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는 한 참을 눈물을 글썽이다가 말을 꺼냈다. 1년동안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있을려니 눈물이 난다고, 극히 소녀적인 감상이었다. 흠, 정희는 대학 2년 휴학계를 내고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했고 시드니의 어학원에 등록을 했으며 홈쉐어까지 마련한 상태였다. 나는 어학원 등록도 하지 않았고 홈쉐어도 하지 않고 무작정 가는 거라며 너털 웃음을 짓고 말았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 "영어 잘 하나 봐요" 나는 그저 쓴 웃음을 짓고 말았지만 일단의 부러움은 피할 수 없었다. 내가 고민하는 게 살기 위함(거듭 애기하는데 이렇게 까지 절실한 표현을 한다고 역겹게 받아 들이지 말아주기를)이아닌 가족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라면 하고 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뒷 좌석에 앉은 지영을 알게 되었고 지영이도 워킹 홀리데이로 시드니에 간다는 걸 알게 되어 우린 쉽게 대화를 풀어나갔고 그 녀가 어학원 등록을 하지 않았고 홈 쉐어 신청도 하지 않은, 정말 나와 같은 입장? 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정말 그 녀와 대화를 쉽게 풀어 나갔다. 나중에야 나와 그녀의 입장이 천양지차라는 걸 알게 됐지만 말이다.

그 녀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에는 자의적으로 가지 않았고 다음엔 스페인에 가고 싶다는, 나 보다는 두 살 어린 이쁘장한 아가씨였다. 당찬 아가씨의 모습이랄까? 콧대 센 서울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경유지인 싱가폴의 창리 공항에 내렸을 때 역시 세계적인 공항이라 다르구나라는 생각. 김포공항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창리 공항은 매 년 우수 공항에 선두를 달릴 정도로 시설이 깨끗이 정리된 모습이었다. 여느 백화점을 연상하게 만드는 내부 인테리어,친절한 직원들, 공항내부의 시장 등, 지영과 난 싱가폴 항공에서 제공하는 city tour에서 같은 코스를 신청했고 그 와중에 그녀의 영어 회화는 가희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지워졌고 우린 그렇게 싱가폴의 깔끔한 도시의 빌딩숲을 보트를 타며 누비고 다녔다. 잠시의 싱가폴 투어는 내가 갖고 있던 걱정들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 잠깐의 시간동안 지영과 난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어쩜 그렇게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이국으로 떠나는 동행의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비행기는 다시 이륙했고 어느덧 기내등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잠을 청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모포를 덮고 잠을 청했다. 기내안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넓은 가운데 좌석으로 가서 길게 누울 수가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스튜디어스의 아침 식사메뉴 권유에 일어나서 바깥을 보니 오스트레일리아를 영공을 지나고 있었다. 두어 시간 뒤에는 도착할 것이라는 방송을 어렴풋이 들었다. 정희는 이미 일어나서 창 밖을 보고 있었고 정희는 계속 잠을 청하고 있었다. 지영에게 정희를 깨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을때 정희는 생각없다고 잠을 더 자겠다고 그랬단다. 흠. 시드니에 도착하게 된다면 이런 식사를 언제 하게 될 지모른다는 생각을 식사를 꼭꼭 챙겨 먹는 내 모습이 삭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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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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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따스한 기후에 감싸인 해변에 행복이라는 물결이 넘실 거리며 도시엔 미소들만이 떠도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호주는 말이다. 별천지로만 여겨졌던 그 곳에서의 26세의 내 모습. 그 10개월은 나에게 무척이나 고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것은 단지 호주로 갔다는 그 것 이외의 큰 것일지도
모른다. 26의 그 해를 보내며 내게 다가온 열병들과 번민이라 불러도 좋을 -적어도 나에겐- 고민들은 나를 그 곳으로 내 몰았다. 여행이라고 해도 좋고 도피라 불러도 좋을 호주
Working holiday maker로서의 10개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내게 다가온 것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과거는  아름답게 채색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 현재의 불편을 이겨 나가고자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 아름답기만 하던 내 26의 호주가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 기억에 다시 곱게 빛을 내려면 지금 힘을 내야 하지 않을까.

워킹 홀리데이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학교에는 휴학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영어 학원을 다닐까 컴퓨터 학원을 다닐까 하다가 결국은 인터넷학원을 등록했는데 밤에는 학원을 다니고 낮에는 신용카드 가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이도 쏘다녔다. 훗!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이라는 신분이
감춰주는 것들은 많은 것 같다. 경제적인 면에서부터 사회적인 면까지 말이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가끔 그리워 지곤 한다. 공연한 말을 했군. 11월 부터 준비한 워킹 홀리데이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돼서 3월 12일발 호주행
Singapore 항공을 예약했다. 다가오는 시간들 속에 친구들에게도 그냥 베낭여행
간다는 말로 얼버무리고는 -사실 워킹 홀리데이에 애기해도 당시는 그게 뭐냐고 묻는 친구가 태반이라서 말이다-

