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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날 8시경, 지애의 성화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준비를 하고 나니 밖에서 투어를 가는 다른 여행객들과 투어에 사용되는 짚차들로 웅성거렸다. 각 짚차별로 배정을 받고 여러 도구 -식기류나 기타 잡다한 것들-들과 연료까가지도 할당 받는다. 이런 모든 것들에는 bond라고 하는 보증금이 붙어 있어서 분실하게 되면 bond를 못받게 된다. 운전하는 호주인은 나이가 21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는지, 그 호주인은 무척 활달하고 농담을 잘 해서 투어 내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캐나다에서 뉴질랜드에서 세계 여기 저기에서 온 젊은이들이 Toyota 짚차속에 앉아 있다. 누가 머랄 것도 없이 각자 소개를 하고 보니 나는 나이가 많은 편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는 내 나이를 무지 어리게 본다. 정말 무지하게 말이다. 케언즈에서는 미성년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카드를 만들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게 아마 18세 이상임을 증명하는 것일게다. 17센가? 큭! 어쨌든 2박 3일간의 프레이저 투어는 시작이 됐다. 거금 90$이 투자된 호주 최초의 투어였으니 그 만큼의 기대는 당연하지 않을까? 운전하는 호주인은 연신 Pasta!를 중얼거리고 있었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까지도 나의 영어에 반신반의 하던 터라 으레 하는 애기들.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현재 몇 개월 체류중이고 번다버그에서 올라왔다. 앞으로 어디로 갈 거다. 너 거기 가 봤냐? 어떻냐? 너는 어디서 왔냐? 호주는 얼마동안 있었냐?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등, 이런 애기가 끝나고 보면 정말 어려워진다. 그 때분터는 머리에 열나기 시작한다. 후훗! 지애는 나보다 영어를 잘 했는데 그 건 이미 나 보다 10개월 가까이를 더 호주에서 체류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호주를 돈 것 같았다. 퍼스, 멜버른 등, 멜버른은 참 좋았다고 한다. 그 곳에선 퍼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말이다.

Toyota는 하비베이의 외곽지역을 돌아 선착장에 도착했다. 영화속에서 보는 그런 길이다. 프레이저까지 가기까지의 길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선착장에는 프레이저로 가는 정기선으로 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승선이 시작되어 우리는 선내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 바람이 세차게 지애의 머리를 날린다. 바다가 좋다.
산을 오른뒤의 해방감을 들어 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다는 언제든지 가슴을 열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좋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바다가 좋을 뿐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프레이저로 가는 걸까. 선착장에 도열해 있던 수많은 차가 배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배는 고동을 울리며 출발을 알렸다. 움직인다. 아주 천천히, 바다에 끌려가길 30여분. 저 만치 프레이저가 보인다. 울창한 수풀로 우거진 섬이 보인다.길게 쭉 뻗쳐 내린 섬이 곱게도 생겼다. 검푸른 바다위로 파도가 물줄기를 휘감는 곳. 우리는 2층과 아래층을 돌아다녔다. 2층에는 각종 기념품과 간단한 음식류를 팔고 있었고 사람들은 갑판에 나와 끊임없이 주절 거리고 있었다. 순간 불어온 강풍이 내 모자를 날린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지금도 어디론가 떠 내려 가고 있을까.

프레이저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신호에 따라 차에 탑승을 하고 배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프레이저의 수풀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덜컹거리는 진동과 함께 우리도 환호성을 질렀다. 열대림을 지나며 보이는 건 어느새 해변으로 나온 Toyota. 호주인은 나에게 운전을 해 보겠냐구 물었다. 닌 해변가를 달리며 소리를 지르며 어떤 열기에 휘감겨 차를 몰았다. 뒤 따르며 앞서가는 Toyota사이로 해변가의 바닷물이 솟구친다. 그렇게 한 참을 달려 우리는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은 공원과도 같이 조성된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프레이저 기념품 가게에서 이 것 저 것을 구경하며 호주에서 처음 갖는 투어를 만끽했다. 다시 출발해서 다다른 어느 호숫가! 에메랄드 빛이 이런 걸 보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한없이 빠져 들 것만 같은 호수의 맑은 물결이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함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이 되어 우리는 야영지를 찾았고 그 곳에서 텐트를 치고 나무를 모아서 불을 부쳤다.

