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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가움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그의 한 마디말에 모든 것을 번다버그로 향했던게 아닌가. 일순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하지만 이 후 썬과의 생활은 반목의 연속이라 만남의 빛이 바랬지만, 썬 형이 혹시 이 글을 본다면 어쨌든 형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리셉숀에서 만난 닐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유쾌한 인상이었다.하지만 그는 호주에서 처음 만난 인종 차별주의자였었다. 2층 건물의 프린세스는 방이 약 8개 정도 있고 1층에는 부엌. 2층에 샤워실이 한 개. 그리고 바깥 정원? 마당이 더 낳을 듯 싶다. 마당에는 공동 사용의 세탁기와 샤워실. 마당에는 비디오 시설이 되어 있는 전형적인 농장 주변의 백팩이었다. 내가 잡은 방은 1층의 구석에 있는 8명이 생활하는 그 곳에서는 제일 큰 방. 방을 들어서자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는 베낭들과 오래된 듯한 빨래거리들과 도색잡지들이 이 곳의 생활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번다버그에서 약 3개월을 보내게 되는 데 첫 한달은 번다버그의 주 농작물인 토마토가 수확철이 아니어서 그냥 보내야 했다.가끔 일거리가 주어지곤 했는데 그 일거리는 먼저 온사람들 순대로 돌아갔기 때문에 난 한 달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일거리가 있는 날은 전 날 밤 9시경에 보드에 일거리가 주어진 농장과 일 할 사람의 명단이 부착되는 데 이 것은 항상 관심거리였다. 이 곳에 있는 사람 전부 또는 대다수가 일을 하러 왔으므로 말이다.

퍼스에서 부터 날아온 manami와 함께.

여행 관련서적을 보면 8,9월경에 바닷 거북이 알을 낳기 위해 번다버그로 찾아 온다고 적혀 있지만 그 것 외에는 딱히 어떤 매력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바다거북 하나로 여행자들을 붙잡기에는 호주에는 너무 매력적인 곳이 많다.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그 곳에서 여행경비를 마련할 계획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 곳은 퀸즐랜드에서 가장 알려진 토마토 주산지였으므로, 첫 주는 여전히 경제적인 불안감때문에 라면과 쌀같은 걸로 한 끼를 때우기에 바빴다. 얼굴은 말이 아니었고 뭔가 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불안해하던 내가 빠른 시일안에 일거리가 없음을 알고 있는데 음식에 미련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조금씩 음식지출을 늘렸다. 여러분에게도 이 말을 하고싶다. 먹는데는 돈을 아끼지 마라.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지 않은가. 그 곳은 고기값이 한국보다는 훨 싸고 돈을 아끼는 것보다 더위에 이겨내기 위해서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현명한 행위이다. 먹는데는 어느정도의 지출을 각오해라. 호주 어디를 가든 농장을 찾아간다면 필연적으로 그 곳은 덥다. (제 철이려면 말이다) 그 곳에서 먹는 단순한 문제로 스스로 자괴감에 빠트리지 말았으면 하는 게 먼저 겪은 이의 초라한 조언이다. 이 곳에 한국사람이 세 명있었지만 먹는 문제같은 것은 서로 관여를 하지 않았다. 가끔 얼마의 돈을 각출해서 영양보충이라는 이름으로 음식을 해 먹는 일이 아주 가끔 있었지만 말이다. 어쩜 조금은 인정머리가 없는 듯하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다 안고 있었고 어쩜 그로서 야기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한 묵시적인 약속 또는 배려라고나 할까. 나는 틈틈이 닐을 찾아가 일거리가 없냐고 물었고 (
오너를 귀찮게 해야 한다) 부족한 영어를 공부하느라 바빴다. 내가 맨투맨으로라도 영어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은 훗날 귀국이후 나의 호주 생활을 대변 할 수 있는 것은 영어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농장에서 1년을 보낼 지언정 사람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외국을 갖다 왔으면 영어는 잘 하겠군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 곳에서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생활 했고 무엇을 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단지 외국을 갖다 왔다는 것에 대한 의아심과 그 사람의 영어실력에만 호기심을 갖을 뿐이다. 호주에서 1년(그 때만 해도 난 1년을 생각하고 있었다)을 보낸 놈이 영어기 황이라면 나의 호주생활에 의심을 품을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난 그 것을 상상하며 최소한 어학원에 다니는 학생 중 제일 못하는 놈하고는 비교는 되어야 한다는 자격지심에 영어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말 쓸쓸하기만 한 번다버그.

