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전라도 화순 춘양면 석정리. 비록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
지난번에 화순을 가는 걸음도 가벼웠고 도착하고 보니 그 따스한 햇살부터 공기내음은 고향이라 다른 듯
착각까지 불러 일으켰었다. 엊그제 다녀왔을때에도 여전한 고향. 고향이 꼭 나고 자라야 고향이냐.
아쉬움이 있다면 아는 일가친척, 지인들이 없다는 것이 항상 저려온다. 솔직이 부럽다.
추석이다, 설날이다하면 고향에 내려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나고 자라서 그 곳에서 불알 친구들을 만나고
그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고 도시락을 까먹고 냇가에서 고기를 잡고 수박서리를 하는 것. 그런 기억들이
추억으로 만들어지고 가끔 도시생활에서 잠 못잘때 기억하거나 하릴없이 영화나(그 것도 컴퓨터로) 쳐보고 있을때
술 한잔 하자고 불러낼 수 있는 친구들이 그 놈이 와 있을테니 말이다. 난 고향에서 나지도, 자라지도 않았기에 없다.
그래도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건 집안이 그 곳에서 터를 닦았고 기억의 시작일지도 모를 유년의
기억이 살아있는 곳이기에 말이다. 점빵애도 참 좋아했었고 나름 로맨스를 만들었던 것 같고
아이들과 함께 논두렁을 뛰어다니고 정미소의 쌀가마사이로 뛰어다니던 기억들, 엄마가 사 준 세발자전거를 타고
비포장된 내리막길을 달리기도 했었다. 추수철에 밥과 반찬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줌마의 모습들.
그 때 먹던 밥이 왜 이리 맛있던지 그 맛이 떠오른다.
●지명유래
석정리(石亭里)의 지명은 돌정지 마을의 이름을 따서 이를 한자화하여 돌(=石)과 정(亭)은 한자로 쓰고 지자는 생략한 것이다.
석정리는 돌정지 단일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석정리는 원래는 동산 아래에 쏘가 있어 봉연동(鳳淵洞)이라 하였다는데 1850년경 능주목사가 고을 순시하면서 마을 동남쪽에 있는 느티나무에 큰돌이 박혀있는 것을 보고 돌정지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돌정지의 원뜻은 물이 돌아가는 곳을 돌정지라 부르는바 이를 한자화 하여 돌정(乭亭)이라 했다가 다시 석정리(石亭里)로 개칭한 것이다. 마을을 세분하면 우데미, 아래데미로 구분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남일면(南一面) 복녕동(福寧洞 = 복자는 古語에서 돌을 의미한다)으로 나오며 1864년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석정면(石亭面), 1895년 5월 1일 전국행정구역개편에 의거 나주부 능주군 부춘면(富春面), 1896년 8월 4일 지방행정구역개편에 의해 전라남도 능주군 부춘면,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능주군 부춘면 석정리(石亭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3년 능주군의 폐지로 화순군 부춘면,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화순군 춘양면(春陽面) 석정리(石亭里)로 되었다. 이전에는 12개반으로 운영되었는데 제2공화국 당시에는 억석방, 복덕방, 동산방, 도락방, 충무방, 강변방, 소개방으로 나뉘어 부르다가 제3공화국에 이르러 현재의 10개반으로 이루어졌다.
