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은 따스한 기후에 감싸인 해변에 행복이라는 물결이 넘실 거리며 도시엔 미소들만이 떠도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호주는 말이다. 별천지로만 여겨졌던 그 곳에서의 26세의 내 모습. 그 10개월은 나에게 무척이나 고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것은 단지 호주로 갔다는 그 것 이외의 큰 것일지도
모른다. 26의 그 해를 보내며 내게 다가온 열병들과 번민이라 불러도 좋을 -적어도 나에겐- 고민들은 나를 그 곳으로 내 몰았다. 여행이라고 해도 좋고 도피라 불러도 좋을 호주
Working holiday maker로서의 10개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내게 다가온 것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과거는  아름답게 채색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 현재의 불편을 이겨 나가고자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 아름답기만 하던 내 26의 호주가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 기억에 다시 곱게 빛을 내려면 지금 힘을 내야 하지 않을까.

워킹 홀리데이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학교에는 휴학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영어 학원을 다닐까 컴퓨터 학원을 다닐까 하다가 결국은 인터넷학원을 등록했는데 밤에는 학원을 다니고 낮에는 신용카드 가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이도 쏘다녔다. 훗!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이라는 신분이
감춰주는 것들은 많은 것 같다. 경제적인 면에서부터 사회적인 면까지 말이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가끔 그리워 지곤 한다. 공연한 말을 했군. 11월 부터 준비한 워킹 홀리데이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돼서 3월 12일발 호주행
Singapore 항공을 예약했다. 다가오는 시간들 속에 친구들에게도 그냥 베낭여행
간다는 말로 얼버무리고는 -사실 워킹 홀리데이에 애기해도 당시는 그게 뭐냐고 묻는 친구가 태반이라서 말이다-

서울을 탈출하다시피 떠나던 3월 13일 아침.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지 제각기 분주한 모습이었고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 탑승자 명단을 체크하고 있던 공항. 환전 창구에서 9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을 AS 달라로 바꾸고 해외 출국 신고를 하고 나서 보딩 타임만 기다리고 있자니 드는 한심한 기분. 그 건 어쩌면 내 빈약한 경제적 처지에서 비롯된 기분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 것이다. 푸~ 호주에 왜 가냐고 할 때 난 이렇게 말했다. 영어도 배우면서 여행도 하겠다고, 과연 그게 말처럼 될 것인지 스스로 의문을 띄우며 시달렸다. 안전벨트 매구 어쩌고 하는 기내 방송과 함께 옆에 앉은 여학생은 계속 훌쩍 거린다.
"같은 일행이군. 그런데 왜 울고 있지? 어쩜 호주에서의 생활이 불안해서 그런가"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꼈는데 어쨌든 이 아가씨도 무언가에 불안한가 보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게 사람 마음인지 모른다.  그래서 정희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는 오히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더라. 흠냐리~ 어학원에 이미 3개월 등록했고 홈 쉐어로 들어가며 공항에서 pick-up 서비스까지 신청해 놨다는 것이 아닌가. 우는 이유는 1년간 헤어져 있을 부모님과 친구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는 거라는 정말 소녀적인 감상때문이었다. 흠, 또다시 혼자임을 느끼며 앞 날을 씹고 있는데 정희와 대화를 나누던 뒤에 있던 지영도 워킹 홀리데이로 가는 것이며 어학원도 등록을 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난중에 알았지만) 방도 구하지 않았으며 Sidney에 도착하는 대로 일자리부터 구해야 한다는 말에 난 동료를 만난 거 같아 너무 기뻤다. 같은 일행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기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묵중한 이 쇳덩어리가 어떻게 날라다닐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약간의 여유를 가지며 호주 관광책을 읽고 있으려니 김포 시가지가 점점 멀어진다. 1년 뒤에 다시 가까워질 모습들이지. 그 때는 좀 시원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wrt xeus 022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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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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