연만 옮겨 적는다.
 
 
 
물은 세 걸음만 걸어도 스스로를 맑게 하듯
그대 몸 안에 숨은 치유의 힘이 있다고
아픈 그 자리에 믿음의 나무를 심는 사람
그는 첨단 장비를 들지 않았다네
가늘고 순하고 오래된 침 하나라네
그는 비밀스런 영약을 들지 않았다네
이 땅의 가장 흔한 마른 쑥 한 톨이라네
그는 값비싼 면허증을 들지 않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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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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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에 나오는 또 다른 트랜스포터.


모델인가 싶을 정도다. 여주인공인가 갸우뚱 했는데 매력있다.

볼거리중 하나인 자전거씬. 대다안~~합니다요.

우후~ 영화보고나서 또 운동했다. -.-;;

아우디. 튼튼하다. 갑자기 아우디 급호감.

좀 편히 살고 싶다.

이렇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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