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모든 걸 지영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정희와 난 지영을 쫓아 다녔고
그렇게 해서 비자에 입국도장을 찍고 시드니 공항내부로 들어섰다.
정희는 pick up 서비스를 신청한 상태라 워킹 홀리데이 협회에서
나온 사람을 찾고 있었고 나는 지영에게 우리도 그 사람에게
한 번 부탁해 보자는 애기를 했다. 하지만 웬 걸,
내 또래의 남자는 내가 웃으며 애길 꺼냈을 때 한국에서 신청한
사람들만 태운다는 차가운 대답만 들어야 했다.
어짜피 pick up서비스를 신청할 땐 약 5만원 가량의 돈을
한국의 워킹 홀리데이 협회에 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으니
머 할 말은 없었다.
그래, 이제 모든 건 나 혼자 해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에게 의존하려 하지 말자. " 다시금 머리를 흔들고
있을때 지영은 두리 하우스로 가자는 애기를 꺼냈다.
" 두리 하우스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잖아요.
책에서 보니까 주인도 한국사람이고 하니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쪽으로 우선 가보죠"
공항을 나서자 밀려드는 더위와 피곤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가자고 정희에게 말했다. 택시 기사는 우리의 베낭을
직접 트렁크에 실어줬고 난 생소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사람이 마음이 약해지면 감동도 쉽게 받나 보다.

두리 하우스에 도착하고 보니 요금은 약 23불 정도.
팁을 합해서 25불을 지급했다. 당시 환율이 호주 1$당 800원정도.
약 2만원 가량의 요금이었다. 그 곳은 책자에서 말하는
남반구 최대의 환락지구라는 킹스크로스에 위치한 곳이었다.
두리 하우스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2층의 카운터에서
지영의 유창한 영어 (난 지영이가 미국에서 살다 오지 않았는가
의심스러웠다)로 남미 쪽의 청년에게 일 주일간 방세 95$을 내고
나는 2층의 도미토리에 침대 한 칸을 얻었다. 침대가 6개가
놓여 있는 그 곳은 마침 홀랜드인 3명이 있었다. 나는 짐을 정리했고
영어 사전과 영어 회화 책인 interchange를 꺼내는 걸 잊지 않았다.
창 밖을 보며 담 배 한개비를 물었다. 호주 안내 책자를 들척이며
이 곳에 대해 외우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 산 뒤로
한 번도 들척이지 않던 책. 정말 그렇게도 무관심할 수가 잇었는 지,
저녁 무렵의 시드니는 한국의 초가을과 같은 날씨였고
그 것은 날 더욱 힘들게 했다. 어쩜 이 글을 보는 어떤 이는
내가 심약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그 심정들이 나 개인의 소심함에서 비롯된다
할 지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최소한 나보다는
준비를 착실히 해가는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이다.

지영이 머무르게 된 곳은 여자들만 쓰는
싱글베드 2개. 2층침대가 하나 있는 계단 옆의 방이었다.
그 곳에 찾아 갔을 때 그 곳에는 일본 여자가 있었고
그녀의 이름은 마나미란 걸 알게 되었다. 여자치고는
큰 키에 일본인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나미와 간단한 인사
-결국은 Hello와 Where are U from정도-를 했고
정희와 난 근처의 woolwolthy라는 대형 수퍼마켓에 가서
저녁부터 해결을 해야 했다. 지금은 한국도 대형 슈퍼 체인의
형태가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신기하기만 한 그 곳 -제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계산대에서도 바코드로 인식하는-에서
라면중 제일 싼 saving 상표가 붙은 라면을 4개와 쌀 1kg을 샀다.
수퍼를 나오며 영수증을 꼭꼭 챙기던 정희는,
" 우리는 호주 국민이 아니라 세금을 낼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제품에는 다 세금이 붙어 있는데 귀국 할 때 세금을
환불 받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나는 지영에게 내 영수증을 같이 주며 웃음을 지었다.