깨끗했던 시내와는 달리 쓸쓸하고 황량한 건 내 마음일까. 
난 시내의 시티 백패커스와 모 백패커스를 다니며 한국사람을만나며 그 외로움을 달래었다. 그러다 우연히 시드니에서 나보다 먼저 떠난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가끔 일을 하고 있다며 시골의 적적함에 따분해 하고 있었다. 번다버그는 너무나 조용했다. 인구가 5만인가? 10만인가하는 이 도시가 퀸즐랜드에서 규모면에서 10손가락안에 든다는 소리에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한 달간 가끔 풀장을 찾아가 수영을 했고 한국인끼리 돈을 모아 싸구려지만 8~9$하는 포도주를 마시며 하루 해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던 듯싶다. 사람은 어딜 가나 자기가 보내는 시간들을 아무 소득없이 보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는 건 아닐까. 너나 할 것없이 한국인은 영어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어쩜 그 한 달이란 시간동안 난 호주에 대한 자신감과 어떤 신념을 얻는 기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번다버그에 도착했을 때 1000$ 갸량 갖고 있었지만 필연적이었던 불안이 2개월 뒤 번다버그를 떠날때는 주머니엔 약 700$, 하지만 호주 생활에 대한 확신과 함께 하비베이(Harvey bay)로 출발했으니 말이다. 참 난 호주에서 미국인을 만난 경험이 그 곳에서가 처음이었는데 그들은 3명이 늘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일을 하러 이 곳에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일 주일정도 머무르다 떠났으니 말이다. 한 손엔 일렉기타와 한 손엔 서핑보드를 들고 말이다. 밤에 가끔 전자기타를 두드려며 자기들끼리 술을 마시곤 했지만 다른 유럽인과는 어울리지를 않았다. 못한 걸까? 후자인 것 같다. 유럽인들은 같은 유럽인끼리는 잘 어울렸지만 미국인들을 따돌리는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고교때 어느 신문기사에 미국이 발표한 대국민 성명에 "자국 국민이 세계 어느 곳에서 피해를 받거나 위험에 처할 때는 미국은 정부차원에서 강력히 보호 할 것" 이란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과연 그들은 싱가포르에서 자국 국민이 싱가포르 법규 위반으로 태형에 처했을때 싱가폴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한 적도 있고 (하지만 싱가포르는 그 거만한 미국의 콧대를 꺽어 버렸다) 그 외 대 미국인 테러등엔 강력한 보복을 취하곤 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참 미국이라는 나라는 저렇게 국민을 아끼는구나. 어떤 부러움도 느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딴 섬과도 같은 미국. 유럽과는 또 다른 서양의 한 축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를 빼고는 그들에게 아쉬울 것 없는, 그래서 벼락부자 보는 듯한 유럽인의 시각이 내가 한 때 부러워했던
미국을 오버 랩 시켰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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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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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올라탔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운전기사 아저씨가 머라 머라고 농담을 한다. 그냥 웃고 말았다. 자리에 앉았다.이제 시드니는 안녕이구나. 안녕, 버스는 시내를 지나 어딘지 모르는 광활한 대륙 (정말 호주는 땅이 넓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골과 도시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을 지나고 있었다. 하염없이 달리기만 하던 버스 안에서 막연하게나마 스스로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느 덧 어둠이 창가에 서성인다. 버스안에서만 있으면 시간이 더디 갈 것같은데 그렇지만도 않은 가보다. 어떤 조바심때문일까. 버스의 에어콘 냉기로 인해 한기를 느껴 가져 온 모포로 감싸보지만 마찬가지다. 공연한 처연함까지 더해 더욱 우울해지던 그 날밤. 얼마를 달렸을까. 버스는 세 네시간에 한 번씩 주유소에 으례 붙어 있는 작은 가게에 정차하곤 했다. 20분정도의 휴식시간. 사람들은 저마다 휴계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진열장에 놓여있는 햄버거들과 다른종류의 음식들이 참 맛나게도 보인다. 잠시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제일 싼 햄버거 하나를 집어들었다. 밖에 나와 도로 가에 앉았다. 하늘을 보니 참 별도 많다. 저 수 많은 별들이 처량하게도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후훗! 햄버거를 먹으며 시드니에서 가져 온 우유로 목을 축였다.

