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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시작한지가 햇수로 4년을 넘어간다. -.-;
이젠 그 때의 기억을 떠 올리거나 꺼낼 기회가 있으면 호쾌한 웃음이 나온다.
그 웃음은 잘 했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일 것이리라.

이제 케언즈이야기도 마무리지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항상 새로운 길을 걸어왔고 도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또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케언즈를 모처럼 떠올리니 생각이 난다. 이름도 이젠 가물가물하다. 강남어디에서 까페를 운영하다가 아버님의 성화에 못이겨 호주로 왔다는 그 아인 돈은 많았다. 나보다 세 네살 어린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디쉬워셔로 일할때 피얼스 뒷편에서 낛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 때의 만남이었다. 그 아이가 말하는 것은 의아심을 넘어 또는 부러움까지 때론 갈 때가 있다. 자신이 운영하던 까페가 강남에서 꽤 이름난 곳이이서 연예인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그런 류의 시시껄렁한 애기였지만 귓가를 자극하는 강남이란 동네의 풍속도를 얼핏 들을 수 있었다. 그 때까지 강남이란 곳에는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여유를 즐길만한 기회가 없었으니 말이다. 가끔 매스컴에서나 들었을까? 그 아인 친구와 둘이 케언즈로 와서 쉐어를 구하고 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케언즈를 택한 이유가 순전히 꺼리가 많다는 이유란다. 볼꺼리, 놀꺼리, 애깃꺼리 말이다. 이제 케언즈 생활도 익숙해져서 피얼스의 부두에 앉아 저 바다 건너 어드메쯤 우리 집이 있겠지 하며 잡담을 나누기도 하며, 외모에서 부티가 나는 그는 한동안 종종 만나면 영어도 안되고 그래서 어학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며 가끔 피얼스에 나와 나와 이런 저런 잡담을 했는데 어느때부턴가 안 보이길래 친구에게 물어보니 일본인들과 친해져서 놀러다니기 바쁘단다. 하하 그냥 웃고 말았다. 이 후 그 아이완 대화 한 번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도 머하나? 까페 하나?

나와 같이 자취하던 그 아일 빼 먹으면 안 되지. 두 달정도 되는군. C대 경제학과를 다니던 그 아인 내가 쉐리단 스트리트의 쉐어룸을 구하고 이태리인과 일본인이 자기친구한테로, 여행으로 떠나면서 그 집을 나 혼자 사용하게 되면서 구한 아이다. 전형적인 대학생의 외형으로 CPA를 따고 싶다며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 IMF사태로 일찍 귀국하며 이런 저런 일상에 치이다 보니 연락도 못하고 결국 무얼하나 가장 궁금해하는 동생이다. 내가 잘해주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나한테 미소를 잃지 않으려 했던 지금 생각해도 많이 미안한 동생이다. 그 때 동생이 보던 책이 "오성식의 SOS 7200" 맞나? 그 책을 무던히도 열심히 공부하더라. 아마 지금쯤 좋은 곳에 취직 하였으리라. ㅋㅋ 그 곳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만나서 좋아하고 오해하고 애정 싸움도 한 다는 것을 보여준 동생이다.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이렇게 적어가다 보니 무슨 사람애기가 이렇게 많나 싶기도 하다. 내 생에 사람이 부족해서일까? 하~ 생각해 보면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웃고 떠들던 기억이 참 행복하기도 하다. 그래 난 사람이 부족한가 보다. 앞으로의 생은 사람농사 잘 지어야 겠다. 이제 틈틈이 호주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려면 나도 이 곳을 찾아봐야 할 거 같다. 몇 년 전에 쓴 글들을 보다 보면 아~ 그 때 그랬었지. 하며 씨익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나는 오늘도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고 또 과거의 사실을 잊어 간다. 머 이 것을 좋다 나쁘다 이분법적인 애긴 할 순 없겠지만 아쉬울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어쩜 공연한 글쓰기에 시간을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일상에서 그 때의 일들을 누군가에게 애기할 일도 없고 또 말한 다는 것 조차 겸연쩍기 짝이 없었는데 그 동안 이렇게 써왔고 뒤 돌아보니 그 건 기억뿐이 아니었다. 지금도 이렇게 난 살아있고 앞으로도 내가 있는 이 땅을 밝고 있는 동안은 그 것들도 이 땅을 밟고 있지 않을까.

난 새로운 길을 간다. 그 간의 낯부끄러울지 모를 경험담을 보고 발길을 돌렸을 지도 모를 분들에게 책임못질 사과를 같이 하며 호주의 경험담은 행여라도 어느날 이유없을 뒤척임으로 잠못이루다가 아직 일상에서조차 끈적거리는 지난 호주에서의 내가 떠오른다면 컴퓨터를 부팅할 것이다. 이 글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더니 연재를 시작하면서 계획했던 끝은 Do it again 이다. 하하. 또 기약없는 글을 올려야 겠군. -.-;

