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농장경험담'에 해당되는 글 3건


사람들은 떠난다. 또 누군가는 찾아온다. 사람 사는 세상 다 그렇겠지만 호주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고 또 많은 이들과 헤어졌다. 이런 만남속에는 좋은 기억속의 사람들과 나쁜 기억속의 사람들로 나누어지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기억나는 형이 있다. 그 형은 인하대를 나와서 삼성의 반도체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경험을 쌓기 위해서 호주로 왔다고 했다. 푸짐한 인상의 그 형은 힘들어하는 나에게도 많은 조언을 들려주며 용기를 주었다. 사람들은 그 형을 좋아했다.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고 대한 형은 그 형이 아닌가 싶다. 마음을 연다는 것, 그 것 말이다. 호주를 돌아다니며 필연적으로 한국인들끼리 마주치게 되는데 그러면 거기에서 오는 한국적 사고방식?으로 마찰을 빚을 때도 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얼마나 서로를 해 하는지,... 하지만 그 형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이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성품이라고 하는게 맞을 거다. 지금의 나도 나의 가벼운 말 한 마디로, 행동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호주가 올림픽으로 인해 경기가 활성화 되는 거 같아 그 곳으로 지금 가는 사람들이 job을 전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처럼 농장에서 4개월이 넘는 기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리라 하는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정말로, 정말로 호주에서 보낸 기억을 평생 간직하며 누군가에게 들려줄 계획이라면 당신의 땀을 호주의 그 드넓은 농장에서 뿌렸던 것도 좋은 기억이 되리라. 도시에서의 일과는 달리 농장에서 느끼는 것은 사뭇 다르다. 그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설사 따분한 기억일 지라도 말이다. 내 경우 도시에서도 4개월 이상을 지냈지만 도시의 화려한? 기억보다는 농장의 땀내 나는 기억이 더 생생하다. 그리고 올림픽 특수라고는 해도 job을 구하기 힘든 사람은 힘들 것이다. 구하고 나면 별 거 아니지만 구하기 전에는 애타는 게 그 것이 아닌가.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도시에서 job을 구해서 일을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농장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다. 설사 구하더라도 농장으로 한 번쯤은 발걸음을 옮겨본다면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이다. 나의 글이 농장에 어떠한 감상을 불러 일으켰을 지 모르지만 썩 나쁜 기억으로 쓴 건 아니니 당신에게도 그 기분이 조금은 전이되지 않았을까 한다. 정보만 확실하다면 농장에서 한 달을 생활하고 나올 수도 있다. 아니라면 다른 도시로 가기 전에 단 1주일, 아니 3일을 있어봐도 당신은 많은 것을 볼 것이다. 농장에 안 가 본 사람보단 말이다. 호주갖다 와서 써퍼스 파라다이스, 또는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아름답다거나 머 그 곳의 분위기가 너무 아름답다고 누구에게 말 해 본 적은 없다. 여기 쓰여진 글들의 경우야 경험담이란 게 그렇듯이 당시의 감정에 충실하려다 보니 이입과정에서 비롯되는 어떤 허세?에서 비롯된 과장도 많음을 시인한다. 쓰고 나서 다시 훑어보면 그렇게 좋았나 하고 의문을 품지만 보는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호주로 가는 불안감을 용기로 바꾸고자 하는 좋은 의도로 해석해 주기 바란다.

