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의 정의와 어원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 “cum clave”, 즉 **“열쇠로 잠근 장소”**를 뜻합니다. 이는 교황 선출을 위해 전 세계 추기경들이 철저히 외부와 격리된 채 모이는 비밀 회의를 의미합니다. 교황의 죽음 또는 퇴위 후,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한 신성한 절차로서 중세 이후 카톨릭 전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콘클라베의 역사적 기원

콘클라베의 역사는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268년 교황 클레멘스 4세 선종 이후 교황 선출이 3년 가까이 지연되자, 시민들이 추기경들을 감금하고 빠른 결정을 요구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는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제도를 공식화했습니다.


콘클라베가 열리는 이유

카톨릭 교회의 수장이자 전 세계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인 교황이 선종하거나 자발적으로 퇴위하면, 교황직은 공석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때 전 세계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소집되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시작됩니다.


시스티나 성당과 콘클라베

콘클라베는 전통적으로 **바티칸 시국 내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에서 열립니다. 이곳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벽화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사결정 장소이기도 합니다. 성당 내부에는 특별한 기표소, 투표함, 연기 장치 등이 설치됩니다.


교황 선출 참여자: 추기경단

교황 선출에는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들만 투표권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120명 내외의 추기경이 참여하며, 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성직자들로 구성됩니다. 투표 전, 각 추기경은 비밀 엄수와 외부와의 단절을 서약해야 합니다.


콘클라베의 절차

콘클라베는 ‘엑스트라 옴네스(Extra Omnes)’, 즉 **“모두 나가시오”**라는 외침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명령이 내려지면 비추기경 및 보조 인력은 모두 회의장 밖으로 나가고, 추기경들만 성당 안에 남습니다.

주요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입장식과 기도
  2. 첫 투표 시행
  3. 하루 4번의 투표 가능
  4. 과반수 이상 득표자 없을 시 반복 투표

투표 방식과 규칙

  • 교황 선출에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 매일 오전 2번, 오후 2번 총 4번의 투표가 이루어집니다.
  • 아무도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하루 4회의 투표가 며칠간 반복됩니다.
  • 필요시 후보를 줄여 결선 투표도 실시됩니다.

백연과 흑연: 연기의 의미

콘클라베의 상징인 연기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순간입니다.

  • 흑연(검은 연기): 투표 실패, 교황 미선출
  • 백연(하얀 연기): 교황 선출 완료

이 연기는 투표지 소각 시 넣는 화학 물질로 조정되며, 흑연은 무기염과 탄소화합물, 백연은 젖은 짚과 백색염류가 혼합됩니다.


교황 선출 후 절차

교황으로 선출된 추기경은 수락 여부를 즉시 결정해야 하며, 수락 시 새로운 교황명을 정합니다. 이후 교황의 등장과 함께 **“Habemus Papam(우리에겐 교황이 있습니다)”**라는 역사적 발표가 바티칸 발코니에서 울려 퍼집니다.


최근 콘클라베 사례 분석

베네딕토 16세(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이후 2일 만에 독일 출신의 요셉 라칭거 추기경이 선출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2013년)

사상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 출신이자 예수회 출신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콘클라베의 비밀성과 보안

콘클라베는 철저한 보안 하에 진행됩니다. 내부 인터넷 차단, 휴대폰 및 모든 통신 장비 압수, 보안 직원 상시 대기 등으로 외부 정보 유출을 원천 차단합니다. 비밀 유지 위반 시 파문 등 강력한 교회법적 제재도 따릅니다.

콘클라베 관련 법령과 규칙

콘클라베는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닌, 엄격한 법적 근거에 따라 운영됩니다. 가장 핵심이 되는 문서는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6년에 공포한 **「Universi Dominici Gregis」(주님의 양 떼 전체에 대하여)**입니다.

