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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매 주 늘어나는 통장의 예금을 확인하며 이젠 도시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두 달 가까이 되었을 무렵, 통장에 약 1400$이 모였을 때였다. 보웬에서도 한 번 소포를 한국에 보냈다. 이리 저리 옮기면서 짐도 늘어나는 것 같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왔는데 일본인이 한 명 기웃 대고 있었다. 새로 온 사람인가 보다. 약간 작은 키에 참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던 그는 사무실에서 오너하고 무슨 대화를 하는 모양인데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의 이름은 Shin. 나는 신에게 다가가 그의 애기를 들었고 이내 백팩 오너에게 말을 해 주었다. 물론 영어지만 일본인의 어색한 영어를 한국사람은 잘 알아 듣는다. 그리고 한국사람의 영어도 일본인은 잘 알아듣는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한 체계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치 중국인이 영어를 쉽게 배우듯이 말이다. 신은 나와 같은 농장에서 4일간 일을 하다가 케언즈로 떠났다.

일본인 친구 신. 그는 케언즈에서 다시 만난다.


같은 농장에서 일을 시작한 날 점심때였다. 나는 신에게 어떠냐고 묻자 그는 허리의 통증을 호소하며 아프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허리를 다친적이 있다던 그는 3일 정도 지나더니 도저히 못하겠다고 케언즈로 갔다. 케언즈에서 영화촬영이 있다며 그 영화 엑스트라로 촬영하면 하루 100$이상 받을 수 있다며 말이다. 그 영화가 작년인가 개봉한 쩝!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전쟁영화였는데,.. Thin ? ? 호주의 케언즈에서 촬영한 영화다. 신은 케언즈에 도착한 날 우연이 만나게 되는데 그의 도움을 많이 받게된다. 그의 모습이 어쩌면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항시 가지고 있었고 수줍은 듯 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외국인들과도 어느정도 친해지고 하면서 우리는 맥주와 포도주를 많이 마셨다. 호주에는 Bottle Shop이라 하여 술 파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고 우리나라처럼 어느 전망좋은 곳(공원이라든가,...)에서 자리 잡고 술마셨다간 바로 경찰이 뜬다. 호주 경찰이 인상깊었던 것은 지난 프레이저 아일랜드에서의 카메라 사건 이 후에 또 이 곳에서 있었는데 그 것은 이렇다. 그러니까 친구들과 술 한 잔씩을 마시고 나는 집에 공짜 전화나 할 까 하고 친구에게 앞서 말한 그 기기를 빌려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나간다 밤이면 야외등이 없어서 시커먼 백팩내를 지나 자전거로 시내로 가기 위한 중간 지점인 콜스로 달리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말이다. 그런데 저 뒤에서 경찰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무슨 사고가 있나 하며 제 갈길을 가는데 아뿔싸. 내 앞 저 만치 차를 세우더니 나에게 자전거를 세우란다. 음주운전이라고 한다. 으헉~! 이게 웬 날벼락? 갑자기 지레 겁을 먹고 강제 추방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아니 농장에서 일만 하다가 갈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빌어보자. 경찰관은 술 몇 잔을 마셨느냐. 맥주 딱 1캔 마셨다. 저 선을 따라 걸어봐라. 좋다. 정말 날 안 취했다. 그런데 잠시뒤에 비자 있느냐더니 없다고 하자 무슨 서류를 내 놓더니 주소와 이름을 적으라고 한다. 정말 강제 추방이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데 정말 아찔했다. 어머님이 많이 아프시다고 연락이 와서 술 먹다가 나온거다. 한 번만 봐달라고 했지만 웬걸, 들이 내미는 서류는 완강하다. 난 어쩔 수 없이 적어 넣었는데 형식이 좀 단순한 거 같았다. 뒤에 아무런 그 서류로 인해 무슨 통보나 불이익이 없던 걸로 봐서 아마 그 경관의 업무 일지 같은 종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서 경찰관 왈. 돌아가라. 자전거 타지 말고 가랜다. 난 자전거를 끌고 한 참을 다시 백팩으로 돌아오다가 전화는 걸려 가야지 하면서 뒤를 돌아 보니 여전히 그 경관은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것도 나를 보면서 말이다. 대단하군. 그렇게 어둠사이로 멀리 보이지 않을 때쯤 와서 뒤를 돌아보니 경찰차가 저 멀리 달려간다. 그래서 전화를 걸러 다시 시내로 나 간적이 있는 데 호주 경관의 모습이 각인 된 한 단면이었다.