보웬에서의 생활은 그랬다. 새벽녘에 일어나 일 나가고 농장에선 귀에 카세트를 꽂고 테이프 늘어지도록 들으며 중얼거리고 그 걸 알아듵나 옆의 외국인에게 테스트해 보고 그러다가 백팩으로 돌아와 다시 책 펴들고 외우고 테스트 하고 외국인하고 잡담하다가 한국인하고 술 마시고 , 일 주일에 한 두 번은 콜스로 나가서 먹고 싶었던 것도 사와서 이 것 저 것만들어서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며 맥주캔을 따기도 하고 와인팩을 따기도 한다. 누군가(남자 두명과 여자 한 명)는 여행을 오지게 다니다 돈 떨어지면 한국에 돌아간다며 중고차를 구입했는 데 지금 기억으로 1500$정도로 사지 않았나 싶다. 떠나기 전날 고사 지낸다고 이런 저런 음식을 장만해서 형식을 갖추어 했는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외국인들도 동참해서 차 앞에서 큰절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 아가씨의 음식솜씨는 남달랐다. 호주에서도 이런 걸 만들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참 시내에는 공중전화기가 다른 도시와는 달리 구형이 있었는데 이 공중전화기에 어떤 기기-그 기기는 전화번호를 입력시키면 소리가 저장이 되서, 다음에 그 번호로 전화를 걸 때 번호를 누르면 그 번호에 입력된 소리가 전화기에 전달되어 번호가 걸리게 되는 것이다-를 대고 전화를 하면 국제 전화를 공짜로 하게 되는 곳이두 군데가 있었다. 덕분에 백팩내의 사람들도 또 나도 한 동안 그 전화기를 애용했다. 호주에서 한국에 전화할려고 하면 참 돈 많이 든다. 공중전화를 공짜로 이용하기 위한 워홀메이커의 몸짓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는데 그 중 전화카드를 넣어서 통화가 신호음이 떨어지며 돈이 액정판에 새겨질 때 쯤 카드를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추어 빼내면 그 돈이 빠지지 않고 계속 사용한다고도 해서 한 30분간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확증되지 않은 방법들. 사실 전화카드 20불짜리로 통화해봐야 기껏 5분 남짓? 그냥 여담으로 하는 소리다. 아마 이 글을 보는이가 그 곳에 갔을 때는 다른 방법의 전화 공짜로 거는 방법이 개발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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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리 비치는 아름다웠다. 특히 백팩 저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어울리는 건물들은 어느 엽서에서 흔히 보았을 풍경 자체였고 그림과도 같은 것이엇다. 마치 어느 한 사람이 계획하고 지은 것 마냥. 그래, 흔히 어느 책에서 나오듯 온갖 미사여구를 들이 부어 놓은 광경이 아마 이런 곳일거다.

아침에 일어나 백팩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설레임으로 보웬 행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섰다. 나는 버스표를 보여줬고 지애 또한 뒤에서 보여주는데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지애의 표가 부킹이 안 되었다고 한다.이런 제길, 지애는 당황하였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지애가 애길 했고 나 또한 거들었지만 거들어서 될 문제가아닌 것 같았다. 지애는 부킹 안내 전화에 다시 연락을 했지만 그 곳에서도 부킹이 안 되었다고 한다. 어쩔 줄 몰라 하다 분을 삭이지 못하는 지애에게 나도 내일 가겠다고 하자 돈을 아끼라고 하며 걱정말란다. 아마 우연히 본 내 통장에 돈이 140$정도 남아 있던 것이 기억에 남았나 보다. 140불이면 약 12만원 정도. 긴장한 모습으로 자기는 보웬에 간다고, 우린 보웬에서 꼭 다시 만난다고 하며 말이다. 지애의 그런 모습이 안 스럽다. 하루를 혼자서 이 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게 말이다. 이게 정인가 보다. 버스에 오르며 지애를 본다. 큰 눈이 반짝 거린다. 차는 천천이 지애를 스쳐 지나간다. 잠에 빠져 들었다.

보웬이란다. 보웬에 내려섰다. 태양이 달려 들어온다. 덥다. 이제 어딜 가야 하나. Trinity 백팩에 연락을 해 본다. 방이 꽉 찼단다. 자리가 없다고 한다. 에어리에서 부킹한 자니라고 했지만 개털이다. 휴~ 저 놈의 태양. 까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라는 작자는 저 놈의 태양 때문 사람을 쐈다고 하드만,... 터벅 터벅. 저 만치서 온다. 번디에서 같이 일했던 한국 친구들. 웃음을 띄웠고 우린 가까운 펍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며 지난 애기들을 나눴다.
트리니티에 있다고 한다. 좋단다. 나는 이 곳 근처에 묵을 거다. 다음을 기약하며 나는 가까운 곳으로 갔다. 도로 옆에 있는
Bowen Backpakers Hostel 들어서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 일나갔나보다. 방을 구하며 일자리를 물었고 별로 신통치 않은 답변을 들었다. 몇 일만 묵겠다고 했다. 한국인은 없었다. 도미토리에 들어서니 번디 수준이다. 에어리로 전화를 했다. 13Begley에 있을 것 같았다. 지애를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지애는 그 곳으로 갔다. 곧 지애가 받는다. 웃는 지애가 보인다. 내일 오전에 터미널로 나가봐야 겠다.지애가 왔다. 한 달 지난 거 같군, 하루 뿐 지나지 않았는데,..

