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호되게 겪었다.
내 세대는 모두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어느 세대든 동년배의 애환을 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럽겠지만
우리 세대도 그렇다. 대학만 졸업하면 직장이 잡히고 그 직장에서 
눈치껏 열심히 일하다가 나이들어 은퇴하고 뭐 그런 계획이 있는 없는 시절이었다.

 

1997년 12월, 당시 호주 케언즈에서 워킹홀리데이 막바지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다운타운 듀티프리샵이라는 케언즈 공항내의 면세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때가 11월인가, 12월인가...

식당에서 일하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중국인이 말을 건넨다.
"한국 부도났다며?"
잉? 무슨 소리야.
신문을 보니 Korea bankrupcy라는 글자가 들어온다?
뱅크럽시? 무슨 국가도 부도나나?

 

한국에 돌아온 이후 나한테는 그 시기가 고난의 행군이었던 것 같다.
뉴스에선 연일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부도소식이 들려왔다.
구조조정은 일상이었고 노점상들도 참 많았던 시기다.

 

구미공단에 일이 있을까 여인숙에 머물면서 교차로나 벼룩시장을 뒤져가며 
일자리를 찾다가 결국 경북 칠곡의 어느 부직포 공장에 들어갔다.
6시 넘으면 주변이 쥐죽은 듯이 조용한 산등성이에 지어진 농공단지였다.

 

두 어달 일했는데 월급이 나오지를 않아 결국 다시 부모님이 계신 천안으로 올라와
취업하게 될 때까지 이런 저런 알바를 하며 당시 정부에서 지원하는 교육을 받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지금까지 알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었고 가 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렇게 직장을 들어가고 창업을 하기 까지의 몇 년은 어쩌면 그 때의 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인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나의 뇌리에 강한 트리거로 남아있는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말이었다.
내 인생은 미래형이기에 오늘의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내일을 위한 걸음이며 어제는 오늘의 내 모습이다.
비록 생채기가 있었을 그 때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어제의 나를 아름답게 채색하기 위해 오늘을 노력할 것이며 내일이 만들어 질 것이다.

지금까지 알던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접하고 있는 지금,
그 때의 기억들을 남겨보고자 한다.

 

DCT는 첫 회사이름이다.
DCT를 시작하면 다시 시작하는 지금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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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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