보웬을 떠나기 전날.

돈이 1400$가량 모여 들었다. 애초 2000$가량 모이면 떠나리라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다. 계속된 농장의 한가로움은 권태를 자져다 주다못해 도시에 대한 어떤 환영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호주에 온지 5개월이 넘어서고 있었다. 다시 준비한다. 여러 책자를 구해서 읽어보고 사람들한테 묻고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 위해 말이다. Townsville로 갈까?GBR Wonderland라는 관광명소가 다고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곳은 지나쳤다. 시드니 이후로는 처음인 도시생활이고 농장과는 달리 일거리가 언제 잡힐 지 모르는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 케언즈다. 케언즈로 출발한다. 케언즈로 출발하기로 마음 먹고 나니 모든게 홀가분했다. 다시 혼자 시작한다. 도시생활, 농장과는 달리 job을 못 하면 어떻게 될 까?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야 하나? 그래, 그 건 그 때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번디에서 구입한 5000Km 패스로 케언즈행을 끊었다.케언즈는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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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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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웬에선 5~6군데의 농장에서 일한 거 같다. 보웬에서 한 달쯤 지났을 까? 그 때 쯤 " 호주에서 나는 과일은 다 내 손을 거쳤나?" 하는 중얼거린 기억이 있는 걸러 봐서는 꽤 많은 과일을 딴 거 같다. 뒷날 케언즈의 콜스에서 쇼핑을 하다 보면 쌓여있는 과일들을 보면서 슬며시 웃던 기억이 있으니까. 기억에 남는 농장이 있다. 매니저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기억의 이유가 지금까지 만나본 매니저중에서 그는 상당히 과격한 스타일의 매니저였기 때문이다. 그 곳은 토마토농장이었는데 contract이 아닌 hourly였다. 시간당 8$정도. 하루 8시간 일해서 64$이다. 길게 뻗은 농장을 따라서 각 줄마다 사람들을 배치하고 사람들이 그 줄을 따라 토마토를 따며 앞으로 나가면 매니저는 뒤를 따라가며 누가 일을 잘 못하는 지 감시하는 그런 곳이었다. 30여명정도가 일을 하다 보면 눈에 띄게 못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이의 바로 뒤에 따라가서 그 사람 일을 도와주는 데 보통 사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딴다. 그러면 일을 하던 이는 심적 부담을 갖게 되는데 한 동안 그렇게 해 주다 그래도 진도가 안 나가면 머라고 중얼 거리며 인상을 쓴다. 다음엔? sack 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심한 언사가 오가기도 했는데 거의 주먹다짐 일보직전 까지도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객 입장에선 빨리 돈을 벌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했고 대부분이 관광비자로 와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하고 있는 자체가 불법인 때문도 있었다. 때문에 그런 그의 태도에 대해 항변을 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그런 그에게 잘 보이려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똑같은 거 같다. 그런 그도 나에겐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관심을 보였는데 그 건 주위에서 들은 트리니티에서의 내 생활때문이었다. .


고딩때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것중 하나가 바로 합기도 였다. 온수동에서 자취할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이던 오류동의 대원합기도. 당시 홍콩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었고 학생들도 태권도및 합기도 등, 각종 체육관을 많이 찾곤 했다. 난 누구에게 맞기 싫다기 보다는 때려주고 싶은 치기(하지만 때린 적은 없다- 그래도 맞은 거 같다 -.-;;)로 그 곳을 다녔는데 합기도를 선택한 이유는 똑같은 돈 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매력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발차기에 매료되어 발차기 하나만으로 1년 넘게 버텼다. 한 동안은 새벽이면 동네 뒷산에 올라 애꿎은 나무를 두들기고 새벽반 뛰고 저녁에 뛰고 야간에 뛰고 정말 미쳤었다.
덕분에 1년이 약간 지나 2단을 딸 수 있었지만 체육관 사정으로 거기서 끝내고 말았다. 휴~! 그 때의 친구들. 보고 싶군. 정운형은 지금 머할려나.