이 교황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규정합니다:

  • 교황직 공석 시 즉시 콘클라베 준비 돌입
  • 추기경단의 거주 및 식사 제한
  • 전자기기 사용 금지
  •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만 교황 선출 인정
  • 정보 유출 또는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 포함

이 외에도 교황청은 콘클라베 직전마다 소소한 규정을 개정하며 시대 변화에 발맞추고 있습니다.


콘클라베에 대한 대중의 오해

콘클라베는 신비로움으로 둘러싸인 행사이기에, 다양한 오해도 존재합니다.

Q.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A. 특정 기간 내에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규정에 따라 일정 수의 투표 이후 후보군을 줄여 투표를 계속합니다.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콘클라베는 끝나지 않습니다.

Q. 선출된 즉시 교황인가요?

A. 네, 당선자가 수락하는 순간부터 교황직이 시작됩니다. 그 즉시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이 됩니다.


콘클라베의 종교적, 상징적 의미

콘클라베는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 아래 이루어지는 신성한 선택으로 여겨집니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교황이 베드로 사도의 계승자로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뽑힌다고 믿습니다.

교황 선출 순간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Habemus Papam!"이라는 선언은 신자들의 기쁨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언어입니다.


교황 선출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

종교적 리더십

교황은 전 세계 약 13억 명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윤리, 생명, 평화, 빈곤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교황의 발언은 전 세계적 주목을 받습니다.

국제 외교 및 정치적 영향

교황청은 독립된 국가인 바티칸 시국의 수반이자, 외교적 중재자 역할도 합니다. 교황의 교체는 각국 외교 관계, 특히 개도국 및 갈등지역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콘클라베와 문화예술

콘클라베는 영화, 소설, 드라마 등에서도 자주 다뤄지며 대중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 콘클라베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며, 추기경 납치와 음모가 그려집니다.
  • 소설: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는 리얼리즘과 서스펜스를 가미해 실제 콘클라베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 드라마: 여러 다큐멘터리와 가톨릭 관련 프로그램에서 콘클라베 과정을 소개하며,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에게도 깊은 인상을 줍니다.

향후 콘클라베 전망

디지털화 가능성

21세기 들어 디지털 사회로의 변화에 따라, 일부에서는 콘클라베의 온라인화나 디지털 투표 가능성을 논의합니다. 그러나 교황청은 신성한 비밀성과 전통 유지를 중시하여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습니다.

투표 시스템의 변화 예측

전자 투표는 배제하되,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보안 장치 도입이나 추기경 이동의 유연화는 앞으로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감염병 대응을 고려한 콘클라베 절차 재검토도 논의되었습니다.


결론: 전통과 신성함이 만나는 콘클라베

콘클라베는 단순한 선거가 아닌, 가톨릭 교회와 세계의 미래를 결정짓는 신성하고 상징적인 의식입니다. 수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온 이 전통은 전 세계인의 관심과 경외 속에 치러지며, 종교와 문화, 정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 콘클라베가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순간 역시 또 한 번의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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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선거란 무엇인가?

재외투표와 재외선거의 정의

재외선거란 외국에 거주하거나 체류 중인 대한민국 국민이 국내에서 치러지는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된 제도입니다. 이 중에서도 ‘재외투표’는 공관이나 지정 장소에서 실제로 투표하는 행위를 말하며, 모든 재외국민의 민주적 권리 실현을 위한 중요한 제도입니다.

재외국민의 참정권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외에 거주하는 국민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기본권, 즉 참정권을 보장받습니다. 재외선거는 바로 이 권리를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개요

선거 일정

제21대 대통령선거는 2022년 3월 9일(수요일)에 실시되었습니다. 재외투표는 본 투표일 이전, 지정된 기간(2022년 2월 23일 ~ 2월 28일) 동안 각 재외공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주요 후보 및 정당

이번 선거에는 다양한 정당과 후보가 출마하여 정책과 비전을 겨루었습니다. 주요 정당으로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등이 있었으며, 각 후보는 대외 정책 및 재외국민 관련 공약도 발표했습니다.

