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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도 고개숙여… 정관계 실력자와 교분/암표장사 출신 국내 빠찡꼬 지분 70% 소유

「빠찡꼬업계의 대부」 「동양의 큰손」으로 불리며 정치권의 자금줄로 소문난 정덕진씨(53)는 한마디로

「암흑가의 황제」나 다름없다.


전설적인 주먹잡이 유지광을 「형님」으로 모셨는가 하면 서방파두목 김태촌이 그앞에선 고개숙인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한국의 낮과 밤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라는 다소 과장된듯한 별칭까지 갖고 있는

정씨는 함경남도 북청태생으로 6·25때 월남,서울 명보극장 부근에서 암표장사를 하며 뒷골목에 발을 들여놓았다.

정씨는 60년대말 현 단국대 윤모교수를 만나면서 빠찡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윤교수가 운영하던

청계천 전자오락가게를 인수,탁월한 사업수완을 보여 호텔나이트클럽,카지노,빠찡꼬에 이어

호텔업에까지 진출했다. 국내 빠찡꼬업계에 70% 정도의 지분을 갖고 거기서 나오는 엄청난 수입으로

정관계 실력자와 교유해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난 87,88년 고액납세자순위 46,39위에 랭크된

수천억원대의 재력가다. 일부에서는 그의 재산이 1조원을 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웬만한 재벌총수 이상의 현금동원능력을 가졌다는게 검찰의 분석이다. 정씨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호텔은

서울희전호텔,부산의 로얄관광호텔 신신호텔등이며 10여개호텔에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나 벤츠 BMW등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그는 어느곳에 가더라도 「정회장」으로 불리며 칙사대접을 받는다.

그의 80대 노모가 지방나들이 갈때는 30여명의 「어깨」들이 동원된다는 소문이 나있을 정도로

조직폭력배 세계에서 깍듯한 예우를 받는다.

12·12사태가 나던날밤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3일동안 정치인과의 유착여부에 대해 조사받기도 한

동생 정덕일 65년부터 81년까지 11차례나 검·경에 폭력·상습도박등 혐의로 입건된 적이 있다.

하지만 81년 벌금형을 한번 받았을뿐 단 한차례도 형사입건된적이 없어 권력과의 유착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과거 정씨가 자신의 사업을 확장시킨 배경은 이렇다. 1980년대 중반까지 슬롯머신 업소는

허가받은 일부 호텔에서만 영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슬롯머신 업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3년 당시 79개 업소가 서울에 문을 열었고, 전국적으로는

330여개의 업소가 새로 생겨났다고 한다.

빠찡꼬 왕 정덕일

문제는 이처럼 우후죽순 번지는 슬롯머신 업소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했다는 점이다.

사정당국의 단속 의지도 없었다. 사행성 조장, 승률조작, 탈세 등의 우려에도 사정기관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슬롯머신 업자들은 이들 사정기관과의 '검은 공생'으로 국내 슬롯머신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90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한뒤 혼자 국내에 드나들며 사업을 계속해 왔다.

이 과정에서 '신데렐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정씨의 형 덕진씨다. 덕진씨는 주먹세계의 신흥강자로 군림하며

슬롯머신 업소 9곳을 운영했다. 호텔도 5개나 갖고 있었다. 돈냄새를 맡은 조폭들은 덕진씨와 한 배를 탔다.

이들은 덕진씨의 호텔을 기점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슬롯머신 업소가 호황을 맞으면서

덕진씨와 '파친코 왕' 동생 정씨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당시 이들 형제에게 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유력 정치인 및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가 정씨 형제를 비호하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됐다.

실제로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쓴 회고록 <청춘은 맨발이다>를 보면 정씨의 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신씨는 1987년 지인의 주선으로 정씨를 만난 뒤 친형체처럼 가까워졌다.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자 정씨는

서울 석촌호수 맞은편에 뉴스타 호텔을 지었다. 정씨의 사업은 실패를 몰랐고 급기야 그는 신씨에게 스폰을 제안했다.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그렇지만 신씨는 "영화를 하고 싶다"며 거절했고,

그럼에도 정씨는 선뜻 1억원의 수표를 건넸다. 1990년대 초반 정씨는 노태우정권 최고 실세였던 박철언 의원을

소개해달라고 신씨에게 부탁했다. 신씨는 자신의 경북고 후배인 박 의원을 정씨와 만나게 해주었다.

신씨는 정씨에게 1987∼1993년까지 모두 40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영화제작에 쓰였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이처럼 '파친코 왕'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자금을 사회 각계각층에 살포했다. 자신들을 외풍에서

막아줄 비호세력을 찾은 것이다. 정씨가 쓴 돈은 일종의 '공작금'으로 이해됐다. 정씨가 무차별로 뿌린 돈에

사회고위층이 중독됐다. 자타공인 6공 2인자였던 박 의원도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검은 돈의 뿌리는 깊고도 단단했다.

 

그의 화려한 전성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철퇴를 맞았다.

1993년 김 전 대통령은 사정당국에 '거악 척결'을 지시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현 경남도지사)는 정씨를 비호한 조폭, 정치인, 검찰 등에 대한 사정작업을 벌였다.

권력층은 긴장했다. 슬롯머신 사업권을 둘러싼 로비에서 자유로웠던 정치인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심지어 정씨의 큰형 덕중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자신이 직접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상황이었다.

정씨는 1992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YS의 선거운동에 깊숙이 개입했다. 생전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YS가 나를 친아들처럼 대해줬다"며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씨 일가는

YS가 휘두른 매서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일격을 당한 셈이다.

정씨 일가 입장에선 '대통령이 되도록 도왔는데…'라는 원망이 나올 법도 했다.

검찰 수사에서 정씨 일가는 관료와 정치권 등 사회 권력층이 대거 연루된 게이트의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다.

요샛말로 '정덕일 리스트'가 수사대상이 된 것이다. 작심한 홍 검사는 정씨 형제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정씨가 전날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는데도 호텔을 급습해 기어이 체포했다.

검찰은 정씨가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5억원이 담긴 007가방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박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 등 각종 비리 혐의를 밝혀냈다.

최초 박 의원은 금품수뢰 혐의를 부인했지만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등

권력층 인사가 줄줄이 구속되면서 수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끝내는 정권 '넘버2'인 박 의원도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후 홍 검사는 일명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돈을 건넨 정씨는 저 유명한 '플리바게닝'으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박철언 게이트' 이후 정씨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까지 대거 동원해 군 위문공연을 다녔다는

정씨는 유착했던 정관계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잃었다. 신씨 등 연예인에게 수억원이 넘는 용돈을 건넸던 위세도 잠시,

정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된다.

군대가기전 삼전동에서 기숙하면서 석촌호수에 가끔 가서 술 빨았는데 그 때 뉴스타라는 호텔이 보인다.

그게 정덕진꺼였구나. 참 돈 잘 번다.

대한민국 돈 버는 방법은 참 많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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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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