아침 나절 따스한 햇살에 겨워 눈을 떠보니 버스는 브리스베인 시가지에 들어가고 있었다. 햇살! 앞으로 약 4시간 뒤에 다시 버스를 갈아탄다. 그 동안 브리스베인 시가지를 돌아볼까 하다가 무작정 터미널에 앉아 햇살을 맞고 있었다. 그 때 그 햇살이 기억에 난다. 브리스베인의 햇살. 왜 그리도 버스안에서 떨어야 했는 지, 밤새 쪼그리고 누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창밖을 보다가 모포를 쥐던 손에 힘을 주길 거듭하다 맞이한 아침! 그 햇살이 너무 반가웠다. 햇살에 눈꺼풀을 맡겼다. 한국말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한국말 소리. 눈을 떠보니 남 녀가 애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신혼여행으로 이 곳을 택했으며 이제 막 도착한 신혼부부였다. 베낭여행중이라는 말에 그들은 일말의 부러움을 표했고(남의 속도 모르고) 잠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어쨌든 반가운 한국사람. 곧 그들은 사라져갔고 난 다시 혼자다. 브리스베인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다음엔 보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온다면 좋겠다. 브리스베인을 거쳐 시드니로 내려갈 땐 말이다. 그 때 혹시라도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난 무슨 말을 해 줄수 있을까? 그래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자. 햇살이 너무 좋다. 하~ 문득 시드니가 생각이 난다. 어제까지 있었던 곳인데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 지, 사람들, 사람들,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번다버그로 가서 일이 잘 풀려야 하는데 그래야지 그들에게 자신있게 전화를 나의 근황을 말할 수 있으니 말이야.
어느덧 차는 다시 출발했다. 이제 6시간 뒤면 번다버그다. 어떤 도시일까? 지도에서 보는 번다버그는 꽤 큰 도시로 나와 있었다. 퀸즐랜드에서 5손가락안에 드는 도시이니 말이다. 이 곳에서 3개월 버티자. 그 정도면 어느정도 돈이 모이겠지. 그러면 그 걸로 나도 어학원에 등록하는 거야. 이런 상상을 하고 있을때가 행복이겠지. 호주 버스는 냉방이 너무 잘 된다. 추울정도로,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져온 모포를 동여맬 뿐이다. 이상하군... 버스는 번다버그에 도착한다.

한국 여느 시골의 한적한 터미널을연상시키는 곳이다.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스킨스쿠버 강습소. 번다버그를 떠나기 전 이 곳에서 스쿠버 라이센스를 따게 되지만 그 때에는 나와는 전혀 별개인 곳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서서 너무나도 작은 터미널을 지나 작은 계단을 내려서자 길 건너에 시드니에서 전화로 문의를 했던 백팩이 눈에 뜨였다. 이 곳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있을 지,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계단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날씨는 너무 따스했고 4차선 쯤 되는 거리에는 지나는 행인이 보이지 않았다. 간혹 지나는 차량들이 도시의 소음을 확인시키곤 했다. 베낭을 짊어지고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노트북은 왼쪽 어깨에, 그리고 시드니에서 산 작은 가방을 앞으로 메고 눈 앞에보이는 백팩으로 걸어들어갔다. 할머니가 리셉션에 앉아 계셨고 그 아래에는 큰 개가 물끄러미 방문객을 올려보고 있었다. 나는 주섬 주섬 영어단어를 챙겼고 할머니는 나같은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 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씀을 하셨다. 일거리는 한 달쯤 뒤에 있을 거라는 거와 방세는 일주일에 95불이라는 것 등, 나는 다른 백팩을 물었고 그 분은 다른 곳을 말씀하셨다. 한국인이 이 곳에 있냐는 말에 1명있다고 해서 나는 그를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그 는 지금 없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다른 백팩을 찾아 나설 때였다. 한국인. 첫눈에 봐도 한국인인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반가움에 내 사정을 말했고 도움을 청했다. 음. 하지만 그는 귀찮은 듯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지라 혹시 썬이라는 사람의 외모를 말하며 혹시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백패커스(이하 프린스)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프린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10분쯤 걸어왔을까? 작은 다리를 건너자 펼쳐지는 잔디로 깔려진 운동장이 보인다. 길 건너에서는 여학생들이 운동경기를 하고 있었고 난 잠시 베낭을 내려놓았다. 땀에 절어 있던 셔츠와 모자가 더욱 불어오는 바람을 시원하게 만들고 있었다. 호주의 여학생들은 치마를 많이 입는다. 청바지를 입는 청소년보다는 치마를 입은 청소년들을 많이 봤다. 이상도 하지. 치마를 입고 구기 운동을 하는 모습들. 어쨌든 그들의 웃음을 보니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 같았다. 치마입은 소녀들의 모습은 언제봐도 상큼한 향기를 품은 것 같다. 다시 10분쯤 걸었을까? 4거리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는 프린세스가 보였다. 드문 드문 보이는 건물 중 하나.