바비큐를 하고 한 쪽에선 각자 준비해 온 식사와 술을 꺼내 들었다. 말도 쉬이 통하지 않는 그 곳에서 그렇게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여행은 마술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를 잊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를 떠난다는 것. 내 모습을 잊는 것. 어쩜 그 것이 자기의 본 모습인지도 모른다. 밤늦게까지 떠들고 놀았다. 바닷가를 걸었고 하늘의 별을 셌으며 야영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하! 그런데 그 곳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릴 줄이야, 나는 지나온 휴게소에서 놓고 온 것을 알고 호주인에게 다시 가 보자고 했고 그는 흔쾌히 같이 가 주었지만 카메라를 찾진 못했다. 혹시나 여느 책에서 보았던 서양에서의 분실물 습득애기가 떠 올라 가게 곳곳에 물어봤지만 허사였다. 난 여행자 보험을 떠 올리며 아마 분실물 보험도 들지 않았나 싶어 다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프레이저에서 내가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커다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말이다. 다른 베낭객들에게 들은 대로 하비베이에 돌아와서 경찰서에 가서 분실신고와  함께 신고증을 받는다.그 게 또 가관이었다. 푸~! 이 건 다음 편에 애기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다시 섬을 돌기 시작했다.이른 아침의 기운은 서늘한 바닷바람으로 몸을 움츠리게 했고 점심때는 뜨거운 햇살이 바다에  빠져 들게 했다. 우리는 교대로 차를 몰았고 Toyota에 몸을 맡기며 프레이저를 즐겼다. 섬전체가 거대한 모래섬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운 모랫살이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저만치에 언젠가 낮선 호주에 내려 절망을 간직한 체 사라져 갔을 이름 모를 선원들을 태웠던 난파선이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난파선. 난파선. 가야 할 목적지를 잃은체  낮선 곳에 결국 순응하고 마는 난파선.

우리는  또 다른 호수에 도착했다. 이미 친해진 다른 친구들과 호수에서 물장난을 치며 서로 물을 먹이기도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나를 빠트리려 쫓아오는 그들을 피해 달아나기도 하며 흥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프레이저에서 제일 큰 호수로 관능적인 모래  언덕위로 태양의 뜨거운 입김이 작렬한다. 가는 모래알들처럼 많은 우리의 기억들은 어디에서 반짝이고 있을까.
 
아쉬울 수밖에 없던 그 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 우린 하비베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이제 록 햄프턴으로 가는 지애와 아쉬운 헤어짐의 시간. 말없이 얼굴만 본다. 때론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할 때가 있다. 그저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었다. 지애는 나에게도 북으로 가자고 했지만 난 서퍼스에 가야했다. 서퍼스에서 안 된다면 너에게 가겠다고 했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넓은 곳에서. 그리고 지애는 갔다. 차창너머로 지애의 눈물이 보인다.

프레이저는 유엔에서 정한 세계문화유산중의 하나이다. 거대한 모래섬. 고운 모래알과 태양이 어울리며 바다를 향해 다가갈 수 없는 연민을 부르듯 한 없이 아름다운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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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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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그리 가깝지 않은 터미널까지 밴을 타고 가려면 말이다. 닐은 백팩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이른 새벽에 같이 일어나는 경우, 터미널까지 태워주었는데 짐이 많은 이용자들의 경우는 일찍 일어나서 마지막 밴을 타고 터미널에 내려선다. 그 동안 같이 일했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떠나려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에 내려선 우리는 예약한 버스를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린다. 베낭을 확인해 보니 이 곳에 낯 선 이방인으로 세 개의 가방을 들고 올 때가 떠 오른다. 베낭이 줄어든 지금은 그 무게만큼 시원섭섭한 마음이다. 두 달전에 이 곳에 내려섰을 때 지금을 상상했을까? 버스는 번디를 출발하면서 번디의 관통하는 강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나는 틈틈이 저 강에 가서 말보로를 말며 시선을 던지곤 했는데, 후훗! 지애는 어깨에 기대어 곤히 잠들어있다.

시간 20분 뒤! 어느새 버스는 하비베이로 들어서고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건물들과 도로는 번디와는 다른 깔끔한 멋을 풍기고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여서 그런가보다. 우선 숙소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숙소를 잡는데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저 편 주차장 앞에서는 1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숙소직원들이 자기 숙소로 오라고 장점들이 적힌 나무판을 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애를 세워두고 그들에게 다가가 이 것 저 것을 물어보았다. 우선 하루를 묶고 더 나은 곳이 있다면 그 곳으로 갈 요량으로 괜찮아 보이는 한 곳을 선택했다. Olympus 였다. 밴을 타고 그 곳에 도착한 것은 5분쯤 뒤 유럽의 어느 가정집과 같은 생김새의 근사한 곳에 내려섰다. 리셉션에는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른 몇 명의 여행객을 상담하고 있었다. 체크 인하기에 앞서 사무실 내에 있는 여러 브료셔들을 챙겼다. 사파리에 관한 내용들. 그리고 이 곳 하비베이의 지도등을 몇 부 집어들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응해줬고 편한 마음으로 방을 잡았다. 번디에선 상상도 못할 정도로 깨끗한 방이 2층에 4개 있었다. 거실에는 보기에도 편한 소파와 티브이가 자리하고 있었고 베란다엔 다 자란 나무가 양 팔을 길케 뻗치고 있었다. 그 사이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빛살에 반짝였고 그 위로 섬들이 보인다. 저 중에 하나가 프레이저일까?