킹스크로스는 밤이 되면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갈때 들리는 한국말과 일본말,
그 건 나이트 클럽에서 호객하는 소리였다.
그들은 우리가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말로 했다가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다시 한국말로 호객하는 것이다.
네온사인과 형형색색의 불빛들, adult shop, 그리고 PUB들,
우린 백패커스로 돌아왔고 저녁을 각자 해결했다.
방 한쪽에 창문으로 통하는 곳에 샤워실이 있었고 그 곳에는
전기오븐이 있었다. 코일이 감겨있어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으면
코일이 가열되는 방식의 오븐. 한 쪽 싱크대엔 식기류가
아무렇게나 팽개쳐 있었다. 그 것들은 공용이었다.
saving라면을 먹으며 생각한 것은 한 끼를 해결했다는 것!
영어를 공부한 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우선 의사 소통이나
하자는 뜻으로 책자를 들척이다 지영에게 찾아 갔을 때
지영은 마나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나미는
그 곳에 온지 3개월이 되었고 그 뒤로도 만난 다른 일본인과는
다르게 영어를 잘 하는 편이었다. 항상 누구에게나 웃는 표정을
지어주었고 상냥해서 백패커스에서는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한국인이 나, 정희외에 3층에 1명이 있었는데
그는 백패커스 청소를 해주며 숙박비를 면제 받고 있었다.
나는 지영과 우선 내일은 워킹 홀리데이 협회를 찾아 가기로 했다.
당장은 그 곳 밖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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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

우리나라가 03 정권시절 호주 그리고 캐나다와 협정을 맺어
젊은이들끼리 상호 자유롭게 ? 방문하여
문화교류를 하자는 뜻에서 맺어진 협정이지요.
처음에는 영연방에 한하여 가능했지만 점차 확대되어
나갔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한국만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 일 양국간의 협정을 맺어서 일본도 갈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dear Japan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97년 3월 14일 출국하여 그 해 일 년을 못 채우고
IMF구제금융을 받던 12월 그 것도 24일에 입국하였죠.
당시 호주에서는 한국의 경제상황에 많은 관심을 보였거든요.
한국은 호주의 두 번째 무역 상대국이었으니 당연할 지도 모르죠.
첫 째요? 일본이죠. 전 그 때 공항 면세점에서 part timer로
근무하면서 고생쫑 행복쨍을 누리고 있었는데 고 놈의 IMF가
절 부르더군요. 비장한 마음으로(정말 비장했음)
일찍 들어가 보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으로 귀국을 했는데...
이 후 정말 실감나는 IMF한파를 겪었죠.
아니 겪고 있죠.  여러분 처럼요.

이 곳에선 제가 경험한 10여개월의 호주 생활들을
정리해 보렵니다. 얼마전 TV에서 보니 그 날강도 같은
워킹홀리데이 협회가 엄청 컸드라구요.
근무하는 사람들이 몇 십명단위로 말이죠.
제가 갈 때만 해도 4명인가, 5명인가 그랬거든요.
누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나 캐나다 가는데 협회에 등록해서
간다고 하면 도시락 싸가면서 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더덩넘들같으니,....흠, 어쨌든 앞으로 올라올 내용들은
비록 제 개인적인 내용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틈나는 대로 올릴께요.
우선 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기 그 처음으로
제가 들어간 비용을 어느정도 정리해 봤습니다.


워킹홀리데이협회가맹비(수속관련 일체 포함)

