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주 편안한 잠에 빠져 편안한 휴식-아주 오랜-을 취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자 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다로드는 잠이 별로 없다.

오래 전이다. 아주 오래전 ㅎㅎ 지금도 뭐 그리 공포가 연상이 되고 그러진 않는다.

누구나 깊은 잠에 빠질 뿐,

유언을 남겨 본 적이 있다. 군 생활 할 때다 .

뭐 그렇다고 군생활을 빡시게 한 것은 전혀 아니다.

난 군생활이 천직같아서 정말 짱박고 싶은 유혹이 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참고로 다로드는 군생활을 4년넘게 했다. 그 것도 지원해서 군에 갔다.

그다지 잃을 것이 없어서 그랬는 지도 모른다.

지금은 가족이 있고 그 때와는 달리 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추억이다. 기억들 말이다.

너무나 많은 추억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보니 그 것이 아깝기도 하다.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는 떳떳한 기억들도 있지만

술 기운을 빌어야 말 할 수있는 기억들, 그 조차도 용기가 필요한 것들이 있다.

절친에게 비밀스런 것들을 토로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적도 있었다고...

그 것이 한 때의 치기로, 또는 객기로 만들어지기도,

어린 나이나 환경적요인을 구실삼아 아직 영글지 않은 얼치기적 무책임했던 행위라고

얼버무리기에는 맨 정신에 생각해 보면 낮 뜨거운 기억들이 꽤나 있다.

사실 이런 고백 조차 블로그에 쓴다는게 사실 나에겐 흠, 용기다.

그 기억들을 적어도 나에겐 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거다.

젊을 때 당연히 했어야 할 미래의 고민과 나의 길을 찾기 위한 방황이 나는 부족했던 것 같다.

나에겐 사치라고 생각했을까. 동년배들의 그런 일탈에 부러움까지 느끼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공연한 반항심만 애둘러 표현하곤 했다. 지극히 유치하게도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나 어른들이 아는 거나 별 다름이 없을 것 같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 옳은 것,

아니 적어도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세상이 고까웠다고나 할까.

이제 나는 어른, 아빠가 되어 나의 아이들에게, 젊은이들에게 그 고까운 소리를 하고 있다.

죽을때 후회하는 25가지를 보면서 저 25가지가 모두 후회가 될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에도 후회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또 반성도 된다. 한 개라도 덜 후회하도록 해야지.

많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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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그림

心身FREE 2025. 4. 29. 09:38

뉴에이지라고 하나? 몽환적인 음악이나 그림들, 뭐 그런 문화?들을 말하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고딩때 어느 서점 들어갔다가 뉴에이지를 사탄의 메세지라고 전하는 어느 기독교 책자를 잠시 들춰본 적이

있었다. 뉴에이지가 뭐지했었는데 구라모토의 음악이나 조지윈스턴등의 음악을 접하면서 그런가 보다 했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왜 배척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 편에서는 사탄이라고 한다.

 

종교만이 위안을 주고 그 안에서만 평화를 얻어야 하는 그들의 생존전략일까? 풋.

호주에 잠시 머물때 이런 그림이나 아로마향, 각종 명상기기를 판매하는 곳들을 볼 수가 있었다.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가게안에 들어서면 부드러운 향이 흐르고 음악이 편안함을 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류의 음악들도 마트같은 곳에서

저렴하게 판매도 한다.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비가 오는 소리나 새나 동물소리, 뭐 그런 것들.

 

그런데 왜 한국에는 안 보이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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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하버는 누구인가?

초기 생애와 교육 배경

프리츠 하버는 1868년 독일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염료 및 약품 사업을 운영하며 아들에게 엄격한 교육을 강조했죠. 하버는 어린 시절부터 화학에 큰 흥미를 가졌고, 하이델베르크, 베를린, 카를스루에 등지에서 과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학문적 여정은 당시 독일 과학계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던 시기로, 다양한 유명 교수들 밑에서 공부하며 화학적 기초를 단단히 다졌습니다.

과학자로서의 성장과 업적

하버는 대학 졸업 후 여러 실험실과 산업 현장을 거치며 실용적인 화학을 지향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은 바로 암모니아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하버-보슈 공정 개발입니다. 이는 농업, 산업,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기술이었죠.

