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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바바반...빠바바반 빠바라바 바바밤.. 핸드폰의 알람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제 늦게 까지 스타크래프트하다가 잠이 들었구나. 제길,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할 순 없는데,
몇 달 부은 적금깬 것도 이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액수가 잔고에 남아 있다.
휴... 사업한답시고 회사 나와서 이게 먼 짓인지..., 옥션에 올라간 금연 파이프는 좀 팔렸나 모르겠다.
컴퓨터를 켠다. 옥션의 공동경매, 네티앙, 그리고 오미등 몇 군데에 금연파이프를 올렸는데
어제까진 반응이 신통찮다. 2002년 연초부터 담배로 인한 몇 몇 유명인사의 투병소식은
범국민적인 금연 열풍을 몰아왔다. 그래 기회다. 난 금연 파이프를 대구의 모 업체에서 공급받아
몇 몇 사이트에 공동구매 상품으로 진행을 했다. 부팅이 되자 마자 옥션을 들어가 본다. 두근 두근..
이 백개만 팔려도 한 달 월급은 나오는 거고 그러면 좀 버티면서 다른 아이템을 찾아볼 여유가 생기는 건데...
어디 보자. "신청수량 3ea" 웁스.. 음.. 거기엔 분명 3개였다.
시계를 한 번보고 유리창을 열었다. 이 골목은 너무 조용하단 말이야. 수건을 목에 두르고 비누를 챙기고 계단을 내려오다.
 아..면도기. 다시 올라가 내려오는 2층 계단. 언제부턴가 이 계단이 왜 이렇게 길어보이는 지, 혹시나 누가 보면 어쩌나 하는 두근 거림만큼 더욱 쿵쾅대는 이 계단. 모두 다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이 집의 계단 소리는 내 심장 박동 소리만큼 크다.
거래처 다니는데 좀 깔끔하게 보이자. 비누 거품을 잔뜩 묻히려 했는데... 날이 추워서 그런지 거품도 안 나온다.
그런데 어?... 재 누구지? 거울에는 초췌하고 무언가에 쫒기는 듯한 인상의 불쌍한 인간이 하나 있다. 눈은 휑하고 말이야.
누굴까? 어서 많이 본듯한 인상인데 말이야. 잠시의 적막을 깨듯이 그 인간이 살아 있다는 듯 눈망울이 반짝인다.
눈물이란 거구나. 잘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듯 보는이가 괴롭다. 면도기를 움직인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과 조바심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나. 난 살아야 한다. 이 생각을 언제 했지?
호주에 갔을때 시드니의 어느 백팩에서 느꼈던 기분이군. 비장함이라고 해야 하나?
짜증난다.엄습해오는 불안감과 알 수 없는 적개심, 때론 증오. 이런 생활을 하려고 직장을 나왔던가.
사장님한텐 " 내 년 매출 2억5천입니다. 두고보십시요. 자신있습니다. "
하고 나왔는데 그 기개는 어디 갔는지, 항상 이런 식이다. 지금까지 매출이 얼마나 될까.
올 해 몇 살이지? 내가 모아놓은 돈이 얼마지? 내가 해 놓은게 머가 있는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바둥대야 하는거야. 계속 헛다리 짚어야 되는건가. 채 5개월도 되지 않았다.
여기서 멈출순 없어.
여기서 주저 앉을 순 없어. 난 일어서야 해.
난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난 일어선다. 난 날마다 일어선다. 난 날마다 일어서야 해.
황산벌 전투에서 5천의 결사대를 이끌던 계백장군을 따르던 군졸들도 비장했으리라. 졸렬한 전투로
삶을 구하기 보다는 죽음을 각오한 채 전장터로 향하던 마음이 계백만 그랬을 것인가.
하루를 살더라도 치열하게 살겠다. 면도기로 깎은 건 수염뿐은 아니었다.

그 해 겨울 IMF.
세상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뉴스는 날마다 업체 부도율이 최고니 취업대란이니 하는 말로
그 해 청춘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케언즈에서의 여유로웠던 기억을 되새기기엔
환경이 너무 많이 달라졌었다. 대만과의 국교 단절로 인한 배농가의 수출판로가 막히자 곧바로
집에 타격이 온다. 잠시의 고민끝에 학교에 자퇴서를 낸 그 날. 약간의 행복이었지만 나의 열정이
묻어있던 기억들을 지우면서 아니 그 을씨년 스럽던 바람에 날려버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랄까? 그 건 구속이 아닐텐데, 난 내가 속한 한 집단에서
스스로 빠져나왔는데 그 해방감은 어디서 연유한건 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 그 해 언론에선
대학 중도 포기학생이 사상 최대라고 전한다.
난 구미행 기차를 탔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70여만원과 함께 어떻게든 돌파하고 싶다,
버텨보자. 이겨내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까짓 이 까짓거.

구미엔 공단이 있다. 구미공단. 공단엔 공장이 많다. 공장이 많아서 일자리는 많다.
그래서 나는 간다. 단순한 사고로 무장을 하고 말이다.
구미역을 내려섰다. 살아오면서 많은 역들을 다녀봤는데 구미역도 정이 드는 역이다.
서울역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서성이지도 않고 역을 나오자 마자 거대한 빌딩으로
방문객을 위축시키지도 않는다. 기하학적인 도로위로 쉴 새없이 꼬리를 무는 차들도 안 보이고
쉴 새없이 떠드는 사람도 없다. 더블백을 들쳐메고 교차로 한 부를 빼들었다.
SALE이며 80%며 자극적으로 쓰인 가게들을 지나치다 2층의 여인숙에 방을 얻었다.
하루 8천원만 내면 된단다. 싸기는 하지만 난 밥을 먹어야 하고 직장을 구해야 했다.
한국에서도 이 생활이다. 제길....
구미는 IMF열외지역이 아니다.

Do it again 을 시작하며,
또 다시 제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험으로 무언가를 줄 수 있다면 그 건 참 만족스런 경험을 가진 거다라는 제 생각.
그 것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기만족일까요? ^^;'
워킹홀리데이가 아닌 소재로 연재를 시작하는 건 또 다른 제 경험도 무언가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자가당착과 함께 더불어 my 26을 기획할 때부터 의도이기도 하였음을 핑계 삼아 봅니다.
아마도 이 글은 재이니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이 큰 목적인 거 같내요.
아직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면 Do it again 은 쭈~~욱 2003년 계속 됩니다.
200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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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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