선거의 중요성

이번 대통령선거는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경제 회복, 외교 정책 등 다양한 쟁점을 중심으로 유권자의 선택이 미래 국정 방향을 결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재외선거의 법적 근거와 제도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

재외선거는 대한민국 공직선거법 제218조의2부터 제218조의11까지에 명시되어 있으며, 이 조항들에서는 재외국민의 유권자 등록, 선거인 명부 작성, 투표 절차, 개표 방식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재외선거를 총괄하며, 각 국가의 재외공관은 선관위의 지시에 따라 실질적인 선거 업무를 수행합니다. 특히 재외선거관은 재외공관장을 대신해 현지에서 실질적 운영을 맡는 중요한 직책입니다.


재외국민 유권자 등록 방법


등록 기간

제21대 대통령선거의 재외국민 등록 기간은 2021년 10월 10일부터 2022년 1월 8일까지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등록한 사람만이 재외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등록 방법 및 절차

유권자 등록은 인터넷(https://ova.nec.go.kr) 또는 직접 방문을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등록 후 재외선거인명부에 등재되어야 투표가 가능합니다.

필요한 서류

  • 본인의 여권 사본 또는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 재외국민의 경우, 국내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명자료

재외투표 일정 및 장소 안내

국가별 투표 일정

국가마다 시차와 공관 사정이 달라 일정이 다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6일간 진행되며, 현지 공관에서 지정된 시간 동안 투표가 가능합니다.

재외공관별 투표소 위치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나 외교부 공지사항을 통해 각 국가의 투표소 위치 및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대사관 외에도 총영사관 여러 곳에서 투표소가 운영되었습니다.

운영 시간

평일에는 일반적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일부 국가에서는 주말 연장 운영도 시행되었습니다.

재외투표 방식 및 절차

직접방문 투표

재외선거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재외공관에 직접 방문하여 투표하는 것입니다. 유권자는 신분 확인 후, 국내 투표와 동일한 방식으로 기표소에서 투표를 진행합니다. 비밀보장이 철저히 이뤄지며, 투표지는 밀봉되어 본국으로 송부됩니다.

우편투표 가능 여부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재외국민은 직접 방문 투표만 가능합니다. 다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원거리 지역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우편투표 허용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향후 제도 개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투표 방법 설명

  1. 재외공관 방문
  2. 신분 확인 (여권 또는 신분증 제시)
  3. 선거인 명부 확인 및 서명
  4. 기표소에서 투표
  5. 투표함에 직접 투입

재외투표 시 유의사항

유권자 신분 확인

신분증 지참은 필수입니다. 특히 이름 철자나 생년월일 오류로 인한 혼선이 없도록 사전 등록 정보와 일치하는 신분증을 준비해야 합니다.

유효 투표 요건

기표는 반드시 지정된 위치에 한 번만 해야 하며, 중복 기표나 낙서가 있을 경우 무효표로 처리됩니다.

부정행위 주의 사항

타인을 대신해 투표하거나, 선거운동을 공관 내에서 벌이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적발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투표 결과 집계 및 반영 방식

투표 결과 전송 방법

재외공관에서 수거된 투표지는 전용 봉투에 밀봉되어 외교행낭 등을 통해 대한민국 중앙선관위로 송부됩니다. 이송 시 보안이 철저히 유지됩니다.

중앙선관위 집계 절차

중앙선관위는 재외투표지를 국내 개표소에서 개표합니다. 개표 과정은 일반 선거와 동일하며, 각 정당과 시민단체의 참관인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재외투표

방역 지침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 방역 지침이 철저히 마련되었습니다. 마스크 착용, 체온 측정, 거리두기, 손 소독은 필수였습니다.

특별 조치 및 대응 사례

일부 국가에서는 투표 장소가 일시 폐쇄되거나, 비대면 방식을 논의한 사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투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제21대 재외선거의 특징과 변화점

제20대와의 차이점

제20대 대선과 비교해 유권자 등록 시스템이 개선되었고, 온라인 안내 서비스가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투표소 운영 기간도 일부 국가에서 연장되어 접근성이 향상되었습니다.

