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협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1시나 됐을까.
시드니에서 첫 날밤을 어떻게 보냈는 지 기억에 없다.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부석부석해지는 기분.
세수하고 라면에 밥 말아 먹고 킹스크로스로 향해 난 창가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영이에게 찾아갔다. 노크를 하자 문을 여는 일본 여자.
아 마나미지. 굿 모닝을 하며 미소를 만들고 머리에 정리아니
암기된 지영이 어디갔냐고 영작을 하자 그녀는 지영? 지영?
고개를 갸웃 댄다. "나하고 같이 왔던 한국여자"
그러자 그녀는 아! 하는 제스춰와 함께 아침에 나갔다고 한다.
아침에? 어딜 갔지? 나는 딱히 더 할 말도 없고 없는 게 아니라
말이 안 되니 문을 닫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영어 교재를
들척이고 있었다. 귀에 익은 한국말 소리. 앗! 반가운 마음에
나가보니 두 명의 한국남자. 그들은 어딘가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로의 소개끝에 그들은 어제 저녁에
도착했으며 지금은 워킹 홀리데이 협회에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안 반가울리가 있겠는가) 그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시드니의 시내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이었다.
얼마나 걸었는 지 모른다. 그들 영어나 내 영어나 바닥을
기고 있었고 간신히 질문을 하면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이해가 빨랐다. 그들과 대화중에 저 만치 보이는
다리가 하버 브리지라는 것도 알았고 시드니 인구가 어떻고
하는 것을 알았으니, 어쩜 이 글은 읽는 분중에는 정말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지 모른다. 어쩜 그게 당연하다.

어쨌든 그들과 함께 워킹 홀리데이 협회를 찾아가게 되었고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마자 보이는 구인광고와 쉐어광고등이
덕지덕지 붙은 게시판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 여기서 일자리를
잡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사무실 안에는 한 무리의 떼거리들이
있었고 그 들중에는 정희의 모습도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었더니 어느 호주인집에서 쉐어를 하고 있는 데 너무 좋다나
어쨌다나. 이그.. 그리고 학원은 다음 주부터 다닌다는
속 뒤집어 놓는 소리들이었다. 흠...나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냥 씩~웃음 짓고 말았지만, 곧 그들은 헤어졌고 그 것이
정희와의 마지막이다. 사무실 아가씨에게 어제 한국에서 왔다고,
이 곳에서 통장도 만들어주고 일자리도 알선해 주고
세미나같은 것(초기 체류자를 위한 안내같은 것)도 해 주냐고
-이 것들은 한국에서 협회 가입당시 안내문에 명시된 내용들이었다.
회원 혜택이라는 이름으로- 물었을 때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저 사람들은 다 만들었다고, 일자리는 알선해주는 것은 아니고
단지 정보만 주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미나에 대해선
기억이 안난다. 단지 기억에 남는 건 너무 큰 실망과 허탈감에
황당해 했던 기억뿐. 게시판에 대해 물었을 때 그 것은
단지 한국 정보지(교차로 비슷하지만 책자 형태)가 발행되기 전날
미리 정보를 입수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좀 더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일 뿐 협회에 따로 일자리가 들어오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가씨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에서였는지 은행에 전화를
해 주겠으니 가면 알아서 해 줄 것이라는 배려?를 해 줬다.
우리는 털레 털레 common wealth bank를 물어 물어 갔더니
은행원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여권번호와 두리하우스 주소등을
적고 통장을 만들었다. 1주일 뒤에 주소지로 보내 진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한가지를 했다는 만족감에 두리로 돌아왔다.
시드니 시내를 걸어오며 어떻게 해야 할 까라는 난감한 기분과
까짓 설마 여기서 죽기야 하겠냐라는 생각등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난 지금도 시드니는 별 기억이 없다. 물론 그 곳에서 어떤 비치와
하버 브리지를 건너고 오페라 하우스를 가고 그랬지만
기억에 남는 건 마나미함께 했던 킹스크로스에서 가까운
윌리암 스트리트와 옥스포드 스트리트뿐이다.
여기서는 내 기억에 있는 내용만 담을 것이다.
그렇게 두리로 돌아왔을때 지영이가 있었다. 지영이에게 통장을
만들었다고 하며 아까 어디 갔냐고 했을 때 그 녀는 방을 구했으며
내일 방을 옮긴다는 것이다. 맙소사! 이 놀라운 일이 아닌가?
역시 여기서는 영어가 최고다. 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놈이 최고지만
나이트에선 춤 잘추는 놈이 최고 아닌가.
그 녀는 자기도 통장을 만들어야겠다며 같이 은행에 가게 되었다.
은행원과 예의 그 유창한 대화끝에 그 녀는 신청을 마쳤고
나는 카드를 직접 은행에 가서 찾으면 더 빨리 가질 수
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두리로 왔을 때 멜버른에서 왔다는 유학생을
만났다. 그는 올 해 졸업하게 되어 귀국을 앞두고 있다는 학생이었다.
그는 자신의 호주 생활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말하는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거북스러울 수도 있는 자칭 cosmopolite
였지만 그런 말들이 모두 나에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는 다른 곳에서 머물고 있는데
예전에 이 곳에서 머물렀던 기억이 있어 놀러 왔다는 것이다.
그 날 밤,
우리는 그리피스(Greefith)에서 올라온 두 명의 시커먼스를
만나게 되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로 필리핀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그들이 내게 준 정보.
그 건 번다버그(Bundaberg)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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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