군인이 검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고 있었다. 프린스의 전면 벽에 있는 간판이 특이했다. 군인의 모습과 주위의 황량한 모습. 여기가 프린스. 삭막함이 절로 드는 분위기다. 4거리 주위로 건물이래야 네 다섯채 정도. 을씨년 스럽기까지 한 정경속으로 들어갔다.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나온 사람은 구렛나룻을 기른 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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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번다버그 그 곳에 가기까지 몇 가지 방법을 통해 조사했던 걸 참조삼아 말씀드립니다. 머 여러분도 호주에 귀국하게 되면 알게 될 일이지만 그 전에는 뭐든 지 궁금할테니까요. 우선 정보라는 것의 특성이 산재해 있기 마련이어서 잘 종합해서 정리를 하셔야 하는데요. 베낭여행자들은 대부분 호주에서 잘 발달한 관광관련 산업에 우선 놀라실 겁니다. 여행상품이라든가 관련 아이템의 다양함 등에도 그렇지만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망과 광범위한 투어 에이전시의 활동 또는 백패커스같은 숙박시설과 주변 상가 또는 농가의 연계등에서 말입니다.  호주라는 나라가 하나의 거대한 관광상품인만큼 그런 것들의 발전은 필연적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여행 정보지 형태의 것들입니다.
우선
"Oz". 타블로이드 판의 여행자들을  위한 무료 배포 신문입니다. 호주 전국의 행사나 이벤트등을 알 수 있고 또 농장안내가 나와있습니다. "Oz"는 웬만한 백팩에는 다 있는데 두리 하우스엔 없더라구요. 저는 이 것을 번다버그에서 처음으로 접합니다. 다음은 "TNT" 4*6배판이라고 하나요? 리더스 다이제스트 크기의 무료 배포되는 격월간지인데 각 주별로 발행이 됩니다.



그래서 퀸즐랜드로 가시려는 분은 퀸즐랜드의 것을 구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 것또한 "Oz"와 같은 성격의 내용이지만 더 자세하고  알차게 꾸며져 있습니다. 으례 여행자들의 베낭에는 하나씩 들어있습니다. 그 만큼 유용하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백패커스 회원에 가입할 때 주는
"yellow book" 백패커스 회원에 가입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호주의 광범위한 백팩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카드인데 별 그렇게 실효는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없으면 불이익을 받는 수가 있습니다. 투어 에이전시에서 가입이 가능하고 전 버스티켓을 예약하면서 가입을 했습니다. 1박에 2$가량 할인 해준다는 말에 혹해서요.  그 곳에서 "TNT"도 한권 챙겼습니다. 전 이 것들을 이용해서 백팩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 내용은 일거리가 언제 있는냐이지요. 백팩 오너들은 대부분 일이 곧 있을듯이 말을 합니다. 곧이는 믿지 마세요. 하지만 결정이 되어 예약을 하게 된다면 예약시 언제쯤 일거리가 생기는 지  어느정도 못을 박아놔야 합니다. 그리고 도착해서 방을 얻을 때 한 번 더 주지시키시고요. 그래야 난 중에 일거리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을 때 그 약속을 상기시키며 항의를 할 수 있습니다. 항의의 힘은 큽니다. 한국에선 항의가 불평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아 이 비극적인 현실-이지만 호주에선 당연한 권리로 인식을 하니까요.