그의 업적은 단순한 발견을 넘어, 세계적인 과학자로서 입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버-보슈 공정의 혁명

인류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

하버는 고온·고압 조건에서 수소와 질소를 결합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으며, 이 기술은 지구상에서 수십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만든 인류의 구원자적 발견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기술로 인해 인공 비료가 대량 생산 가능해졌고,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증가했죠.

농업과 식량 생산의 혁신

하버-보슈 공정은 곧 녹색 혁명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인구 증가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며, 아마도 수억 명의 생명이 기아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하버는 ‘녹색의 수호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화학무기 개발자라는 그림자

제1차 세계대전과 클로린 가스

하지만 하버의 삶은 빛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을 위해 치명적인 화학무기인 클로린 가스를 개발했고,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도록 이끌었습니다. 1915년 이프르 전투에서 클로린 가스가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수천 명이 고통 속에서 죽어나갔죠.

하버는 이를 "국가를 위한 과학자의 의무"라며 정당화했지만, 이 결정은 그를 역사상 가장 논란 많은 과학자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윤리적 논란과 대중의 비판

그의 아내 클라라 이메르바르도 이 문제로 깊은 갈등을 겪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는 하버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이후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노벨상 수상과 그 이면

과학계의 인정을 받은 이유

1920년, 하버는 하버-보슈 공정을 통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이 공정이 인류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했으며, 그의 화학적 업적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는 평가였습니다.

수상 이후의 논란

하지만 화학무기 개발에 연루된 인물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논란을 낳았습니다. 하버는 영웅과 악당 사이에서 끊임없이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 독일과의 갈등

독일에 대한 충성심과 배신감

하버는 독일에 강한 충성심을 가진 유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대계 학자들은 대거 해고되고, 하버 역시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생을 바친 독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고, 이는 그에게 큰 배신감을 안겼습니다.

망명과 생애 후반의 외로움

그는 스위스로 망명했으며, 이후 영국과 중동 등지를 떠돌다 1934년 스위스 바젤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버의 유산: 과학, 윤리, 역사 사이

하버-보슈 공정의 지속적인 영향

오늘날에도 하버-보슈 공정은 여전히 전 세계 비료 생산의 핵심입니다. 이 기술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기여했으며, 세계 식량 안보의 기초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술은 질소 비료의 과잉 사용으로 인해 환경 오염, 수질 악화, 온실가스 배출 같은 부작용도 낳았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하버의 업적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과학 기술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과학자 책임론의 시초로서의 위치

프리츠 하버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기술과 과학이 국가적, 윤리적 문제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그의 사례는 오늘날 생명공학, 인공지능, 군사 기술 등의 발전에 있어 윤리적 기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프리츠 하버를 둘러싼 현대적 시선

문학과 영화 속 하버의 이미지

하버는 그 복잡한 삶으로 인해 많은 예술작품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극 등에서는 그를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기보다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인간적인 과학자로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BBC 다큐멘터리 *"Haber"*는 그의 삶을 조명하며 그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교육적 사례로서의 활용

현대 교육 현장에서는 하버의 생애를 윤리교육, 과학교육, 역사교육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무조건 선한가?”,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같은 질문을 던질 때, 하버는 가장 적절한 예시가 됩니다.


프리츠 하버는 영웅인가, 악당인가?

영웅으로 평가되는 이유

  • 하버는 지구상 수십억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 그의 공정은 오늘날에도 식량 안보와 생존의 근간입니다.
  • 과학적 열정과 집념은 많은 연구자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빌런으로 간주되는 측면

  • 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실제 사용에 기여했습니다.
  • 전쟁을 과학으로 정당화하며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 아내의 자살 이후에도 군사적 활동을 지속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버는 한 명의 인간이 어떻게 인류 전체에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는가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s)

Q1: 프리츠 하버는 왜 화학무기 개발을 정당화했나요?
A1: 그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전쟁 승리를 위한 과학자의 의무라고 믿었습니다.

Q2: 하버의 아내는 왜 자살했나요?
A2: 클라라는 하버의 화학무기 개발에 도덕적으로 반대했으며, 부부 간의 깊은 갈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습니다.

