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김씨

心身FREE/my home 2008. 5. 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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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김씨 (淸道金氏)  청도김씨 홈으로 이동


 1> 시조 :  김지대[金之岱]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청도(淸道)는 경북 남쪽 중앙에 위치한 고장으로 본래 이서소국의 땅이었으나
     고려초에
오악현, 형산현(荊山縣), 소산현(蘇山縣) 3개현을 합하여 청도군(淸道郡)이 되었다.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시조 김지대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8세 손이다.
     그는 고려 고종과 원종때의 명신으로 비서소감, 지공거, 추밀원부사를 거쳐 첨서추밀원사에
     승진하였다. 1258년 몽고군을 격퇴하고 민심을 잘다스린 공훈으로 오산(청도)군에 봉해졌다.
     원종이 즉위한 후  이부상서를 지내고  중서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청도를 관향으로 삼아  그곳에 살면서 세계를 이어왔다.  

     인물을 살펴보면 시조 지대의 아들 선장(善莊) 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증손 한귀(漢貴) 
     공민왕 때  홍건적을 토벌한 공으로 최영과 함께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조선조에 와서는 세종때 형조와 호조판서를 역임한 점(漸 :한귀의손자)과 세조때 단종복위를
     도모한
차산(次山)이 유명했으며, 난상(鸞祥)은 을사사화로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선조때 직제학을 거쳐 대사성에 올랐다.

     그밖의  인물로는 임진왜란때 임란공신에  책록된 몽룡(夢龍)과 희방(希邦)이 이름났고,
     순조때 성리학자로 유명한
응하(應夏)는 문하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한말에 와서 청도김씨를 빛낸  인물인 정호(正浩)는 정밀한 지도 작성에 뜻을 두고 36여년간
     전국을 돌며
[청구도(靑丘圖)]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완성하여 우리나라 문화사상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청도김씨(淸道金氏)는 남한에 총 15,596가구,
     64,38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경북 영주시 가흥동

경남 밀양군 청도읍 두곡리, 인산리

     경북 달성군 옥포면 교항동

경남 거창군 마리면 일원

     경북 군위군 효령면 장군동



자신의 본관과 유래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www.burimhong.pe.kr/name1/000korean%20name.htm

 

청도에는 소싸움도 있는데 ^^ 언제 보러 가야쥐. 언제가지?


KBS 역사 스페셜

  김정호의 꿈, 조선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방송일: 2003208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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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시 : 2003년 2월 8일 (토) 20:00-21:00 KBS 1TV

■ 담당 P D : 박현민 [781-3557] / 작가 : 정윤정

■ 더빙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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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땅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있는 공간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한다.
140여년전. 국토의 깊고 얕은 곳까지 속속들이 알고자 했던 한 사내의 꿈!
그것은 한 장의 지도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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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1]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대동여지도는 모두 10여본.
그 중에서도 성신여대 소장본이 보물 850호로 지정돼 있다.
상태가 가장 양호할 뿐 아니라,
지도 일부에 색을 칠한 것이 조화를 이뤄서,
예술적 가치도 높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철종 12년인 1861년.
지금으로부터 140여년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 지도는 우리가 흔히 봐오던
한 장짜리 지도들과는 달리 책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20센티미터의 종이를 옆으로 길게 이어 붙여 놓았는데,
이같은 책이 스물 두권이 모여서 하나의 지도를 이루게 된다.

(양보경 교수 인터뷰)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전체를 그려놓은 전국지도인데,
만약 이것을 한 장으로 만들었다면 그 크기가 워낙 커서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다.
때문에 떼어 놓으면 분리도가 되지만 합하면 전도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동여지도의 크기는 어느 정돌까?
진본과 똑같이 만든 영인본을 가지고 확인해보기로 했다.
바닥에 펼쳐진 지도책이 절반을 넘어서면서 한반도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제주도에서 백두산까지- 스물 두권의 지도책을 모두 붙이자
엄청난 크기의 전국 지도가 완성되었다.

(양보경 교수 인터뷰)

이 거대한 지도속에는 과연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산맥이다.
산봉우리를 각각 떼어서 그리지 않고 줄기와 줄기를 이어서
마치 하나의 구조물처럼 표현하고 있다.
땅을 살아있는 사람의 몸과 동일시했던 당시 사람들의 국토관이 반영된 결과다.
산맥은 국토의 골격을 형성하는 뼈대이며,
그 사이사이를 흐르는 강물은 혈맥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백둑대간의 개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인데,
백두산에서 시작된 국토의 큰 흐름이 남북을 관통해
마치 척추처럼 한반도를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동여지도 속에 나타난 산봉우리는 모두 삼천여개.
전체를 하나로 표현하면서도 각가의 산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백두산은 실제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게 그렸다.
'백두'라는 이름을 연상시키려는 듯 흰 봉우리를 강조하고 있다.
함경북도 명주군에 위치한 칠보산- 마치 보석을 박아놓은 듯이 보인다.
금강산은 무수한 봉우리를 표현해, 일만이천봉의 이미지를 살리고 있다.
다섯 개의 봉우리를 의도적으로 과장한 오대산.
서울의 삼각산 역시 세 개의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공주 계룡산은 마치 용이 드러누운 것 같은 모습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인식속에 살아있는 산의 이미지를 지도속에 옮겨놓은 것이다.
대동여지도에서 또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도로에 대한 표현이다.
모든 도로가 마치 고속도로를 연상시키듯
직선으로 그어져 있는데 이것은 실제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
이처럼 사실과 달리 도로를 왜곡해서 표현한 까닭은 물길과의 구별을 위해서다.
도로는 직선으로, 물길은 곡선으로 나타냄으로써
한가지 색깔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목판지도의 단점을 보완하려 한 것이다.
이전의 지도들과 대동여지도를 구별지어주는 가장 큰 특징은 기호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모두 스물 두 개가 기호를 만들었는데,
오늘날은 모든 지도에서 당연하게 사용되는 것들이지만
우리나라 지도의 역사에서는 대동여지도가 최초였다.
구체적인 활용의 예를 살펴보면,
영아를 표시하는 이 기호는 병영 등의 군영,
읍치는 오늘날의 시청이나 군청을 나타낸다.
이외에도 군사기지를 나타내는 진보다 역참, 봉수 등 다양한 기호가 사용됐는데,
이전과 달리 글자수를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지면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양보경 교수 인터뷰)

140여년전에 만들어졌음에도 현대 지도 못지 않은 아이디어가 활용된 지도-
대동여지도는 크기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당대 최고의 지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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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2]
예나 지금이나 지도를 가장 많이 활용하게 되는 경우는 길을 찾을 때다.
고지도를 연구하는 이상태 선생과 함께 대동여지도의 도로망을 확인해보았다.
직선으로 표현된 도로들은 지도상에서는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산길이거나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길이라 훨씬 더 멀 수도 있다.
도로의 길이만 가지고는 실제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동여지도에는 이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도로 위 10리마다 점을 하나씩 찍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방점들은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
산악지역의 경우엔 주로 조밀하게 나타나는데 가장 좁은 곳은 1.5센티미터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넓은 곳은 얼마나 될까?
2.5센티미터- 주로 평야지대에서 확인된 수치다.

(이상태 선생님 인터뷰)

방점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두 지점간의 거리를 파악하는데만 머물지 않는다.
전국 어느 지점에서나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일정을
예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국을 연결하는 교통 네트워크를 가능케 한다.
이것은 모든 도로망이 서울만을 중심으로 표기되던
이전 지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획기적인 변화다.

(현장음)

조금 더 후대에 만들어진 지도들에선 이전보다는 발전된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 지도는 옆에 따로 표를 만들어서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자리에
두 지점간의 거리를 표시해 두었다.
이 표를 활용할 경우 거리는 알 수 있지만 여전히 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동여지도의 도로 표기 방법이 왜 탁월한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태 선생님 인터뷰)

조선시대 물길은 도로 못지 않게 중요한 교통로였다.
때문에 대동여지도 상에도 물줄기들이 매우 상세히 표현돼 있는데,
한가지 눈길을 끄는 점이 있다.
물줄기가 어떤 지점에서는 두줄기로,
또 다른 곳에서는 한줄기로 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쌍선과 단선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경상북도 문경시 호계면.
마을 옆을 흐르고 있는 강은 낙동강의 본류다.
상류임에도 불구하고 배를 이용하지 않고선 건널 수 없을 정도로 강폭이 넓은 편이다.
그러나 이 지점을 기준으로 상류쪽은 강의 깊이가 급격히 얕아져서
돛단배는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공물을 실어나르던
조운선들의 종착지가 이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인터뷰)