백팩에서 오너의 힘은 큽니다. 그들이 일거리를 배분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눈 밖에 나면 일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머 그렇다고 애써 잘 보일필요는 없지요. 그 저 별탈없이 잘 지내면 좋은데 제가 지냈던 프린세스의 오너인 닐은 가벼운 인종주의자였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결국 일본인에게 몇 대 맞았다고 하더군요. 그의 여자친구에게 심한 언사를 했던 것이죠. 하기야 그 걸 놔 둬? 흠흠,,  결국 그 일본인은
강제 출국을 당하고 말았지만, 참! 어떤 책자를 보니 CES를 알려주며 잘 이용하라며  값진 정보인양 하는데 워킹 경험자들은 웃고 맙니다. 물론 CES측에서도 여행자들에게 일거리를 알선한다고 말은 합니다. 저도 혹시나 해서 몇 번 가봤으니까요. 여러분중에 일국당(One nation party)이나  폴린 헨슨의 이름을 들어 보신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폴린헨슨은 일국당의 여성당수입니다. 백호주의의 대표세력으로 호주 최대의 농업지대인 퀸즐랜드의 보수 농가층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일국당. 그들의 모토가 "아시아인은 아시아로" 이며 캐치프레이즈중 하나가  "아시아인때문에 호주인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입니다. 선진국이 다 그렇겠지만 호주정부 또한 호주인의 실업에 우려와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CES는 그런 정부의 고육지책인 것입니다. 그런 CES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하는 건 실상을 모르는 책상다리들이 호주 관광청에서 주는 안내책자의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업주측에서도 언제 갈 지모르는 여행자들보다는 꾸준이 일을 하는 호주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인종차별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군요. 도시에서는 그러한 차별을 전혀? 느끼실수가 없구요. 가끔 농촌에서나,,,하지만 그리 심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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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는 나의 그 짧은 영어를 성실히 들어주었고 내가 중학교 시절의 영어를 떠 올리는데도 그녀의 인내심이 큰 도움이 됐다. -이 대목은 나이 영어실력이 황이었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언젠가 멜버른 유학생이 내일 귀국한다며 마나미에게 술 한잔 하자고 했나보다. 그 녀는 방구석 스프링 침대에 쳐 박혀 인터체인지를 읽고 있던 나에게 같이 가자고 팔을 끌었고 난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일어났다. 얼마 남지 않은 시드니기에 그냥 보내기엔 아쉬움이 남은 시간들이었다. 술이란 건 가끔 고마울 때가 있다. 그 건 질척거리며 끈질기게 따라붙는 현실에서의 문제들을 희미하게 퇴색시켜 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 날또한 그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난 제 기분에 그만 길을 가다가 뒤로 빠져 어느 골목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어느 집앞의 수은등은, 본 적은 없지만 어릴 적 빠져들었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씨리즈에 으례 나오는 안개 낀 영국의 거리와 흔히 동반되는 그런 칙칙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거기에 투영되는 나의 모습. 음산하기만 한 그 건 또 무엇인지, 음~ 그런데 마나미가 내 모습이 안 보이자 나를 찾다가 그 모습을 보았는데 일순 드는 당혹스럼. 하지만 더 황당했던 것은 그 날 돌아와서 그 유학생이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마나미에게 나의 그 모습을 빗대며 한국사람이 싫다는 애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코스포폴리탄이라고 그러면서, 겸연쩍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냥 방으로 들어와 누워 버렸다.

시드니의 밤은 쓸쓸했고 킹스크로스의 밤은 화려했다. 북적거리던 이 곳 두리하우스도 다 제 갈길을 찾아 떠났고 이제 나만이 남은 것인가. 자신만만을 펼치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마나미가 웃으며 화났냐며 걱정이 되서 왔다는 것이다. 그 녀와 많은 애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는 돈도 얼마 없다. 그래서 지난 몇 일간 괴로웠지만 지금은 괜찮다. 번다버그로 가서 돈을 많이 벌 것이다 등등 나의 그 재미없는
애기를 조용히 들어주었고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 후 우린 게이스트리트로 소문난 옥스포드의 밤거리를 하릴없이 같이 걸었고 30$짜리 스피커 달린 중고 카세트 (귀국하기 전까지 함께 했던)를 사기도했다. 어학공부할량으로 살 거니까 비싼 거 사지 말라며 망설이던 나에게 조언을 하던 그 녀의 모습이 당시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왔을까. 난 그녀와 조그만 항구에서 아침 산책을 하기도 하며 잠시의 여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시간은 빠르다.