트리니티 백팩커스는 상당이 깨끗한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선 마리화나같은 것이 돌아다니기도 했고 백팩내의 각 유니트 배치가 동떨어져서 조금은 삭막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다 보웬에 온 지 9일 뒤에 지애가 일본으로 가기 위해 케언즈로 간 뒤 젖어드는 허전함을 풀기위해서 일이 끝나면 유니트 뒤에서 지난 기억속의 발차기며 낙법이며 형을 연습하곤 했는데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이 관심을 끌었나 보다. 그래도 한국은 태권도의 종주국이 아닌가. 한국인이 발차기며 낙법을 연습하니 그들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을까? 어떤 이는 나와 함께 같이 운동을 하기도 했고 가르쳐 달라고 해서 한 동안 조금 가르쳐 주기도 했다. 피식~!
농장의 매니저는 평소 킥복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자기 말로는 그 자신도
아마추어 선수로 뛰었다는 애기를 했었으니까, 언제부턴가 내게 다가와 호주의 누구를 아느냐며 킥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이라느니 어제는 술먹으러 갔다가 어떤 자식 패고 왔다느니 묻지도 않은 애길 꺼내곤 했다. 하여간 난 점심식사 이후에 혼자서 푸쉬업이며 이런 저런 간이 운동으로 몸을 풀었다. 매니저는 그런 내 모습에 쟈니는 스테미너가 넘친다며 농담을 하곤 했다. 어쨌든 나는 그 농장에서 보웬을 떠날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었고 매니저는 내가 떠날 무렵 술 한잔 하자며 가기 전에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준다. 평소에 나뿐 놈! 하며 싫어하던 놈도 헤어질 무렵되니 얼굴에 칼자국이 있어 더욱 인상 드럽던 그 얼굴이 "이 놈 또 언제 볼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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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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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로 옮겼다. 우리가 얻은 방은 이층 침대가 놓여있는 작은 방이다.
지금까지 생활해 본 가운데 가장 시설이 잘 된 곳이엇다.
이 곳 저 곳을 돌아디녔지만 번디의 프린세스보다 청결하지 못한 곳은 없었다.
 이후에도 말이다. 유리로 환희 트인 문을 열면 보이는 탁자와 테이블이
놓여있는 거실. 왼쪽편으로는 전기 오븐이 있고 큰 냉장고가 놓여있다.
그리고 방이 두개. 방에는 옷가지와 짐을 넣을 수 거울 달린 농이 서 있었다.
트리니티에는 이러한 구조의 건물이 여러개가 있었다. 쥔은 UNIT 라고
구분을 했다. 백팩을 둘러싸고 있는 호주의 나무들. 정말 호주라는 것이
실감날 정도로 내부가 넓은 곳이다. 백팩을 나와 2,3분 정도 걸으면
바다에 빠질 수 있었고 백사장을 걸을 수 있었다. 보웬에 간다면 트리니티를
추천하고 싶다. 한 가지 흠이라면 시내에서 멀다는 것이 있지만 매일 시내를
왕복하는 백팩소유의 벤이 있어 그리 불편한 문제는 아닐 것 같다.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거리에는 울월씨와 호주 슈펴체인의 양 축을 이루고 있는
coles가 있고 거기서 또 20분을 걸어야 시내가 나오는 트리니티.
한 쪽 켠에 포맷볼 데이블이 놓여있고 같은 건물에 비디오 시청실이 있으며
세탁기도 있었다. 전화기가 놓여있는 트리니티 백팩커스.


