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이태원동과 보광동에서 약 3년넘게 살았다.

용산구에서만 3년정도 살았구나. 따듯했던 광주, 한 겨울에 올라와서 설렘도, 서러움도, 불안도

암흙만 같았던 하루 하루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도 같다.

이 동네들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멀리 용산구 한남동까지.

지금은 폴리텍으로 바뀌었다. 정수직업훈련원 기계조립과. 선생님들은 잘 계시는지, 함께 했던 형들은 어디에 있을까.

위치만 변화가 없다.

이 쯤에서 자취를 했었던 것 같다. 장득이형만 생각이 나네. 시간은 이렇게 쉬이 지나고 사람도 쉬이 사라진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그대로다.

오류동으로 가는 버스가 여기에 있었다. 졸업무렵, 무언가가 끝나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항상 가슴 저린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보다는 익숙하고 정들어 있던 것과의 헤어짐에 대하여 말이다.

버스를 타고 한강을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거의 다 없어지고 HAN'S만 남았다. 약 20여개의 GARAGE들이 쭈욱 늘어서 있던 곳이다. 저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당시 형들과 저 곳에서 멀지 않은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던 사이였는데 말이다.

참 삭막한 곳이다.

가끔 기억속을 허우적 거릴때가 있다. 나는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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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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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임대하고 있는 사무실의 건물주는 아티스트다. 자부심이 그득한 듯 하다.

5층건물의 1층과 3층만 임대를 주고 나머지는 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듯 하다.

지하는 예술품창고로 사용하더니 2층을 전시실로 리모델링을 했다. 

퇴근하고 나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는데 자신의 전시실을 보여준다. 뿌듯함이 그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예술에 대해서는 그다지 말 모르지만 예뻐보인다. 뭐 그 정도는 판단하지.

재미교표다. 몇 년 뒤에 미국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80세 가까이 되시는 분인데 아주 정정하다.

가끔 벤츠S클라스며 같은 친구들 아마도 비슷한 부류 이 와서 소일거리를 하고 간다.

나이들면 저렇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한 편으로는 저 나이에 미국인, 한국에 건물을 가지고 있고, 

언젠가 딸을 봤는데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 흠...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땄다고 한다.

상류층인가? 그러네. 중산층 이상이지. 그런데 ...

 

웬지 뭐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편견인가?

 

그래도 부러운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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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대라고 있었다. 그냥 듣고만 있었다. 일본이다. 1981년 결성되어 1985년도 데뷔, 2018년 30주면이란다.
활동은 하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쟈니스 최고참그룹.

그리고 지금쯤은 이런 모습이다. 물론 더 변했겠지.

일본 쟈니스소속사에서 가장 오래된 선배그룹이 되었다. 아직도 있다는 사실.

30년전에 찍은 뮤비다. 일본이 세계경제 찜쪄먹을때다. 

소녀대를알게 된 것은 당시 mbc에서는 국제가요제를 하고 있었다. 차라리 지금 하지.
1986년 mbc서울 국제가요제에 출전한 것을 본 것은 기억이 나는데 무슨 노래로 탔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Korea라는 노래를 찾아보니 1988년에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는 독일그룹 징기스칸의 레슬리만도키가 만든 것을 다시 리메이크한 것이다.
뭐 어쨌거나 소리소문없이 지나갔고... 소녀대는 1989년에 해체가 되었다고 하니,
대만에서도 소년대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나? 소호대다.


소년대 리메이크했나 보다. What's your name.

그런데 내가 볼 땐 1999년의 한국의 소호대 노래. 사랑 그리고 추억

결국 이 노래가 이 블로그를 소환해 왔다. 이 노래는 2년전 만들었던 발라드버전을 댄스로
커버한 것이다. 오히려 이 것이 인기를 끌었고 나도 이 노래가 기억이 난다. 
신현우는 1997년 "야"로 데뷔했다. 나는 솔직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IMF이후 졸라 고생할때다.
여하튼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 댄스버전이다. 잘 들어보자. 중독성이 장난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노래와 함께 신현우의 댄스와 표정, 어깨 들썩임이 생각이 난다면 넌 중독된거다.
다시 뮤비로 봐보자.