제도 개선 사항

재외투표의 공정성과 접근성 강화를 위해 중앙선관위는 실시간 등록 확인 시스템과 스마트폰 기반 안내 시스템을 시범 도입하였습니다.


참여율 통계와 분석

재외국민 등록률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약 226,000명이 재외유권자로 등록하였으며, 이는 전체 재외국민 중 약 7%에 해당합니다.

실제 투표율 분석

실제 투표율은 국가별로 차이를 보였으며, 평균적으로 약 70%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거주국에서의 투표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주요 국가별 재외투표 사례

국가공관 수투표소 수특징
미국 11개 22개 다수의 투표소 운영 및 높은 참여율
일본 4개 8개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
독일 3개 5개 엄격한 방역 체계와 질서 있는 투표 운영

재외국민의 정치 참여 중요성

국정에 대한 영향력

재외국민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국정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리를 갖습니다. 이들의 투표는 대외정책, 외교, 재외국민 보호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헌법적 권리로서의 의미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이를 행사하는 것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국외에 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실현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1. 재외투표를 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은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18세 이상 국민으로서, 선거인 등록을 마친 사람만 가능합니다.

2. 우편으로도 투표할 수 있나요?

현재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재외공관에 직접 방문해야 합니다.

3. 유권자 등록을 놓쳤다면 투표할 수 없나요?

그렇습니다. 사전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 투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4. 투표소 위치는 어디서 확인하나요?

중앙선관위 또는 해당 재외공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5. 여권이 없는 경우 투표할 수 있나요?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공적 서류로도 가능하지만, 여권이 가장 확실한 수단입니다.

6. 투표한 내용은 비밀이 보장되나요?

네, 비밀 투표 원칙에 따라 모든 절차가 안전하게 진행됩니다.


결론: 모든 재외국민이 알아야 할 재외선거 정보

재외국민도 분명한 ‘국민’입니다. 제21대 대통령선거의 재외투표 참여는 단순한 정치적 행위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정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다음 선거를 대비해 유권자 등록 여부를 확인하고, 소중한 한 표를 꼭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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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는 마이클잭슨도 있었지만 유로팝도 양대 주류였댜.

듀란듀란, 모던토킹, ... 그리고 런던보이즈.

아마도 지금 40대는 다 기억하지 않을까.

80년대는 런던보이즈와 모던토킹 아녔냐?

런던보이라는 옷도 있더라.

i'm gonna give my heart.

ㅎㅎ

이 노래 들으면서 정말 놀라웠지. 돌아보니 고딩때다.

팝송 들으면서 영어에 관심있게 되던때가 바로 이 때다.

그런데 당시 듣던 한국노래와는 너무나 다른 거다.

한국노래가 검열에 발이 조이고 분위기가 X같으니 이런 노래가 나올 수가 없는 사회인거다.

그런데 혈기왕성한 젊은 청춘들에겐 쉽게 와 닿지 않찮아.

그러니 당시 팝송의 인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그 인기는 일본 가요에 이어지는거다.

이 거 보면 대한민국 가수들 정말 노력 많이 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낸거다.

그러니 대한민국 가요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세계를 흔드는 거지 말이다.

당시는 mp3 뭐 이런거 아니다. LP판이었고 테이프라는 거다.

그런데 모든 곡에는 건전가요라고 해서 국가 사상을 노래하는 곡이 꼭 하나씩 있어야 한다.

마치 극장에서 대한뉴스 틀듯 테이프에도 국가의 사상을 알리는 곡이 하나 있어야 하는거다.

대한민국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바뀐거다.

아, gonna가 going to 의 미국식 발음이구나. 그 것을 이 때 이 음악을 들으면서 알았다.