몇몇 외국인은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2층에 방이 4개. 그리고 아래층엔 방이 두 개있고 작은 부엌이 잇었다. 탁자가 놓여진 깨끗한 모습. 여행하는 기분이 이런 걸꺼야. 짐을 풀고 지애와 상의한 끝에 3일뒤에 프레이저 사파리 투어 예약을 하기로 했다. 예약과 방요금을 정산한 후 시내로 나가 큰 수퍼로 들어갔다. 울월씨(Wool wolthy)체인은 호주전역에 깔려있는 대규모 수퍼 체인망이다. 그 곳으로 들어가 간단한 몇 가지 야채와 빵과 음료수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시내를 구경했다. 시내에는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지애는 음식을 잘 못하는 편이다. 언젠가 지애가 해 준 수시(초밥)외에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다. 수시라고 하니까 수시인 줄 알고 먹었지만 말이다. 난 물을 올려놓고 야채를 썰고 번디에서 어느 한국인이 귀국하게 되면서 나에게 건네 준 고추장을 이용해서 국을 끓였다. 딱히 머라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이엇지만 고추장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 든든한 그런 호주 생활들이었다. 참! 고추장도 좀 많이 가져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처음에 호주 음식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해 오지 않았지만 사실 호주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드는 음식을 찾기는 드물다. 물론 하숙이나 쉐어를 들어가서 어느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굳이 가져 갈 필요야 없지만 혼자 이곳 저 곳을 돌아다닐 양이라면 고추장이나 된장을 가져가는 것이 음식문제에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한 통 사면 정말 두고 두고 먹는다. 머 거기 가서까지 고추장을 챙기냐구 묻는다면 난 할 말 없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돈 한푼이 아쉬울 때 그 것들이 주는 안정감! 이 말이 무슨 뜻인는 그 곳에서 알게 될 것이다.


지애는 내가 끓여준 한국식? 국 내지는 찌게를 좋아했다. 어쩜 그 건 경제적인 빈곤?에서 비롯되는 신뢰감인 지도 모른다. 그래.그 것일거야. 이 후 항상 식사는 내가 준비를 했고 정말 별 볼일 없는 식사였지만 풍족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프레이저 가기까지 시내 곳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다음 날 브로셔에서 볼 수 있었던 어느 상어 전시관에 들어갔다. 그 곳은 어느 호주인이 아들을 상어에게 잃은 후 상어사냥을 나서 잡아 들인 가지가지 종류의 상어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 피같은 거금 7$의 입장료. 혹시 이 곳에 가는 사람있으면 들어갈 일 없다고 말하고 싶다. 호주에도 상어가 있어서 가끔 상어가 인근 바다에 나타난다고 한다. 바다에 접한 도시에서 말이다. 하비베이는 작은 도시지만 번디와는 다른 멋을풍기고 있었다. 저녁 늦게 올림푸스 근처의 퍼브pub에서 맥주 한 잔을 걸치다가 무슨 댄싱타임이 있었든지 전부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춰대는 통에 나도 일어났고 금방 어울린 몇 명과 같이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같은 여행객들이라 마음을 열기가 쉬운지도 모른다. 호주에선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정말 편했다. 아마 내가 만난 사람들이 거개가 여행객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눈만 마주치면 웃음짓고 말을 거는 그 사람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뒤에는 오히려 그 게 더 편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어디 가느냐, 여행은 즐겁냐며 묻는 그런 모습들이 말이다.

그 곳에선 하릴없이 거리를 구경하고 사람들과 여러 기념관들을 돌아보며 모처럼의 한가한 시간을 즐긴다. 마침 한국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두 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우연하게도 그들은 Olympus에서 묶게 되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학원강사,그리고 회사원. 그들은 한국에서 베낭여행을 신청해서 일행들과 같이 왔다가 브리스벤에서 헤어졌다고 한다. 계산을 따져보니 여행사를 따라다니는 것보다 경비가 저렴했고 또 으례의 획일적인 관광코스보다는 그들만의 새로움을 추구하기로 해서 이 곳으로 왔다고 한다. 같은 여성이어서 그런지 특히 지애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지애또한 그들과 대화를 즐겼다.
한국여성 두 명이 여행을 하는 모습은 상당히 신선하게 남아있다. 그들의 우정도 그들의 여행에서 얻은 감동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한국에서의 친구와의 여행도 갖기 힘든 기회인데 이국땅에서 그녀들이 갖고 있는 우정은 깊이가 어느 정도일까? 세상에는 변해야 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만 우정은 후자일 것이다. 변한다는 것은 어쨌든 섭섭하다. 허전하고 서운하고 머 그런 것아닐까? 변해간다는 것은 말이야.
당시의 일기입니다.

3.June
정말 수많은 시간을 번디에서 보내버렸다.
하지만 그 만큼 얻은 것도 많아서 좋다.
영어를 소홀히 할 수 없던 70여일의 시간들.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젊음을
보여준 것 같아서 흡족하다. 지금 옆에는 지애가 누워 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로 올라가자.
우선 골드코스트로 내려가서 차분히 올라가자.
추우면 추운대로 말이야. 이 곳에서의 6일. 그리고 난 간다.
옆에서 마냥 웃고 있는 지애의 모습을 보니 씁쓸하다.
난 내 갈길이 있는데, 망설이지 말자. 시내를 돌아다녔다.
정말 이 나라가 부럽다. 이 조그만 도시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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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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