Q3: 하버는 나치에 협력했나요?
A3: 그는 유대인으로서 나치에 의해 해고되었고, 결국 망명했습니다. 나치에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Q4: 하버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쓰이나요?
A4: 네, 하버-보슈 공정은 여전히 비료 산업과 식량 생산의 핵심 기술입니다.

Q5: 하버의 노벨상 수상은 정당했나요?
A5: 과학적 업적 측면에서는 정당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도덕적 논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Q6: 하버는 어떻게 죽었나요?
A6: 그는 1934년 스위스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으며, 말년은 외로움과 고립 속에 보냈습니다.


결론: 인간 프리츠 하버에 대한 통합적 이해

프리츠 하버는 단순히 영웅도 아니고 완전한 악당도 아닙니다. 그는 과학의 진보와 인간성의 딜레마 속에서 양면성을 지닌 복잡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과학을 어떻게 바라보고, 윤리적 판단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그를 이해하는 일은 곧, 과학과 윤리가 교차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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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시골에 화접을 다녀온 이후 바로 은평구에 있는 안경전문점으로 출동했다.

와이프의 눈도 그다지 좋지 않아 운전을 할 때는 필요해서 다녀 온 은평구 안경 뉴타운점이다.

으뜸플러스 안경은 전국적인 체인점이다. 전국에 157개점이 있는 대형체인점이다.

어쩐지 가격이 정말 저렴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은평구에서 안경때문에 고민한다면

으뜸플러스 안경 뉴타운점 추천한다 이 번이 두 번째다. ㅎㅎ 다로드 안경도 이 곳에서 했다. 주차장이 있고

주말에 갔음에도 편리하게 주차를 할 수가 있다. 주차장을 바로 아래층이고 으뜸플러스안경바로 지나면

오른쪽 주차장 진입로가 있다. 주차를 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주차장쪽에서 본 도로장면

고딩때 폼으로 안경을 쓸때만 해도 안경은 참 고가였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인지,

아니면 투명해진 유통경로때문인지 저렴하다.

기술의 발전이든 사회가 발전하면 투명해지는 것이 많다. 공공의 이익이 커지는 것 같다.

전국적인 체인점이다 보니 바잉파워가 있어서 상당히 저렴하다. 안경, 콘택트렌즈, 선글라스 같은 것들 말이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다.

근무하는 분들은 꽤나 친절해서 맨투맨식인데 안경테를 고르고 눈 검사를 한 이후 렌즈를 맞추고

약 1시간 정도면 완성된 안경을 받을 수가 있다.

어떤 안경테를 고를지 고민이 되는 정도로 종류가 참 많다. 내가 고를 때만 해도 그냥 무난하게

사용할 수가 있는 제품을 5분정도만에 후딱 선택했는데 ㅎㅎ 역시 와이프는 시간이 좀 걸린다.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도 근무자가 선택될때까지 설명을 해 준다. 그냥 선택하는 것보다

이 것은 어떻고 저 것을 어떻고를 말이다.

ㅎㅎ 옆에서 보는 내가 "여보, 이 거 좋아. 이 걸로 해 주세요" 라고 하고 싶은데 취향을 존중해야지. ^^;;

어린이들 안경도 있다. 딸꼬가 안경이 신기한지 자신도 써 보자고 한다. 아이들은 뭐든지 호기심이 많다.

나에게 의견을 묻기에 빨간색 티타늄 안경이 괜찮은 거 같아서 그 거 괜찮다고 애기 해 주었다.

얇은테에 빨간색 빛이 묻어나는 것이 괜찮아 보였기에 말이다. 다로드는 원색계열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 것 저 것 을 착용해 본다. 그러고 보니 그 것도 괜챃아 보이긴 한다.

결국 선택을 하고 이제 시력검사를 할 차례다.

시력검사를 하고 나면 안경알을 작업하는데 이게 약 한 시간 걸린다고 한다.

안경점 옆에는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있어 이 곳에서 기다려...도 될 것 같기는 한데

다로드는 별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과 집으로 돌아온 이후 나 혼자 다시 오기로 했다.

안경을 받아와 만져도 보고 착용도 해 보는 와이프의 모습에 ㅎㅎ 웬지 뿌듯해진다. 티타늄 재질이라 탄력성이 좋다.

