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지나친 비마케팅으로 인하여 영화적 재미가 배제된채 오히려 그 것에 대한 반감으로
영화에서 있을 수 밖에 없는특수촬영이나 애국심마케팅으로 비하된 체 오히려 흠으로 작용한 영화.
그의 진일보한 연기력과 액션영화에서 보여주는 선악과 복수구조마저 고리타분한 선악구도라고
치부된 영화. 이 영화에서 분명히 비는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정말 재미있게 봤다.
특히 구독일 안전가옥과 마지막 비와 오즈누 자객간의 혈투는 영화중 백미였다고나 할까.
선혈이 낭자하다는 이유로 B급취급받을 이유는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피라는 것을 빼도 액션이 충분히 느껴질 수 있으나 1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라이조가 조직을 배신하게 되는 동기가 되는 어린 시절의 연정을
표현해내기란 상당한 시나리오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쩜 소녀의 심장소리를 들었던 관객이나 라이조였다면 스토리는 한층 매끈해진다.

어쨌거나 피튀김은 영화적 재미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라이조의 분노를 영화내내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 본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라이조의 태연한 또는 천연덕스러운 조크성 발언?
이 차라리 없었다면 그 에게서 인간미를 완전히 배제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지금의 라이조보다 훨씬 큰 매력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예 킬링머신으로서의 라이조를 보여줬다면 관객의 연민을 끌어내어
라이조가 들었던 소녀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에서 액션씬이나 카메라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움직임들은
눈을 자극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 것을 외려 폄하한다면 액션영화 볼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다. 어짜피 스토리가 아무리 좋아도 또는 그 것이 아무리 나빠도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이니 말이다. 사실 난 비의 팬이 아니다.

같은 그림을 봐도, 같은 시를 읽어도 느끼는 감정의 폭은 끝에서 끝까지다.



추천한다.
과거 홍콩 액션영화를 좋아했던 30대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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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기차역

心身FREE/my home 2009. 12. 30. 17:42
정든다는 것은 꼭 오래되어야만 정이 드는 것만은 아닌거 같다.
단 한번을 갔더라도 오랜 기억으로 일상에 오아시스처럼 기운으로 남는 곳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련이라는 곳을 알아서 그녀를 만난 걸까. 그녀를 알기에 대련을 알게 된 걸까.
닿기는 대련이 먼저인데, 정이 들기는 그녀가 먼저네.
이젠 둘다 정이 들어버려버려 버렸네.


이 때가 크리스마스였다.
ㅎㅎ 여친의 친구와 나이트를 가기로 했는데 저녁먹고 나니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대련역에서 기다리는 중.
어디 근사한 커피숍이나 그런 곳에서 폼이나 잡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를 만끽하지는 못하고
기차역에서 죽때리고 있다. 왜 그랬게? 돈 아까워서... 에고고.. 불쌍한 량이. 구두쇠에다가
로맨스가이하고는 한참 거리가 먼 남편 만나 클스마스이브에 뭔 고생? ㅋㅋ 집떠나면 개고생?

흠..나름 교육의 차원??? !!! 암!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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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다.

대한민국 국격을 강조하던 임영박씨가 취한 일련의 일관성 없는 행동들.

법과 원칙은 무엇에 따라 움직이며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와 존엄성보다 국익이 우선하는가.
국민의 권리와 국익중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위정자는 당연히 국민의 권리를 우선시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힘없고 돈없는 무명의 서민일지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말이다.

왜 일은 위정자들이 저지르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짐으로 넘겨주고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권리는 무시되어야 하는가. 누구에겐 국익을 고려해서 판결문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유래없는 초법권적 1인 사면을 단행하고  6명의 사상자를 낸 용산참사는
법대로를 외치며 협상이나 대화마저 거부하더니 이건희회장 사면과 함께 덤으로 해결이 되었단다.
혹 이건희회장 사면이 없었다면 과연 해결이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그 동안 정부와 서울시가보여주었던 행태이다. 부산사격장 사고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해결의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용산참사는 어떠했는가. 대화는 커녕 기소된 철거민 7명에세 5~6년의 중형까지 선고하면서
토끼몰이식으로 압박하고 몰아가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게 10월이다. 그리고 12월.
변한 이 건희 회장 사면으로 인한 시민단체 와 국민의 반감을 사고 있는 시기이다.
있는 자는 빠져나가고 없는 자는 걸려든다. 대한민국 법이 그런가?
누구는 증거가 없다는 것만으로 빠져나가고 오늘도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을지 모른다.

