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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오세훈 정치 입문전.

1961년 1월 4일 서울 출생.

제33,34대 서울시장, 제38,39대 서울시장. 2021년 4월 8일~ 현직.

유년기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에서 자랐으며 중학교를 다닐때까지

학비를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1979년 한국외국어대학 법정학부 법학과 입학, 고대 법학과로 2한년 편입 1984년

제26회 사시합격, 1988년 사법연수원 17기 수료. 1993년 인천 경남아파트 일부세대에서 일조권 침해로 인해

주민들의 대리인으로 당시 33세의 젊은 나이에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제기, 13억의 배상금을 받아내는

성과를 만들어낸다. 당시 일조권이 헌법상 환경권으로 인정되는 최초의 판례를 만들어내며 유명세를

만들어냈고 환경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까지 만들어준다. 이후 환경운동 연합창립 참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환경위원으로 활동하는등 환경운동가로 적극활동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만들어낸다.

로가디스(1994년), 생명보험협회(1996년), 청호나이스 정수기(2004년)등 cf까지 찍기도 했으며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 "그 것이 알고싶다". "sbs뉴스따라잡기", "오늘과 내일"등 각종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맏으며 방송진행능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정치 입문.

이런 인지도를 통해 제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 강남구에 출마하여

59.4%의 득표율로 당선이 된다. 그가 발의한 오세훈 3법(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은

선거공영제, 비례대표제 실시 및 지주당, 정당 후훤회 폐지가 주된 내용으로서 당시 상당히 개혁적인 법안이었고

차떼기당으로 오명을 가지고 있었던 한나라당의 이미지 쇄신에도 한 몫을 한다. 심지어 5공용퇴론을 주장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으니 그의 정치적인 사상은 보수보다는

쇄신과 개혁을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개혁적인 노선은 2006년 서울시장 당선이후 다산콜센터 설립,

인천광역시, 경기도와 협의하여 대중교통환승제 실시, 천연가스 버스교체사업도로 및 도로 물청소등의

환경정책 추진등으로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역점적으로

추진한 한강르네상스사업에서부터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반포, 뚝섬, 여의도, 난지등 4개 한강공원을

문화,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특화공원으로 조성하는 1단계까지는 비교적 평가가 좋았으나

한강에 5천톤급 관광크루즈를 띄우겠다며 한강 바닥을 6m나 긁어대고 대형선착장을 지어 서해까지 연결하겠다며

서해뱃길 사업을 시작하며 비난 여론이 커지고 서울시의회가 관련예산을 깍으면서 시와 시의회가 대립하기도 한다.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감사원 분석에도 불구하고 예비비까지 동원해 사업을 강행한다.

이외에도 빛좋은 개살구가 되어 버린 새빛둥둥섬등 전시성 사업에 대한 비난이 더욱 커진다. 평가가 엇갈리는

디자인 서울 사업등에도 불구하고 재임중 수해로 인해 광화문과 강남등 도심일대가 잠기면서 안전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받는다.

이로서 오세이돈이라는 오명이 추가된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시절부터

시작한 뉴타운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집값 상승만 부추기며 추기판으로 변해 오히려 서민의 보금자리는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20005년 50여곳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지만 취임 뒤 3차 뉴타운 10곳을

선정한 뒤 4차 뉴타운 후보지 발표를 포기하면서 막을 내린다.기존 뉴타운 정책도 휴먼타운으로 수정한 상태다.

하지만 그가 재임중 진행한 생활밀착형 정책들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좋은 성과들을 보인 정책들도 있다.