비자및 기타

출국시 소지금액

약 110만원

약10만원

약80만원


워킹홀리데이 협회 가맹비에는 싱가폴 항공 1년오픈 티켓
당시 80만원인가 85만원정도에 협회에서 끊었다고 하더군요.
헐,..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지만, 그러니까
약 200만원 들어갔군요.
히휴~~ 내 돈. 제 기억에 근거한 대략 산출입니다.
정말 저는 피같은 돈 다 끌어 모아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귀국할 때 가지고 온 것 빼면 쌤쌤이네요. 쌤쌤??
후훗! 똑같다는 콩글리쉬 아시죠? 그런데 외국인들도 잘만 알아듣더군요.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시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연재되는 글들을 지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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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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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는 한 참을 눈물을 글썽이다가 말을 꺼냈다. 1년동안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있을려니 눈물이 난다고, 극히 소녀적인 감상이었다. 흠, 정희는 대학 2년 휴학계를 내고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했고 시드니의 어학원에 등록을 했으며 홈쉐어까지 마련한 상태였다. 나는 어학원 등록도 하지 않았고 홈쉐어도 하지 않고 무작정 가는 거라며 너털 웃음을 짓고 말았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 "영어 잘 하나 봐요" 나는 그저 쓴 웃음을 짓고 말았지만 일단의 부러움은 피할 수 없었다. 내가 고민하는 게 살기 위함(거듭 애기하는데 이렇게 까지 절실한 표현을 한다고 역겹게 받아 들이지 말아주기를)이아닌 가족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라면 하고 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뒷 좌석에 앉은 지영을 알게 되었고 지영이도 워킹 홀리데이로 시드니에 간다는 걸 알게 되어 우린 쉽게 대화를 풀어나갔고 그 녀가 어학원 등록을 하지 않았고 홈 쉐어 신청도 하지 않은, 정말 나와 같은 입장? 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정말 그 녀와 대화를 쉽게 풀어 나갔다. 나중에야 나와 그녀의 입장이 천양지차라는 걸 알게 됐지만 말이다.

그 녀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에는 자의적으로 가지 않았고 다음엔 스페인에 가고 싶다는, 나 보다는 두 살 어린 이쁘장한 아가씨였다. 당찬 아가씨의 모습이랄까? 콧대 센 서울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경유지인 싱가폴의 창리 공항에 내렸을 때 역시 세계적인 공항이라 다르구나라는 생각. 김포공항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창리 공항은 매 년 우수 공항에 선두를 달릴 정도로 시설이 깨끗이 정리된 모습이었다. 여느 백화점을 연상하게 만드는 내부 인테리어,친절한 직원들, 공항내부의 시장 등, 지영과 난 싱가폴 항공에서 제공하는 city tour에서 같은 코스를 신청했고 그 와중에 그녀의 영어 회화는 가희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지워졌고 우린 그렇게 싱가폴의 깔끔한 도시의 빌딩숲을 보트를 타며 누비고 다녔다. 잠시의 싱가폴 투어는 내가 갖고 있던 걱정들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 잠깐의 시간동안 지영과 난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어쩜 그렇게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이국으로 떠나는 동행의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비행기는 다시 이륙했고 어느덧 기내등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잠을 청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모포를 덮고 잠을 청했다. 기내안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넓은 가운데 좌석으로 가서 길게 누울 수가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스튜디어스의 아침 식사메뉴 권유에 일어나서 바깥을 보니 오스트레일리아를 영공을 지나고 있었다. 두어 시간 뒤에는 도착할 것이라는 방송을 어렴풋이 들었다. 정희는 이미 일어나서 창 밖을 보고 있었고 정희는 계속 잠을 청하고 있었다. 지영에게 정희를 깨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을때 정희는 생각없다고 잠을 더 자겠다고 그랬단다. 흠. 시드니에 도착하게 된다면 이런 식사를 언제 하게 될 지모른다는 생각을 식사를 꼭꼭 챙겨 먹는 내 모습이 삭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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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따스한 기후에 감싸인 해변에 행복이라는 물결이 넘실 거리며 도시엔 미소들만이 떠도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호주는 말이다. 별천지로만 여겨졌던 그 곳에서의 26세의 내 모습. 그 10개월은 나에게 무척이나 고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것은 단지 호주로 갔다는 그 것 이외의 큰 것일지도
모른다. 26의 그 해를 보내며 내게 다가온 열병들과 번민이라 불러도 좋을 -적어도 나에겐- 고민들은 나를 그 곳으로 내 몰았다. 여행이라고 해도 좋고 도피라 불러도 좋을 호주
Working holiday maker로서의 10개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내게 다가온 것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과거는  아름답게 채색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 현재의 불편을 이겨 나가고자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 아름답기만 하던 내 26의 호주가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 기억에 다시 곱게 빛을 내려면 지금 힘을 내야 하지 않을까.