역사의 평가 보다도 난 지금의 대한민국이 중요하다. 국격과 경제력이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는 지 모르나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이 지켜준다는 믿음은 자국민에게나 타국민에게나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며 그 것이 곧 그 나라의 국격의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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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래 고약

웰빙2웰다잉 2009. 12. 30. 00:44
어릴때 엉덩이에 종기가 난 기억이 있다.
그 때 약국에서 산 이명래 고약. 아마도 어떤 상품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제품. 내가 기억 한 것중 최초가 아닐까 싶다.
뭐 지금도 그다지 많지는 않으니 말이다.
외국 같은 경우는 상당히 많은데 우리 나라는 그다지 많지는 않은 거 같다.
아.고등학교때 주재훈 베이커리? 무슨 피자도 있던데...
그런데 이명랙 고약같은 경우는 아마도 국민브랜드급이지 않았을까 싶다.
할리데이비슨이나 혼다, 스즈키, 미쯔비시등 외국에 비해서는 훨씬 빈약하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말이다.

이명래 고약을 생각하게 된건 사실 지금도 엉덩이에 ㅠㅠ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0) 고약장수에서 종6품 오른 피재길

홍천 피씨(皮氏)는 전형적인 중인 집안이다. 대부분의 중인은 문과를 하던 사대부 집안에서 분파되었는데, 피씨는 문과 급제자가 없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1차 시험이었던 생원 진사시의 합격자 명부 ‘사마방목’에도 피씨는 없으니, 전형적인 중인이라고 볼 수 있다. 중인 집안의 족보를 간추려 모은 ‘성원록(姓源錄)’에는 홍천 피씨가 두 집안 실려 있는데, 중시조인 피수장(皮壽長)과 피하조(皮河照)가 모두 무인 출신이다. 두 집안의 후손들은 역관, 계사, 율관들과도 혼인했는데,‘성원록’을 편찬한 이창현은 이 집안을 의원 집안으로 분류했다. 종기를 잘 고쳤던 피재길(皮載吉)의 후손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그의 직계에게는 의원의 맥이 끊어진 듯하다.

어머니에게 처방 배워 고약을 만들어 팔다

 
▲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부근에서 환자를 보던 1940년 무렵의 의원 이명래.임재형 원장 제공.
의원 피홍즙(皮弘楫)은 주로 종기를 고쳤는데, 백광현과 달리 침으로 째기보다 약을 잘 써서 고쳤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에 재길은 아직 나이가 어려, 아버지의 의술을 이어받지 못했다. 어머니 박씨가 남편 옆에서 보고 들었던 여러 처방을 그에게 가르쳤다. 재길은 의서를 배우지 않았으므로, 약재를 모아 고약을 달이는 법만 배웠다. 종기를 고치는 온갖 고약을 팔러 여염을 돌아다니면서도 의원들과 맞서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염의 민간인뿐만 아니라 사대부들도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다 고약을 사 썼는데, 효험이 매우 뛰어났다.

1793년 여름에 정조 임금의 머리에 헌데가 났다. 여러 가지 침과 약을 써보았지만 오랫동안 낫지 않았다. 헌데가 얼굴과 턱으로 퍼졌다. 게다가 날씨까지 무더워, 정조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의원의 여러 어의(御醫)들도 어쩔 줄 모르고, 대신들도 날마다 모여 의논했지만 대책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정조를 옆에서 모시던 사관 가운데 피재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어, 그를 불러들여 치료법을 물으시라고 추천했다.

웅담 고약을 처방해 정조의 헌데를 사흘 만에 고치다

 
피재길은 미천한 신분이었으므로, 임금 앞에서 떨며 땀만 흘리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좌우에 있던 여러 의원과 신하들이 모두 속으로 비웃었다. 정조가 가까이 다가와 진찰하게 하였다.“두려워 말고 네 솜씨를 다하라.” 그러자 재길이 말했다.“신에게 한 가지 처방이 있는데, 이 증상에 써볼 만합니다.”

물러가 약을 지어 바치라고 명하자, 웅담을 여러 가지 약재와 함께 고아서 고약을 만들어 붙였다. 정조가 “며칠이면 낫겠느냐?”고 묻자,“하루면 통증이 멎고, 사흘이면 다 나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흘 뒤에 정말 다 나았다. 정조가 약원(藥院)에 유지를 내렸다.