이 때 김나은씨가 15~16살의 중학생이었다고 하니,...흠... 뭐 지금은 뭐할까? 궁금하긴 하다.
그래도 과거는 기억으로 남기는게 가장 아름답다.

신현우는 싱어송라이터에 편곡능력까지 뛰어난 실력파다. 저 노래만 들어봐도 느낌이 오질 않나?
물론 1집의 "야"도 파격적이었고 말이다.

과거는 아름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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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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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게 팔만대장경을 요청하는 읿본승려들

건들이지 말아야 할 세종을 건들었다는 이유로 흥행에 참패한 나랏말싸미.

세상에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역사는 감정이 아니다. 남는 것은 감정이지만 이성으로 다가서고 다층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은 진실이고 실체가 아닌가. 그 것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본다.

영화는 혹시 모를 감정적인 소모를 피하기 위해 훈민정음의 창제설가운데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였다고 서두에 나온다. 이러면 된 거 아니야? 영화적인 상상력조차도 이런 이유로 막아내면
또 다른 무언가도 당연히 막아낼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믿으면 되는 것이다.
이 영화로 인하여 신미가 창제했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지 않은가. 그 정도의 역사적 실체에도
자신감이 없다면 그 것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의심할 수도 있다는 반증일게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목판인쇄본 팔만대장경

일본의 승려가 그토록 염원하던 팔만대장경을 선대인 태종이 주기로 약속을 했다며 일본의 승려들은
막무가내로 목숨을 내어놓겠다는 식으로 팔만대장경을 내어달라고 한다. 당시 불교를 숭상하던 일본은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에서 쉽게 내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태조때부터 조선포로를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을때마다 주었던 팔망대장경 인쇄본은 일본의 불교발전에 크나 큰 기여를 한다.
그래서일까. 일본은 인쇄본을 계속 요구하였는데 나중에는 팔만대장경 원판을 요구하는 것이다.
태종이 약속을 했다고 하는 것처럼 주려고 했으나 신하들이 반대하여 주질 못했다. 다만
경기도 여주 신륵사 인쇄본을 일본에 건넸다고 한다. 1381년 간행된 것으로 총 587상자에
4천995첩이나 된다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이렇게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하지만 팔만대장경의 인쇄본을 너무나 많이 주었기에 대장경 인쇄본중 가장 오래된 것이
교토 오타니 대학도서관에 있고 한국에는 1865년 강원도 월정사에 있다고 한다.
영화와는 달리 세종때도 일본의 노력은 가열차서 세종 6년 대규모 사신단이 토산물을
바치며 영화와 같이 죽음을 각오하며 받아오려고 했으나 사신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고 이번에 이 것을 주면 나중에 또 어떠한 요구를 할 지 몰라서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팔만재당경은 국외유출, 전시위험등으로 얼마나 소실될 역사적 위험을 겪었는지 모른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0424149500797

역시 송강호. 이 장면은 압권이다. 소현황후를 탄핵하겠다는 신하들의 경고에 "차라리 나를 탄핵하라"
역시 박해일! 이건 뭐, 송강호앞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멋있다. 이 장면은 그렇다. 술 한 잔 하라는 세자의 어명에도 불구하고 중은 안 마신다고 하나 한글만들기를 중지하라는 말에 술을 마시며 끝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하트 뿅뿅.
신미와의 갈등 절정기
만만치 않다. 영화는 예상외로 긴장감이 탄탄하다. 한글이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세종의 정말 하해와 같은 그 심성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설마??? 아무리 세종이라도 그렇지. 할 정도로의
관대함을 보여준다. 소현황후와의 이야기들은 역사의 면면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그 막중한 역할을 해 준 전미선씨가 보고 싶어진다. 이 영화때문에 말이다.

영화는 이렇게 명배우들에 의해서 살아난다.
중들 뒤끝이 만만치 않아. 암...암...ㅋㅋ 두 사람의 극은 협연 그 자체다.
아름다운 영화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언문이다. 언. 문.
불교는 한반도 도입이래 역사의 줄기 줄기에 굵직한 마디마디를 만들어 냈다. 단순히 현신도피의 종교가 아니었다.

이 건 백 십분동안의 눈호강이다. 최근에 이런 역작을 볼 수가 있었던가.

