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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전두환이 기업들에게서 삥뜯느라 혈안일때 삥을 주지 않아 괘씸죄에 기업이 해체되었는 이야기가 거의 정설로 여겨지는 비운의 그룹. 당시 전두환이 삥뜯은게 청문회때 밝혀진 것만 당시 1조.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말미암아 세계토픽에까지 올라 웃음거리가 되었었다. IMF와 금융위기를 거쳐 그 1조는 얼마가 되었을까? 과거 박정희시대의 율산,제세그룹의 재판이었을까? 가끔 이런 역사들을 보고듣다 보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화가 많이 되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기업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기업의 속성인 돈벌이에만 급급하느라 사회적책임에 등한시하게 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빠른 자본주의화로 인해 기업윤리가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은 탓일까? 미처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기업들 스스로 책임을 지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 것 같다. 몇 일전 경향신문 기사에서 보면 각 그룹별 사회적기업을 조사해 보니 SK가 5개인가? 제일 많고 삼성과 현대기아차그룹이 한 개란다. 달랑 한 개. 또 하나의 가족이니 그 딴 소리를 지껄이면서 수천억을 광고비로 돈 쳐바르면서 사회적 약자를 직원으로 쓰거나 사회환원에는 정작 인색한 기업들이다.

결국 깨끗한 정권이 들어서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더욱 관심을 쏟을 수 있지 않을까. 사리사욕에 물들거나 명예와 함께 일타쌍피를 노리는 한탕주의 정권 아닌바에야 말이다.

국제그룹(國際 - )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던 대기업이었다. 회장은 양정모. 전두환정부 시절 발생했던 1985년 정관계 로비 의혹사건에 휘말리고 1997년말에 발생한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그룹이 무려 8번이나 해체되는 참극을 빚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그래서 한때 비운의 그룹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당시 이 그룹의 회장 양정모가 2003년에 국제그룹을 다시 창건하려고 애썼으나, 이듬해 발생한 신용불량자 100만명 절정사태 및 2008년에 발생한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2009년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85년 당시 공중분해되었던 국제그룹, 그 해체의 배경은?

5공화국의 숱한 파문과 의혹을 남겼던 국제그룹 해체는 그 과정과 배경이 베일에 가려진채 5공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93년 7월 당시 헌법재판소가 국제그룹 해체결정이 헌법에 보장된 자유시장 경제원칙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의문을 한꺼풀 벗겨냈다.

국제의 공중분해는 전두환당시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이며 그 배경이 결코 경제적 판단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는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국제그룹의 해체결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85년 2월 21일. 국제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당시 이필선행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제그룹 정상화대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행장은 국제그룹의 분해방안이 적힌 유인물을 짤막하게 읽은후 질의답변도 사양한채 기자회견장을 서둘러 떠났다. 그러나 국제그룹의 해체작업은 주거래은행이 일체 간여하지 않았으며 이 행장 또한 재무부사무관이 밤샘작업으로 만든 발표문을 당일 건네받고 대신 읽었을 뿐이었다.

국제그룹 해체의 최종결정은 이미 2월7일 당시의 전대통령과 김만제재무장관의 밀실단독회동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때 인수자까지 결정됐다.

국제그룹 해체가 새로운 전기를 잡게 된 것은 88년 6월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감사가 부활되면서부터. 이 무렵 옛 국제직원 10여명은 그룹 복권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당시 국회는 관련기관에 부실기업 정리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고 재무부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은행감독원과 제일은행은 국제그룹에 대한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돼야 한다는 은행측의 분석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2월5일 제일은행과 국제가 그룹 자구계획을 함께 마련하는 등 정상적인 복원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좀 더 결정적인 자료는 국정감사가 끝난뒤 대검 중앙수사부가 5공비리 마무리 조사를 펼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몇가지 내부문건도 함께 제출됐는데 이 가운데는 89년 2월말 재무부가 그룹해체에 앞서 청와대에 보고한 「국제계열 현황과 대책」이란 문건도 포함돼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메모까지 들어있는 이 문건에서 재무부는 ▲은행관리의 개시와 ▲계열기업의 처분권을 주거래은행에 위임하고 ▲주력기업에 계열기업을 끼워넣어 처분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다시말해 2월5일 주거래은행과 국제측이 자구노력 등 그룹 정상화방안을 매듭지을 무렵 청와대와 재무부가 국제의 공중분해를 결정하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 것이다.

2월12일에는 재무부가 제시한 방안 가운데 연합철강을 권철현씨 대신 동국제강으로 넘기로독 인수업체가 변경됐다. 여기에는 또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거래은행 및 은행연합회로 하여금 공동발표를 하도록하는 별도의 언론대책까지 들어있었다.
이 문건은 국회 문서검증반에도 제출됐으며 국제그룹 복권추진위원회는 이를 입수하자마자 곧바로 89년 2월27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양정모 - 국제그룹 창업자

• 성  명 : 양정모 - 국제그룹 창업자
• 출  생 : 1921년 9월 13일
• 출생지 : 부산

A. 학력사항
1937        부산공업고등학교
A. 학력사항
1937        부산공업고등학교
B. 수상경력
은탑·금탑산업훈장
5억불수출탑
새마을훈장협동장
C. 경력사항
1968              진양화학사장
1968              국제화학사장
1972              국제상선사장
1972              신발輸組이사장
1973              국제방직사장
1976 - 1984    국제그룹 회장
1976              대한商議 부회장
1977              연합물산·연합철강 사장
1977 - 1985    국제종합건설·국제종합기계·국제종합기술개발회장
1981              全經聯부회장
1998. 3          부산도시가스 사외이사

D. 저서
D. 관련자료
1. 관련 이미지
2. 관련 서적

한국재벌과 흑막 국제양정모
① 저자 : 김교식
② 출판사/출판연도 : 한국중앙문화공사/1991
③ 목차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의 교훈
포목상과 미곡상
부산 공립공업학교 졸업
8․15해방
도정공장의 화재
세대적 감각의 차이
창업의 기쁨
국제고무 공업사 출범
첫 거래 상인, 박두서
1년만에 이룬 기반
성장의 길로
전국 제일의 기술자를 찾아라
박명진 기사
군수공장으로 지정되다
후생시설의 확충
생고무 중간상인의 농락
방계 무역회사 설립
시련을 딛고
진양화학의 설립과 분리
국제 속의 국제그룹
오늘의 國際그룹
기적은 멈춰도 기차는 달린다
① 저자 : 한유림
② 출판사/출판연도 : 유정/1993
③ 목차
갑작스런 국제그룹 정리발표
국제그룹해체는 위헌
다구진 사람
양정모의 해머소리
씨앗을 심어라
보증수표 양정모
잿더미를 딛고 일어서다
오늘보다는 내일을 보라
상사와 해외 주재원
암만, 암만, 암만
야신장군
중동에 난로를 팔아라
스파이
시장개척
다마스커스 세계무역박람회
기업확장
해체의 진상
 

저러고도 하늘아래에 빛나는 면상을 들이대면서 숨을 쉬고 있는 인간의 반들반들함과 함께
내 땅돌려달라고 국가에 소송장을 들이미는 일제압잡이 후손들이 오버랩이 된다.
똑같은 놈들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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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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