“전해 오는 약에서 조금 벗어나긴 했지만, 그동안의 괴로움을 다 잊게 해주었다. 요즘 세상에 뜻밖에도 숨은 솜씨와 비장된 의서가 있으니, 의원도 명의(名醫)라 말할 만하고, 약도 신약(神藥)이라 말할 만하다. 그의 수고를 갚을 방법을 의논하라.”

약원의 신하들이 “우선 내침의(內鍼醫)를 맡게 하고 6품을 내린 뒤에 벼슬을 주십시오.”라고 청하였다. 정조가 허락하고 즉시 나주 감목관(監牧官)을 제수하였다. 감목관은 지방의 목장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종6품 관원인데, 대개는 부사나 첨사 같은 지방 수령들이 겸직하였다. 중인이나 서얼이 수령에 천거되려면 먼저 감목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감목관 벼슬을 준 것은 나중에 수령으로 임명하겠다는 뜻이기도 해서,‘성원록’에도 피재길을 의원으로 소개하지 않고 목관(牧官)이라고 소개했다. 의원이 겸할 수 있는 명예직인 셈이다.‘정조실록’ 17년(1793) 7월16일 기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임금의 병환이 평상시대로 완전히 회복되었다. 지방 의원인 피재길이 단방(單方)의 고약을 올렸는데, 즉시 신기한 효력을 냈기 때문이다. 피재길을 약원의 침의(鍼醫)로 임명하도록 하였다.”

피재길이 종6품 나주 감목관으로 임명되자, 신의 피재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청구야담’에서는 그의 명성을 이렇게 기록했다.“(감목관으로 임명되자) 약원의 여러 의원들이 모두 놀라 감복했으며, 두 손을 맞잡고 그에게 맞서기를 사양하였다. 이로부터 피재길의 이름이 온 나라 안에 퍼졌으며, 웅담고약이 천금의 처방이 되어 세상에 전해졌다.”

임금의 목숨을 구해내지 못해 유배되다

천금의 처방을 터득했지만, 그가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민간의 고약장수가 내의원 침의로 승격했지만, 임금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담보해야 할 정도로 위태하고도 귀중한 일이었다.1800년 여름에 정조가 병에 걸려, 여러 의원들이 온갖 처방을 올려도 쾌유되지 않았다.‘정조실록’ 6월22일 기사에 약원의 여러 신하들을 접견하는 기록이 실렸다.

도제조 이시수가 안부를 묻자 “잡아당기는 통증이 조금 나은 듯하다.”고 답했다. 화성유수 서유린이 “수라를 이미 드셨습니까?”라고 묻자 “수라를 어찌 챙겨 먹을 수 있겠는가. 겨우 쌀미음을 조금 마셨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이병정이 “봉해 올린 장고( 膏)는 드셨습니까?”라고 묻자 “지금 같은 입맛으로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정조는 신하들의 안부인사를 다 들은 뒤에 “피재길에게 지방의원 김한주·백동규와 함께 들어와 진찰해 보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온갖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마땅한 약도 없었으므로, 믿을 데라곤 웅담고약의 신의 피재길 한 사람뿐이었다. 내의원 의원들이 며칠이 되어도 고치지 못하자, 온 나라에서 이름난 의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지방 의원들이 함께 진찰하였다.

