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오간지 5년이 지난 거 같습니다.
사업상의 이유지만 그 로 인하여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게 되었고
또 이렇게 중국에 와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힘들기 보다는
고이 기억의 한 켠에 남겨두고 싶은.
내 삶의 자양분으로 간직하고자 합니다.
중국에 처음 도착해서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같은 숙박객인 조선족을 만났습니다.
7월의 심천은 한국의 8월보다도 훨씬 덥습니다. 조금 걸으면 땀이 뻘뻘 나지요.
회사를 만나서 계약을 하고 생산을 위해서 나름 격식을 갖추기 위해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하루에 몇 군데 회사를 다니다 밤에 숙소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중국에 대해선 너무나 몰랐고 사람 모르고 제품만 알고 들어온 상태였기에 그 공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러니 숙소에 있는 모든이들이 마치 스승과 같았습니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되새김질 했지요. 민박집 주인은 조선족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형편없는 식사대접에 숙박비는 비쌌고 당시 150원.
친절하지 않은 그런 여성이었죠. 북경에서 온 유학생이 150원이나 냈는데 한동안
밥을 먹지 않다가 어느날 화가 났는지 말하더군요. 반찬이 이게 뭐냐고 말이죠.
머물던 방엔 침대가 두개 있었는데 옆에 조선족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 조선족한테는
별다른 기억은 없는데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 가 말한 것 중에 잋혀지지 않는 것이
중국에서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글쎄 그 것이 조선족을 조심하라는 것인지 아님 중국인인지
, 혹은 한국인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것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고 또 저 또한 중국에서
사업한다고 나오는 사람을 만나서 술한잔 하다가 조언을 원하면 말합니다.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이죠"
그렇게 어렵게 7월에 업체를 찾고 9월에 만들어진 샘플을 보고 정식 계약을 하고 12월에 생산을시작해서
1월경에 한국으로 물건을 보냈습니다. 이전의 경험으로 첫 민박집엔 가지 않았고 다른 민박집에
갔는데 그 곳도 조선족 아주머님이 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이 아줌마는 성격이 괄괄합니다.
한국사람 욕할때도 있습니다. 중국정부가 좋다고도 합니다. 물론 중국의 안 좋은 점에 대해서 말하면
묵묵히 듣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이 분과는 좋은 경험도 있고
유쾌하지 않은 경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진실한 사람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한동안 그 곳 민박집에 있다 보니 손님의 90프로 이상이 단골입니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이 분에게 돈을
바로 입금하고 그 것을 중국회사에 입금해달라고 하며 수고료로 100원정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국 오가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말이 쉽지 몇 천만원의 돈을 입금해달라고 조선족에게 돈을 보내고 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고향에 있을때 공산당 지역간부도 했었다고 하더군요.
적어도 지역에서는 힘좀 쓰는 분이 었던 게죠. 어쨌거나 그 분은 자식들이 손주를 낳으면서 손주봐준다고
민박집을 다른 분에게 넘기고 그만 뒀는데 중국에 오면 그 분이 생각납니다.
물건이 생산이 되던 1월경.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저보다 4,5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하얼빈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심천에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무작정 내려온 사람이었습니다. A라고 하겠습니다.
당시 저는 첫 거래에 첫 상품, 그 것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절박함에 생산은 늦어지는 데다가 모든 것이 첫 경험이었기에
좌불안석이었을 시기였고 A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심천에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는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붙임성이 참 좋더군요. 그렇게 호형호제 하며 새벽까지 노상에서 맥주에 양로우추알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이후에도 둘이 이런저런 애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아가씨 만나러도 가는 거리낌 없는 사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생산이 완료되고 전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A가 걱정이 되서 전화로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다시 중국에 들어가면 그를 통역으로 쓰면서 통역비도 조금은 더 주었습니다.
두 번째 계약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때는 이제 중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있을만큼 노련해진 모습이 든든하더군요.
여유도 생기고 자신의 명함도 파고 사업을 하는것 같은 그런 모양새였습니다. 여기저기 민박집을 다니면서
한국인들의 일거리도 맡고 특유의 친밀감으로 아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말이죠.
중국에 들어갈 때 회사에 줄 잔금을 모두 달러로 바꾸어 그 것을 가지고 갔었습니다.
휴..여기서 말을 하려니 조금 답답해 지는 군요. 상황도 복잡하고 말이죠.
가끔 뉴스나 누가 사기 당했다는 풍문을 듣다 보면 왜 사기당하나 혀를 끌끌 찼는데 제가 당할 줄이야. ㅎ
어쨌든 A라는 친구를 너무나 아꼈기에 설마 설마 복잡한심경에서도 다시 한 번 일을 맡겼습니다.
돈을 보냈다가 견본품이 형편없어서 계약파기하고 돈을 보내라고 했더니 하얼빈에서 같이 공부했던
동생이 심천에 놀러왔는데 그 애에게 맡겼더니 들고 도망갔다고...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더군요. 뭐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중국 심천에서 믿는 사람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분은 아까 말씀 드렸던 민박집 아줌마,
그리고 한 명은 당시 사건을 옆에서 보았던 조선족 동생입니다. 그 친구는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고
한국에 오면 술한잔, 중국에 오면 술한잔, 가끔 통역도 하고 그렇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조선족이군요. 물론 조선족에 대한 편견 이해합니다. 저도 가끔 그런 생각하기도 하고
어쩔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조선족은 중국인입니다. 네 . 맞습니다.
조선족은 한민족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다소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지만 역사속에서 수없이 국경이 바뀌었듯이 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게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중국이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한민족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국적은 바뀔 수 있어도 민족은 바뀌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보면 됩니다.
어느 분 말씀처럼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있습니다.
"중국오면 사람 조심하세요. 여기서 하나 묻죠. 한국인을 사기 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중국인일까요? 아니면 한국인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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