서울을 탈출하다시피 떠나던 3월 13일 아침.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지 제각기 분주한 모습이었고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 탑승자 명단을 체크하고 있던 공항. 환전 창구에서 9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을 AS 달라로 바꾸고 해외 출국 신고를 하고 나서 보딩 타임만 기다리고 있자니 드는 한심한 기분. 그 건 어쩌면 내 빈약한 경제적 처지에서 비롯된 기분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 것이다. 푸~ 호주에 왜 가냐고 할 때 난 이렇게 말했다. 영어도 배우면서 여행도 하겠다고, 과연 그게 말처럼 될 것인지 스스로 의문을 띄우며 시달렸다. 안전벨트 매구 어쩌고 하는 기내 방송과 함께 옆에 앉은 여학생은 계속 훌쩍 거린다.
"같은 일행이군. 그런데 왜 울고 있지? 어쩜 호주에서의 생활이 불안해서 그런가"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꼈는데 어쨌든 이 아가씨도 무언가에 불안한가 보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게 사람 마음인지 모른다.  그래서 정희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는 오히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더라. 흠냐리~ 어학원에 이미 3개월 등록했고 홈 쉐어로 들어가며 공항에서 pick-up 서비스까지 신청해 놨다는 것이 아닌가. 우는 이유는 1년간 헤어져 있을 부모님과 친구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는 거라는 정말 소녀적인 감상때문이었다. 흠, 또다시 혼자임을 느끼며 앞 날을 씹고 있는데 정희와 대화를 나누던 뒤에 있던 지영도 워킹 홀리데이로 가는 것이며 어학원도 등록을 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난중에 알았지만) 방도 구하지 않았으며 Sidney에 도착하는 대로 일자리부터 구해야 한다는 말에 난 동료를 만난 거 같아 너무 기뻤다. 같은 일행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기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묵중한 이 쇳덩어리가 어떻게 날라다닐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약간의 여유를 가지며 호주 관광책을 읽고 있으려니 김포 시가지가 점점 멀어진다. 1년 뒤에 다시 가까워질 모습들이지. 그 때는 좀 시원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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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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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가 옮겨와야 겠내요. 소중한 기억이니 만큼 말이죠.
드림위즈 서비스가 종료되어 그 간 방문객들이 남겨준 만여개의 기록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
어쩔 수 없다...어쩔 수 없다..아... 이 말 정말 사람 환장하는 거죠.

someday라는 말을 좋아한다.
막연한 미래의 언젠가를 뜻하는 것이지만
거기엔 무엇인가 나를 기다리는 게 있다고 여겨지니까 말이다.
뭐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늘 하루가 급했고 내일을 걱정하면서 살아오던 때가 훨씬 많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때가 가장 내가 열정적이었을때일 지도 모르겠다.
내일을 알 수가 없어서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은 지나서 나도 내 옆에 있어줄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시급함에
와 있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고귀한? 나이에 도달해 있다. 풋.
여전히 someday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적 60분을 보았습니다.

방금 추적 60분을 보았습니다. 너무 안스러운 마음에 혹시 그 곳에 갈 젊은이들이 용기를 꺽일까 싶어
이렇게 부리나케 두서없이 적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아! 날짜를 알려드리면 오늘이 1월 21일, 호주로 떠난 IMF이민의 현실이라는 제명 아래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청년실업자들의 생활상도 보여주더군요. 혹시 시청하지 못하신 분을 위해서 대강의 내용을 정리 해 봅니다.


IMF사태 이후 미국과 호주로 떠난 이민자들이 과연 그들이 함께 가지고 간 그들의 청사진대로 계획이 착실히 진행이 되고 있느냐, 결론은 아니다라는 논조와 함께 IMF위기를 해외 이민으로 해결하는 건 능사가 아니며 가기전에 착실한 준비를 가지고 강한 돌파력과 적응력이 필요하다는 뻔한 애기였습니다.
워킹 홀리데이의 허와 실이라는 부제아래 나온 화면에는 캐러반에서 생활하며 새벽 4시 30에 일을 나가는 젊은이의 모습과 "빨리빨리" 하며 한국말로 재촉하는 농장의 감독모습도 보여주더군요.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여행도 하고 영어도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감독관이 재촉하며 섭씨 45도씨가 넘는 태양아래서 물먹을 시간도 없는데 언제 한가롭게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냐는 애기였습니다. 그 외 나온 젊은이들 중에는 S전자에서 근무하다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로 온 어느 여성의 애기도 있었습니다. 여성분을 위해서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 여성은 5개월째 직장을 구하고 있는데 한국인이 호주 노동 임금의 단가를 낮출정도로 몰려들어 임금이 낮은 건 둘째치고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이 것 저 것도 할 수 없어 호주 한인촌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그 것도 힘들고 생활 정보지에 광고를 내 보았는데 전화가 오는 곳은 유흥업소뿐이라는 애기더군요. 그리고 현지의 유흥업소에서 웨이스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여성의 인터뷰 내용도 들려주더군요. 이토록 힘든 이국생활에서 어쩜 그 건 유혹일지도 모릅니다.

부디 꼭 준비를 착실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뜨거운 태양과 넘실대는 파도를 생각하시고 호주에 가시면 당혹스런 모습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런 경험이 없었지만 현지에서 그런 애길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더 무섭다" 추적 60분에서는 현지에서 한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임금을 체불해서 결국은 임금을 받지 못하고 귀국한 사람의 인터뷰도 들려 주던군요. 어쩜 이국에서의 그런 일은 이 곳 한국에서의 그런 일을 당할 때 보다 더욱 어이 아니 황당하게 만들겁니다. 꼭 준비를 착실히 하세요
추적 60분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두서 없이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호주에 가시는 분이 있다면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그렇다면 제가 드릴 건 없지만 용기를 드리지요. 마음의 준비란게 별거 없습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호주 정보 빠삭한 두툼한 책과 온갖 준비를 해 가도 맞 닥트리는 문제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저 용기를 갖고 가세요. 꼭 연락하세요. 호주에서 제가 처음 버스를 탄 건 시드니에서 브리스베인까지 순전히 농장을 가기 위해서 18시간을 타고 갔습니다. 그리고 1시간 30분뒤에 6시간 타고 번다버그, 그 황량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제가 갖고 있던 돈은 1100$정도 였습니다. 준비는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것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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