피재길이 진찰하고 나자 정조가 “찹쌀밥을 붙인 뒤에 고름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나 곪았는가?” 물었다. 김한주는 푹 곪았다 아뢰었고, 백동규는 고름이 많이 나왔지만 아직도 푹 곪지는 않았다고 아뢰었다. 의원들 사이에도 진단이 다르게 나오자, 정조가 “마루 밖으로 나가 앞으로 쓸 처방을 자세히 의논하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이튿날이 되어도 정조의 종기는 아물지 않고, 오히려 더 커졌다. 등골뼈 아래쪽부터 목뒤까지 여기저기 부어올랐는데, 연적만큼 크게 부어오른 곳까지 있었다. 정조는 도제조 이시수에게 “병이 든 지 오래 되어 원기가 차츰 약해지고 있으니, 지방의 잡다한 의원들은 더 이상 들여보내지 말라.”고 명했다. 피재길을 믿은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또 지나도 차도가 없자, 이제는 피재길도 믿을 수 없었다.24일에는 정조가 “어제 정오부터 나오는 고름이 조금 적어졌다. 이제는 피재길 한 사람에게만 진찰하게 할 수 없으니, 여러 의관 가운데 누가 좀 더 나은가?” 물었다. 그러나 피재길의 치료도 끝내 효험이 없어, 정조는 나흘 뒤인 6월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순조가 즉위한 뒤에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정조를 살려내지 못한 의원들의 죄를 따지는 것이었다.7월4일 사헌부에서 “내의(內醫) 강명길과 피재길, 방외의(方外醫) 심인을 국문해서 실정을 알아냈으니, 속히 형벌을 시행하도록 하소서. 그 나머지 약(藥)에 대해 의논한 의원들도 아울러 엄히 조사하여 해당되는 형벌을 속히 시행하소서.”하고 아뢰었다. 곧바로 피재길을 유배보내라고 명이 떨어졌으며, 언관들은 의원들을 역의(逆醫)라고 명명하였다. 임금을 제대로 치료못한 책임 정도가 아니라, 시해한 혐의까지 덮어쓴 셈이다. 열흘이 넘게 고문당하던 끝에 의원 강명길은 매맞아 죽었으며, 피재길은 7월14일에 함경도 무산으로 유배되었다. 순조 3년(1803) 2월6일에야 대왕대비의 명으로 대사령이 내려 무산 유배지에서 풀려났다. 침술과 고약 하나로 고약장수에서 종6품까지 올랐던 피재길은 결국 침술과 고약 때문에 천리 유배길에 올랐다. 전문지식인 중인의 책임이자 비애라고도 할 수 있다.

21세기까지 애용되는 고약의 효험

20세기의 고약으로는 이명래고약, 됴고약 등이 유명한데, 이명래 고약은 전통적인 고약과 좀 다르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드비즈 성신부가 1895년에 아산 공세리에 부임해 공세창을 헐고 성당을 지었다. 중국을 통해 입국했던 드비즈 신부는 라틴어로 된 약용식물학 책의 지식과 한의학 지식을 응용해 고약 만드는 비법을 창안해내고, 공세리성당 신도였던 요한 이명래에게 전수했다.

이 고약이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의 한국 이름을 따서 성일론(成一論) 고약이라고 불리다가, 이명래의 민간요법까지 더해지며 1906년 아산에서 이명래고약집이 개업했다고 한다. 성한 살은 다치지 않고 굳어진 고름만 골라 뿌리를 뽑는 발근고(拔根膏)가 이명래고약의 핵심인데, 소나무뿌리를 태워 만드는 기름에다 약재를 녹여 만들었다. 발근고가 종기를 터뜨리면 고약이 고름을 빨아낸다. 우리나라 신약 제1호라고 할 수 있는 이명래고약의 비법은 100년 넘게 사위에서 사위로 전수되고 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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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개소리넷. 이름부터 시니컬그로데스크틱하여 오묘하기까지하다.
이것에서 어떤 띠깔남을 발견했기에 ㅎㅎ 포스팅을 할까.
실은 이렇다.

뉴스이메일을 보다가 zdnet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인기다운로드탭에서
발견한 것이다. 무료 mp3를 다운 할 수 있다. 구미 댕기는군.
그래서 일사천리 다운로드 하고 설명 보고 하다 보니 아래 일본 CF까지
다운을 받게 되었다. 아래는  utube에 있는 것인데 이 것까지 다운 로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좀더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을 해 보자면 무료mp3에 다운로드에 가시까지
찾을 수가 있고 아래와 같이 utube의 수 많은 ucc를 다운 로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어찌 욱하지 않을 쏘냐.



참고로 3.4까지 나왔다.


으레 이런 무료프로그램이 그렇듯 스폰서를 깔까 말까 하는데 개발자엔 미안하지만 난 제외했다.


이렇게 세트가 되시겠다.

그리고 다운을 받으려면 이것이 필요하다.


사이트 개발자나 회사가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슴. 갑자기 전우치 생각이 난다.
또 다운로드를 받는 프로그램 개발자도 찾아봤건만 알수는 없다. 다만 언어지원을 하는
4개국어에 한국어가 자리한다는 것이 흐뭇할 뿐.