워킹 홀리데이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학교에는 휴학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영어 학원을 다닐까 컴퓨터 학원을 다닐까 하다가 결국은 인터넷학원을 등록했는데 밤에는 학원을 다니고 낮에는 신용카드 가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이도 쏘다녔다. 훗!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이라는 신분이
감춰주는 것들은 많은 것 같다. 경제적인 면에서부터 사회적인 면까지 말이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가끔 그리워 지곤 한다. 공연한 말을 했군. 11월 부터 준비한 워킹 홀리데이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돼서 3월 12일발 호주행
Singapore 항공을 예약했다. 다가오는 시간들 속에 친구들에게도 그냥 베낭여행
간다는 말로 얼버무리고는 -사실 워킹 홀리데이에 애기해도 당시는 그게 뭐냐고 묻는 친구가 태반이라서 말이다-

서울을 탈출하다시피 떠나던 3월 13일 아침.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지 제각기 분주한 모습이었고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 탑승자 명단을 체크하고 있던 공항. 환전 창구에서 9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을 AS 달라로 바꾸고 해외 출국 신고를 하고 나서 보딩 타임만 기다리고 있자니 드는 한심한 기분. 그 건 어쩌면 내 빈약한 경제적 처지에서 비롯된 기분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 것이다. 푸~ 호주에 왜 가냐고 할 때 난 이렇게 말했다. 영어도 배우면서 여행도 하겠다고, 과연 그게 말처럼 될 것인지 스스로 의문을 띄우며 시달렸다. 안전벨트 매구 어쩌고 하는 기내 방송과 함께 옆에 앉은 여학생은 계속 훌쩍 거린다.
"같은 일행이군. 그런데 왜 울고 있지? 어쩜 호주에서의 생활이 불안해서 그런가"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꼈는데 어쨌든 이 아가씨도 무언가에 불안한가 보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게 사람 마음인지 모른다.  그래서 정희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는 오히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더라. 흠냐리~ 어학원에 이미 3개월 등록했고 홈 쉐어로 들어가며 공항에서 pick-up 서비스까지 신청해 놨다는 것이 아닌가. 우는 이유는 1년간 헤어져 있을 부모님과 친구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는 거라는 정말 소녀적인 감상때문이었다. 흠, 또다시 혼자임을 느끼며 앞 날을 씹고 있는데 정희와 대화를 나누던 뒤에 있던 지영도 워킹 홀리데이로 가는 것이며 어학원도 등록을 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난중에 알았지만) 방도 구하지 않았으며 Sidney에 도착하는 대로 일자리부터 구해야 한다는 말에 난 동료를 만난 거 같아 너무 기뻤다. 같은 일행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기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묵중한 이 쇳덩어리가 어떻게 날라다닐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약간의 여유를 가지며 호주 관광책을 읽고 있으려니 김포 시가지가 점점 멀어진다. 1년 뒤에 다시 가까워질 모습들이지. 그 때는 좀 시원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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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가 옮겨와야 겠내요. 소중한 기억이니 만큼 말이죠.
드림위즈 서비스가 종료되어 그 간 방문객들이 남겨준 만여개의 기록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
어쩔 수 없다...어쩔 수 없다..아... 이 말 정말 사람 환장하는 거죠.

someday라는 말을 좋아한다.
막연한 미래의 언젠가를 뜻하는 것이지만
거기엔 무엇인가 나를 기다리는 게 있다고 여겨지니까 말이다.
뭐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늘 하루가 급했고 내일을 걱정하면서 살아오던 때가 훨씬 많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때가 가장 내가 열정적이었을때일 지도 모르겠다.
내일을 알 수가 없어서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은 지나서 나도 내 옆에 있어줄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시급함에
와 있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고귀한? 나이에 도달해 있다. 풋.
여전히 someday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적 60분을 보았습니다.

방금 추적 60분을 보았습니다. 너무 안스러운 마음에 혹시 그 곳에 갈 젊은이들이 용기를 꺽일까 싶어
이렇게 부리나케 두서없이 적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아! 날짜를 알려드리면 오늘이 1월 21일, 호주로 떠난 IMF이민의 현실이라는 제명 아래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청년실업자들의 생활상도 보여주더군요. 혹시 시청하지 못하신 분을 위해서 대강의 내용을 정리 해 봅니다.