보웬은 참 조용한 도시다. 한 동안 일이 일찍 끝나거나 토요일 같은 날은 병기,영민을 쫒아 처음으로 접한 Tab라고 쓰인 경마장을 찾아 경마에 손을 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베팅을 하려면 경마장을 가야 하지만 호주는 Tab라는 곳에서 모니터를 앞에 두고 호주의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경마에 베팅을 할 수가 있었다. 병기는 가끔 하루 일당만큼도 벌어서 맥주를 사곤 했다. 잘 생긴 얼굴의 부산 사나이인 병기는 성격이 활달하고 모난데가 없어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강남대를 다녔던 영민은 노래를 참 잘 불렀다. 밤이면 기타를 들고 거실에 나와 기타를 치면 외국인들도 모여들어 박수를 치며 관심을 보였다. 호주는 복권도 많고 추첨도 많고 요즘의 한국을 보는 듯하다. 슈퍼체인에서 승용차를 거는 모습은 그 땐 생소했으니 말이다. 영민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워서 케언즈에서 반찬은 참 잘 먹은 거 같다. 김치가 있다는 것 하나로 말이다. 트리니티로 옮겼을 때 일주일치 방삯을 내고 모니 남는 건 60$정도.
일주일 방세가 90$가량이었으니 다음 주 방삵은 없는 것이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호기있게 지애와 콜스를 가서 이 것 저 것을 음식꺼리를 샀다. 그런 생각들은 지금까지 보내 온 호주에서의 생활에서 배운 것? 터득한 것? 여유같은 것이 아닐까. 콜스에서 트리니티까지 걸어오면서 군것질 꺼리까지 샀다. 콜스 앞에는 작은 호수가 있어서 그 곳에 앉아 호숫가를 노니는 이런 저런 새들의 날개짓을 보며 말이다. 날씨 좋다. 다음 방삯을 내야 할 날이 다가왔다. 일이 주어 지지 않아 수중에 돈이 없던지라 나는 쥔을 찾아갔다. "나 돈 없다. 일이 주어지면 돈 갚겠다. 나 여기서 한 석달 있다 갈거다." 몇 일뒤에 일이 나왔다.
처음 방을 얻었을 때 룸메이트로는영국인 아니 스코들랜드의 귀여운 아가씨 Sarah Rollo가 쓰고있었다. 호주에 오기전 멜 깁슨 주연의 Brave Heart를 감명깊게 본 지라 그 애기를 하며 스코틀랜드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치마입고 악기 부는 남자들하며 이런 저런 애기를 하자. 사라도 한국에 관심을 가진다. 지애와 난 쉽게 사라와 친해졌다. 같은 방을 쓰는데다 워낙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은 사라. 항상 우리 유니트는 사라의 친구들로 차 있던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어울리고 있었다. 옆 방에는 23살먹은 Hieth라는 뉴질랜드인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확실치 않지만 난 히쓰라고 불렀다. 히쓰의 영어만 그런 건지 뉴질랜드 영어가 그런건지 조금 발음이 특이했다. 히쓰는 사라를 좋아했다. 사라가 있는 곳엔 히쓰의 모습도 보였으니 말이다. 한 2주일뒤 사라가 케언즈로 갔을 때 외로워 보이던 히쓰! 언젠가 일이 끝나고 와서 보니 씨익 웃는 그의 입에서 이빨 두 개가 없어진 것을 알았고
나는 누가 그랫냐고 따지듯 물었지만 뒤에 알고 보니 히쓰가 더 많이 상처를 줘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 못했단다. 하여간 큰 키와는 달리 정말 순진해 보이던 히쓰. 언젠가 술에 취해 쓸쓸한 듯 사라가 보고 싶다며 말하던 히쓰의 푸른 두 눈엔 연민이 가끔 비치곤 했다. 사라에게 전화도 못하고 그 저 주소와 전화번호만 갖고 있다던 뉴질랜드에서 온 히쓰와는 정말 친하게 지냈다. 참, 나에게 사라는 떠나며 다이어리에 글을 남겨 줬는데 스캐너가 없어서 아쉽다. 그 글의 내용을 옮겨본다.

Sarah Rollo
Saint Giles Manse 18 Reidhaven street,
Elgin, Moray Scotland. U.K\
01243 537212

Dear Johnie,
Please feel free to write ant time to practise your English.
I 'll definetely write back - for sure -
maybe I 'll see you in Scotland -
You are welcome to stay at my house.
Love from Sarah
                 XXXX
 
뒤에 찰리라는 영국인에게도 메시지를 받았는데
도저히 알아 볼수가 없었다. 그냥 웃고 말았는데
-그 걸 스캔떠야 하는데-
사라는 정성스럽게 또박 또박 써 주었다. 찰리가 악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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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리 비치는 아름다웠다. 특히 백팩 저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어울리는 건물들은 어느 엽서에서 흔히 보았을 풍경 자체였고 그림과도 같은 것이엇다. 마치 어느 한 사람이 계획하고 지은 것 마냥. 그래, 흔히 어느 책에서 나오듯 온갖 미사여구를 들이 부어 놓은 광경이 아마 이런 곳일거다.