왜 찍었을까??? 번다버그로 향하는 아침. 어느 정도 짐을 정리 하고 담배 한 개비를 물던 나에게 그 녀는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1시간쯤 뒤에 내 방으로 들어왔다. 거기에는 유카타를 입은 일본 여성이 서 있었다. 한복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는 유카타속의 마나미는 수줍은 듯, 보여주고 싶었다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저 잘있으라고 할 뿐이었다. 한국에서 얼마전에 내려온 남자 두명과 지영이, 그리고 마나미가 전철역까지 나와 영숙을 배웅해줬다. 난 이놈의 시드니에 다시 올때는 정말 돈 때문에 걸리적 거리지는 말아야지 하며 전철에 올랐고 영숙의 짐을 들어주었다. 그 녀는 전철역에서 연결되는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케언즈에 간다. 괌에서의 생활을 다 가져왔을까? 내 짐과 그 녀의 짐은 내 셔츠를 땀으로 금방 물들였다. 하기야 2년간 생홯하던 것을 정리 했으니, 영숙은 기차에 오르며 너무 고맙다며 케언즈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하지만 그 때 케언즈를 생각하기엔 너무 일렀다.

이제 혼자다. 비장하기까지 했던 그 때. 나는 지도를 보며 길을 물어 터미널을 찾았다. 베낭의 무게를 재고-마치 비행기에서 보딩체크 하듯이-예약권을 승차권으로 바꾸고 버스에 올랐다. 몇 시간쯤 걸리냐는 질문에 운전기사는 갈아타는 Brisbane까지 18시간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번다버그까지 6시간이 걸린다며 웃음을 지었다. 시드니에서의 생활을 묻어버리고 번다버그로 가는 24시간. 그 건 고독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길이었다


시드니가 끝이 났습니다. 번다버그로 향한 버스,
그리고 그 곳에서의 생활들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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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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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호주에서 장거리 노선, 즉 그레이 하운드와 맥카퍼씨는 각 도시마다 장거리 여행객이 뜸할 철엔 세일을 한다. 그 세일 기간은 지역마다 달라지는데 날씨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장거리 노선의 큰 고객은 우리와 같은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 또는 그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유럽인들은 우리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갖고 있는 것을 부러워 하는 눈치였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워킹 홀리데이비자 체결이 되지 않아 관광비자로 입국해서 일을 구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따르는 어려움 때문이다. 도시에서는비자의 종류를 따지는 곳이 많다. 결국 그들은 비자의 유무를 묻지 않는 과일따기 정도의 일밖에 없다. 우리가 의사소통의 문제로 농장에 가는 것하고는 다른 이유가 바로 비자다. 그들은 과일철을 따라 움직이고 그 건 지역의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버스회사들 또한 그런 방법으로 고객을 유치하는 건 아닐까. 


 썬과 제프가 그리피쓰에 있었던 1~2월엔 포도따기가 제철이다. 그들도 과일 수확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시드니도 날씨가 제법 선선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북쪽으로 올라가는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초가을을 연상하는 날씨는 저녁이면 찬 바람을 몰고 와 공연한 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었다. 낮에는 혼자서
시드니를 돌아다닐 정도의 여유가 생겼고 저녁이면 인터체인지와 자신만만을 펼쳐들었다. 가끔 드나드는 외국인과는 "웨어러유 프롬?"을 자신있게 주절 거렸고 "아임 프롬코리아"로 발전하며 "하우즈 투데이?"까지 떠듬는 여유를 부린다. 비록 돌아오는 말이 안들리는 아쉬움이 필연적으로 따랐지만 말이다. 귀부터 트이는 사람은 없다. 입부터 트일려면 조 놈이 귀찮든 말든 내가 주절거려야 한다. 두리하우스는 날마다 빠져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으로 바빴지만 나와 한국인 클리너, 그리고 마나미는 내가 도착해서 부터 떠날때까지 같이 했던 사람들이다.한국인 클리너는 3층에서 생활하는 덕에 만남은 드물었다.
