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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간다. 아마 지금도 올라가고 있을지 모른다.

멈출 수 없는 사람의 도전욕인지 모른다. 정복욕이라고 하나?

정복이라고 하기 보다는 도전이 더 인간적이고 진취적인거 같다. 가끔 정복이라는 글이 보일때가 있다.

정복이라고 하는데 자연을 정복한다는것. 사실 그다지 어감이 좋지는 않은데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한다. 산은 그대로 있을 뿐인데 말이다. 산이 언제 정복을 당해야 할 만큼

사람들에게 무슨 해꼬지를 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뭐 그렇다고 거기에 도전한 그들의 열정을

폄훼하거나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그들의 열정은 존중한다. 어쨌거나.

세상 모든 것엔 이유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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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국가간에는 상대국가를 향한 국민들의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미국에는 또 일반적으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와 같은 그런 감정 말이다.

그런데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또 태극기를 꽂고 그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감격적이다. 그들이 내려오고 나면 뒤에 다른 국가에서 정상에 오를 것이다.

그랬을때 보이는 좋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상대국가의 국기를 볼 때 그들의 감정이 어떨까?.

그들보다 늦게 올라온 것도 언짢은데  어쩜 적성국가의 국기가 도도하게 휘날리고 있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어떻게 할까. 도덕적으로 가많이 둘까? 드센 바람에 국기가 넘어져 있으면

고이 다시 꽂아 줄까? 아니면 있는 것도 뽑아버려 휙~ 던져버릴까? 뭐 갑자기 그런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독도 바다아래에 태극기 동판을 묻어놓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FTA협정에서 한국의 영해관련 조항에서 독도부문을 may라는 조항을 써서 독도가

분쟁지역임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그 동판이 눈에 가시일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바닷속 깊은 곳뿐만 아니라 남극이나 북극에도 있을 것이며 여러 국가의 국기가

놓여있을텐데 말이다. 이런 국기들은 잘 있을까? 역시 신나라까먹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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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샴봉 (달빛들판님 사진)


1953년 5월 29일 해발 8천848미터의 에베레스트산이 영국 등반대에 의해 세계 최초로 정복되었다. ‘산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오른다.’는 유명한 말은 ‘힐라리’가 한 말이다.

  유명한 영국 등산가 말로리의 시체가 1999년 4월 75년만에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발견되어 혹시 힐라리보다 앞서 세계 최고봉에 발을 디뎠던 증거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이 소식에 접한 힐라리경은 “그렇게 되면 모든 영광을 말로리에게 돌릴 것이다”라며 “그렇다고 해서 ‘위대한 순간이었다’는 당시의 감격이 손상입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지녔던 십자가를, 동반 등정한 셀파 덴진은 초코렛을 눈에 묻어 신명에 감사했다. 그런지 46년간 1천여 명이 에베레스트에 등정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내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려 했던 것은 애국심도, 여왕에 대한 충성심도 아니었다. 단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르고 싶었을 뿐이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반. 전인미답의 정점에 두 사람이 섰다. 영국 탐험대원 에드먼드 힐라리(33)와 네팔인 셀퍼 텐진 노르게이(49).

  로프로 서로를 연결해 하늘에 가장 가까운 8,848m까지 올라온 구 사람은 감격의 악수를 나누고 힘차게 껴안았다. 힐라리는 산소통을 확인했다. 정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5분. 이들은 서둘러 네팔, 인도, 영국, 국제연합의 국기를 피켓에 매달고 사진을 찍었다.

  이날 오전 4시. 이들은 8,537m 지점에 친 제9캠프에서 눈을 떴다. 텐트 안 기온은 영하 27도. 바람도 없는 유난히 맑은 날씨였다. 오전 6시 반, 텐트를 나선 그들은 300m도 목 사 난관에 부딪쳤다. 12m짜리 암벽이 정상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옆은 천길 낭떠러지.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 잠시 생각에 잠겼던 힐라리는 빙벽 틈새에 피켓을 꽂기 시작했다. 부서지는 얼음조각, 한발 한발 몸을 밀어올리며 두 사람, 드디어 입가에 번지는 미소…. 등산가들은 이 암벽을 지금도 ‘힐라리 스텝’이라 부른다.

  힐라리는 뉴질랜드에서 꿀벌을 치던 청년이었다. 꽃을 찾아 벌통 상자를 들고 이동하면서 허리와 다리 힘이 강해졌고 기후에 민감한 꿀벌을 통해 자연의 변화를 읽는 법을 배웠다. 뉴질랜드의 험한 산들을 잇따라 등정한 그의 이름은 영국에 알려졌다.

  1921년 이래 영국은 16회에 걸쳐 에베레스트 등정대를 파견했다. 북극은 미국의 피어리가, 남극은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탐험했다. 초조해진 영국에게 남은 극지는 최고봉 에베레스트. 1952년 여름. 스위스 원정대가 정상 250m를 앞둔 지점까지 다가가자 영국의 초조감은 더해갔다.

  힐라리의 에베레스트 등정 소식이 알려진 것은 공교롭게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대관식 전날이었다. 영국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여왕이 힐라리에게 작위를 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졸지에 ‘경’이라는 호칭이 붙여진 데 대해 힐러리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결정했다”고 화를 냈던 순진한 청년이었다.

  힐러리는 자신의 등정을 도와준 셀퍼들과 지금도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힐라리는 기금을 만들어 1961년부터 초등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현재 초등학교는 27곳, 병원은 2곳으로 늘었다.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에베레스트산이 망가지는 것을 보호하자는 캠페인도 벌였다.

  지금 79세의 힐라리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해변이 보이는 주택가에서 여유로운 만년을 보내고 있다. 1991년 가벼운 뇌부종을 앓은 후 보청기를 끼고 지내는 그는 방문객에게 ‘그날 그때’를 얘기하기를 즐긴다.

   “에베레스트는 새 루트 등 도전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가치는 맨 처음 등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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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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