메이드인 코리아. 아직 우리나라 안경산업 살아있다.

빨리 선택한다면 한시간 반이면 안경을 가져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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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도 다로드는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한다고, 나는 사콕인가?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일만 하는 거 같아 재미가 없다고 생각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벌어야 나를 먹여 살리고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런데 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좀 그러네. 쓰압!

아침에 나와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블로그 포스팅 3개을 올렸다. 유튜브를 보면 챗 gpt를 이용해서 블로그를 쉽게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로드는 그것에 익숙지 않다 보니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기본적으로 3개의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데 오늘은 블로그씨 답변까지 4개 포스팅했다.

올해 들어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이제 3개월 차에 들어간다.

작 년부터 시작된 매출 저하로 인해 긴장이 되는 날들이라 이게 또 힘을 주네.

오늘은 대체 휴일인데 왠지 공짜로 얻은 기분이다. 책상도 좀 정리하고 청소도 해야겠다.

ㅋ... 이 난리다. 좀 정리를 했는데... 쓸고 닦아야 한다.
한때는 청소 정리에 광적이었는데... 아.. 이것도 포스팅 가능하겠다. 다로드가 정리 강박관념이 있었다. 탈출한 것 까지는 좋은데 지저분해졌다. 쩝.청소,정리 강박관념 탈출기로다가 말이다. 부작용까지도.아, 위 사진이 부작용이다.

업무에서 자잘한 것들도 해결한다. 그런데 이런 것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지만 ...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것까지 따지면 참 게으르다.

 

인증서 갱신할 것이 2개가 있는데 한 개만 했다. 비밀번호가 틀려서 은행에 방문을 해서 해지 요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지만 거래내역서를 뽑을 일이 있으니 한꺼번에 해결해야겠다.

OTP까지 배터리가 없다며 Lo Bat가 뜬다. 이런 경우도 있군. 이것도 교환해달라고 하자.

인증서 갱신할 것이 2개가 있는데 한 개만 했다. 비밀번호가 틀려서 은행에 방문을 해서 해지 요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지만 거래내역서를 뽑을 일이 있으니 한꺼번에 해결해야겠다.

OTP까지 배터리가 없다며 Lo Bat가 뜬다. 이런 경우도 있군. 이것도 교환해달라고 하자.

 

오늘은 하체 운동하는 날이다.

천국의 계단이다. 30분 채웠다. 430칼로리 빠졌네. ㅎㅎ

일주일에 5일 이상은 운동을 하려고 한다. 하드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출근 전에 4,50분 정도 운동을 한다.

하루는 상체, 다른 날은 하체를 하는 식이다. 이제 컨디션을 찾으니 예전 중량의 90%까지 돌아온 것 같다.

체구가 크지 않은 편이라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금방 사라지고 평범하다 못해 왜소해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지금은 근 손실이 지속되는 연령대인지라 운동을 하지 않으면 더 나이가 들어 골치 아프다. 골골~~~

다로드는 요통이 있다. 이것도 참 나름 스토리가 있는데 언젠가 포스팅해 봐야겠다. 참 쓸 거 많네.

잠을 잘못 자거나 물건을 잘못 들면 허리가 삐끗한다고 하나? 그럴 때는 가까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는 했다.

잠을 잘 때 옆으로 누워 잔지가 3십 년 내외가 될 듯하다. 책이며 좋다는 글들 많이도 보았지만 별 효능을 못 보았는데

서울대 의대 정선근 교수님의 유튜브를 보다가 힙 어브덕션을 하면 엉덩이 근육을 키워주고 허리를 받쳐준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여러 운동 중에 하나였는데 마침 짐에 있길래 한 달 정도 해 보았다. 그런데 허리 아픈 것이 확 줄었다.

어쩌면 허리가 아프지도 않을 것 같다는, 나한테 딱 맞는 운동이었다고나 할까.

허리 아픈 이웃들은 백 년 허리 정선근 박사님의 유튜브 추천한다. 내가 그 심정 안다.

정선금 교수님은 딱 봐도 아주 허리가...아우~~~ 신뢰가 간다. 저 목봐라 목. . . 레슬링 선수 아녀? 공부는 언제 했대?

힙업도 된다. 가끔 거울을 통해서 보면 히햐~~~ 아 나이에 나도 엉덩이가 생기는구나 한다니까.