결국 대동여지도에서 쌍선으로 표시된 물길은
돛단배를 운행할 수 있는 구역인 동시에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 하는 구간을 나타낸 것인데
여기서 다시 한양으로 가려면 육로를 이용해 문경새재를 넘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나루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유곡동.
도로로 변해버린 이곳은 조선시대 문경새재를 오가던 여행자들에게 말을 제공하거나
숙소를 알선하던 역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공덕비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대동여지도에는
유곡역의 위치도 정확하게 표시되어있다.
때문에 대동여지도만 들여다보면
조선시대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물류 운반체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공물을 싣고 동래에서 출발한 조운선은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게된다.
물줄기가 단선으로 바뀌는 문경에 다다르면,
유곡역에서 교통편을 마련하고 육로를 따라 문경새재를 넘는다.
다시 충주에서 배를 갈아타면 쌍선으로 표시된 물길은 곧장 한양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대동여지도에는 당시의 교통, 물류 정보가
완벽하게 담겨있어 매우 실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즘 제작된 지도들과 비교할 때 대동여지도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일까?
대동여지도를 현대 지도와 동일한 크기로 축소해서 그 외곽선을 비교해 보기로 했다.
남해안과 서해안 지방에서는 거의 일치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북부지역으로 가면서 오차가 발생했는데
주로 산악지형에서 실제보다 조금 더 넓게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터뷰)

인공위성에서 찍은 서울의 모습이다.
하천 매립등으로 일부 지형이 벼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동여지도의 정확성은 140여년전에 만들어진 고지도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정확하면서도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는 이같은 특징 때문에
대동여지도는 당시 조선의 교통 물류네트워크를 완벽하게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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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
오가는 차량들로 붐비는 중림동 로터리.
몇해전 이곳에 김정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곳에 비석을 세운 까닭은 현재까지 김정호에 대해 밝혀진 유일한 단서가
이 일대에서 거주했다는 사실뿐이기 때문이다.

(향토사학자 인터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김정호 개인에 대해서는 지도 제작자였다는 사실 외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이 때문에 그를 둘러싼 과장된 소문들이 오랜 시간동안 진실처럼 전해져오기도 했다.
당대에 김정호에 대해 적은 유일한 기록은 이향견문록이라는 책이다.
이책에는 김저호가 만든 지도가 매우 훌륭했다는 간단한 내용만 담고 있다.
다만, 중인 이하 사람들의 업적만을 싣고 있는 이 책의 성격을 고려해 볼 때
김정호의 신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인터뷰)

김정호가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일제 때 간행된 조서어독본을 통해서였다.
이 책에는 김정호가 나라에 정확한 지도가 없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혼자서 백두산을 여덟 차례나 오르고 전국을 수없이 답사하며 조사한 결과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을 나라를 위해 쓰고자 대원군에게 가져갔지만
지도가 너무 상세해서 국가의 기밀이 다른 나라로 새나갈 것을 염려한
대원군에 의해 옥에 갇혔고 결국 옥사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호가 평생을 바쳐서 만든 대동여지도 목판은 모두 압수돼 불태워졌다고 했다.
이 같은 내용은 90년대 초반까지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난 90년대 초 국립박물관 수장고에서
여러 매의 목판이 발견되면서 의문이 제기되었다.
대동여지도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목판을 두고 정밀조사가 실시되었다.
수장고에서 발견된 목판은 모두 열 한 매.
하나의 목판에는 앞과 뒤 각각 두 면씩 총 네 개의 면이 새겨져 있다.
확인 결과 이 목판은 대동여지도 인쇄본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오상학 학예연구사 인터뷰)

목판의 존재는 대동여지도가 압수, 소각된 적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김정호의 옥사설 또한 사실이 아님을 말해주는 단서다.
이향견문록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책에서는 김정호의 죽음을 '몰'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만약 옥사했다면 '물고'라고 적어야 옳다.
또한 대원군 집정기에 쓴 이 기록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대동여지도를 한 부 소장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김정호가 처벌을 받았다면 결코 적지 않았을 내용이다.
결국 조선어독본의 내용은 대원군을 우매한 지배자로 묘사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했던 일본의 역사왜곡이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김정호의 작품은 대동여지도 하나만이 아니다.
제작시기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수선전도는
역시 목판으로 만들어진 서울지도인데,
현존하는 가장 큰 서울지도일 뿐 아니라 서울을 담은 목판지도들 중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대동여지도 못지 않게 높은 평가를 받아야할 업적이 지리지의 편찬이다.
지리지는 국토의 정보를 집대성해 놓은 일종의 지리 백과사전인데
김정호는 일생동안 여도비지, 동여도지, 대동지지 등 세 종류의 지리지를 만들었다.

(양보경 교수 인터뷰)

살아생전 김정호는 이름을 날리거나 명예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지리학적 성과들은
국토와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학문과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인물 김정호를 되살아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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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
우리나라 전통 지리와 천문에 관한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시회장-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들도 대거 선보였는데 대동여지도 이전의 지도들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또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여지전도- 대동여지도보다 40여년 앞섰을 뿐인데도
지도의 정확성은 매우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글씨는 지도라기 보다 지리지를 연상시킨다.
대동여지도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곤여전도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데
이 지도 속에서도 한반도의 모습은 심하게 왜곡돼있다.
그렇다면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현대 지도 제작과정을 통해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측량을 위해 먼저 GPS 장비를 설치했다.
인공위성을 통해서 이 지점의 경위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현재 전국에는 측량 기준점들이 정해져있는데.
이것은 측정할 때마다 생길 수 있는 오차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인터뷰)

각 지점에서 산출된 데이터를 조합하면 지점과 지점간의 거리,
경위도상에서의 정확한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과학이 발달한 현재까지도 지도 제작의 상당부분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하는데,
지명이나 경계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지도 제작에 인공위성이나 항공사진을 활용함으로써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었다.

(인터뷰)

우리나라에서 근대식 실측지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토지측량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출 수 있었을까?
실측자료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단서를 찾던 중 김정호의 지리지 속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정호가 쓴 첫 번째 지리지인 여도비지는 도별로 지역을 나눠놓은
일종의 군현 지리지인데 친구였던 최정환과 함께 저술한 책이다.
이 여도비지 속에 매 지역마다 그 지방의 경위도를 기록한 표가 들어있다.
여기에 적혀있는 경위도는 북극고도를 기준으로 측정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우리나라에 독자적인 경위도 기준이 있었고,
실제 지도 제작에도 활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록은 김정호가 직접 측정했던 것일까?

(인터뷰)

김정호의 또다른 지리지 속에서도 이와 동일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정조 15년. 8도에 명을 내려 북극고도와 편동서도를 측정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때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측량이나 측정을 시작한 것은 언제쯤일까?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한 결과 세종 때 이미 측량을 시작했고
전국의 주요도로에 30리마다 표석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거리 측정을 위해 기리고차라는 기구를 만들었는데,
이 기구는 스스로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반자동 거리측정기였다.
이 놀라운 거리 측정기에 대해서는
호대용이 쓴 담헌서 속에 그 작동원리를 짐작해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기록에 다라 복원해보면 기리고차의 겉모습은 마차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 구조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상당히 복잡한 형태다.
수레가 반리를 가면 종이 한번 울리고, 1리를 갔을 대는 여러 번 울리도록 했다.
사람은 수레위에 앉아 소리를 듣고 기록하기만 하면 됐는데,
북소리는 5리에서 한번, 10리에서는 여러 번이 울렸다고 한다.

(인터뷰)

조선시대 궁궐의 모습을 그려놓은 동궐도.
당시 궁궐안 곳곳에 설치돼 있던 천문 관측기구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통해 경위도 측정의 전통 또한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겨위도를 측정한 가장 큰 목적은
날씨를 연구해서 농사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렇게 측정된 기록은 어떤 식으로든지 활용되었을 것이다.

(인터뷰)

이미 측정해 놓은 정확한 데이터가 있다면 지도와 지리지를 만들기 위해서
매번 새로이 측정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김정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동지지 속에 자신이 참고한 도서명을 밝혀놓았는데,
모두 예순 다섯 종으로 고금의 지리학 서적들이 망라돼있다.
이것은 김정호가 전통 지리학의 성과를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 자신의 노력을 더해서 1861년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던 김정호.
그러나 그에게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과 64년 두 차례에 걸쳐 간행됐는데,
이 두 개의 판본 사이에는 미세하지만 차이가 존재한다.
이 경우는 산맥을 새로 삽입했다
지명이 새로 추가된 경우도 있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도 십 여 군데가 넘는데
대동여지도의 수정이 목판작업임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다.
완벽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김정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대동여지도는 1861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김정호가 눈을 감은 그 순간까지도 현재진행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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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5]
인천에 위치한 화도진 공원.
1882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맺은 강화조약이 바로 이곳에서 체결됐다
강화조약이라고는 하지만 무력을 앞세운 열강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문호를 개방해야만 했던 시기였다.
당시 조선 측 대표로 참석한 이는 전권대사 신헌
대원군 집정기의 대표적 무관이었던 그는
누구보다도 국방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인물이다.
신헌은 자신의 문집에서,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로서는 국가 1급 기밀 서류에 해당하는
비변사나 규장각의 지도들도 모두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김정호가 당대 최고의 군사 지도들을 볼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당시의 군사지도들은 어떤 특징을 자지고 있을까?
18세기에 만들어진 이 지도는
당시 청나라와 마주하고 있던 국경 지역의 지형을 그려놓은 관방지도다.
이 지역의 지형, 성곽, 도로 등이 매우 자세하게 표시돼 있다.
정방 산성도.
이 역시 이 지역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군사지도다.
성벽과 진보 등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우물과 창고까지도 세밀하게 표현해 전쟁시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강석화 교수 인터뷰)

