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일본은 경제뿐만 아니라 순수학문에 이르기까지

        경쟁력있는 정보와 지식을 갖춘 영어 못하는 선진국입니다.

 

 

                        [일본의 경쟁력]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번역이 앞선 나라다. 그러면 왜 이렇게 번역을

열심히 하는 걸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한국에서는 악명 높지만

일본에서의 평가는 다르다. 이토는 초대 조선통감을 지냈고, 외교관 출신

이노우에는 명성황후 시해를 기획·조종하는 등 조선 병탄에 앞장섰지만

두 사람 모두 일본 국력 팽창에 일조했던 인물로 간주된다.

 

150여년 전 영국 유학을 떠난 두 사람은 런던브리지 난간에 걸터앉아

“영국인은 훌륭하다. 아이나 거지도 영어를 하는데…”라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영국인 학생들이 “동양의 노란 원숭이”라며 어찌나

놀려대던지, 두 사람은 영어도 못하는 동양인이라는 콤플렉스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고 후일 회고했다.

 

이토 등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총리직에 오른 뒤 근대화 교육의 핵심으로

영어수업학교를 전국 곳곳에 세우는 등 영어 올인 교육정책을 폈다.

이들의 영어 콤플렉스 덕분에 일본은 이미 100여년 전 영어 몰입 공교육을

실천에 옮긴 꼴이 됐다.

 

1800년대 후반 일본에서 모리 아리노리라는 사람이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바바 다쓰이라는 사람은 “일본에서 영어를 채용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상류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라는 반대의견을 내놓는다.

 

이런 주장이 점차 힘을 얻어 일본은 ‘번역주의’라는 입장을 택하게 되고 이것이

오늘날 뭐든지 번역되어 나오는 일본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번역을 하면 뭐가 좋은가. 자기네 나라말로 편하게 읽으니까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번역이 습관되면 그것은 단순히

문헌번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문물 전반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것으로 ‘번역’하게 된다. 일본의 이러한 번역주의는 세월의 두께를

얻으면서 서구의 근대를 나름대로 소화하여 독자적인 근대를 이룰 수 있게

한 정신적 바탕이 된다.

 

이것이 사실 오늘날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든 힘일 것이다.

 

전문 학자들이 대중을 위해 많은 번역을 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외국인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 주고받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콘텐츠’를 흥미진진하게 습득한다. 2007년에 한국에서 클래식음악

돌풍을 불러일으킨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 것은

또 어떤가. 이런 게 되어야 선진국인 것이다.

 

 

                         [진중권 교수]

 

 

영어가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에서

영어만큼 안 중요한 게 있을까?

영어 실력과 국가 경쟁력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은,

영어 못 하면서 경제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웃 나라 일본의 예가

반박해준다.

 

게다가 이들의 말이 옳다고 해둘 경우,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왜? 한국어는 불행히(?)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서, 국민들이 아무리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서구인들만큼 유창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 언어적 숙명을 곧바로 경제적 숙명으로 뒤바꾸어 놓는 걸까?

영어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려면 먼저 상황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즉 영어 실력의 부족이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낳고 있는지

파악하고, 거기에 대한 솔루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본과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때문에 그 유한한 자원을 최적의 방식으로 투입하는 것이 일처리의 기본이자

상식이다. 이런 상식이 없다 보니, 일단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몰입 교육의

생체실험을 하겠다는 무차별한 접근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6년 영어공부 끝에 간단한 회화능력을 갖춘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게 도대체 국가경쟁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가령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할 때가 되면,

국가경쟁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까?

영어가 중요한 것은 중요한 정보의 상당수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굳이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려면, '그 정보에 어떻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 하느냐'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쉽게 말하면, 과학과 기술, 경제와 경영,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 '경쟁'을

하는 데에 요구되는 외국어 정보를,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그것을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적, 사회적 공학의 문제다.

혁신은 사유에서 나온다. 인간은 모국어로 사유한다.

 

아무리 영어에 능통해도 사유는 한국어로 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자기 언어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끊임없이 외국어로 된 최신의 정보들을 입력할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한 마디로 이는 국어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소유한 국

어 사용자와, 외국어로 접근 가능한 정보 사이에 효율적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문제로 사고해야 한다.

 

영어로 된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것을

필터링하고, 거기에 접근할 유저 인터페이스를 구축하며, 중요한 자료는

한국어로 번역, 축적하여 모든 이에게 접근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쟁력은 경제 주체 각각의 능력이 총합되어 나타나는 창발의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영어의 접점에서 정보의 검색, 선별, 전송을 담당할 기술인력,

번역과 통역을 담당할 어학인력은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들을 어떻게

양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의 경우 웬만한 책은 두 세 달 만에 자국어 번역이 나온다.

덕분에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생력을 갖고 있다.

 

물론 한국어 사용자는 일본어 사용자 수의 절반도 안 되므로, 그저 시장에 맡겨

놓았을 경우에는 중요한 정보의 번역이 제대로 될 수 없다.

그래서 거기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고, 그거 하라고 국민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세금은 골빈 머리에 입력시켜 'good morning' 썰렁 개그나

출력하는 데에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돈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후퇴했지만, 전 과목 영어 수업이라는 발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저 그것이 민족 감정을 해친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한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언어는 본질적으로 한국어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한국에서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 축적은 모두 한국어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지탱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국어인지도 모른다.

 

가령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인의 고급 문헌 해독 능력이

꼴찌라고 한다. 한 마디로 정작 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고급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한국어로 된 고급정보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것이 한국이 가진 경쟁력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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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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