급땡김에 싸이트를 알려줘~~ 외치거나 게이버를 찾는 분에게 친절하게 알려준다.
http://www.gaesori.net/v2/

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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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단이라 믿고 본다.-
그의 영화중에 소위 말하는 쓰레기가 있었던가. 적어도 재미에 있어서는
평균점수이하의 것을 볼 수는 없었다.

혹은 진가신 감독을 보고 보는 이도 있을 것이지만 본인은 전자의 경우이다.
물론 그의 액션을 기대하고 보지만 그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액션은 힘이 느껴지고 고민이 느껴지는
액션이다. 생각이 있는 액션이라고나 할까? 전성기의 이연걸처럼 호쾌함이 느껴지거거나
아크로바틱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끌림이 있는 이유는 아마 현실적인 사실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신뢰감이라고나 할까? 하긴 그는 태극권 고수였던 그의 어머니로부터 어릴때부터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고수이기도 하다. 그 전에 보았던 엽문과 이번 영화. 아마 그는 중국인이 자랑또는 사랑하는
배우로 탄탄하게 자리잡지 않았을까 한다. 이 번 영화는 여친과 함께 중국에서 보게 되었다.
중국어의 이제 막 중짜를 뗀 상황에서 영화를 여친의 기대와 강요?에 의해 보게 되었지만
두 번 눈시울을 적셨다. 쩝. 여친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데 쑥쓰럽게 스리 말이야.
그러고 보면 중국어를 못하는 입장에서도 보면서 대강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적인 영화이다. 어쩜 그 건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하면서 놀란 사실은 엄청난 배우들이 모여들었단 것이다.
견자단은 물론이고 장가휘부터 판빙빙,사정봉, 여명등 다들 영화의 주역으로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쟁쟁한 인물들이 아니던가. 어떤 영화이기에 모여들었을까 의아심을 가지며 영화를 다 본 이후
나름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표적이 된 8인
단 하루, 한 시간 동안의 미션이 시작된다!

쑨원이 혁명가들과 비밀리에 모임을 갖기 위해 홍콩에 도착하던 1905년 10월 15일. 미리 정보를 입수한 수백 명의 자객들이 그를 암살하기 위해 홍콩에 잠입하고, 이를 알게 된 현지의 상인들은 쑨원을 호위하기 위해 최고의 무예 고수들을 불러모은다. 도박꾼, 걸인, 극단단원, 상인 등 평범한 모습 속에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감추고 살아 온 숨겨진 고수들과 홍콩 최고의 대부호와 그의 후계자, 인력거꾼과 혁명 당원까지. 시대의 영웅을 지키기 위한 목적 하나로 호위대를 결성한다. 하지만 단 8인의 호위대가 막아내야 하는 암살자는 수백 명에 달하고, 쑨원이 홍콩에 머무는 5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이들을 따돌려야 한다.

들켜서도, 죽어서도 안 되는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단 한 시간!

타겟을 놓쳐 다급해진 암살단과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호위대 간의 숨막히는 마지막 결전이 시작되는데...!




양가휘를 놓고 보면 "연인"을 빼 놓고선 말 할 수가 없겠지. 얼마나 지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였던가. 어쩜 이국여성과의 로맨스를 그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보니 반갑다.
"연인"을 생각할때마다 그 아름답던 포스터가 생각이 난다. 한 때 그 포스터는 까페나 방의 한쪽 벽면을
차지할 정도로 감미로움이 느껴지던 나름의 작품이었다.

재현된 1905년도의 홍콩거리. 중국도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많이 발전되었구나 했는데
저게 1:1 로 만들어진 세트라고 한다. 이 거리에서 마지막 그들의 극적인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말이다.


사실 보고 나서 느낀 점은 불편한 마음 반, 부러움 반 이다.
불편한 점은 최근 애국심 내지는 중화사상을 고취시키는 일련의 중국정책과 함게 중국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그런 영화중 하나이다. 쑨원의 혁명전야를 성공시키기 위한 무명의 용사들의
이야기지만 중국인 관객들은 그들만의 프라이드를 느낄만한 영화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점이 또한 부러움 반의 내용이기도 하다. 중국은 자국의 영웅들(이름없는 영웅들이던간에)의
일대기나 사건들을 영화로 이렇게 일반인에게 알려가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 영화이기에 이 정도의 배우들을 모을 수 있었구나.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8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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