대동여지도는 특정 지역에 편중됨이 없이
전국을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전국의 봉수 체계를 파악해야 한다면
지도상에 표시된 봉수 기호들을 모두 연결하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한 장의 훌륭한 봉수도가 완성되는 셈인데,
역참이나 창고, 진보 등도 마찬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는 전국 지도라도 개별 지역에 대한 정확성 또한 떨어지지 않는다.
서울의 외곽 방어를 담당하는 강화도를 살펴보면,
먼저 성벽의 위치가 꼼꼼하게 그려져 있다.
강화도 전체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위치가 한눈에 들어오고,
봉수나 창고 등 각종 군사 시설들에 대한 파악도 손쉽다.
이것은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군사지도로서 활용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석화 교수 인터뷰)

대동여지도의 군자시도로서의 활용가치는 이미 입증된 바 있다.
1925년 10월 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정호에 관한 기사에 따르면
청일전쟁 당시 양국 군대가 모두 대동여지도를 작전 지도로 활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지리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도
대동여지도를 사용해서 군사 작전을 실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일본군은 우리나라에 과한 상세한 지도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동여지도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 지도도 그 중 하나인데 서해안과 한강 주변의 해로를 표시한 것이다.
서울까지, 배를 이용해 들어 올 경우 대비해
한강 전체의 수심까지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근대 측량기법으로 만든 정밀한 지도를 가졌음에도
대동여지도를 활용한 것은 이 지도가 현대 지도 못지 않게
정확하고 편리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 누가 보아도, 그 어디에서 보아도
똑같은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의도했던 김정호의 생각 속엔,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의 공유라는 현대적인 사고 방식이 녹아있는 것이다.

(강석화 교수 인터뷰)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를 만든 시기는
이양선과 외국함대들의 출몰이 잦아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활용 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마지막 저술이었던 대동지지 속에
유독 군사항목이 강조된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전고라는 항목인데,
이전의 지리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 같은 항목을 통해
국방을 중시했던 김정호의 지리적 사고를 읽을 수 있다.

(양보경 교수 인터뷰)

김정호가 지도를 만든 궁극적인 목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대동여지도의 첫머리에 실린 지도유설이다.
그의 뜻은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 지도로써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시절이 평화로우면 이F로써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사용하고자 함이었다.
대동여지도는 이전까지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그래서 무모하게까지 여겨지는 한 사내의 꿈에서 비롯됐다.
국토 정보를 지도상의 네트워크로 구축함으로써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희망했던 그 꿈은
지금 우리 앞에 6.6m 초대형 지도로 남겨졌다.

출처 http://www.kbs.co.kr/history/vod.shtml


보다 더 많은 청도 김씨에 대하여, http://my.dreamwiz.com/dbaseman/ 




개인의 시조가 난 곳 또는 성()의 출자지().



관적() ·본적() ·성관() ·본() ·관향() ·적관()이라고도 한다. 보통 성()과 병칭되어 개인의 부계 친족의 범위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하지만 이것은 조선 중기 이후 성립된 것으로, 본관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당나라 이전부터 본관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본관을 사용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관은 신라 말, 고려 초기의 사회변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국가적인 제도로서 시행된 것으로, 그 실시 시기는 지역적인 편차가 있으나 995년(성종 14)경에 완성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실시 초기의 본관제는 지역사회 내부의 자체적인 질서를 이용하여 향촌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시행된 제도였다. 즉 기존의 지역공동체 관계를 이용하여 백성들을 거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대민() 지배방식의 일환으로서 시행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고려 전기에 본관을 벗어나는 거주지 이동은 입사() ·입산() 등을 통한 신분이동이나, 방수() ·행상() 등 역()의 수행이나 직업상의 필요, 또는 사민() 유배 등 정책적인 경우를 비롯하여 기타 공식적으로 허용받은 경우에만 가능하였다. 공식적인 허락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유망민으로 간주되어 본관 지역으로 되돌려졌다. 본관은 양인() 이상에게만 주어졌으며, 노비양수척() 등의 천인()들은 본관제 질서에서 배제되어 국가에 대한 국역()의 부담도 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고려 정부는 지역사회의 지배층을 중심으로 토성() 및 직역()을 분정()하여 지방지배를 위한 부세() 징수 등의 행정실무를 맡도록 하였다. 토성은 신라 말, 고려 초 변동기의 자위조직의 기초집단인 성()을 중심으로 분정되었는데, 이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일종의 ‘봉읍()’과 같은 공동체 관계로 파악한 것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족보에서 각 성관의 시조들이 해당 지역에 식읍() 또는 채읍()을 사봉()받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고려 후기 이래 향촌사회에서 농민층의 분해가 심화되고, 유망이 극심하게 일어나면서 본관과 거주지의 분리현상이 확대되어갔다. 이제는 본관 지역을 이탈한 농민들을 원래의 본관으로 되돌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차라리 현재의 거주지에 적()을 붙여서 수취를 도모하는 방편이 보다 편리해졌다.

    이에 따라 본관제가 가지고 있던 향촌사회의 통제기능은 약화되고, 본관이 점차 관념적인 혈연의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동성()은 처음에는 동본()이었다는 관념에서 성관()의 통합이 진행되었다. 즉 군소 성관들이 동성의 유력 본관을 따라 개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본관은 이제 성관으로서 ‘동성동본은 백대지친()’이라는 보다 관념적인 혈연의식을 나타내게 되었고, 개인이 속한 부계친족 집단의 계급적 우월성과 신분을 상징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는 특히 이러한 관념이 강하여,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반계() 유형원()은 “풍속이 문벌을 중시하여 사족()들은 반드시 원조()의 출신지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비록 자손들이 흩어져 살면서 100대가 지나도 본관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의식 아래에서 조선 후기에는 족보 편찬이 활발해졌다. 근대적인 호적제도가 시행되어 모든 사람들이 성과 본관을 가지게 되면서, 본관의 사회적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지만 현재까지도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지하는 등 법률적인 면에서 그 기능이 남아 있고, 특정 성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분관념의 상징으로서 잔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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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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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0 23:21

뭐 그런 생각이네.

사실 뭐 이 땅에 평생 살고 싶은 생각도 그리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대한민국을 싫어하거나 그래서 일본을 좋아한다거나 미국을 흠모? 뭐 그러지는 않는다.

일본은 모르겠으나 미국땅 밟아보고 싶은 생각 전혀, 추호도 없다.

언젠가 대한민국에서 행여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긴다면 기거이 이 한목숨 바쳐야 하는거 아냐?

했던 시절,  당연지사, 청춘의 당위성이었다. 솔직이 지금은 모르겠다.

가진것이 좀 생겨서 그 것이 아까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아니어도 살 곳이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며 변한거 같다.

특히 이번 선거를 보고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잘 사는 법을 말이다.


서대문구갑 기호 1번 우상호 낙선

지난번엔 찍어서 되었는데 이번엔 찍었는데 안되었다. 이런...

지금까지의 투표전적에 1패의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난 민주당 지지자이다.
왜냐고? 난 김대중 전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민정책과 미완이었지만

개혁을 지지했으니 말이야. 지난 10년? 그 이전에 수십년간을 말아먹고 뒤틀렸던 대한민국의 역사를

되 돌리는데 10년이 긴건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한 5년 그냥 잘 버티면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2년전쯤인가? 서대문구 상공회의소 송년회 행사에 갔다가 우상호의원이 참석을 했었는데

서대문 구청장이 더 귀빈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공연한 심통이 들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그 때이미 한나라당이 지자체를 장악을 하고 있엇는데 이젠 국정까지 완전 장악을 해 버렸다.

행정수도 정책도 당시 시장이었던 이메가가 신문전면광고며 반대입장에 노무현과 맞짱을 뜨던 시절이니

뭐 어련하겠는가. 지난 10년이 아깝다. 이제 변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인데 말이다.

우상호 전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 그 인상좋은 모습 다시 꼭 보기를 기원합니다.


근데 김근태 전의원이 떨어지는 건 뭐냐고. 그 것도 신지호한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인정하자.


 TV를 켰다가 중국 CEIBS(중국유럽국제비즈니스스쿨)이 나오길래 보다가

필리핀 쌀대란까지 보게되었다. 북경대, 칭화대를 졸업한 인재들, 유수의 기업 출신들이 다시 들어와

엄격한 교육을 받고 졸업할때는 거액의 연봉을 받고 스카우트 되어 세계 경제의 파워네트워크로 성장한다.

한 쪽에선 급등하는 쌀값으로 인해정부에서 방출하는 정부미를 사기 위해 온가족을 동원해서

쌀 한 봉지에 안도하는 그들. 1Kg에 우리나라돈으로 1000원 내외한다. 즉 우리나라 쌀값과 비슷해져

버렸다. 1달라로 연명하는 국민이 30%인데 쌀값이 우리와 비슷하다. 오오오~~~옷

한 때는 세계적인 쌀 수출 대국이었던 필리핀이 지난 수십년간 농업선진화를 등한시하며 돈을쫓아

농지를 주택으로, 상가로 바꾸어 가며 자초한 현실. 결국 감당은 국민몫.