그리고 런던 나이트로 정말 런던뿐만 아니라 세계의 밤을 평정했다.

 

1986년 결성. 1996년 해체.

그렇다. 내가 고딩때 결성했었다. 참, 헐...

텍에 가면 이 노래며 할렘디자이어며 정말 터지는거댜.

 

 

근데 이게 정말........ 헐..

1996년 1월 21일, 알프스로 떠난 휴가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상대편 차량이 충돌하여

멤버 전원이 사망하면서 사라진거다.

좀 억울하지 않냐?

중.고딩때는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었다.

빙빙 트랙을 돌면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거다.

당시 중고딩은 다 탔을껄? 한 두 번은 말이야.

잘 하고 못하고 떠나서 그냥 유행이니 타는거다.

정말 잘 타는 놈은 피겨스케이팅 타듯이 묘기도 부리고 잘 타드라.

그런 놈은 또 춤도 잘 춰.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도 하더라니까.

 

헉. 아니, 런던보이즈가 영국에서 데뷔한게 아니라 독일에서 데뷔한거여???

독일 데뷔 3년뒤 고향 영국에서 발매한 앨범재킷.
 

[1990 Compilation] London Boys - The Remix Collection

https://youtu.be/tIZMF4AAs7Q

헉! 런던보이즈가 한국에 내한공연을 올 뻔 했다.

1989년에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시절에 말이다. 그런데 취소되었다고,

김흥국과 공연을 함께 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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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생각들, 사진들, 써놓은 지난 글들...그런 거.

아이들은 이제 커가고 가족간의 대화가 줄어드는 아쉬움이 생긴다. 어릴 때 내가 꿈꾸던 가족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가끔 떠 오른다. 이렇게 사는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누리센터에서 방과후 학습을 하다보니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다. 누리센터에 가지 않았을때는 침대에 파묻혀 스마트폰과 패드를 손에 놓지 않기에

누리센터에 보낸 것인데 한 편으로는 안심도 되지만 크리스마스라고 가족끼리 어디도 못가고

참... 시국이 시국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저녁때 식당을 돌다가 와이프가 오래 전에 온 이 곳을 기억하는지 이 곳이 맛있다기에 들어왔다.

곱창은 잘먹는 편인데... 맛을 보니 내가 왜 여기를 기억하지 못하나 알 거 같다. 너무 짜다.

그런데 쉴새없이 배달 주문이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는 맛이 아주 없는 곳도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곱분이 곱창이 알고보니 숯불 직화구이인데... 그냥 가스렌지다. 속은 기분이네. 쩝.

확실히 손님이 없다. 경기가 안 좋은건가, 흠...

통김치삼겹살은 웨이팅이 있다. 여기가 맛있나? 다른 대부분의 식당들이 파리를 날리는데 잘 되는 곳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성탄절 대목을 못누리네.

인형뽑기에서 인형을 뽑는 가족. 한 개도 못 뽑았다.

동네가 시끄럽다. 공공재개발을 한다는건데... 하필이면 우리 사무실이 있는 건물도 그 영역에 포함이 되어 있어서

신경이 조금 쓰이긴 한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 곳에서 자리잡고 창고까지 구해놨는데 만약 재개발을 하게 된다면

사무실도 구해야 하고 창고문제도 골치가 아파진다.

길을 걷다가 이렇게 광고판을 나무에 세워둔 것을 보았다. 먹고 살기 힘들다. 홍보효과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몇 일동안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도 같은 마음인가보다.

찐빵 중성화수술을 진행했다.주사 한 방 맞으니까 금새 잠이 들더니 수술은 10여분 정도.

혹시라도 상처를 핥을까봐 머리에 씌워놨다. 1주일인가? 실밥풀때까지 답답했으리라. 이 덕에 화장실갔다가

나오면서 모래를 갈이 가지고 나오는 바람에 청소해야 했으니 찐빵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겨울은 벙어회철이라고 해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시켰는데 아주 맛나다. 잘 먹었다.

