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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하염없이 호주의 도시를 떠 간다. 이대로 계속 달리면 어디로 갈까. 어둠이 창가를 스치기 시작한다. 창밖을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창밖만 내다 본다. 가끔 뜬금없이 바보같은 짓을 할 때가 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지금에도 말이다. 그럴 때 혼자말을 한다. 너 바보 아냐? 그리곤, 씨~익 하고 웃어 버린다. 어릴 때 염세관에 빠진 적이 있다. 글쎄, 그 것이 정말 염세주의라 말할 수 있는 건지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염세관이었고 허무주의였다. 오랜 만에 펴든 일기장에 이런 글이 보인다.

"비관론자는 낙관론에 비관하는 게 아닌 비관론에 낙관하는 자이다"

다시 써퍼스에서 버스를 타고 간 곳은  Milliam vale. 지애의 말로는 독일인 가정이라고 했다. 내가 우프회원이 아니라고 하자 별일 없을 거라고 일단 오라고 했는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쯤 그 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지애 야마다. 처음 만났을 때 한국이름과 비슷하다고 했더니 무엇이 좋은지 활짝 웃던
동그랗던 눈이 생각난다. 번디에서 첫 날. 여자가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을 하고서는 마치 전투에서 돌아온 군인처럼 자랑스럽게 애기하던, 그 때까지도 일본인은 돈이 많아서 그런 곳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더군다나 여자는 더욱 말이다. 그래서 더욱 연약할 것 같던 일본 아가씨. 마나미로 인해 일본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면 지애는 일본도 한국의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게 되었다. 친구가 말이야. 얼마를 갔을까? 차 타기전에 물었던 밀리엄 베일에 왔는지 운전기사분이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는다. 다 왔냐고 묻자 다 왔단다. 외국 관광객을 많이 태워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올라타고 차가 출발할 무렵, 불안한 마음에 이 차 밀리엄 베일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안 간다고 차 잘못 잡았다고 너스레를 떨던 넉살좋은 그의 미소를 뒤로 하고 차를 내렸다. 저 만치 전화 부스가 보인다. 수화기를 들면서 뿌듯한 마음은 무언지, 내 이름은 쟈니... 우핑...지애... 잠시 후 지애가 받는다. 이제 30분뒤면 만나겠군.

하늘아래 이 곳만 있는 걸까. 셀프 주유기가 몇 대있는 작은 주유소. 한 편에 덩그러니 놓여진 전화 부스. 그리고 편의점에서 졸고 있는 아가씨. 언제 봐도 모래알 처럼 수없이 반짝이던 별들. 저 중 하나가 이 곳으로 떨어지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며 너털 웃음 짓던 남반구의 밤하늘. 이런 곳에서 담배 한 개비를 핀다면 좀 멋있게 보일테지. 영화의 한 장면같이 말이야. 관객은 없더라도 말이야. 베낭 한 켠에 짱박아 둔 Malboro를 말아본다. 40센트에 50개비의 담배를 말 수 있는 담배 종이와 1달러가 조금 넘는 새하얀 필터들. 그리고 14$가량하는 말보로 빨간 딱지. 영어 단어 연습할 때 혀 굴린답시고 Marlboro 와 Clean을 지껄이곤 했다. 말보로는 이후 케언즈 공항의 면세점에서 근무하며 마일드 세븐(88이 없다)에 자리를 내어주기전 까진 나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늘 옆에서 불살라 준 충실한 동행이었다. 어느새 익숙해져 손가락 끝에서 몇 번 비틀리고 마무리로 입술을 대면 한 까치의 말보로가 수줍은 듯 손가락사이에서 맴돈다. 그렇게 몇 까치를 더 말았을 때 저 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친다. 베낭과 작은 가방, 그리고 롤러 블레이드를 챙긴다. 이 놈의 롤러 블레이드를 팔아 버리는 건데 중얼 거린다. 지애가 뛰어 나온다.


그의 집은 Grocery다. 우리가 하는 일 또한 Watering이라고 하는 화초에 물뿌리기. 그리고 Weeding. 오전만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우핑이었다. 그의 집은 우프에 가입되어 있는 농가였기에 우퍼들을 위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 날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나를 위해 그 들은 음식을 준비해 줬고 그들의 따듯한 배려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우핑회원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말을 했고 그들의 잠깐 멈칫하는 표정. 이내 왜 우핑회원을 받는 지에 대한 이유. 그 것은 만약의 사고시 우핑회원 가입시 자동으로 가입되는 의료 보험 때문이라고 말 한다. 어떤 우핑 경험자들의 말을 들으면 매일 아침 말의 분뇨를 치고 건물 짓고 고생만 하다가 돌아온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편한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 부분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말이다. 다행이 나는 농장주를 잘 만났다고 해야 할까? 그 곳에서 일 주일간 호주의 전원을 만끽하고 떠난다. 그 곳에는 이미 알젠티나의 19살 된 아가씨가 우핑을 먼저 하고 있었다. 그 녀는 몇 개월전에 이 곳에서 우핑을 하다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왔단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란다. 그 녀는 집 본채 바깥에 있는 캐러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도 다른 국민성을 갖고 있지만 어딘가 비슷한 점은 존재하지만 알젠티나와 이 쪽은 틀린 점이 너무 많은 건 같다. 그 곳에 있는 동안 식사 시간후 약 30여분간 여러 가지의 주제를 놓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지곤 했다. 각 국가간의 생활상이라든가 국민성을 약간이나마 엿 볼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부족한 어휘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지만 귀기울여 주었기에 나의 어학실력도 많이 늘었다. 난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든 베낭여행객이든 우핑을 권하고 싶다. 비록 일 주일이었지만 3주 이상 한 곳에서 있는다면 어학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 곳의 민영방송중 하나인 sbs에서는 호주에 온 여러 민족들을 위해서 각 국의 영화를 틀어주기도 했는데 한국영화를 할 때면 한국영화한다고 다 같이 모여 보기도 하며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기도 하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반전 주의자였고 평화주의자였다. 마치 존 레넌의 Imagine 처럼 말이다.


참 그 곳에서의 당혹스런 기억 한 토막.

언젠가 식탁에서 각국의 음식에 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애기가 나와서 나는 나대로, 지애는 지애대로 애기 하다가 지애가 내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며 부추기는 바람에 다음 날 저녁은 내가 준비하기로 되었다.나는 내가 만드는 것은 한국요리도 아니고 단지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이라며, 양념들이 없기에 별루라고 애써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은 한국음식을 맛 보고 싶다고 극구 청하는 것이었다. 이런,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고추장을 이용해서 이 것 저 것 야채와 함께 만들었지만, 훗! 지애나 좋아할까. 만들면서 풍기는 고추장내에 눈살을 찌푸리던 그 알젠티나 아가씨는 다 만들어진 그 것을 한 숟갈 뜨고는 못먹을 것을 먹은 것 처럼 솓가락을 내려 놓을 때의 그 무안함. 나는 그렇다 쳐도 추천한 지애는 어떤 기분일까. 어쨌든 그 날은 그 알젠티나 걸에게 서운한 정도를 넘어서는 기분을 갖고 있었다. 독일인 부부는 성의를 생각해서 인지 끝까지 한 그릇을 비웠는데 그 것도 곤욕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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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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