공항에 도착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모든 걸 지영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정희와 난 지영을 쫓아 다녔고
그렇게 해서 비자에 입국도장을 찍고 시드니 공항내부로 들어섰다.
정희는 pick up 서비스를 신청한 상태라 워킹 홀리데이 협회에서
나온 사람을 찾고 있었고 나는 지영에게 우리도 그 사람에게
한 번 부탁해 보자는 애기를 했다. 하지만 웬 걸,
내 또래의 남자는 내가 웃으며 애길 꺼냈을 때 한국에서 신청한
사람들만 태운다는 차가운 대답만 들어야 했다.
어짜피 pick up서비스를 신청할 땐 약 5만원 가량의 돈을
한국의 워킹 홀리데이 협회에 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으니
머 할 말은 없었다.
그래, 이제 모든 건 나 혼자 해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에게 의존하려 하지 말자. " 다시금 머리를 흔들고
있을때 지영은 두리 하우스로 가자는 애기를 꺼냈다.
" 두리 하우스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잖아요.
책에서 보니까 주인도 한국사람이고 하니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쪽으로 우선 가보죠"
공항을 나서자 밀려드는 더위와 피곤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가자고 정희에게 말했다. 택시 기사는 우리의 베낭을
직접 트렁크에 실어줬고 난 생소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사람이 마음이 약해지면 감동도 쉽게 받나 보다.

두리 하우스에 도착하고 보니 요금은 약 23불 정도.
팁을 합해서 25불을 지급했다. 당시 환율이 호주 1$당 800원정도.
약 2만원 가량의 요금이었다. 그 곳은 책자에서 말하는
남반구 최대의 환락지구라는 킹스크로스에 위치한 곳이었다.
두리 하우스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2층의 카운터에서
지영의 유창한 영어 (난 지영이가 미국에서 살다 오지 않았는가
의심스러웠다)로 남미 쪽의 청년에게 일 주일간 방세 95$을 내고
나는 2층의 도미토리에 침대 한 칸을 얻었다. 침대가 6개가
놓여 있는 그 곳은 마침 홀랜드인 3명이 있었다. 나는 짐을 정리했고
영어 사전과 영어 회화 책인 interchange를 꺼내는 걸 잊지 않았다.
창 밖을 보며 담 배 한개비를 물었다. 호주 안내 책자를 들척이며
이 곳에 대해 외우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 산 뒤로
한 번도 들척이지 않던 책. 정말 그렇게도 무관심할 수가 잇었는 지,
저녁 무렵의 시드니는 한국의 초가을과 같은 날씨였고
그 것은 날 더욱 힘들게 했다. 어쩜 이 글을 보는 어떤 이는
내가 심약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그 심정들이 나 개인의 소심함에서 비롯된다
할 지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최소한 나보다는
준비를 착실히 해가는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이다.

지영이 머무르게 된 곳은 여자들만 쓰는
싱글베드 2개. 2층침대가 하나 있는 계단 옆의 방이었다.
그 곳에 찾아 갔을 때 그 곳에는 일본 여자가 있었고
그녀의 이름은 마나미란 걸 알게 되었다. 여자치고는
큰 키에 일본인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나미와 간단한 인사
-결국은 Hello와 Where are U from정도-를 했고
정희와 난 근처의 woolwolthy라는 대형 수퍼마켓에 가서
저녁부터 해결을 해야 했다. 지금은 한국도 대형 슈퍼 체인의
형태가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신기하기만 한 그 곳 -제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계산대에서도 바코드로 인식하는-에서
라면중 제일 싼 saving 상표가 붙은 라면을 4개와 쌀 1kg을 샀다.
수퍼를 나오며 영수증을 꼭꼭 챙기던 정희는,
" 우리는 호주 국민이 아니라 세금을 낼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제품에는 다 세금이 붙어 있는데 귀국 할 때 세금을
환불 받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나는 지영에게 내 영수증을 같이 주며 웃음을 지었다.

킹스크로스는 밤이 되면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갈때 들리는 한국말과 일본말,
그 건 나이트 클럽에서 호객하는 소리였다.
그들은 우리가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말로 했다가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다시 한국말로 호객하는 것이다.
네온사인과 형형색색의 불빛들, adult shop, 그리고 PUB들,
우린 백패커스로 돌아왔고 저녁을 각자 해결했다.
방 한쪽에 창문으로 통하는 곳에 샤워실이 있었고 그 곳에는
전기오븐이 있었다. 코일이 감겨있어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으면
코일이 가열되는 방식의 오븐. 한 쪽 싱크대엔 식기류가
아무렇게나 팽개쳐 있었다. 그 것들은 공용이었다.
saving라면을 먹으며 생각한 것은 한 끼를 해결했다는 것!
영어를 공부한 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우선 의사 소통이나
하자는 뜻으로 책자를 들척이다 지영에게 찾아 갔을 때
지영은 마나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나미는
그 곳에 온지 3개월이 되었고 그 뒤로도 만난 다른 일본인과는
다르게 영어를 잘 하는 편이었다. 항상 누구에게나 웃는 표정을
지어주었고 상냥해서 백패커스에서는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한국인이 나, 정희외에 3층에 1명이 있었는데
그는 백패커스 청소를 해주며 숙박비를 면제 받고 있었다.
나는 지영과 우선 내일은 워킹 홀리데이 협회를 찾아 가기로 했다.
당장은 그 곳 밖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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