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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는 나의 그 짧은 영어를 성실히 들어주었고 내가 중학교 시절의 영어를 떠 올리는데도 그녀의 인내심이 큰 도움이 됐다. -이 대목은 나이 영어실력이 황이었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언젠가 멜버른 유학생이 내일 귀국한다며 마나미에게 술 한잔 하자고 했나보다. 그 녀는 방구석 스프링 침대에 쳐 박혀 인터체인지를 읽고 있던 나에게 같이 가자고 팔을 끌었고 난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일어났다. 얼마 남지 않은 시드니기에 그냥 보내기엔 아쉬움이 남은 시간들이었다. 술이란 건 가끔 고마울 때가 있다. 그 건 질척거리며 끈질기게 따라붙는 현실에서의 문제들을 희미하게 퇴색시켜 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 날또한 그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난 제 기분에 그만 길을 가다가 뒤로 빠져 어느 골목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어느 집앞의 수은등은, 본 적은 없지만 어릴 적 빠져들었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씨리즈에 으례 나오는 안개 낀 영국의 거리와 흔히 동반되는 그런 칙칙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거기에 투영되는 나의 모습. 음산하기만 한 그 건 또 무엇인지, 음~ 그런데 마나미가 내 모습이 안 보이자 나를 찾다가 그 모습을 보았는데 일순 드는 당혹스럼. 하지만 더 황당했던 것은 그 날 돌아와서 그 유학생이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마나미에게 나의 그 모습을 빗대며 한국사람이 싫다는 애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코스포폴리탄이라고 그러면서, 겸연쩍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냥 방으로 들어와 누워 버렸다.

시드니의 밤은 쓸쓸했고 킹스크로스의 밤은 화려했다. 북적거리던 이 곳 두리하우스도 다 제 갈길을 찾아 떠났고 이제 나만이 남은 것인가. 자신만만을 펼치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마나미가 웃으며 화났냐며 걱정이 되서 왔다는 것이다. 그 녀와 많은 애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는 돈도 얼마 없다. 그래서 지난 몇 일간 괴로웠지만 지금은 괜찮다. 번다버그로 가서 돈을 많이 벌 것이다 등등 나의 그 재미없는
애기를 조용히 들어주었고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 후 우린 게이스트리트로 소문난 옥스포드의 밤거리를 하릴없이 같이 걸었고 30$짜리 스피커 달린 중고 카세트 (귀국하기 전까지 함께 했던)를 사기도했다. 어학공부할량으로 살 거니까 비싼 거 사지 말라며 망설이던 나에게 조언을 하던 그 녀의 모습이 당시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왔을까. 난 그녀와 조그만 항구에서 아침 산책을 하기도 하며 잠시의 여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시간은 빠르다.
왜 찍었을까??? 번다버그로 향하는 아침. 어느 정도 짐을 정리 하고 담배 한 개비를 물던 나에게 그 녀는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1시간쯤 뒤에 내 방으로 들어왔다. 거기에는 유카타를 입은 일본 여성이 서 있었다. 한복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는 유카타속의 마나미는 수줍은 듯, 보여주고 싶었다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저 잘있으라고 할 뿐이었다. 한국에서 얼마전에 내려온 남자 두명과 지영이, 그리고 마나미가 전철역까지 나와 영숙을 배웅해줬다. 난 이놈의 시드니에 다시 올때는 정말 돈 때문에 걸리적 거리지는 말아야지 하며 전철에 올랐고 영숙의 짐을 들어주었다. 그 녀는 전철역에서 연결되는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케언즈에 간다. 괌에서의 생활을 다 가져왔을까? 내 짐과 그 녀의 짐은 내 셔츠를 땀으로 금방 물들였다. 하기야 2년간 생홯하던 것을 정리 했으니, 영숙은 기차에 오르며 너무 고맙다며 케언즈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하지만 그 때 케언즈를 생각하기엔 너무 일렀다.

이제 혼자다. 비장하기까지 했던 그 때. 나는 지도를 보며 길을 물어 터미널을 찾았다. 베낭의 무게를 재고-마치 비행기에서 보딩체크 하듯이-예약권을 승차권으로 바꾸고 버스에 올랐다. 몇 시간쯤 걸리냐는 질문에 운전기사는 갈아타는 Brisbane까지 18시간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번다버그까지 6시간이 걸린다며 웃음을 지었다. 시드니에서의 생활을 묻어버리고 번다버그로 가는 24시간. 그 건 고독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길이었다


시드니가 끝이 났습니다. 번다버그로 향한 버스,
그리고 그 곳에서의 생활들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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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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