나무에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겨울나무.

회사근처에 있는 나무인데 여기에도 눈이 내려앉았다.

도박, 한 방, 투기 이런 거 정말 하지 말자. 인생 한 방에 날라간다.

왜 이렇게 사기치는 놈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런 놈들 모두 잡아다가 무인도에 쳐박아서 지들끼리 사기치면서 살라고 하면 좋겠다.

하루에 몇 통씩 날라온다.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775

 

 

무엇인가에 희열이라는 것을 느낄 때 뇌에서는 엔돌핀,도파민등 마약과 같은 물질이 분비되는데

도박중독자들의 경우 도박에서 승리를 했을때 이물질이 나오는데 점점 더 큰 쾌락을 위해 도박에 탐닉하는 것이다.

원숭이를 이용한 슐츠의 실험(1993)의 예에서와 같이 시각적인 자극뒤에 먹이가 나오는 장치를 통해 원숭이의

중뇌에서 도파민이 처음에는 먹이가 나와야 도파민이 나왔지만 익숙해지면 시각적인 자극만으로도

도파민 계가 활성화 된다. 도박 중독자들이 승리를 하지 않아도 도박중에도,도박장을 보기만 해도 도파민계가

활성화되는 중독에 들어서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도박시스템이 얼마나 많이 퍼져있는지 모른다.

리니지등 유명 온라인 게임에서 확률로 아이템을 얻거나 강화하는 시스템이며 랜덤박스같은 것들이다.

----------------리니지 확률아이템 나온 거 보니 이 것도 한 2,3년 먹은 글이네.-----------------------------

이런 도박에 빠지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도박에 걸고 다른 이에게 빌리거나

갚을 능력이 없음에도 빌리게 되며(이건 사기다) 범죄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 전형적인 테크트리다.

도박중독은 규모와는 상관없다. 작은 돈이라도 사행성이 싶은 게임(돈 놓고 돈 먹기)을 아이가 한다면

단호하게 주의를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전으로 시작한 도박이 지폐가 되고 수표가 되고

인생을 날려 먹게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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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충주.

블로그 이웃중에 마케팅 컨설턴트 하는 분이 있기에 블로그를 보다가 충주 성서 문화의 거리를 보게 되었다.

 

 

충주성서문화의거리 상점가 활성화를 위한 온오프믹스컨설팅

"엠엠컨설팅연구소에서 충주성서문화의거리 상점가의 활성화를 위한 온오프믹스컨설팅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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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내게 혈기 왕성했던 멋모르고까불던 시기의 여러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어쩌면 그 때의 하루 하루가 나에겐 아름다운 기억의 페이지들이다.

이 곳에서 인터넷을 알게 되고, 알려지진 않았지만 최초의? 인터넷 카페가 생긴 곳이기도 하다.

그 때의 인터넷 카페는 진짜 인터넷 카페.

커피를 마시고 한 쪽엔 인터넷이 가능한 PC가 있었다.

아. 인터넷카페 모르는 네티즌, 헉..네티즌?

정말 단어가 많이...바뀐게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거다.네티즌이라고 따로 나눌 필요도 없는거다.

인터넷카페를 지금도 쓰는 사람이 있기는 있다. ​

거리뷰를 보니 그 때의 기억들이 오버랩이 되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장소는 많이 바뀌었지만 그 때의 행동들, 생각들, 같이 했던 사람들이 떠 오르른다.

지나고 보면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기억들이 많이 남는 미숙한 시기의 일들이다.

아쉬울 때도 있고 슬며시 만들어지는 미소, 혹은 헛웃음일 수도 있다.

그게 젊음일까? 단편이다.

이 길은 생활했던 봉방동이나 주덕에서 약속장소를 하게 되면 나오는 곳이었다.

명동거리라 불리던 곳.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북적이던 곳이다. 줄리아나,

그리고 주변의 술 집과 아파트 지하상가의 분식집에서 푸짐하게 채워주던 식당 아줌마의 인심.

