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입니다.
소설가 방현석이 쓴 "하노이에 별이 뜨다"라는 책이지요.
이 분이 베트남을 여행하고 쓴 에세이인데...
읽다가 너무 맘에 들어서, 혹은 부럽기도 해서 여기다가 옮겨 봤습니다.
왜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그런 것들 있잖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일이 다 치기에도 짧아서...^^
내일도 광화문에 사람들이 모이겠죠....
그런데, 우린 언제쯤 당당해질 수 있을까요?
<베트남의 저력>
베트남에 처음 온 친구를 위해서 나는 오늘 하루 가이드 노릇을 하기로 되어 있다. 대통령궁, 전쟁범죄박물관, 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친구는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두 장의 사진을 꼽는다.
첫번째 사진의 주인은 우옌반쪼이이다. 미국의 국방장관 맥나마라가 호치민에 왔을 때 폭탄을 설치했다가 사형을 선고받은 전기공의 사진은 누구에게나 강렬한 이상을 준다. 사형집행 직전 눈가리개를 벗어던지고 "호치민 만세", "베트남 만세"를 외치고는 스물 네살의 나이에 총살당한 노동자.
두번째 사진의 주인은 '모아 디 탕'이다. 반정부 투쟁으로 검거된 미모의 여대생이 법정에서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남긴 최후 진술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고 김병곤이 "영광"이라고 외쳤던 만큼이나 통렬하다.
"당신들, 미국의 앞잡이 정권이 앞으로 20년을 더 존재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해 보라."
당시 스무 살이었던 그녀는 지금 국영 베트남 관광그룹의 사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지나간 기억이라면 지금은 무엇이 남아있을까. 나는 베트남에 오는 한국인들이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베트남의 미국 영사관을 꼽고 싶다. 서울의 심장인 광화문 복판에 있는 미국 대사관과 한번 비교해 보고 갈 일이다.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온종일 길게 늘어서 있던 미국대사관 뒷담 아래의 한국인들을. 몇 해 전 여름 실내 대기소를 만들 때까지, 한국인들은 50여 년을 오뉴월 뙤약볕 아래에서도 동지섣달 눈보라 아래서도 거지마냥 서서 기다려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20여년이 더 지나서 호치민에 다시 영사관을 개설한 미국은 한국에서 수십 년 동안 해왔던 버릇대로 베트남 사람들을 영사관 높은 담벼락 아래에 줄을 세웠다. 사흘이 지나지 않아서 베트남의 여론은 들끓었다. 베트남 정부가 영사업무 중지요구와 함께 미국에게 한 말은 단 한마디였다.
"너희들이 뭔데 우리 국민을 길거리에 줄 세우느냐."
그 줄은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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