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디는 번다버그의 애칭이다. 도시에 애칭을 부치는 자유.

그 일 이후로 다시 1주일을 지내다가 나에게 돌아온 일은 `스쿼시'라는 야채를 따는 일이었다. 스쿼시.  농장주는 Dunn, 많은 과일을 따 보았지만 힘은 힘대로 들고 돈 안 되는 일이 바로 이 것을 따는 것이다. 농장에서 사실 힘 드는 것은 없다. 여자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허리가 무척 아프다는 것! 그래서 혹시 농장에 갈 작정이라면 차라리 신신파스 같은 조그만 걸루 왕창 사갔으면 한다. 물론 그 곳에도 맨소래담 비슷한게 있긴 하지만 조금 비싼 거 같고 무겁지도 않으니 말이다. 상비약이라고나 할 까? 머 한 참 뒤에는 아픈 게 정상인 것처럼 아픈대로 일하지만 처음 보름간은 정말 허리가 내 허리가 아니었다. 이 후 농장에 있는 동안 약 4개월은 신경통을 달고 다니는 것 같다. 글세 허리가 튼튼해 진다면 모를까. 이 건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호소하다시피 말하는 통증이다. Backpain을 연발하며 서로 웃다 보면 잠시 넘기기도 하지만 잠 잘 무렵 좋은 침대도 아닌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음. 청정원 마요네즈 TV CM에 보면 보이는 끝이 안 보이는 그 밭을 배경으로 두 꼬마들이 웃음을 짓는 데 그 뒷모습을 보고 호주의 농장을 상상하면 비슷할 듯하다. 전부 다야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컨트랙인 줄 알고 정말 허리를 피지 않고 따며 작업 후에 주어질 급료를 계산하고 있었는데 어라! 그 건 시간급이었다. 쩝! 어쨌든 Dunn은 나보러 베스트 워커라며 입에 칩이 말라라 칭찬을 했지만 속쓰림은 어디에 하소연하노. 몇 일 뒤 다시 주어진 일은 번다버그의 하이라이트였던 keities농장의 egg tomato. 정말 달걀같이 생긴 토마토를 색깔 구분해서 갖고 다니는 바켓에 채울 때마다 매니저가 각자에게 나누어진 표식을 꽂아 놓고 일이 끝난 후 그 표식을 계산 하는 일이었다. 내 경험에선 이 게 가장 짭짤한 벌이었던 것 같아. 물론 내가 경함한 과일따기에서 만 말이다. 그 건 컨트랙이었고 그 만큼 뛰어다녀야 했다. 그 곳에서 한 태국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뛰어다니며 밥먹는 시간 마저도 아까운 듯 도마토를 따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 는 영국 여자-애인이 아닌 가 싶다-와 함께 다녔는데 둘이 정말 일을 잘 했다. 마치 돈 벌러 호주에 온 사람들 처럼 말이다. 나도 그런 계획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학교 등록금을 호주에서 벌어 온다는 -오래 전에 지워 버렸고 그 저 남은 기간 별 탈없이 잘 있다 갔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열심히 뛰면 100불 이상은 챙길 수 있었다. 다른 이는 나를 부러워 했지만 지금까지 일도 못하며 보내온 시간을 보상한다는 생각에 땀을 흘려야 했다.

 가끔 번다버그 시내를 돌아다니며 근처의 호스텔에 있는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지내기도 했다. 저마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 무슨 사연이든 들여다 보면 귀를 기울이면 가슴 저미는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친구들, 친구들이라 부르기엔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이 대부분 인지라 머 하지만 그 곳에서 그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호주까지 오게 된 경유야 필설로 다 하랴만 말이다. 지금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안고 그 곳에 갔겠지만 말이다. 호주에서 만난 이들은 대학생이 대 분분이었지만 삼성 반도체의 연구원에 다니다 경험을 쌓겠다는 이유로 퇴사하고 나온 사람, 학교 졸업하고 온 사람, 휴학계 내고, 백수 건달로 집에서
부모 돈으로 카페 사장하다가 재미 없다고 놀러 온?, 동생. 참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았다. 번다버그에서는 많은 일본인들을 만났는데 이상한 것은 일본 여자들은 부침성이 좋은데 남자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글쎄...... 어느 서양의 인류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지 아마,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중국인 요리사를 두면 그 남자는 행복한 거다"라고, 하지만 프린세스에 있던 한국인들은 거의 다가 성격이 활발해서 같이 일하던 다나까와 쯔꾸미등 일본인 친구들은 우리와 잘 어울렸다. 다나까는 일본에서 우편을 배달하는 차의 운전기사를 하다가 호주로 온 28의 형이었고 쯔꾸미는 노가다며 이 것 저 것을 하다 이 곳으로 온 동생이었다. 그리고 이름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인도에서 3개월 살다가 온 일본 남자 켄지. 대학교 다니다 온 ??등 번다버그에서도 보웬에서도 그리고 케언즈에서도 만난 일본인들은 정말 친절하고 성실했다. 처음 정이 들기 힘들지만 정들면 쉽게 친해 질 것 같은 사람들. 특히 "신"은 보웬에서 만나 케언즈까지 정말 끈끈한 정을 쌓은 일본 친구다. 그의 도움도 받았고, 그렇게 쉬는 날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며 대화를 나누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면서 만나던 사람들이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지금은 한국에서 뭘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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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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