 

 

정선근 TV

 

www.youtube.com

어느덧 6시가 넘었다.

아. 블로그에 협찬이 와서 협찬 업체에 발행전 저장된 포스팅 메일을 발송했다.

식사하고 와서 내일 해야 할 일 정리하고 크로스 보더 이커머스 좀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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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중국 마늘 관세 통상 협상 논란: 실패한 협상의 교훈과 현재의 도전

1. 서론: 한덕수와 마늘 관세 협상의 역사적 맥락

한덕수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2000년대 초반 중국과의 마늘 관세 협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중국산 마늘의 급증하는 수입으로 인해 국내 마늘 농가의 피해를 우려하여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전까지 30%의 관세를 부과하던 마늘에 380%를 때린 것이다. 한덕수가 한 짓이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하는 보복 조치를 취했습니다.

당시 중국의 핸드폰 시장을 휘어잡던 삼성 애니콜이었다. 이 것을 팔지 못한 삼성은 똥줄 타지 않겠는가.

이로 인해 양국 간의 통상 갈등이 심화되었고, 한덕수 본부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 나섰습니다.

2. 마늘 협상의 전개와 결과

2000년 7월, 한덕수 본부장은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마늘 수입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2년 후,

정부가 중국산 마늘 세이프가드 연장을 2년 반으로 제한하는 이면합의를 추진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중국의 통상무역 보복 위협에 마늘시장 수입 안전 장치를 내준 것으로 비판받았습니다.

결국 한덕수 본부장은 이로 인해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한덕수는 등신이었다. 아주 대한민국 경제를 내어주고 바짝 엎드린 것이다. 해결하긴 개뿔!

퍼주기의 달인, 강자에게 바짝, 이런 걸 처세술의 달인이라고... 헐....

 

 

3. 현재의 통상 협상과 한덕수의 역할

넌 미국가서 협상하면 안봐도 유튜브고,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구속!

최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미국과의 통상 협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한덕수 대행의 과거 마늘 협상 실패를 언급하며, 그가 다시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무역협상에 나서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국혁신당은 한덕수 대행을 "실패한 협상가"로 지칭하며, 그에게 더 큰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

이런 놈이 미국과 협상한다고??? 또 얼마나 빨아댈라고...

어떻게 참... 인물 없다.

 

 

정치권 "'마늘파동' 한덕수한테 한미FTA를 맡겨?"

청와대가 최근 열린우리당으로 복귀한 한명숙 전 총리의 후임으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를 지명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열린우리당을 제외한 제 정파가 일제히 "한미 FTA 내각"이...

www.pressian.com

 

 

4. 교훈과 시사점

한덕수 대행의 과거 마늘 협상 사례는 통상 협상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를 상기시켜줍니다.

특히 국가 간의 무역 협상에서는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전략과 국민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협상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집어쳐 짜샤!


자주 묻는 질문(FAQ)

Q1: 한덕수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마늘 협상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A1: 한덕수 전 본부장은 2000년대 초반 중국과의 마늘 관세 협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당시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응하여 협상을 주도했습니다.

Q2: 마늘 협상의 결과는 무엇이었나요?

A2: 협상 결과, 정부는 중국산 마늘 세이프가드 연장을 2년 반으로 제한하는 이면합의를 추진했으며,

이는 국내 마늘 농가의 보호에 대한 우려를 낳았습니다.

Q3: 현재 한덕수 대행이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 나서는 것에 대한 우려는 무엇인가요?


A3: 정치권에서는 한덕수 대행의 과거 협상 실패를 언급하며, 그가 다시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무역협상에 나서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Q4: 마늘 협상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A4: 이 사례는 통상 협상의 중요성과 책임의 무게, 그리고 협상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Q5: 한덕수 대행의 현재 통상 협상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요?

A5: 한덕수 대행은 미국과의 통상 협의를 앞두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Q6: 정치권의 반응은 어떤가요?

A6: 정치권에서는 한덕수 대행의 과거 협상 실패를 언급하며,

그가 다시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무역협상에 나서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결론

한덕수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마늘 관세 협상 사례는 통상 협상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를 상기시켜줍니다.

현재의 통상 협상에서도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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