그 기억들은 잠 안 오는 여름밤이면 뜬금없이 찾아오곤 한다.

줄리아나 나이트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찾아봐도 없다.

 

여기가 관아공원이다. 성서길 근처에는 국민은행이 있었고 막 생긴 서울은행이 있었다.IMF전이다.

이 안에는 태껸관련단체가 있었다.

방문해서 배우고자 했는데 그..이크..이크..하는 게 조금 거시기해서...

이런 것과 충주 세계 무술축제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때 택견을 배울 걸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관아공원 정문이 바뀌었다.

탄금대 주차장이다. 탄금대 주차장...으힛~~~ ,

혈기왕성한 시기였던 때라 참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지만 므흣한 기억들이 많다.

물론 숨기고 싶은 기억들도 있다.

내 머릿속의 이야기다.

거리뷰가 있으니 가지 않아도 이렇게 나마 기억을 되 살려볼 수가 있구나.

봉방동에서 자취를 하다가 주덕의 2군데로 옮겼다.

뒤 돌아보니 많이도 돌아다녔다.

봉방동에는 충주농고가 있었다.

지금은 국원고등학교로 바뀌었는데 기억이 희미해졌는지 위치는 찾았는데 근처의 장소들이 희미하다.

시장이 하나 있었고 직진하면 국원고등학교 지나서 자취방이 있었는데 말이다.

터미널도 근처에 있었어. 맞아.

터미널 들어가는 골목 노래방에서 자취옆방 형하고 노래부르던 생각도 난다.

그 때 그 형은 스쿠프를 몰았는데 참 멋있어 보였다.

지금도 있네. 참 반갑다.

봉방동에서 주덕으로 3번째 이사했을때 살던 자취방이다.

1년, 혹은 2년 있었을까?

주인분이 고령의 할머니셨는데 ... ,

돌아보니 어쩌면 충주에서의 삶은 내 인생의 단계별 이야기중의 한 단계이다.

충주를 떠나면서 나는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이 곳에서도 나는 변했다. 떠난 이후로도 많은 것이 변했다. 나도 많이 변했다.

이후로도 충주를 두 세차례 갔었지만 갈 때마다

너무 빠른 변화에 과거의 기억을 되찾기가 쉽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어쩌면 너무나 오랫만의 방문이어서 그랬을까?

새한미디어도 있었다 지금도 있을까?

검색해 보니 코스모신소재로 바뀌었다.

짧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올리기 뭐한 그런 거시기한 혹은 쑥쓰러운 이야기들이 많다.

청춘시절이 모두 떳떳한 것만은 아니더이다.

그래서 충주는 떠 올리면 내 가슴에 설레임을 주는 곳이다.

혹시, 김 진규라는 동생이 이 글을 본다면 연락 바란다.

내가 생각할 때 넌 아직도 충주에 있을 거 같다.

VF같이 타고 다니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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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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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담배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ㅎㅎ 중학교 졸업하고 이태원 배터리가게에서 일하던 당시 흥겹게 듣던 노래다.

하루 종일 자동차와 씨름하고 난 뒤 가게 한 켠 골방에서 즐기던 나만의 음악이었다.

에혀...늦은 밤 술 한 잔이라도 걸치면 공연한 감성충만에 옛 기억들을 찾아 보곤 한다.

우연하게 유튜버에서 본 싱어즈-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 송창식.

오랫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언제 쯤일지도 사실 가물가물한 어릴 때 들어본 그의 노래.

분명 성인가요였을 터인데 입에 착 붙었다.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

입에 피리하나 물면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사람 왜불러"

돌아봐도 지금 나이쯤에야 그 노래가 귀에 붙을 것 같은데 말이다.

초딩이 무슨 생각을 하며 나는 피리부는사나이, 걱정하나 없는 떠돌이라는 가사를

읆조렸을까. 중학교때 푸르른날을 부를 때는 세상을 살 수있다는 어떤 희망을 고대했고

고등학교때의 고래사냥은 인생의 화이팅 구호였다.