그래도 마르크스 독재시대가 좋았다는 사람들이 바로 서민들.


뚱딴지 같은 생각이 들더라. 최근까지도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 것이 어찌 인도에만 있으랴. 대한민국에도 존재한다. 아니 세상엔 존재한다.

마키아벨리가 대중은 무식하다라고 콕 찝었듯이  그걸 밟고 올라 상류층으로 존재하고

가뭄에 콩나듯 나타나는 영웅이나 선지자 또는 지도자를 기다리는 하층민은 피곤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상류층이 되고자 발악을 하는지 모르겠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비단 경제학에서뿐은 아닌거 같다.


나도 변하는 거 같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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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매스컴에 회자 되었던 P2P론인 퍼스트핸드 투자자 모임에 다녀왔다.

아직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겸연쩍긴 했지만 어떤 사람들이 투자를 할까,

어떤 내용이 오고갈까 싶어 갓던 곳.

딘타이펑. 알고보니 미디어윌(대표 주원훈)에서 운영하는 중식당이다.

강남과 종로에 두 곳이 있다는데 내부 분위기는 전통적인 중국식은 아니고 퓨전느낌이라고나 할까.

마침 자리에는 퍼스트핸드의 대표이며 동시에 미디어윌의 이인경 부회장이 나오셨다. 

미디어윌이라면 벼룩시장과 파인드올,그리고 최근에 지하철 무가지중 하나인 M25가 기억이 나는데.

인터넷을 보니  사명 미디어윌에 걸맞는 사업군이다. 온,오프할인쿠폰 서비스인 코코펀에 파인드잡,

부동산써브, 파인드올까지 말이다. 일상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서비스라고나 할까?. 

미디어하면 거대규모의 정보서비스가 떠오르는데 미디어윌은 일상의 니즈에 포진하고 있다.

20여명 정도가 참여한 모임에서 이인경 부회장님의 퍼스트핸드에 대한 의지나 앞으로의 발전계획,

그리고 미디어윌이라는 백그라운드는 충분히 신뢰를 줄 수 있었다. 미디어윌은 한국기업메세나협회 회원으로서

부천필하모닉을 15년째 지원하고 있다. 기업의 신뢰는 이런 사회환원에서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초보적인 마케팅 활동을 통하여 수익을 얻고 그 것에 성공한다면 수익이상의 것을

얻기 위함이 바로 사회환원이 아닐까 한다. 뭐 그렇다고 퍼스트핸드에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대출을 받기 위한 사연들을 보면 참 딱한 사람들이 많다.

학자금에서 생활비, 결혼자금까지 소시민들이 실제 겪는 그런 돈으로 인한 어려움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체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몇 십만원에서 1,2백정도가 대부분인 말 그대로 소액대출사이트이다.

이런 사이트는 퍼트스핸드뿐만 아니라 팝펀딩, 그리고 머니옥션같은 곳은 은행의 높은 문턱,

그리고 대출업체의 높은 금리에 허덕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일까.

물론 상환률이 어느정도일지 알 수는 없지만 데이타가 쌓여지는

내년 이 맘때쯤이면 판가름이 나지 않을까? 보다 불량채권에 대한 대책도 만들어질테고 채권관리,

그리고 웹상에서의 대출자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투자자가 투자할 수 있게끔 정비가 되리라 생각이 된다.

미국에서 조차 소액대출 사이트가 나온지는 수 년밖에 안된 걸로 알고 있는데

미국의 경제가 셰계국가의 경제모델이라 한다면 그보다 경제력에서 한 참 뒤지는

우리나라에서 소액대출 사이트의 존재는 빠르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며

소시민에겐 상당히 희망적인 메세지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중국여친생기면 딘타이펑 꼭 한 번 데려가고 싶다.

비싸긴 한데 ㅎㅎ 괜찮네. ^^;;

 

2025년 현재, 오프라인 생활정보지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알바몬과 인터넷 알바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알바천국을 운영하 있으며 부동산 중개앱인 다방을 운영하고 있다.

퍼스트핸드는 사라졌네.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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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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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23:53

회사에서만 보다가 집에와서 SCM목록을 들여다 보니 많은 회사들이 나오고 들어가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12월 말일부로 앰플이 사라졌으니,

아. 사이트는 아직 열리긴 하더라.

네이트몰과 사이월드마켓이 통합scm을 사용하더니 8번가(가칭? T몰?)라는 이름의 오픈마켓이 본격적으로 열린다고 한다. 지금 업계의 상품을 이관중인데 SK는 성공할 수 있을까?
Sk의 강점인 유무선통합이 기운을 쭈욱 이어가려나 보다. 하나로도 인수했는데 까이꺼.

지마켓과 옥션의 경쟁의 치열함속에서 의미없는 3위를 달리던 앰플도 사업을 접는데 말이다.
SK는 예전에 예전에 아..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군. 해피투바이인가? 그러다 SKDTOD로 그리고 지금은 다시 네이트몰과 싸이마켓은 유선으로, T몰은 무선인가?

롯데홈쇼핑. 롯데의 숙원중 하나인 우리홈쇼핑을 접수했으니 롯데닷컴 신동빈 롯데그룹부회장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지는 것일까. 이랜드와의 까르푸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롯데가 유통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연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롯데닷컴을 접한 기억으로는 웬지 IT와는 어딘가 어긋나는 듯한 모습. 하지만 롯데닷컴의 MD들의 능력은 다른 업체보다 돗보이는 듯한 느낌, 그들의 모습에선 은근한 자부심이 있는 듯 하다. 지금은 신세계에 밀려있는 듯한 인상이지만 관록의 포스가 뿜어나오는 롯데 아닌가. 또는 열성적인 모습. 아마 그 열성이 별다른 홍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쇼핑몰 업계 4.5위를 줄곧 유지하는지 모르지.

모스크바 백화점 진출을 시작해서 중국에 제3의 롯데그룹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어쩜 우리나라도 해외의 유명백화점 못지 않은 혹은 그 이상의 백화점 브랜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신세계도 그렇고 롯데도 그렇고 좁은 대한민국에서 시장, 가게들 영세상인에게서 욕먹으면서 점포 확장하지 말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유통 글로벌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

바이엔조이에서 바뀐 KT, 엔조이뉴뉴욕은은 잘 나가는지 모르겠다. SK의 위즈워드에 비해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다행이지않은가. 한때 구매대행이 우후죽순 생겼는데 글쎄... 점점 해외인기상품과 국내쇼핑몰에서 그 것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수입업체간의 전시속도가 줄어드는 양상이라 그다지 전망이 밝지는 않아 보인다.

삼성몰은 전혀 변함이 없이 일등주의를 추구하는 삼성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2004년도 1위 쇼핑몰이었는데 말이다. 모야 모야.
조이아이몰은 가구전문몰로 변환을 했다.
모든공구-초창기 방문한 곳이었는데 ... 지금 머하시나???
이지클럽-코스닥까지 등록했던 유망기업이었는데... 털린 사람들 많다.
오미공구-지금은 접었지만 오픈마켓을 하기 전에 공구를 진행했었다.
상당히 많은 상품들이 오미최저가보다 더 최저가로 팔려서 나름 괜찮았던 듯.
에누리-오미와 마찬가지로 최저가검색과 오픈마켓의 결합으로 폭발적일 줄 알았다.
마트24-패숀몰로 바뀌었다.
아울렛-사라지고 말았구나. 결국 링크쇼핑몰이네. 아니 샌디몰도 왜 링크야.
와와공구-경매로 내놓은 토끼, 헤어진뒤의 커플링 광고는 참 신선했는데,
코렉스몰-결국 해외구매대행을 바뀌었다. 고객의 만족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택배업무에서의 경쟁우위를 앞세워 의욕적으로 운영했던 쇼핑몰. 실제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상과 현실의 괴리? 토인컴 - 다음이나 야후, 네이버등에 공구상품 벤더로 영향력이 컸었는데 말이다. 몇 년전만 해도