3일후 우린 방을 옮겼다. Denison Hotel. 무늬만 호텔이다. 지애와 주변의 백팩을 돌아다니며 내린 결론! 데니슨에서 바로 일을 준다고 해서 그 곳으로 옮겼다. 새벽 6시쯤에 일어나 우체국 앞에서 기다리면 차가 온다고 그 차를 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 곳에서 이틀을 나갔다. 과일 포장하는 일을 했다.마치 공장과도 같은 곳에서 말이다. 우리가 한 일은 기계앞에 앉아 기계를 타고 흘러가는 토마토를 박스안에 넣는 포장작업이다. 단순 노동. 그 곳에서 이틀을 일하며 우리를 태우는 사람이 트리니티에서 나온 사람인 것을 알았다. 트리니티로 다시 연락을 해 보니 확실치 않다고 한 번 와보라고 한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지애와 트리니티로 가 보기로 했다. 저녁 나절 지친 몸을 이끌고 그 놈의 롤러 블레이트를 끌고 갔다. 보웬 백패커스를 지나면 무슨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그 밑으로 약 300m정도 되는 내리막길이란 것! 와~~~~~~후~! 내가 가볍긴 한가 보다. 조그만 바퀴들이 아우성을 지른다. 길도 잘 닦여 있고 말이야. 지애가 쫓아오다 지쳤나 보다. 두 세개의 사거리에서 차가 나올 까 두려웠지만 멈출수도 없었고 멈출줄도 모르고 멈추기도 싫었다. 미쳤나 보다. 무슨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내려오다가 뒤를 돌아 보니 지애가 저 만치에 앉아있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나무에 몸을 부딪쳐서 일차 충격을 완화하고 다시 미끄러지듯이 낙법을 해서 사뿐이 안착했다. 와장창창~! 흠,... 트리니티에서 만난 쥔장은 상당이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뒤에 들어 알았지만 그는 주변의 큰 건물과 캐러반들을 가지고 있는 지역 유지였다. 우리는 토마토 포장일이 끝나는 내일 모레 옮기기로 하고 데니슨으로 돌아왔다. 아까 내리막길에서의 불시착의 후유증으로 무릎이 욱신 거렸지만 가뿐한 하루.네 이 놈의 롤로블레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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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이면 들려오는 닐의 마이크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가 속한 목장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다시 잠에 빠지고는 했다. 가끔 깊은 잠에 빠져 나오지 않으면 닐이 직접 와서 깨우고 나가는 데 그래도 안 나오면 다른 대기 인력으로 대체 하고는 했다. 한 번 대체되면 그 날부터 그 사람의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못 나간 사람은 다시 일을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 일거리가 없을 무렵 혹시 그런 일이 있을까 해서 3일을 새벽같이 일어났는데 일이 없어 그냥 기다리다 들어오고 말았다. 그런 경우 외에 농장에서 직접 해고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 또한 두 번째 농장에서 그렇게 당했으니 말이다. Sam의 농장에서 토마토를 딸 무렵이었다. 토마토를 따는 기계에 앉아서 기계가 가는 대로 손놀림을 빨리 해서
익었다 싶은 것은 무조건 따는 것이었다. 너무 안 익은 것을 따도 너무 익은 것을 따도 안 되며 또 속도가 너무 늦어도 안 된다. 기계속도에 맞추어서 그리고 자기의 앞에 앉은 사람과 보조를 잘 맞추어 따야 한다.또 그 뒤에서는 기계에 앉아 따던 사람이 미처 못 딴 걸 따라다니며 따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처음 Sam의 농장에서 그 일을 했다. 3일 뒤부터 기계에 앉아 토마토를 따기 시작했는데 쉴 틈이 없고 허리를 계속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고 손은 토마토를 찾아서 움직이는데 편해 보일 듯하던 그 일이 그렇지가 않았다. 결국 일 주일쯤 되던 언젠가였다. Sam은 기계에 앉아 정신없던 내게 웃으며 다가오더니 잠깐 나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어떤 말도 없이 그냥 집에 가라는 것이다. 그 것도 웃으면서,푸~ 나도 웃으면서 그 동안 신경써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나는 어느 농장을 가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샘의 농장에서 과일을 따면서도 앞에 앉은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면서 했는데 그 것이 눈에 걸린 것 같았다. 말하러 이 곳에 왔냐는 경고를 들었으니 말이다. 샘의 농장은 평판이 좋지 않은 곳이었고 다른 여행객들도 그 곳으로 일을 나가게 되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쌕을 당한 후 그 곳에서 다시 백팩으로 갈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 했다. 백팩에서 그 곳까지 벤으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온 거리이니 말이다. 결국 히치 하이크를 처음으로 하게 된다.