●주산물(쌀, 보리) , 특산물(고추, 포도), 주소득원(쌀, 보리)
●성씨 : 청도金(58), 남평文(24), 천안全(16), 밀양朴(16), 능성具(9), 하동鄭(9), 행주奇(7), 의령南(6), 보성吳(6), 제주梁(6), 창녕曺(5), 풍산洪(4), 전주崔(3), 문화柳(2), 진주姜(2), 흥덕張(1), 파주廉(1), 장흥魏(1), 연안車(1), 홍주宋(1), 밀양孫(1), 죽산安(1), 광산李, 전주李,김해金, 성산李, 경주金, 광산金등(다수)
●마을형성
돌정지 마을은 서쪽으로 얕은 산이 있으며 내가 서쪽에서 흘러와 마을의 남쪽을 돌아 북쪽방향으로 흐르고 강 건너에는 약간 떨어진 곳에 남쪽에서 동쪽으로 얕은 산이 둘러 있어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마을은 남동쪽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1597년경 청도김씨 金慶門(1577∼1654)이 칠송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700년경 남평문씨 文聖望(1676∼ ? )이 화실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710년경 풍산홍씨 洪天星(1690∼1775)이 다라실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760년경 천안전씨 全性淡(1741∼ ? )이 장흥 곰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780년경 남평문씨 文福必(1758∼1805)이 화실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05년경 행주기씨 奇師赫(1784∼1836)이 우봉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05년경 밀양박씨 朴命佐(1784∼1848)이 장흥 용산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동쪽으로는 가봉리 , 서쪽으로는 회송1리, 남쪽으로는 회송2리, 북쪽으로는 화림1리가 있다.
국도 제29호선 구도로와 지방도 제818호선이 지나며 마을입구에 춘양정류소가 자리잡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유물 ·유적
선돌(1기, 철로변 당산나무에 박혀있음, 80×40×25), 단재(壇齋, 청도김씨입향선조 진사공휘차산봉단향화지소, 존양제실뒷산, 3월 15일 향사), 영모재(永慕齋, 청도김씨재각), 추원재(追源齋, 여흥민씨재각), 추원재(追源齋, 남평문씨재각), 남일단(南一壇, 광복 후 단을 세워 청도김씨 金次山, 鄭汝鏞향사) 金基洙景慕碑, 心湖金潤貞功績碑, 金次山入鄕遺蹟碑, 豊山洪氏追慕碑(1983. 3 건립, 金致錫妻), 遯齋金汝鏞忠義碑, 前童蒙敎官幸州奇東翼義庄碑(1916. 4), 敎官室內淑夫人公州李氏德惠碑(1918. 7. 5), 石堂奇公俊燮追思碑(1934년 건립), 道峰梁公在根追思碑(1944년 건립), 존양제(存養齊, 1955년 건립, 追慕門, 청도김씨재각), 集賢殿進士金公遺蹟碑(1977년 건립), 金廷煥妻星州李氏孝烈碑(1979년 건립), 춘양국교개교60주년기념비(1987. 5. 10 총동창회 건립, 학교), 述溪梁在龜先生追慕碑(1986. 5 건립, 학교), 乙巳生甲契紀念碑(1976. 3 건립), 贈戶曹判書忠義碑(1977년 건립), 溫知堂淸道金公敬慕碑(1983년 건립), 丙辰生甲契紀念碑(1986년 건립), 金潤浩妻全州李氏孝烈碑(1988년 건립), 춘양주조장(573-41번지, 유홍영개업), 석정제 저수지(1945년 축조), 석정교(1971년 건립, 가봉리가는길), 장승터(장승백이).
●공공건물
춘양면사무소(386-2번지), 춘양보건지소(386-2번지), 춘양파출소(573-3번지), 춘양농협(245번지), 춘양우체국(231-1번지), 춘양국민학교(239번지, 1927. 5. 10 개교), 춘양교회(236-2번지, 1946. 10. 20 설립, 1982. 10. 27 신축), 춘양면노인당(386번지, 1986년건립).
●민속놀이 ·전설 ·민담
⊙ 농악 : 정월 대보름에 마을과 각 가정을 돌며 마을의 평안과 가정의 복락을 기원한다. 시암굿, 마당볼비를 하였으며 상쇠로는 장춘복, 전쌍룡부친이 잘 하였다.
⊙ 강강수월래 : 군민행사나 국민학교 행사시 마을 부녀자들이 단합을 위하여 실시하고 있다.
⊙ 윷놀이 : 추석에 전 마을사람이 모여 편을 갈라 윷놀이를 즐긴다.
⊙ 디딜방아 액막이 : 마을에 전염병을 막기 위하여 밤에 몰래 인근마을에 가서 디딜방아를 가져다가 현재 파출소앞 갱변에 세워 액막이를 하였다.
⊙ 줄다리기 : 정월 대보름이면 우데미, 아래데미로 편을 나누어 씨름과 줄다리기를 하였다.