* 근데 말이야. 마지막을 좀 멋있게 하고 싶었는데 낙서가 되어 버렷다. 마음이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아서 일꺼야. 아마도 말이야. 지애도 생각나고 마나미도 생각이 난다. 지애. 마나미. ^^; 참, 이빨 빠진 부분은 음..담에 담에... 정말 담에... 담에 하자. 담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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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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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일하는 면세점은 시내에서 꽤나 큰 편이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2층으로 된 건물안에는 신과 같은 일본인 아르바이트생이 1층에 대 여섯명의 아가씨가 있었고 신은 위층에서 담배와 초코릿등의 식료품을 판매한다.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 신을 보니 반가움이 앞섰다. 일본인 답지 않게 순진하게 생긴 신. 어쩜 내가 호주에서 본 일본인의 70%는 내가 생각하는 일본인의 외모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조금은 간사하게, 조금은 멋있게도 생긴 거 같은 외모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난 한국인이나 일본인 구별을 90%이상 할 수 있었다. 어떤 특색이 있는 거 같다. 그런데 일본인은 나를 일본인인 줄 알고 한국인은 나를 일본인으로 착각을 했다. 내가 머리를 길고 묶고 있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 전에도 종종 시내에 들르면 이 곳에 들러 신에게 내 처지를 애기하고 신은 위로하고 난jerkey며 초콜릿을 주섬주섬 먹고는 했는데... 후훗~ 신에게 내일에 있을 인터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은 진심으로 내가 취업이 되길 바라며 같이 기대에 들떠 있었다. 마침 손님이 들어오자 "이랏사이 마쎄" 하며 신이 고개를 숙였다. 신에게 간단한 일본어를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신이 일하는 곳을 나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쩜 현실로 돌아올 지 모를 희망에 모든 것을 채색되고 있었나 보다.

인터뷰가 있는 날이다. 얼마전 서울에서 내려온 유학생에게 100불 주고 산 자전거를 타고 물어 물어 케언즈 공항으로 향한다. 시의 외곽지대라서 거리는 한산하다. 그리 많지 않은차량들을 지나다 보면 헬스 클럽도 보이고 작은 서점들, 그리고 가게들, 10분쯤 달리다 케언즈 국제 공항이라고 쓰여있는 이정표가 보인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돈다.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비행기 한 대가 머리위로 날아간다. 공항이구나. 공항버스도 지나가고 택시 몇 대도 지나간다. 페달을 밟으면서도 머리속에선 공항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대기만 하다. 어쩜 여기에서 근무하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은 들지 않는다. 혹시 나의 긴 머리가 인터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개성인데... 존중해 주겠지 하면서 가볍게 생각한다. 보인다. 서울 공항이나 싱가폴의 창리공항과는 다르다. 좀 작은 거 같다. 공항내를 잘 꾸며진 꽃밭을 지나 어느 건물로 들어가서 근무자인듯한 사람에게 국제선을 물었다. 그가 가르켜준 방향으로 다시 폐달을 밟아서 도착한 케언즈 공항 국제선. down town 이라고 했지. 내가 본 국제 공항은 서울과 창리 밖에 없으니-아 마닐라도 있군- 기억이 번화하고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는데 그 건 아니었다. 중소도시의 어떤 무역 박물관 찾아 가는 기분이랄까? 화려하진 않지만 깨끗하게 조성된 꽃밭과 잘 정비된 도로들 사이를 지나 국제선의 down town을 찾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보니 다운타운은 탑승객이 안으로 들어가는 대기실에 내부에 있었다. 헐.. 난 어떻게 해야 할 까 하다가 유리창 쪽에서 다운타운에서 근무하는 사람인 듯한 금발머리 아가씨에게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마이클을 만나기 위해 왔다고 중얼거렸다. 입모양으로 알아 들었을가? 잠시 뒤에 난 공항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항내부는 에어컨으로 인해서 시원했다. 수많은 면세품들이 쌓인 곳을 지나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휴계실인 듯 했다. 잠시뒤 30대 중반쯤의 인상좋은 남자가 들어왔다. 난 쟈니이고 면접을 보러 왔다. 연락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는 다운타운엔 일본손님이 약 70%된다며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세일즈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며 일본사람이 들어오면 뭐라고 하는 줄 아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랏사이 마쎄". 나는 신이 말해줬던 대로 애기를 하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바로 그거다. 여기 호주 사람들은 그 것을 할 줄 모른다. 쟈니가 그 것을 해줘야 한다며 말했다. 나는 대학시절때 일본어를 했고 이 곳 케언즈에 일본인 관광객이 많기에 일본어를 해야 겠다고 생각이 되어 지금 공부하는 중이다라고 했다. 물론 허풍이다. -.- 그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나오라고 한다. 근무시간은 오전 시간으로 말이다. 페이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시간당 15불. 난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환한 미소를 짓고 다운 타운을 나왔다.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며 다시 국제공항편을 바라보며 나에게도 드디어 행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소리지르고 싶었다. 여전히 태양은 케언즈를 내리 쬐었고 바람은 뜨거웠지만 나의 가슴은 시원한 오아시스를 찾은 사막의 여행객마냥 행복감에 취해 있었다. 이제 잡때문에 울고 싶고 곱씹던 누군가에게로 향한 원망도 없을테고 체념도 안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위의 것들을 유심히 지켜 본다. 자동차 고치는 garage, 수영장도 있었네. 아무리 봐도 케언즈는 너무 사랑스러운 거 같아.

사람은 희망에 사는 것일까. 머 어떤 책 제목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던데... 난 아마 희망으로 살아갈 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잃을 것이 없다는 어느 무엇처럼, 멍청하지 않은 내 머리와, 부실하지 않은 내 몸뚱아리. 하하. 이런 것들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것! 난 너무 많은 것에 나를 힘들어 했다. 스스로를 말이야. 별 것 아닌데...,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그 것이 이런 것 아닐까. 내가 내가 말이야. 정말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이야. 난 헛되이 살 수는 없어. 그래 이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만한 가치를 너에게 전해 줄꺼야. 너가 찾으려 노력하고 어두운 밤에서도 가로등 불빛을 거울 삼아 걸어 나간다면 어디에선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찾아봐, 어려울 거 없어. 그저 살아가면 돼. 힘들어 하지마. 그리고 다가가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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