아침 저녁으로 두리하우스를 청소하고 낮에는 어학원을 다니는 열심히 사는 젊은이였다. 시드니에는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어학원도 있고 또 저렴한 등록금으로 다닐 수 있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어학원에서 일하기 위해 호주인들이 다니는 강사 양성학원 비슷한 곳에서 그들 학원생들의 현장실습의 의미로 저렴하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종의 교생실습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혹시
시드니로 가거든 알아보기 바란다. 지금 기억으론 그 곳은 킹스크로스에서 꽤 되는 거리였다. 내가 확인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보면 말이다 시드니의 어지간한 곳은 걸어다니는 것이 좋다. 교통수단 이용이 시간 절약차원이라면 모르겠지만 어짜피 여행과 영어, 두 가지 목적이라면 걷는 시간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4일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데 뒷 날 케언즈 중국집에서 접시 닦다가 만나게 되는 영숙씨가 막 입국을 해서 이 곳으로 들어왔다. 그 녀는 괌에서 여행가이드를 하다 스카웃되서 이 곳에 오게 되었는데 케언즈로 가기 전 시드니로 입국한 것이었다. 그 녀또한 나와 같은 날 출발하게된다.

이처럼 호주에서는 사람들과 재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서로간의 크든 작든 오해를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우스개 소리로 호주가 이렇게 좁을 줄 몰랐다고들 하니까 말이다. 나는 그러지 못한 것이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것이 이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말이다. 한국사람끼리 영어에 대한 목표를 거리를 두는 것도, 그 반대로 너무 격의 없이 대함으로 어떤 불편을 주는 것도 좋지는 않다. 정말 한국사람끼리의 관계가 힘들다. 개인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제발 패거리는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두사람의 동료는 정말 둘도 없는 이국에서의 반려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고 확언한다. 패거리는 그 패거리에 맞는 공통분모를 요구하며 그에 반하는 것은 꺼리는 것이 당연지사다. 언젠가 일본인이 한국사람은 무리 짓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유를 물었을때 나는 자신있게 협동심이라고 애기했지만
그가 거기에 수긍했을지 모르겠다. 협동심과 조직체계를 따지면 일본 또한 우리보다 못할 것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별로 아름다울 것도 없는 그 곳 시드니가 그나마 고운 빛깔로 덧입혀진건 나에게 보여준 마나미의 호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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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술을 너무 과히 먹었던 탓일까? 싸구려 포도주였지만 알콜 도수는 충분이 사람들을 만족하리 취기에 오르게 할 정도였다. 12도, 4리터에 약 12불정도. 참고로 호주는 포도주로도 유명하다. 관광코스 중에는 호주 포도생산 주산지견학이 있으며 포도를 직접 따는 체험이 포함 되어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포도따는 것도 돈이 되는 가보지만 난 포도를 딴 경험은 없다. 하지만 포도를 따면 돈도 벌고 그런 관광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워터 멜론, 쯔뀌니, 에그 토마토 등 그 외도 많은 과일들을 따 봤다. 장장 4개월가까이를 농장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그 첫 시작이었던 번다버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우연한 소리에 무조건 택한 결과였다. 다이녹스라는 시내에 DYNOX서점이 있는 빌딩에서 버스 티켓을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혼자 무작정 가 보았다. 사람들에게 "아 이머 스트레인저 히얼, 아임 루깅 훠~ "를 들이밀며 길을 묻고 잘 듣지 못해 같은 길을 수 없이 물어보고 DYNOX 서점에 들어갔다. 그 곳 윗층에 있는 투어 에이전시에서 버스 티켓을 구하기 위한 내 영어의 몸부림. 흐~,"아이 워너,아임 고잉 투 고투 번다버그. 번다버그. 아이 워너 바이 더 티켓" 귀를 쫑긋이 하고 그 녀의 질문에 대답을 했고 날짜는 앞으로 5일 뒤 아침. 23일 티켓이었다. 오늘이 18일. 그레이 하운드와 맥패커씨의 장거리 노선버스중 맥패커씨가 몇 불이 더 싸서 그 걸 택했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맥패커씨가 그레이 하운드에 비해 싸다. 그리고 한 달전에 표를 끊으면 50%가 싸진다. 그리고 철마다 세일기간이 있는데 이 기간에 표를 사면 또 50%가 싸다. 그러니 장거리 여행자는 이 버스티켓 정보를 잘 구하기 바란다. 그 건 몇 백불을 버는 거다. 요소 요소에 티켓 에이전시가 있고 그 곳에서는 투어뿐 아니라 버스,기차표등을 예약할 수 있다. 그 곳에서 정보를 구할 수 있다. 그렇게 버스 티켓을 구하고 다시 털레 털레 두리로 돌아오면서 본 킹스크로스 입구의 코카콜라 입간판. 코카 콜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 그냥 생각뿐이다. 콜라 한 잔에 1불이 넘는 상황에서 콜라를 먹는 다는 건 나에겐 사치!. 내가 콜라를 마시게 된 건 호주 입국 7개월째에 케언즈에서 마시게 된 것이 처음이다. 이제 모든 건 번다버그다.