참.. 대단했었지. 옥션에선 만개넘게 팔리는 것들도 종종 나왔고 다음공구는 넣었다 하면 몇 백개에 몇 천개씩이었으니 말이다. 딱 일주일 프라이스엔지오-그 때의 공구열풍과 더불어서 그..누구더라. 당시 초기 비디오쟈키를 모델로 쓰기도 하고 괜찮게 나가던 곳.
b2shop - 오픈마켓의 원형이랄까? 상당히 괜찮은 수익모델이었다. 소비자에게 열린 오픈마켓이 아닌 소매상에게 열린 오픈마켓이라고 할까. 벤더도 하면서 개발진인력도 상당한 내공이 쌓여있는 듯 하던 곳.그 곳에서 근무하던 분들은 어디로 갔을까.
esellpia-한때 옥션뒤를 이어 경매업계 2,3위를 하던 이세일과 셀피아가 합병해서 옥션을 위협???할 뻔까지햇었는데 어쩌다가...
당시 2004년경 옥션의 입지가 70%를 차지할 정도이니 그 많은 사이트들이 수익이 빈약했던 건 사실이었고 그래서인건지. 당시와는 엄청난 차이를 벌이고 있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일찌기 타사이트가 진입을 꺼려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수혜를 지마켓이 본 건지도 모르지. 사실 다음도 한 달여를 시범 경매서비스를 진행한 적이 있었고 LG이숍도 검토까지 했다는 설왕설래. 어쨌거나 옥션에서 매출을 발표하지 않기로 한 2005년후엔 기록이 없지만 2004년 매출 1조돌파라는 놀라운 소식이 있었으니 지금은 글쎄~~참고로 매출 1조는 당시 롯데백화점 소공동본점 매출과 같다는 이야기. 상상?
netian-처음 이 곳에서 시작을 했다. 다음도 시작하고 야후도 시작했지만 이 곳에서 처음가입했다는 순전히 그 이유로다가, 아~~ 그 놈의 정이 뭔지. 가끔 궁금하다. 그 분들.
붐붐-이런 류의 사이트가 많았던 거 같다. 네트워크 공동구매라고 해서 붐붐에만 입점하면 여러 포탈이나 전문포탈,보탈,허브(복잡하다-.-;;)사이트등에 함께걸려서 네트워크 공구하던 사이트 말이다. 지금은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몇 군데가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아 판매자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보기도 했다. 캡싸다?
자료를 찾다보니 2001년도에 나온 인터넷쇼핑몰 기사다.
당시는 이랬다. 심마니. 므흣~

[뉴스] 네티즌94% "주1회이상 인터넷쇼핑몰 방문"

머니투데이|기사입력 2001-02-06 07:52 |최종수정2001-02-06 07:52
 
- 네티즌 30% 인터넷 쇼핑몰 선택시 가장 중요한 건 ‘싼가격’

- 인터넷 쇼핑의 매력은 쉬운 가격비교와 시간 절약

- 온라인 쇼핑에선 남성이 더 큰 고객

- 인터넷 쇼핑몰에 잘 어울리는 물품은 음반, 서적, 생활용품

네티즌 94.4%는 일주일에 1번 이상 인터넷 쇼핑몰을 방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포털 사이트 심마니(대표: 손승현 www.simmani.com)는 웹가이드 매거진 심마니라이프(simf.simmani.com)2월호에서 총 12,193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쇼핑몰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이 같이 발표했다.

일주일에 몇 번 인터넷 쇼핑몰을 방문하는가 하는 질문에 한번도 방문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네티즌은 5.6%에 불과 했고 74.3%가 1~5번이라고 응답했으며, 13.4%는 6~10번, 3.8%는 11~15번, 1.3%는 16~20번 그리고 1.6% 는 21번 이상이라고 답변해 94.4%의 네티즌들이 일주일에 한번 이상 인터넷 쇼핑몰을 방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 쇼핑몰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네티즌 30%가 ‘저렴한 가격’이라고 대답해 네티즌들은 인터넷 쇼핑몰 선택시 싼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3%의 네티즌은 개인정보의 안전성을 들었으며, 15.7%는 다양한 물품 구비, 9%는 철저한 AS, 8%는 빠른 배송을 인터넷 쇼핑몰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응답했다.

그밖에 업체의 이미지(5.3%), 경품 등 다양한 이벤트(4.8%), 이용자를 배려한 사이트 구조(4.7%)가 뒤를 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네티즌 34.5%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고, 31.2%는 상품 및 가격 비교가 쉽기 때문이라고 응답해 네티즌들은 시간절약과 편리한 구매방식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16.7%의 네티즌들은 가격이 싸서, 15.4%는 배송을 해줘 들고 다니는 불편이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어떤 물품이 온라인 쇼핑몰에 가장 어울리는가 하는 질문에 네티즌 22.1%가 음반이 가장 적합하다고 응답했고, 17.6%가 도서를 들었으며 그 다음이 생활용품(10.6%), 컴퓨터(9.8%), 화장품/향수(8.9%) 순으로, 직접 살펴보지 않고 골라도 되는 음반과 도서류가 인터넷 쇼핑몰에 가장 적합한 물품들로 드러났다.

특히, 이 질문 항목에서 남성과 여성이 선정한 물품 순위에 차이가 있었는데 남성의 경우 음반, 컴퓨터, 도서, 생활용품 순이었으며 여성은 음반, 도서, 화장품/향수, 생활용품, 패션잡화 순이었다.

지난해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지출한 총 금액은 얼마인가 하는 질문에 네티즌 43.8%는 1~10만원이라 응답했고 10.5%는 11~15만원 9.1%는 16~20만원, 7.4%는 21~30만원, 4.9%는 31~40만원이라 응답했다.

그밖에 41만원 이상 고액을 지출한 네티즌도 13.6%에 달했다. 특히 여성 응답자의 12.9%가 한푼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답한 반면 한푼도 지불하지 않은 남성응답자는 8.9%에 그쳤으며 응답자중 101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네티즌은 여성의 경우 3.1%였지만 남성은 6.3%로 여성의 두배가 넘어 온라인 쇼핑에서 남성의 소비 성향이 여성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는 네티즌 47.9%가 ‘보통이다’라고 답변했으며, 4.0%가 ‘매우 만족’, 32.9%가 ‘약간 만족’, 13.9%가 ‘약간 불만족’, 1.3%가 ‘매우 불만족’이라고 답변해 네티즌 84.8%는 인터넷 쇼핑몰의 만족도를 보통이상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불만을 묻는 질문에 네티즌 28.8%가 제품에 대한 불확실성이라고 응답해 직접 보고 고르지 못하는 인터넷 쇼핑몰의 단점을 지적했으며 26.1%는 개인 정보에 대한 불안감, 24.4%는 교환/환불의 어려움, 7.2%는 배송시간이 불만족스럽다고 답변했다. 그밖에 한정된 물품서비스(6.9%), 결제수단(6.4%)이 뒤를 이었다.

한편, 웹가이드 매거진 <심마니 라이프>는 네티즌들의 응답을 바탕으로 ‘온라인 쇼핑몰이 갖춰야할 10가지 덕목'도 발표 했다.

■ 온라인 쇼핑몰이 갖춰야할 10가지 덕목

1.신의에 목숨건다 (개인정보, 제품품질)

2.‘이보다 더 쌀 순 없다!’ - 저렴한 가격유지

3.사진을 비롯한 풍부한 제품정보 제공

4.최대한 빠른 배송처리

5.판매 제품에 대한 철저한 AS

6.다양한 경쟁모델 제시

7.객관적 제품 평가 시스템 운영(고객의 생생한 사용후기 등)

8.개인정보 해킹 방지 및 피해발생시 100% 보상

9.반품이나 환불 시에도 변함없는 미소로 응대

10.산간 벽지나 해외로의 배송을 늘린다

<참고자료>

* 성별 구분

남 : 6,168 (50.6%)

여 : 6,025 (49.4%)

총계 : 12,193 (100%)

* 연령별 구분

21~30 : 6,644 (54.5%)

11~20 : 3,242 (26.6%)

31~40 : 1,921 (15.8%)

41~50 : 297 (2.4%)

51세 이상 : 89 (0.7%)

총합계 : 12,193 (100%)

* 직업별 구분

학생 : 5,775 (47.4%)

회사원 : 2,383 (19.5%)

공무원 : 1,086 (8.9%)

전문직 : 534 (4.4%)

주부 : 1,068 (8.8%)

기타 : 1,157 (9.5%)

무직 : 190 (1.5%)

총합계 : 12,193 (100%)

<설문항목>

질문1 다음 인터넷 쇼핑몰 중 주로 방문하는 곳은 (2개까지 선택가능)

1.삼성몰 (www.samsungmall.co.kr) : 24.9%

2.인터파크 (www.interpark.com) : 21.7%

3.한솔CS클럽 (www.csclub.co.kr) : 12.4%

4.바이엔조이 (www.buynjoy.com) : 9.22%

5.LG eshop (www.lgeshop.com) : 9.06%

6.롯데닷컴 (www.lotte.com) : 5.37%

7.샌디몰 (www.sendymall.co.kr) : 3.73%

8.LG my Shop (www.lgmyshop.co.kr) : 3.5%

9.코렉스몰 (www.korexmall.co.kr) : 2.1%

10.현대 인터넷 백화점 (www.e-hyundai.com) : 1.68%

11.815.com (www.815.com) : 1.46%

12.마이마켓 (www.mymarket.co.kr) : 1.45%

13.프리숍 (www.freeshop.co.kr) : 1.0%

14.마트24 (www.mart24.co.kr) : 0.9%

15.제로마켓 (www.zeromarket.com) : 0.8%

16.세븐몰 (www.sevenmall.co.kr) : 0.7%

질문2 인터넷 쇼핑몰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2개까지 선택)

1.저렴한 가격 : 30%

2.개인정보의 안전성 : 17.3%

3.다양한 물품 구비 : 15.7%

4.철저한 AS : 9.0%

5.빠른 배송 : 8.0%

6.편리한 결제수단 : 5.3%

7.업체의 이미지 : 4.8%

8.경품등 다양한 이벤트 : 4.7%

9.이용자를 배려한 사이트 구조 : 2.3%

10.포인트 등 혜택 : 1.6%

11.이메일 상품정보 등 부가 콘텐츠 : 1%

12.기타 : (0.08%)

질문3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는 이유는?

