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가던 마라탕 집이 문을 닫았다. 부모를 도와주던 두 딸과 막내아들이 바쁘게 계산을 하고 음식을

조리하며 대접을 하던 곳이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웃음짓던 그 얘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느 곳이나 경쟁은 치열하다.

1년전쯤 새로 문을 연 마라탕가게. 그 정에 이 동네에 마라탕집이 저 곳과 골목을 돌아가는 곳에 하나가

있었는데 골목돌아가며 있던 곳은 테이블이 2개로 꽉 찰정도로 작아서 사실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곳을 다녔는데 새로 생긴 이 곳은 더 크고 마라탕뿐 아니라 일반요리도 같이 제공을 한다. 그래서 마라탕을 즐겨먹는 젊은이부터 나이드신 분들까지 온다. 결정적으로 맛이 좋다.


삥관근처, 샹그릴라 호텔 뒷편에는 왕쯔호텔이 있고 그 뒤에는 중국은행건물이 런민난로편으로 있는데

그 곳은 삥관들이 있어 여행객이나 외지인들이 많이 머문다. 그런 이들을 삥관에 소개시켜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줄잡아2,30여명이 서성이고 있다. 그래서 식당들이 모여 있는데 샤오츠를

제공하는 식당도 있다. 5위안,10위안정도의 면류를 제공한다. 또 그 앞에는 매일 양복을 입고

잎에 싸인 밥을 파는 아저씨도 있다. 매일 이 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종종 보았는데 팔리는 것을

못봤다. 하지만 매일 이 자리에서 볼 수가 있다.


똥먼시장에 가서 보니 새로 생긴 UCT(도시) 한국상품들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거대한 화면으로 건물안에서 열린 노래자랑대회를 생중계하고 있다. 


화창베이에서 본 스님.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불교가 전파된 만큼 중국도 불교가 꽤나 융성했던 수당시절이 있었다.

남북조를 통일한 수()는 불교계에서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 시기였다. 북주 폐불 사건 이후 수나라의 불교부흥사업은 남북불교를 통합시켰을 뿐만 아니라, 남북조시대의 수입불교가 중국불교로서 새롭게 조직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경의 번역·해석·연구가 결실을 맺고 교단의 조직이 재편성되어 여러 종파가 독립되었다.

수대 불교의 부흥과 융성에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문제()이다. 그는 불교를 국가통치의 지도원리로 채택하였다. 문제는 즉위하자마자 사원 건설을 지원하였고, 민간인의 출가를 허락하였으며, 사도승까지도 공인해 주었다. 또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으로 사리탑의 건립을 들 수 있다.

중국에 있어 수·당 이전의 시대는 불교연구 시기로서 주로 서역에서 불교를 수입해 배웠으나, 수대로 접어들면서 연구의 결실을 맺고 종파불교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수·당의 불교는 명실 공히 중국불교로서 정착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 수나라에서의 천태지의의 천태종, 가상사 길장(, 549~623)의 삼론종, 신행(, 540~594)의 보법종(삼계교)은 종파불교의 선구를 이룬 것이었다.

수나라에 이어 종파적으로도 큰 성과를 이룬 당()대 불교는 중국 불교사상 최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남북조시대의 수입불교 영역에서 벗어나 중국불교의 독자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 당 왕실의 불교보호정책과 함께 고승석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결과이기도 했다. 도작(, 562~645)·선도(, 613~681)에 의한 정토교, 도선(, 596~667)의 남산율종, 현장(, 600~664)·규기(, 632~682)의 법상종, 신수(, 606~706)·혜능(, 636~713)의 선종, 법장(, 643~712)의 화엄종, 선무외(, 637~735)·금강지(, 669~741)·불공(, 705~774)의 밀교 등 이 모든 것이 당대에서 독립되고 대성한 것들이다.

당대의 불교신앙 역시 대중에게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지식인 위주의 것이었다. 이에 일반대중을 상대로 하여 통속적인 불교보급을 목적으로 개설된 것이 속강()이다. 당대의 일반민중이 주로 믿던 신앙은 미륵신앙, 관음신앙, 문수신앙, 사리신앙, 다라니신앙, 시왕()신앙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불교의 전성기 (중국 종교의 역사-도교에서 파룬궁까지, 2006.11.30, ㈜살림출판사)

그런데 와이프가 이 사진을 보더니 가짜 중들이 많다고 한다. 먹고 살기위해서겠지만.

 

신장사람이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한 쪽에 돗자리를 깔고 절을 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메카가 있는 방향이겠지. 종종 길에서 호두나 땅콩등 견과류를 파는 신장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지하철에서 본 공중전화. 중국인들도 잘 쓰지는 않는데 가끔은 본다. 우리나라엔 없잖아. 있나?

종종 가는 지하철역 까페다. "띠티에잔"테이크아웃인데 홍콩커피가 달달하니 맛있다.

8위안인데 양이 많아서 더욱 땡뀨.

화창베이를 지나다가 본 광경. 10위안을 주고 망치로 저 알을 깨서 나오는 종이에 써진 상품을 주는 것이다. 뭐 말로는 아이폰6와 같은 대박상품도 있고 퐁퐁같은 것도 있다. 그런데 사실 돈을 벌자고 하는 것인데 아이폰6가 나올 수가 있을까? 나온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알을 10위안도 안 되는 상품을 넣어야 아이폰과 수지를 맞출까. 그런데도 사랆들은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일까 몰라도 말이다. 

 

그렇게 중국의 하루는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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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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