이제 시드니를 즐겨보자. 10개월뒤쯤에나 호주 생활에 익숙해지면 다시 돌아오리라던 시드니를 즐겨보기로 했다. 하버 브리지를 건넜고 혼자 버스를 타고 물어 물어 어느 해변에서 담배 몇 개비를 폼나게 피기도 했고 서쿨러 키 록스라는 곳에도 가 보았다.  하지만 나에게 그렇게 근사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거나 한국에 와서도 그 곳에서의 풍경을 근사하게 떠 벌리거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없었다는 등의 시덥잖은 소리는 하지도 않았다. 그 날 저녁 나는 내 각오를 놀러 온 지영이에게 애기 했다. 정말 기쁜 듯이 말이다. 그 앞날은 어떻게 될 지모르지만 당장의 목표가 정해졌다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영이는 스페인 레스토랑에 취직했다고 한다. 뜨~악! 머 더 이상 놀랄 일도 없다. 그 녀는 어딜 가든지 잘 해낼 아가씨였다. 어학실력에서 비롯된 건지는 몰라도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참 이 애기를 들려주면 알 수 있으리라.

아마 이 때쯤이었을 거다. 한국에서 한 아가씨가 왔다. 여대생이었는데 나 만큼 준비성이 없다는 생각! 아니 어쩜 너무 많은 준비를 해 왔다일까? 밥통을 들고 왔다면 믿겠는가? 그리고 그 녀는 옷가방이 정말 큰 가방. 내 베낭 두개의 용량은 될 법한 가방에 하나. 그리고 내 베낭만한데에 옷이 하나였다. 그런데 보여야 할 영어책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녀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는 외국인과 부딪쳤고 그 녀는 피했다.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호주로 왔고 두리하우스로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녀의 말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정말 한심스러움이었다. 그런데 지영은 부딪치면 된다며 3일간 그녀를 데리고 다니며 식당이란 식당. 그리고 일거리가 있을 만한 곳을 같이 다니며 일을 주선해 주었다. 훗날 번다버그에서 그 녀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어느 한국인 가정의 베이비 시터로 들어갔다가 3개월뒤 귀국했다고 한다. 결국 한국에서 준비해 온 만큼 가져간 것이었다. 그 날 저녁 새로 들어온 한국인 몇 명 그리고 마나미와 킹스크로스의 한 나이트에 놀러갔다. 일단 목표가 생기고 나니 마음껏 놀 수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 지 모를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었고 특히 마나미는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무대도 양이 안 차는 지 무대 위의 또 다른 작은 무대로 올라가 춤을 춰대는 그녀를 보고 우리들은 눈을 휘둥그래 떴다. 정말 대단하군이란 생각을 하며 그 날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나또한 한 막춤 하는지라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마나미가 올라오라고 할때는 스테이지 위의 좁은 공간으로 한국남자는 할땐 한다는 걸 보여준다는 치기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흔들어댔다. 그 날 옷갈아 입고 온다던 지영이 들어왔는데 후우~청바지만 입던 그녀가 짧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왔고 주위의 외국인들은 휘파람을 불어재꼈다. 그 녀도 처음이었던 나이트라 그랬는지 이쁘게 보이고 싶었는 지 화장을 했고 짧은 하얀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다. 그 모습을 보며 여자가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난 공연히 기분이 좋았고-어쨌든 그 날은 누구하고 싸움 붙어도 차라리 몇 대맞고 돈 벌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으니깐 (쿠~)-. 아마 내가 술에 취했나보다. 어쨌든 그 날은 너무 기분이 캡빵이었다. 조마조마 하게 보냈던 4일간을 보상받는 기분. 아니 악착같이 보상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날은 몇 시간동안을 흔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 밤은 특별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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