1.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 34.5%

2.상품 및 가격 비교가 쉽다 : 31.2%

3.가격이 싸다 : 16.7%

4.배송을 해줘 들고 다니는 불편이 없다 : 12.4%

5.직접 사기 껄끄러운 물품을 마음 놓고 살 수 있다 : 4.0%

6.익명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 1.0%

7.기타 : 0.2%

질문4 일주일에 몇 번 인터넷 쇼핑몰을 방문하는가?

1.1~5번 : 74.3%

2.6~10번 : 13.4%

3.0번 : 5.6%

4.11~15번 : 3.8%

5.21번 이상 : 1.6%

6.16~20번 : 1.3%

질문5 구매를 위해 상품 정보를 검색할 때 가장 주의 깊게 보는 것은?

1.상품의 기능 : 32.5%

2.가격 : 23.3%

3.구매자들의 사용후기 : 18.2%

4.상품 사진 : 12.4%

5.브랜드 : 6.8%

6.상품의 제원 : 6.7%

7.기타 : 0.1%

질문6 어떤 물품이 온라인 쇼핑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총 여자 남자

1.음반 22.1% 26.3% 18.0%

2.도서 17.6% 20.7% 14.7%

3.생활용품 10.7% 10.7% 10.6%

4.컴퓨터 9.8% 3.3% 16.1%

5.화장품,향수 8.9% 13.1% 4.8%

6.가전 7.4% 5.7% 8.9%

7.패션잡화 7.1% 7.3% 7.1%

8.레저,여행상품 6.4% 6.1% 6.8%

9.성인용품 4.5% 2.9% 6.0%

10.통신 2.8% 2.0% 3.6%

11.스포츠용품 1.6% 0.8% 2.4%

12.기타 0.5% 0.6% 0.5%

13.고가명품 0.4% 0.4% 0.3%

14.식품 0.2% 0.1% 0.2%

질문7 지난 한해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지출한 총 금액은?

총 여자 남자

1.1~5만원 25.6% 29.4% 21.8%

2.6~10만원 18.2% 18.7% 17.8%

3.0원 10.7% 12.9% 8.6%

4.11~15만원 10.5% 9.4% 11.6%

5.16~20만원 9.1% 8.5% 9.7%

6.21~30만원 7.4% 6.5% 8.2%

7.31~40만원 4.9% 4.3% 5.4%

8.101만원 이상 4.7% 3.1% 6.3%

9.41~50만원 4.0% 3.3% 4.6%

10.51~70만원 2.7% 2.2% 3.2%

11.71~100만원 2.2% 1.7% 2.8%

질문8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1.보통이다 : 47.9%

2.약간 만족 : 32.9%

3.약간 불만족 : 13.9%

4.매우 만족 : 4.0%

5.매우 불만족 : 1.3%

질문9 앞으로 인테넷 쇼핑몰이 기존 상거래 질서에 어느 정도 역할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는가?

1.약간의 영향 미치고 기존 유통 질서와 공존할 것 : 59.9%

2.기존 유통 질서에 혁신을 가져올 것 : 32.0%

3.기존 유통 질서에 별 영향 없을 것 : 5.8%

4.모르겠다 : 2.3%

질문10 온라은 쇼핑몰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1.제품에 대한 불확실성 (사이즈, 색상, 직접 보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 : 28.8%

2.개인 정보에 대한 불안감 : 26.1%

3.교환,환불의 어려움 : 24.4%

4.배송시간 : 7.2%

5.한정된 물품 서비스 : 6.9%

6.결제수단 : 6.4%

7.기타 : 0.2%

질문11 여러분의 의견을 모아 인터넷 쇼핑몰이 갖추어야 할 10가지 덕목을 만들고자 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덕목은?

하나. 신의에 목숨건다 (개인정보, 제품품질)

둘. ‘이보다 더 쌀 순 없다!’ - 저렴한 가격유지

셋. 사진을 비롯한 풍부한 제품정보 제공

넷. 최대한 빠른 배송처리

다섯. 판매 제품에 대한 철저한 AS

여섯. 다양한 경쟁모델 제시

일곱. 객관적 제품 평가 시스템 운영(고객의 생생한 사용후기 등)

여덟. 개인정보 해킹 방지 및 피해발생시 100% 보상

아홉. 반품이나 환불 시에도 변함없는 미소로 응대

열. 산간 벽지나 해외로의 배송을 늘린다

머니투데이 홍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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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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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2008/03/28 10:51

"현재 SKT와 KTF는 오는 27일부터 자사간 USIM을 해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6월에는 이동통신사간 USIM도 잠금해제 시킬 전망이기 때문에, 휴대폰간의 교체가 전보다 훨씬 쉬워질 전망이다. ...USIM 잠금해제는 OTA(Over-The-Air)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OTA는 휴대폰 자동 업데이트 방식으로써, 사용자가 굳이 대리점을 찾지 않아도 무선으로 자동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zdnet

usim카드에는 사용자의 개인정보와 전화번호등이 내장을 할 수 있다. 즉 이 usim카드는 마치 신분증과 같아서 어떤 기기이든 usim만 갈아끼우면 내 휴대폰이 되는 것이다. 아마 사용자들은 획기적이고 기존의 제도보다 진일보한 거 같아 흐뭇하기도 할 테고 설레임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는 usim카드의 주권이 사용자에게 넘어온것은 몇 년전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3년전에 갔을때 이미 이러한 방식으로 이용을 했으니 어쩜 더 오래전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생소했고 그 것이 중국만의 방식인가보다 하고 오히려 불편한 감까지 느끼고 있었는데 말이다. 역시 지속적인 불편은 불편이 아닌가보다. 통제가 심할 거 같고 이런 저런 규제가 많은 것 같은 그 곳에서 의아스러웠던 또 하난 번호 만드는(구입)데 있어 너무나도 간단하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핸폰을 개통하려면 신분증에 등본에 이런 저런 서류가 필요하고 작성을 해야 하지만 중국에서 쓰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도 있다. 난 중국에 2개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고 하나는 샤오링통이라고 해서 그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핸드폰이다. 600원(런민비 1원=135원정도))에 개통을 했는데 사용도 정량제로 600원 가까이 충전이 되어 있다.  샤오링통은 개통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벗어나면 착발신이 불가하지만 요금이 일반 광역폰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예전의 시티폰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통화품질은 훨씬 낫다. 내 경우엔 샤오링통 개통시 여권과 가입신청서가 필요하지만 일반적인 핸드폰은 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심천에서 개통을 했는데 기기는 화창베이 전자상가에서 저렴한 상품을 찾아 구매했고 번호는 근처의 판매상에게서 번호를 골라 구매를 했다. 98원정도로 기억한다.

중국에는 수 많은 핸드폰 제조사가 있어 우리나라처럼 삼성이나 엘지와 같은 몇 개사가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다. 통신사와 제조사의 안전한 이득구조를 위해 빼앗아간 소비자의 권리를 이제야 돌려주는 것이다.  중국의 수 많은 핸드폰제조사는 다양한 핸드폰을 만들어 내고 있고 사용자들의 선택권은 전세계 대기업뿐만 아니라 자국내의 그 많은 상품들까지 선택할 수가 있다. 또한 그런 상품들은 이베이같은 곳에서도 팔리며미국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비단 인구가 많아서 시장이 커서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는 무엇이든 대기업 위주로 경제가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핸드폰에서뿐만 아니라 말이다. 세계적인 대기업은 많이 들어봤어도 세계적은 중소기업은 듣기 어려운 이유인지도 모른다. 최근의 삼성특검문제로 우리나라 경제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삼성이라는 기업의 문제가 국내 경제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드라이브로 빠른 성장을 일궈낸 대한민국경제의 족쇄는 아닐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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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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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염인가....

웰빙2웰다잉 2008. 5. 1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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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훌쩍거리거나 재채기를 할 때


알레르기성 비염은 코 안에 있는 점막이 외부의 이물질에 의해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코막힘, 재채기, 맑은 콧물 등이 특징이다.

한의학적으로 알레르기성 비염은 평소에 추위를 잘 타는 체질에서 흔한데 몸 안으로 서늘하고 찬바람이 들어와서 발생하기도 한다. 또 몸에 열이 많이 발생하는 체질 중에서 몸 안의 열이 코점막에서 외부의 찬바람과 충돌하여 일어나기도 한다. 그 외에 폐와 신장이 허약해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알레르기성 비염에 효과가 있는 혈자리는 △인당(양 눈썹 사이 정중앙) △상성(이마 쪽 안면 정중앙으로 두발이 시작되는 부위) △영향(양쪽 콧구멍 바로 옆 함몰된 부위) △백회(정수리 부위로 양쪽 귀에서 머리 쪽으로 선을 그었을 때 만나는 정중앙) △풍지(귀 뒤에 볼록 튀어나온 뼈 밑의 함몰된 부분) 등이다.