⊙ 당산제 : 이전부터 지내지 않았다.
⊙ 기우제 :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서작굴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 장승터 : 국도 제29호선 구도로를 따라 예성산 아래쪽으로 가면 제주양씨비석이 있는데 이 부근을 장승백이라 부르며 이전에는 이곳이 장승과 주막이 있었다.
⊙ 쏘터 : 이전에 석정리 마을이 쏘터였다고 전한다. 현재는 마을이 크지만 이전에는 면사무소 앞쪽으로는 갱변으로 있었다.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석정리는 당초 늪지로서 뒷메산 기슭에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현재 주거지인 동산밑은 큰 쏘로서 마을사람들이 낚시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하며 돌정지는 벌형국이라 하며 동남쪽에 우뚝솟은 속금산은 노적봉이라 하고 남쪽의 예성산성 바위를 금고라 하는 풍수지리설이 있는데 이때문에 만석의 부자가 나왔다고 한다.
⊙ 정자나무 : 철로변에 있는데 나무가 선돌을 감싸고 있는것이 특이하다. 마을에서는 정자나무가 돌을 감싸고 있어 마을 이름을 돌정자(석정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 샘골(샘굴) : 석정제 저수지 위에 오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 샘터계곡이라 한다.
⊙ 억석골 : 다른지역보다 토질이 좋아서 쌀소출이 많다하여 억석골이라 한다고 전한다.
⊙ 주로내(酒露내) : 마을 동쪽에 있는 전답으로 안개가 많이 내린다 하여 이처럼 부른다.
⊙ 섬배미: 마을 동쪽에 있는 들로 전답 가운데 섬등이 솟아 있어서 섬배미라고 부른다.
⊙ 웃엉굴재 : 석정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이다.
⊙ 아래엉굴재 : 석정마을 아랫쪽에 있는 고개이다.
⊙ 속금산 : 석정리 동쪽에 있는 산으로 해망산 줄기에서 마지막으로 솟아 올라 있다고 전한다. 원뜻은 솟구친 산, 솟아오른 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밤들이들 : 석정리 동쪽에 있는 들이다.
⊙ 구정지 : 석정리 동남쪽에 있는 들이다.
⊙ 비각거리 : 행주기씨 비각이 있는 곳을 비각거리라 부른다. 국도변 춘양주유소 부근에 있다.
⊙ 5일장 : 개시일은 2,7일이며 1953년경 양회팔면장 재임시 처음 설치하였다.
⊙ 주막시암 : 면사무소 옆 세탁소 (옛 주막, 244번지)앞 도로상에 주막시암이 있었는데 물이 좋아 정화수로 사용되곤 하였다.
⊙ 산, 등 : 속금산, 뒷메, 동산, 안산, 작약산.
⊙ 들 : 주로내, 섬배미, 밤들이들, 구정지, 버드내, 조산께, 도둑막, 때깐치, 웃갱변.
⊙ 바위 : 예성바위.
⊙ 고개 : 웃엉굴재, 아래엉굴재.
⊙ 골짝 : 샘골(새앙굴, 새암골), 억석골, 웃엉굴(웃엉국), 아래엉굴(아래엉국), 서작굴.
⊙ 밭 : 터밭.
⊙ 보 : 섬배미보, 밤들이보, 웃갱변보, 때깐치보.
⊙ 샘 : 도내기시암, 아내미새암, 주막새암, 우데미새암.
⊙ 길 : 비각거리(도린가래), 억석우모팅이, 한골목, 갱변, 장터, 장터다리.
⊙ 터 : 독삼굿터, 연자방아터, 서당터(청도김씨 구재각), 쏘터, 주막터.
●인물
⊙ 기창섭(奇昌燮, 1884生∼1945歿, 1930. 1. 1∼1943. 9. 30 춘양면장),
⊙ 김윤정(金潤貞, 1907生∼1982歿, 1960. 12. 26∼1961. 6. 26 춘양면장).
⊙ 양회팔(梁會八, ?生∼?歿, 1952. 5. 5∼1956. 3. 3 춘양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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