나랏말싸미 영화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솔직히 말할께. 이 영화 안티들 대부분, 너 말고 말이야. 오해말고 들어.
개독교가 전파한 종교파시즘의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공자가 성인인 것처럼 부처도 성인이다.
예수가 바란 것은 사랑이 충만한 세상인거지. 나만 믿으란 거 아니잖아. 그런거야? 
너희들이 그 따위로 행동하니까 개독교가 된거야. 어짜피 너희들의 나라잖아.
지금은, 지금은 말이야. 

너희들이 그 난리를 치는 것처럼 훈민정음도 쉽게 만들어진게 아니야. 그게 이 영화야.

영화는 만들어진 이후 배포되는 시기, 그리고 세종과 신미대사의 이야기로 후반부를 장식한다.
만들어진 것도 중요하지만 배포되기까지의 그 기나긴 여정의 이야기다.

저 요사스런 작태를 멈추지 않는다면 저희는 더 이상 주상의 전하가 될 수 없습니다.
한글은 이렇게 어렵게 탄생되고 배포되었다. 기득권의 저항을 깨고 말이다.
 이 영화는 대왕 세종을 향해 바치는 노래다.


영화는 영화로 보자. 안 보면 되는거다. 왜곡이라고? 그 건 보는 사람들의 평가인거야.
역사를 후대가 평가하는 것처럼 영화도 본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그 평가에 대해 내가 OK면 보는거다.
아니면 안 보면 되는 거다. 이 정도 여유는 있잖아? 더구나 이 것때문에 세종의 업적을 의심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
누가 그의 애민정신을 의심할 것인가. 그의 업적들은 홍익인간 그 자체아닌가. 나는 그가 한글을 만들지 않았어도
위대한 왕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위대한 왕들이 너무나 많다.
대한민국은 정말 위대한 나라였다. 그 어느 역사의 페이지를 펼쳐도 위대한 나라였다.

솔직히 말해보자. 보지도 못한 넘들이 까는 거고 불교가 나라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가에 배아파하는
개독교들이 까고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에 부나방 불에 띄어들듯이, 망둥이가 뛰니 함께 뛰는 꼴뚜기는 덤이고.

훈민정음 서문 글자수처럼 108번뇌를 떨치거라.

영화 강추한다. 세종대왕은 여전히 백성을 사랑하셨다.

10대이후 모두 추천한다.

ps: 감사합니다. 조철현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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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때였을까? 그래. 아마도 그랬을거야.

샤니의 그대를 사랑해.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청량감은 칠성사이다 수 십병 마신 기분이다.

젊음이 팡팡 터지는 기분이랄까?

이 노래를 정말 좋아했다. 노래방에서도 되지도 않는데 불러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일본노래 표절했다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 노래는

노래방에서 끝났다.

그래서 끝난 노래가 많지. pc통신에서 그런 애기들이 돌기 시작하고 

신문에서 뜨고 그러면 끝나는거다.

그래서 당시의 귀천도애며 천상유애가 끝났다.

그런데 이 노래도?

알고보니 리메이크다. 정식으로 계약맺고 한국정서로 새로 만든 것이다. 

샤니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일본 원곡으 ㄹ들어보자'

 誰よりも愛しく

Y2K 기타리스트가 뮤비에 보인다. 마지막에 사진을 보면 마치 연인인 듯.

샤니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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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야.

박지원을 모르는 사람은 많겠지.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런 가수가 박지원이다.

"느낌만으로" 라는 곡으로 말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났고 그래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스타급들만 찍었던 "카운트다운" CF도 찍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카운트 다운은 서태지와 아이들, 김원준등이 찍었었다. 아마도 김원준 다음으로

찍었을 것이다.

그 에대한 또렷한 기억은 없다. 그런데 그의 노래 단 두 곡을 그렇게도 노래방에서

불러댔었다. 이 느낌만으로는 느낌이 좋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야"는 

그의 라이브에나 어울릴듯한 그 목소리에 매료되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어쩜 그런 세상을 꿈꾸거나 기대했거나 혹은

지냈나? 

내 인생의 한 단면에 기억되던 가수. 

박지원이다.

아름답거나 혹은 기쁘거나 즐겁거나 뭐 그랬던 젊은 시절이다.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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