위의 혈자리를 비염 증상이 있을 때 자극하거나 지압하면 비염증상이 일시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평소에 알레르기성 비염에 있을 때에는 과로를 피하고, 너무 찬 음식, 기름진 음식, 인스턴트 음식, 음주, 흡연 등을 피하는 것이 좋다. 또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을 파악해 미리 피하고 환기를 자주 시키면서 증상이 있을 때마다 혈자리를 자극하면 경락의 소통이 좋아진다.

알레르기성 비염
알레르기성 비염은 주로 환절기에 발생하며 맑은콧물과 재채기가 특징이다. 감기 후유증으로 많이 발생하고 눈밑에 다크써클이 있고,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알레르기는 주로 환경의 변화와 온도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

병을 고친다기 보다도 알레르기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다.

첫째, 위산부족을 개선하자. 위기능이 떨어지면 알레르기 비염이 되기 쉽다. 그래서 알레르기 비염 환자는 잘 체한다. 식초(레몬식초, 감식초) 티스푼 하나를 식사 직전에 마시면 위산분비가 촉진되어 소화기능도 개선되고 알레르기 비염도 좋아진다.

둘째, 체질에 따른 알레르기 개선 한방차를 마시자. 양인 체질(태양인, 소양인)은 모과차, 음인 체질(태음인, 소음인)은 오미자차가 도움이 된다. 하루 800cc 이상을 마셔야 효과적이다.

셋째, 물마시는 습관을 개선하자. 식전 30분에서 식후 1시간 사이에는 물을 마시지 말자. 이때 물을 마시면 위산의 농도가 묽어져 소화기능이 떨어져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심해진다.

넷째, 주변의 습도가 중요하다. 습도 50%를 유지해주면서 밀폐된 방안의 공기를 자주 환기시켜주자. 가끔 특이하게 가습기를 틀면 심하게 재채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수돗물에 있는 염소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인 경우가 많다. 정수기 물을 사용하거나, 물을 끓인후 식혀 사용하도록 하자.

만성비염
대개 급성 비염에서 원기허약으로 만성비염으로 진행된다. 비염의 3대 증상은 콧물, 코막힘, 재채기다. 만성비염은 주로 코막힘이 심하다. 만성비염 환자의 공통점은 뒷목이 굳어있다. 뒷목이 굳으면 코가 막히게 되어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다.

뒷목을 풀기 위해 엄지손가락에 있는 소상혈을 무통사혈침으로 사혈하거나 귀에 있는 뒷목점에 스티커침을 붙이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만성비염은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을 해야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을 필요로 한다.

감기도 아닌데 봄만 되면 훌쩍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과 예방법

발작성 재채기와 맑은 콧물 그리고 코막힘을 주증상으로 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은 생활환경의 변화와 대기오염 등의 요인에 의해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아토피성 질환 중 가장 흔한 질환이며 전 인구의 약 20∼30%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전 인구의 약 10%내외로 추산되고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어느 연령에서나 발생될 수 있다. 특히 소아기나 청소년기에 흔히 발생하며 여성이 많고 50대 이상에서는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또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알레르기란 체외에서 들어온 이물질(항원)에 대해 우리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상태를 뜻한다. 항원에 대한 항체인 ‘면역글로불린E’에 의해 항원-항체반응이 유발됨으로써 증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전의 질환으로는 알레르기성 비염, 알레르기성 천식, 약물 알레르기, 두드러기, 알레르기성 결막염 등이 있으며 특히 알레르기성 비염환자는 천식이나 아토피성 피부염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면서 콧물이 계속 나오고 코가 막히는 증상 외에도 코나 눈 주위, 혹은 목이 가렵거나 눈물, 두통, 후각 장애 등의 증상도 나타나게 된다. 증상이 가벼운 경우에는 감기증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일 년 내내 코감기가 지속되는 경우 알레르기성 비염을 의심해야한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크게 계절성과 통년성으로 나뉜다. 계절성은 봄철 꽃가루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통년성은 계절과 관계없이 일 년 내내 증상이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구미지역에서는 주로 계절성 환자가 많고, 우리나라는 집먼지와 집먼지 진드기, 곰팡이류 등에 의한 통년성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밖에 직업성과 음식물 알레르기에 의한 비염도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진단은 환자의 증상, 과거병력, 가족병력 등의 문진과 비경과 내시경을 이용한 콧속의 이학적 검사, 방사선학적 검사, 혈액 및 콧물 속의 호산구검사, 방사선 동위원소검사, 코증상 유발검사와 피부반응검사 등을 이용한다. 원칙적으로 임상증상이 있고 콧물의 호산구검사, 피부반응검사, 유발검사 중 2가지 이상이 양성인 경우에 확진할 수 있다.


원인 물질과 접촉 피하기
알레르기성 비염의 치료방법으로는 원인 물질과의 접촉을 피하는 방법, 항히스타민제제나 스테로이드제제 등을 사용하는 약물치료방법, 면역요법, 그리고 수술적 요법 등이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실생활 환경에서 시행함으로써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원인 물질과의 접촉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인 물질과의 접촉을 피하는 방법은 우선 원인 물질이 무엇인지를 찾아낸 후에 그 것과 접촉을 가능한한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는 다른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항상 병행돼야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알레르기성 비염의 원인이 되는 물질로는 우선 집먼지와 집진드기가 있다. 먼지는 진공청소기를 사용해서 제거하도록 하고, 실내는 이틀에 한 번씩 물걸레질을 해준다.
또 가습기나 공기정화기를 사용해서 떠다니는 먼지를 제거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지나친 가습은 집진드기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실내온도를 20도 이하로 하고 약 50%정도의 습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공기정화기를 사용한다면 여과기를 자주 청소하고 주기적으로 필터 교체를 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을 써도 천이나 매트리스, 카페트 내에 존재하는 먼지나 진드기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므로 집안에 환자가 있을 경우에는 속을 채워 넣은 소파나 양탄자, 천으로 된 커튼 등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환자가 사용하는 이불이나 요 등의 홑 천은 2주마다 한 번씩 삶아 주도록 해 진드기를 없애도록 한다.
이 외에도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는 봄철과 같이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시기에는 가급적 외부출입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출입문과 창문을 잘 닫아서 집안으로 꽃가루 같은 것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만약 꼭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먼지제거용 마스크를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이 환자에게 증상을 유발시키는 특이한 물질 이외에 담배연기나, 향수, 배기가스, 과로나 지나친 스트레스 등도 알레르기성 비염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에 따라 이들 요소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먼지가 많이 날리는 장소의 출입을 삼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약물요법 치료
약물요법은 항히스타민제, 항알레르기제, 점막수축제 그리고 스테로이드제제가 주류를 이룬다. 현재는 항알레르기제와 국소용 스테로이드제가 많이 이용되며 효과도 좋은 것으로 의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점막수축제는 장기간 사용할 때 약물에 의한 반동으로 약물중독성 비염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런 약물요법은 알레르기성 비염의 근본치료가 아닌 증상의 호전을 위한 방법이므로 환자들은 약물치료효과의 목적이 일상생활의 지장을 줄여나가는 것에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면역요법은 위의 치료방법으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을 때 시도한다. 이는 원인항원의 양을 서서히 증량하면서 투여하여 그 항원에 대한 면역능력을 올려주는 것이다.
이는 증상의 호전이나 치료약물의 용량감소를 기대하는 방법으로서 3년 이상의 기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수술요법 치료
수술요법은 알레르기성 비염이 악화된 경우 다른 치료방법보다 먼저 시도되거나 약물치료 후 마지막 단계로 시행된다. 수술요법의 종류는 하비갑개 절제술, 전기응고술, 화학요법, 냉동요법, 비디안신경 차단술 등이 있고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치료목표는 증상의 완화와 그 상태의 유지, 급성악화의 예방으로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 개선이다.
치료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환자와 의사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다. 이를 통해 치료에 대한 의욕, 치료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 의사에 대한 신뢰를 높여 치료효과를 극대화 시키도록 하자.


자료제공 : 365홈케어 (www.365homecare.com)
강북삼성병원 이비인후과(www.kbsmc.co.kr)


2005-05-11 10:45:49

알레르기 비염, 4계절의 ‘불청객’

알레르기성 비염 원인 및 치료

최근 들어 알레르기 비염 환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과거엔 요즘처럼 발병률이 높지 않았고 그 질환도 주로 환절기에 나타난다거나 단순히 꽃가루가 날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사정은 매우 달라졌다. 해마다 환자가 계속적으로 늘어날 뿐만 아니라 그 증상도 어느 특정한 시기나 계절에 관계없이 거의 일년 내내 나타나고 있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레르기성 비염 환자들은 특이한 원인 항원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 특이성 과민증과 함께 일반적인 자극에 대해 민감한 비특이성 과민증도 동반하고 있다. 따라서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들도 콧물이 나오고, 발작성 재채기, 코막힘 등의 3가지 주증상을 보이게 된다.