아침에 일어나 백팩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설레임으로 보웬 행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섰다. 나는 버스표를 보여줬고 지애 또한 뒤에서 보여주는데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지애의 표가 부킹이 안 되었다고 한다.이런 제길, 지애는 당황하였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지애가 애길 했고 나 또한 거들었지만 거들어서 될 문제가아닌 것 같았다. 지애는 부킹 안내 전화에 다시 연락을 했지만 그 곳에서도 부킹이 안 되었다고 한다. 어쩔 줄 몰라 하다 분을 삭이지 못하는 지애에게 나도 내일 가겠다고 하자 돈을 아끼라고 하며 걱정말란다. 아마 우연히 본 내 통장에 돈이 140$정도 남아 있던 것이 기억에 남았나 보다. 140불이면 약 12만원 정도. 긴장한 모습으로 자기는 보웬에 간다고, 우린 보웬에서 꼭 다시 만난다고 하며 말이다. 지애의 그런 모습이 안 스럽다. 하루를 혼자서 이 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게 말이다. 이게 정인가 보다. 버스에 오르며 지애를 본다. 큰 눈이 반짝 거린다. 차는 천천이 지애를 스쳐 지나간다. 잠에 빠져 들었다.

보웬이란다. 보웬에 내려섰다. 태양이 달려 들어온다. 덥다. 이제 어딜 가야 하나. Trinity 백팩에 연락을 해 본다. 방이 꽉 찼단다. 자리가 없다고 한다. 에어리에서 부킹한 자니라고 했지만 개털이다. 휴~ 저 놈의 태양. 까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라는 작자는 저 놈의 태양 때문 사람을 쐈다고 하드만,... 터벅 터벅. 저 만치서 온다. 번디에서 같이 일했던 한국 친구들. 웃음을 띄웠고 우린 가까운 펍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며 지난 애기들을 나눴다.
트리니티에 있다고 한다. 좋단다. 나는 이 곳 근처에 묵을 거다. 다음을 기약하며 나는 가까운 곳으로 갔다. 도로 옆에 있는
Bowen Backpakers Hostel 들어서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 일나갔나보다. 방을 구하며 일자리를 물었고 별로 신통치 않은 답변을 들었다. 몇 일만 묵겠다고 했다. 한국인은 없었다. 도미토리에 들어서니 번디 수준이다. 에어리로 전화를 했다. 13Begley에 있을 것 같았다. 지애를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지애는 그 곳으로 갔다. 곧 지애가 받는다. 웃는 지애가 보인다. 내일 오전에 터미널로 나가봐야 겠다.지애가 왔다. 한 달 지난 거 같군, 하루 뿐 지나지 않았는데,..

3일후 우린 방을 옮겼다. Denison Hotel. 무늬만 호텔이다. 지애와 주변의 백팩을 돌아다니며 내린 결론! 데니슨에서 바로 일을 준다고 해서 그 곳으로 옮겼다. 새벽 6시쯤에 일어나 우체국 앞에서 기다리면 차가 온다고 그 차를 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 곳에서 이틀을 나갔다. 과일 포장하는 일을 했다.마치 공장과도 같은 곳에서 말이다. 우리가 한 일은 기계앞에 앉아 기계를 타고 흘러가는 토마토를 박스안에 넣는 포장작업이다. 단순 노동. 그 곳에서 이틀을 일하며 우리를 태우는 사람이 트리니티에서 나온 사람인 것을 알았다. 트리니티로 다시 연락을 해 보니 확실치 않다고 한 번 와보라고 한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지애와 트리니티로 가 보기로 했다. 저녁 나절 지친 몸을 이끌고 그 놈의 롤러 블레이트를 끌고 갔다. 보웬 백패커스를 지나면 무슨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그 밑으로 약 300m정도 되는 내리막길이란 것! 와~~~~~~후~! 내가 가볍긴 한가 보다. 조그만 바퀴들이 아우성을 지른다. 길도 잘 닦여 있고 말이야. 지애가 쫓아오다 지쳤나 보다. 두 세개의 사거리에서 차가 나올 까 두려웠지만 멈출수도 없었고 멈출줄도 모르고 멈추기도 싫었다. 미쳤나 보다. 무슨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내려오다가 뒤를 돌아 보니 지애가 저 만치에 앉아있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나무에 몸을 부딪쳐서 일차 충격을 완화하고 다시 미끄러지듯이 낙법을 해서 사뿐이 안착했다. 와장창창~! 흠,... 트리니티에서 만난 쥔장은 상당이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뒤에 들어 알았지만 그는 주변의 큰 건물과 캐러반들을 가지고 있는 지역 유지였다. 우리는 토마토 포장일이 끝나는 내일 모레 옮기기로 하고 데니슨으로 돌아왔다. 아까 내리막길에서의 불시착의 후유증으로 무릎이 욱신 거렸지만 가뿐한 하루.네 이 놈의 롤로블레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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