TV 에서 자주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의 노래를 그렇게 불렀다.

아꼬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는

송창식의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헤헤~~으헤으헤 으헤헤를

부르며 가르쳤다. 생각해보니 조금 우스꽝스럽긴하다.

송창식은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나 어린시절은 불우한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하고 어머니는 행방불명되어 조부모 슬하에서 잘았는데

가수로 데뷔하여 돈을 벌기 전까지 가난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어쩌면 그의 가사에서나 외모, 혹은 풍모에서 느껴지는 도인? 혹은 달관의 이미지는

그런 평범하지않은 환경에서 만들어 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8,9살때부터 곡을 쓸 줄 알게 되며

중3때 경기음악콩쿠르 성악부분에서 1등.

서울예고 시절 동창이던 금난새가 음악적 천재로 송창식을 기억할 정도였지만

레슨비를 낼 수가 없어 중퇴 혹은 자퇴를 하게 된다.

이후 7,80년대 국내 포크음악을 주름잡았았던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이장희등이

노래를 불렀던 세시봉에 이상벽의 소개로 출연하기까지의 소식은 노숙생활,

동가식서가숙정도로 묘사되듯이 기타와 노래, 그리고 가난이 항상 함께 했던 것 같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단 한명의 천재로 뽑기도 하며 음악평론가 강헌은

가왕 조용필의 맞은 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단 한 명의 가수라고 한다.

음악적 자부심이 강한 조영남은 놀러와 세시봉 특집에서 말하길

노숙자도 아니고 아주 남루한 사람이 다 뜯어진 기타를 가지고 들어와서는

클래식 가곡을 환상적으로 소화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감탄했더고 한다.

세시봉 출신중에서 기타실력은 독보적이라고 한다.

순수공연예술지인 월간 객석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그의 음악깊이를 얄팍하게나마 가늠해 볼 수 있다.

“동양권에서 다뤄지는 ‘음정’은 한 ‘음’ 안에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국악 연주를 떠올려보면 한 ‘음’으로 호흡을 계속 지탱한다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는 개별의 1개음이 아니죠. 관념적으로 서양의 도·레·미·파·솔·라·시·도와 성질이 다른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음악의 음계인 궁·상·각·치·우는 서양음악의 계이름과 비교되곤 하지만 실제론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녔죠. 박자도 마찬가지예요. 수학에서 1과 2의 차이를 이야기 할 때, 서양에서는 1+1=2, 즉 똑같은 것을 두 개가 만났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동양에서 2는 하나의 존재가 둘로 나누어진 것으로 정리됩니다. 1과 2의 양이 같을 수도 있다는 거죠. 수를 세는 방법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박자를 세는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소절에 4박을 치라고 했을 때, 1박을 동일하게 네 번 치느냐, 아니면 한 소절이 단지 4개의 박으로 이루어졌느냐의 차이는 다른 정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서양음악에서는 4박, 동양음악은 3박을 기본으로 한다는 차이도 있어요.”

 
 

가수 송창식 '소리, 그 너머의 세계를 찾아서' : 조진주의 THE ART OF PRACTICE

  월간 객석 가수 송창식 '소리, 그 너머의 세계를 찾아서' 조진주의 THE ART OF P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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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감명과 영감을 주며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위대한 예인들이 있다.

과거를 돌아보니 그 시절 그 노래가 있었네.

 

가수 송창식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로 데뷔 했다. 1970년 솔로로 전향, 지금까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히트곡으로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한번쯤’ ‘왜 불러’ ‘창밖에는 비 오고요’ ‘사랑이야’ ‘가나다라’ 등이 있다. 제3회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2012),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2015)을 수상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라이브 카페 쏭아(Ssonger)에서 매주 화·수·금·토·일요일 밤 10시에 노래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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