그 외의 증상으로서는 코안이 간지럽다, 코안이 찍찍하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숨을 들이마실 때 코가 찡하다, 머리가 무겁고 아프다, 머리를 앞으로 숙이면 안이 쏟아지는 것 같다, 목뒤로 무엇이 넘어가는 것 같다, 집중을 못하겠다는 등의 증세를 호소하게 된다. 학생들의 경우는 책을 볼 때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앉아서 책을 보기가 어렵다는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증상이 감기 초기의 증상과 비슷해 계속 감기기운이 있다고 호소하는 환자도 있다. 또한 비특이성 과민증의 현상도 보여서 일반적인 자극에 대하여도 민감한 반응을 하는데, 예를 들면 식사 중 또는 식후에 맑은 콧물이 흐른다든가, 사람이 많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지하도 또는 지하철 속에서 증상이 유발되고 특히 최루탄 가스등의 인위적인 자극물질에 대해서도 남달리 심한 증상이 유발된다. 합병증으로 부비동염(소위 축농증)이 잘 유발되며 이러한 경우에는 맑은 콧물 대신에 누런 콧물이 교대로 나온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알레르기성 반응이 일어나는 부위에 따라 눈에 생기면 눈이 가렵다, 눈물이 난다, 목에 생기면 목안이 가렵다, 무엇이 걸린 것 같다, 기침이 난다는 등의 증세를 호소하며 기관지에 생기면 기침, 가래, 가슴 답답함 등을 느끼는 기관지 천식이 동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증상이 일년 내내 나타나면 통년성(通年性) 알레르기성 비염이라 하며, 말 그대로 일년 내내 같은 정도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경우 겨울에 가장 심하며 봄과 가을 등 환절기에도 증상이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이한 꽃가루가 공기 중에 존재하는 경우에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계절성(季節性) 알레르기성 비염이라 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가을철 쑥의 꽃가루에 대한 알레르기 등이 대표적이다. 하루 중에는 아침에 일어날 때 증상이 가장 심하고 그 외에 저녁, 밤에 자기 전, 밤에 잘 때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은 온도의 하강 또는 침구류에 존재하는 먼지, 또는 알레르기의 가장 많은 원인으로 생각되는 진드기의 활동이 가장 증가되는 시간과 연관성이 있다.

진단은 환자의 증상을 듣고 진찰을 함으로써 가능하다.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환자에게 물어보아야 할 내용이 많으므로 설문지를 이용하여 묻고자 하는 항목을 빠짐없이 알아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주로 시행하는 검사로서는 콧물 안에 나타나는 세포를 보는 콧물검사, 알레르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는 혈청검사, 원인을 찾는 피부반응검사 그리고 유발검사 등이 있다. 환자가 어린 경우 또는 피부반응검사를 실시하기 어려운 경우, 피부반응 검사상의 결과가 확실하지 않거나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피 안의 성분에 대한 정밀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동반증상으로 코가 많이 막히면 비강통기도 검사를 시행하며 후각장애가 있는 경우는 후각검사를 실시해 어느 정도 증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부비동염이 의심되면 단순방사선 촬영을 하게 되며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내시경을 이용한 비내수술을 위해 전산화 단층촬영을 시행하기도 한다.


원인 및 악화 요인에 대한 조치
원인을 찾게 되면 원인에 대한 처치를 하여 증상을 경감시킬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공기중의 먼지와 이 안에 있는 진드기가 주원인이 되므로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에 대한 부단한 노력은 어떠한 치료를 실시하더라도 계속 병행되어야 한다.

약물요법
약물에 의한 억제 방법이 있다. 억제라는 표현의 의미는 환자가 원인이 되는 물질이나 자극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체질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 즉 증상이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일시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약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증상을 예방하는 약제와 증상의 발현을 억제하는 약제로 크게 대별된다.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약제의 경우는 증상이 없어져도 분무 또는 복용을 해야 하며, 증상을 억제하는 약물은 증상에 따라서 약제의 가감이 가능하다. 복용방법도 2가지로 대별하는데 코에 국소적으로 분무하는 약제와 경구로 복용하는 약제들이 있다. 같은 종류의 약제라도 환자에 따라 효과가 다르므로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약제를 찾게 된다. 경구로 복용하는 약제들은 장기간 복용해도 부작용이 거의 없지만 전신적으로 작용하는 약제들이므로 국소적으로 부작용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국소 분무 약제가 치료에 일차적으로 선택되며 약제의 성질에 따라서 다소 사용방법이 다르다. 복용하는 약제들은 효과도 좋아야 하지만 우선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 예전부터 감기약을 먹으면 부작용으로 졸음증이 동반되는데 몇 년 전부터는 이러한 졸음증이 심하지 않은 약제가 시판되고 있다. 운전을 하거나 공부를 해야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특히 이러한 점이 중요하다. 약제를 복용하는 방법도 개선돼 하루에 두 번 내지 한번 복용하게 된다. 증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환자 자신이므로, 증상의 발현을 억제하는 약제들의 경우는 증상에 따라서 환자 자신이 가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는 병원에 자주 오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알레르기의 증상 정도를 기록하는 알레르기 일기를 기록해 보호자가 기록을 가져와서 처방을 받아갈 수도 있다.

특이 면역요법
약제의 경우는 장기간 분무 또는 복용을 해야 하며 증상만이 억제되는 약제이므로 환자가 원인이 되는 물질에 대하여 반응할 수 있는 체질은 그냥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항원을 찾는 검사 상에서 원인을 찾아낸 경우는 환자의 체질을 바꾸어주는 체질개선을 시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체질 개선이란 원인 물질을 장기간 소량씩 피하에 주사해 주는 방법으로서 초기의 유도단계에는 대개 1주에 한번 주사를 맞으면서 항원농도를 일정단계까지 서서히 올리는데, 이 기간이 끝난 후에도 계속적으로 주사를 맞는 것이 필요하며, 일정기간(6개월 정도)이 지난 후에는 한달에 한번 주사를 맞는 것이므로 간편하게 치료를 시행할 수 있지만 전체 치료기간은 약 2∼3년 정도 걸린다.

수술적 요법
약제로는 재채기나 콧물 등이 쉽게 개선되나 코가 막히는 것은 크게 호전되지 않을 수도 있어 수술적 요법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다. 코의 모양이 정상에 비하여 이상 소견이 심한 경우에 알레르기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므로 수술로 이상을 교정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수술로는 흔히 코의 살을 제거하는 수술, 휜 코뼈의 교정 및 비내 사골동 수술 등이 있다. 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환자의 체질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점막을 제거하는것 등에 의해 증상의 경감을 가져오게 된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하여 비점막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 방법도 소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정기적인 외래의 방문이 필요하다. 이상의 여러 가지 치료 중에 어느 하나도 단독으로 완전하게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여러 가지 방법을 복합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예방 조치
통년성 알레르기성 비염은 일년 내내 알레르기의 증상이 있는 병으로 원인이 되는 항원에 노출됨으로써 증상이 유발되므로 원인이 되는 항원을 찾아내는 것이 예방 및 치료에 중요하다. 이제까지는 예방하는 방법이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었으나 수년 전부터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하여 많은 연구 및 보고가 있었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집먼지 및 그 안에 존재하는 진드기가 가장 많으며 그 외에도 곰팡이, 동물의 털, 음식물 등이 있다. 통년성 알레르기나 계절성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는 찬공기, 먼지 등의 일반적인 자극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민증을 나타내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해 여러 가지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김민수기자>
kms@ilyoseoul.co.kr
<자료제공:서울백병원>

2004-12-16 16:34:50

알레르기성 비염 유근피차 마셔라

참느릅나무 껍질로각종 코질환에 효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10~20%가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있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거세질 때는 코 질환 환자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콧물, 재채기에 코 막힘, 헐어버린 코밑 피부 등은 짜증에 불편을 더한다.

장기간 싸움을 벌여야 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습도조절이 중요하다. 가습기 활용은 물론 약쑥 등을 삶아 코로 목으로 훈증을 해주면 상당한 효과가 있다. 또 코에 좋다는 차를 만들어 놓고 장기간 꾸준히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방에서는 상백피차, 유근피차, 신이화차를 권한다. 뽕나무껍질을 말하는 상백피차는 소염과 진해거담 작용이 있어 30g을 달여 3~4번에 나눠 마시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유근피는 코나무로 불리는 참느릅나무껍질로 각종 코 질환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20g정도를 30분 정도 다려 끈적끈적해지면 하루 3번에 나눠 마시면 코 질환을 다스릴 수 있다. 유근피는 특히 종기 고름을 제거하는 효과도 있어 축농증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련꽃 봉오리를 달여 마시는 신이화차는 20g을 달여 3~5회 나눠 복용하면 코 막힘을 뚫어주고 찬 기운을 발산하는 작용으로 장기간 꾸준히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코 질환 전문 한방클리닉 평강한의원 이환용 원장은 “자연을 이용하면 모든 병을 다스릴 수 있다”면서 “코 질환에 좋은 자연재료를 가정에서 차로 만들어 꾸준히 복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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