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참 딲지치기를 좋아했다.  네모랗게 접어서 하던 딱지치다가 언제부턴가 종이딱지를 

문방구에서 10원에 혹은 20원에 사와서 그 것으로 딱지치기를 할때는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돈을 주고 사야 하니 말이다. 네모딱지는 집안의 종이며 동네 쓰레기에서 상자를 뜯어서 만들 수

있다는 희소가치가 없어서일까? 동그란 딱지를 뒷 주머니에 넣고 다닐 때는 큰 돈을 넣고 다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많이 따면 그 것을 문방구보다는 더 싸게 해서 10원,20원에 팔았던 것 같다.

ㅎㅎ 지금도 살며시 웃음이 나오는 것은 구슬을 가지고 뺑돌쌈을 했던 거다. 저학년때보다는

아마 고학년으로 가면서 이런 도박?성 게임을 했던 것 같다. 그래 놀이라기 보다는 게임이 맞겠다.

상대방의 구슬을 다 따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와 토에 넣어두거나 행여나 혼날까 땅을 파서

숨겨놓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제 아이들은 고무혹은 플라스틱으로 된 딱지치기를 한다.

이게 무슨 딱지일까 싶지만 저 아이들에겐 우리때와 같은 보물과도 같을 지 모른다.



이런 그림을 보면 딱지치기가 꽤나 오래된 놀이인가 보다. 잠깐 검색해보니 1940년대이후 종이가

흔해지면서 전국구급 놀이가 되었다는데, 하긴 종이가 옛날엔 흔치 않았을 것이고 딱지를 만들 종이가

있었을까. 붓글씨에나 적당하겠지.




[딱지치기의 유래]

 

종이가 귀했던 옛날에는 책표지나 닥종이를 여러 겹 붙여 만들거나, 재래식 헌 장판을 사각형으로 오려서 만들었다.

그리고 종이가 점차 널리 보급된 1940년대부터 각지게 접어서 만든 딱지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6·25전쟁을 치른 후 두껍고 질긴 종이가 나오면서, 접는 딱지가 보편화하여 전국적인 아이들의 대표 놀잇감이 되었다.


처음에는 ‘조선 딱지’라고 하여 사다리꼴로 접었는데, 흔히 ‘방석 딱지’라고 하는 사각형으로 접는 방식이 보급되면서 조선 딱지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문화재관리국(文化財官吏局)>에 의해 조사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에는 여러 지역에서 행해지던 딱지치기의 다양한 방법과 이름이 보고되고 있다.

 

영동, 영서 지방에서는 표치기로 소개하고 있으며 바람치기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충청남도 지방에서는 놀이 재료로 "브르지(紙)의 단단한 것을 지름 5cm 정도 둥글게 오리거나 사각형으로 오려서 하는데 자료가 좋아야 유리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놀이는 1960∼80년대에 전성기를 맞다가 이후 종이가 흔해지면서 점차 사라졌다가 최근에는 문구점에서 인쇄되어 파는 딱지가 보급되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문구점에서 파는 계급이나 만화 등이 인쇄된 사각형, 원형 딱지(동그란 딱지)와는 다른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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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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