IMF사태 이후 미국과 호주로 떠난 이민자들이 과연 그들이 함께 가지고 간 그들의 청사진대로 계획이 착실히 진행이 되고 있느냐, 결론은 아니다라는 논조와 함께 IMF위기를 해외 이민으로 해결하는 건 능사가 아니며 가기전에 착실한 준비를 가지고 강한 돌파력과 적응력이 필요하다는 뻔한 애기였습니다.
워킹 홀리데이의 허와 실이라는 부제아래 나온 화면에는 캐러반에서 생활하며 새벽 4시 30에 일을 나가는 젊은이의 모습과 "빨리빨리" 하며 한국말로 재촉하는 농장의 감독모습도 보여주더군요.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여행도 하고 영어도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감독관이 재촉하며 섭씨 45도씨가 넘는 태양아래서 물먹을 시간도 없는데 언제 한가롭게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냐는 애기였습니다. 그 외 나온 젊은이들 중에는 S전자에서 근무하다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로 온 어느 여성의 애기도 있었습니다. 여성분을 위해서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 여성은 5개월째 직장을 구하고 있는데 한국인이 호주 노동 임금의 단가를 낮출정도로 몰려들어 임금이 낮은 건 둘째치고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이 것 저 것도 할 수 없어 호주 한인촌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그 것도 힘들고 생활 정보지에 광고를 내 보았는데 전화가 오는 곳은 유흥업소뿐이라는 애기더군요. 그리고 현지의 유흥업소에서 웨이스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여성의 인터뷰 내용도 들려주더군요. 이토록 힘든 이국생활에서 어쩜 그 건 유혹일지도 모릅니다.

부디 꼭 준비를 착실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뜨거운 태양과 넘실대는 파도를 생각하시고 호주에 가시면 당혹스런 모습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런 경험이 없었지만 현지에서 그런 애길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더 무섭다" 추적 60분에서는 현지에서 한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임금을 체불해서 결국은 임금을 받지 못하고 귀국한 사람의 인터뷰도 들려 주던군요. 어쩜 이국에서의 그런 일은 이 곳 한국에서의 그런 일을 당할 때 보다 더욱 어이 아니 황당하게 만들겁니다. 꼭 준비를 착실히 하세요
추적 60분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두서 없이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호주에 가시는 분이 있다면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그렇다면 제가 드릴 건 없지만 용기를 드리지요. 마음의 준비란게 별거 없습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호주 정보 빠삭한 두툼한 책과 온갖 준비를 해 가도 맞 닥트리는 문제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저 용기를 갖고 가세요. 꼭 연락하세요. 호주에서 제가 처음 버스를 탄 건 시드니에서 브리스베인까지 순전히 농장을 가기 위해서 18시간을 타고 갔습니다. 그리고 1시간 30분뒤에 6시간 타고 번다버그, 그 황량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제가 갖고 있던 돈은 1100$정도 였습니다. 준비는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것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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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최대의 환락가인 킹스크로스 입구에 서 있는 코라콜라 입간판.
아...저 코크 한잔을 호주에서 8개월만에 마셨다.

번다버그를 떠나면서 친하게 지낸 친구들과 함께. 지금 어디에 있을까. 너무 아쉽다.

당시 케언즈까지 가면서 이용하였던 티켓. 나라가 커서인지 이런 종류의 티켓이 많다.

번다버그 시내. 참...아름다운 곳이다. 외국이라서 그런가? ㅋ

오픈워터 라이센스를 따고 기념으로!

에어리비치에 있는 상어기념관. 뭐 그다지 볼 것은 없지만,

아그네스워터 주변의 누드비치. 쩝. 정말 아무도 없어서 누드로 다녀도 될 듯 하다라는 의미에서의 누드비치?

캐나다에 있던 마나미가 보내준 사진. 어디있는 거니?

에어리비치의 어느 백패커스

1주일 우핑을 했던 독일인 가정.

보웬. 벽이란 벽에는 이렇게 벽화가 모두~

케언즈 공항 면세점에서 일하면서!


참 시간이 찰라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자세한 경험담은 http://someday.dreamwiz.com 한 때는 유명했던 곳이랍니다. ^^;
헉...홈페이지 서비스 종료. 아~~ 도대체 몇 번째인지 원.
서비스 종료하면 또 옮겨야 하는거야? 참. 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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