저소득층 대상으로 저축금액만큼 시가 추가적립해주는 희망플러스 통장(2007년)은 성과도 좋아서

첫 가입자의 98%가 3년 만기를 채워 서민들의 자립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학교폭력과 사교육비 부담, 학습준비물이 없는 '3무(無) 학교 만들기'에 공을 들여 1102명의 학교 보안관을

국공립 초등학교 551개교에 2명씩 배치하고 시교육청과 예산을 분담해 학습준비물을 학교에서

대신 준비해주며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3무(無) 학교 만들기'에 공을 들여 1102명의 학교 보안관을

국공립 초등학교 551개교에 2명씩 배치하고 시교육청과 예산을 분담해 학습준비물을 학교에서 대신 준비해주며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런 생활밀착형 서비스보다 대규모 토목건축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퇴임후에도 외형적으로 남아있고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잘 되었을 경우이지만 잘못될 경우

두고 두고 후유증이 남음에도 많은 위정자들이 강행하는 이유는 더 큰 권력을 향한 사다리로 삼기 때문에

그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재임중 공과가 있었음에도 그의 정치인생중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된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상급식 조례안이 2010년 12월 1일 서울시의회를 통과를 했다. 2011년 서울시 예산 20조 6천억원중

무상급식예산 695억원이 신설된 대신에 서해빗길과 한강 예술섬 사업등 오세훈의 역점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빡돌은 오세훈 시장.

1월 10일 무상급식 전면 실시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의회는 거부.

결국 오세훈은 주민투표를 시행하기 위하여 보수성향 16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복지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르 동원하여 공동대표 3인에게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트표를

시행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나간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들어 놓을 길로 말이다.

8월 24일 투표일로 정해진다. 당시 투표 문구이며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2011년부터, 중학교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8월 21일 오세훈 시장은 무릅을 꿇고 읍소하며 투표율이 33.3%에 미달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이는 당시 한나라당과 어떤 의견 조율도 없는 본인의 똥고집이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진화과정.

신의 한수였을까, 자충수였을까. 벼랑끝 전술까지 끄며 퇴로없는 서울시민과의 전쟁 선포였다.

서울 시민은 주민투표 생각도 없었으나 오세훈이 각본쓰고 감독해서 개봉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는

결국 투표율 25.7%로 마감하며오세훈은 나락행. 2011년 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박원순 통합야권 후보가 승리, 한나라당은 홍준표 등 지도부가 총사퇴, 박근혜가 비대위원등으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결국 이듬해 새누리당으루 개명. 오세훈의 나비효과였다.

 

개천을 잊은 개천용.

어린 시절, 가난한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자기 인생을 개척해 온 그의 개인사는 누구나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여질만 하지만 그가 서울 시장이 되면서부터 자라온 개천을 잊고 빠르게 수구 기득권으로 편입되어

전형적인 가진 자의 모습으로 빠르게 과거를 세탁하는 과정은 우리가 보아온 개천용의 변화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11평형은 대각선으로 누워서 자야할 정도로 좁다"

"돈이 많은 적든 마음이 괴로우면 서민"

"부잣집 자제분들, 가난한 집 아이" 

"헬조선? 개도국서 한 달만 지나보면 금방 깨닫는 게 국민적 자부심"

"장애인이 만든 생산품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우선 구매한다"

노회찬을 거론하며 "돈 받고 스스로 목숨 끊은 분"

문재인을 향해선 "중증 치매환자 넋두리 같은 소리"

2024년 12월 14일 서울시청에서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대한 브리핑을 한답시고 비상계엄을

촉발한 원인이 더불어민주당에 있다는 윤석열 시각을 그대로 전달.

 

국민의 힘의 대선 잠룡.

그는 항상 대선이 벌어질 때마다 잠룡으로 순위권에 들었는데 결정적으로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서사가 없고 광범위한 비토세력도 없지만 그에 반하여 강력한 팬덤이 없기에 대선주자로서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외에도 중앙 정치무대에서 경험이 없기에 그의 세력이 없어

정당내 지지세력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명씨는 다른 글에서도 "지금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은 누구 덕에 시장이 됐느냐"며 "감옥 가기 전에는 아무 말 못 하다가, 구속되고 나니 이때다 싶어 이야기하는 것이냐. 은혜를 원수로 갚는 금수만도 못한 자들"이라고 했다.

더구나 최근 민주당에서 발의한 명태균특검이 실행이 된다면 과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명태균의 과거 발언이나 강혜경의 발언을 보았을때 전혀 근거없는 발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캐비넷에 넣어둔 황금폰은 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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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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