호주에선 히치 하이크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워낙 여행객이 많은지라 묵인하고 있지만(실제로 투어 에이전시에서 나누어주던 여러 책에선 히치하이크가 호주에선 금지되어 있다고 안내글을 볼 수 있다.), 쌕 당한 이후 히치를 한 이후 번디에서 시내를 나갈 때는 히치를 많이 이용했다.   신호등에 멈춰 서있는 차를 보면 그 옆으로 다가가 좀 태워달라고 때 쓰는? 내 모습이 지애는 재미있어 보였나보다 지애는 방 구조가 특이해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내 방으로 들어가면 그 곳에 또 문이 있는 작은 방에 다른 여자 여행객들과 방을 쓰고 있었다. 더블침대가 2개 있는 곳! 여자들이 쓰는 방이라 어느 정도는 깨끗하지만 칙칙함은 남아 있었다.번디에 온지 얼마 안 되었던 지애는 나와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는데 나는 그녀에게 과거의 역사를 물었을 때 그 녀가 우리 한국의 초등학생 정도의 역사지식 (한,일관계에 있어서의)정도밖에 없음에 자못 놀랐다.. 하지만 그 건 다른 일본인에게도 물었을 때 그 건 마찬가지였다.
일본 위정자들이 그들의 과거를 밝히지 않으니 젊은 그들이 우리가 과거에, 그리고 현재의 일본에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서 의아해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신세대역시 우리의 역사에 무관심하지는 않은 지 반성해 볼 일이다.지애는 일본의 현대 젊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젊은 여성 자기 주장이 있었고 그 만큼 개성도 뚜렷한 아가씨였다. 시내에 놀러가 무엇을 먹어도 그 녀는 더치페이를
고집했고 어디 보러가자고 하면 그 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곳으로 혼자서 가곤 하는 아가씨였다. 요즘 일본의 아가씨들이 그런가? 그렇다고 들었다. 그 곳에서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참 잘 어울렸다. 무슨 음식을 하면 같이 나누어 먹었고 또 같이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그 곳에서 만난 일본인들이 좋아서 그런걸까? 아마 그 건 아닐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젊은 가슴으로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미래에 사는 젊은이들이 미래를 위해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겐 살아야 할 날이 더 많기에.

sack당한 이 중에 smith라는 영국인이 있었다. 영어공부를 코치해주던 그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풀장을 가기도 하곤 했는데 스미스라는 친구는 나의 영어발음을 무시?또는 바꿔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던 친구였다. 나는 발음을 미국식으로 하려 애썼고 스미쓰는 미국식 영어는 미국밖에 안 쓴다. 유럽에선 전부 영국 영어를 쓰고 있고 이 곳 호주도 영국식 영어를 쓰는데 왜 미국영어를 고집하느냐는 투였다. 어쩔 때는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는데 난 우리나라는 미국영어를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을 해도 여전한 그의 고집.하지만 내 고집도 만만치 않지. 호주는 영국 영어에 가깝다. 물론 영영사전을 보면 호주 영어 특유의 구분이 있지만 최근에는 미국영어에 가까워지고 있는 편이다. 아니 미국 영어를 많이 쓰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호주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마치 유행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미국영어 특유의 음악같은 운율이 아마 고급스러워 보이는 지도 모른다. 어쩜 전 세계로 뻗어가는 미국의 힘이 그들의 문화를 전파하는 지도 모른다.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보여지는 헐리우드의 영영화를 통해, NBA의 농구를 보며 또는 팝송을 들으며 미국의 문화에 익숙해 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됐든 스미스는 영어를 많이 도와줬고 그런 일로 티격대곤 했지만 재미있는 친구였다. 휘파람 불면 "삐삐"하고 소리나는 중국제 열쇠보조 장치를 사와 한 밤중 자는 모두를 깨우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느라 한 바탕 부산하게 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그는 넉살 좋게 코를 골았고 또 무슨 냄새나라의 왕자같이 그의 몸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정말 그는 씻지를 않았다-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도 결국엔 닐이 하도 일을 주지 않아 다른 곳으로 백팩을 옮겼지만 가끔 놀러와서 닐을 원망하곤 했다. 사람들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자기에게 잘 해 주는 이에게 잘 해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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