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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이면 들려오는 닐의 마이크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가 속한 목장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다시 잠에 빠지고는 했다. 가끔 깊은 잠에 빠져 나오지 않으면 닐이 직접 와서 깨우고 나가는 데 그래도 안 나오면 다른 대기 인력으로 대체 하고는 했다. 한 번 대체되면 그 날부터 그 사람의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못 나간 사람은 다시 일을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 일거리가 없을 무렵 혹시 그런 일이 있을까 해서 3일을 새벽같이 일어났는데 일이 없어 그냥 기다리다 들어오고 말았다. 그런 경우 외에 농장에서 직접 해고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 또한 두 번째 농장에서 그렇게 당했으니 말이다. Sam의 농장에서 토마토를 딸 무렵이었다. 토마토를 따는 기계에 앉아서 기계가 가는 대로 손놀림을 빨리 해서
익었다 싶은 것은 무조건 따는 것이었다. 너무 안 익은 것을 따도 너무 익은 것을 따도 안 되며 또 속도가 너무 늦어도 안 된다. 기계속도에 맞추어서 그리고 자기의 앞에 앉은 사람과 보조를 잘 맞추어 따야 한다.또 그 뒤에서는 기계에 앉아 따던 사람이 미처 못 딴 걸 따라다니며 따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처음 Sam의 농장에서 그 일을 했다. 3일 뒤부터 기계에 앉아 토마토를 따기 시작했는데 쉴 틈이 없고 허리를 계속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고 손은 토마토를 찾아서 움직이는데 편해 보일 듯하던 그 일이 그렇지가 않았다. 결국 일 주일쯤 되던 언젠가였다. Sam은 기계에 앉아 정신없던 내게 웃으며 다가오더니 잠깐 나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어떤 말도 없이 그냥 집에 가라는 것이다. 그 것도 웃으면서,푸~ 나도 웃으면서 그 동안 신경써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나는 어느 농장을 가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샘의 농장에서 과일을 따면서도 앞에 앉은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면서 했는데 그 것이 눈에 걸린 것 같았다. 말하러 이 곳에 왔냐는 경고를 들었으니 말이다. 샘의 농장은 평판이 좋지 않은 곳이었고 다른 여행객들도 그 곳으로 일을 나가게 되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쌕을 당한 후 그 곳에서 다시 백팩으로 갈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 했다. 백팩에서 그 곳까지 벤으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온 거리이니 말이다. 결국 히치 하이크를 처음으로 하게 된다.

호주에선 히치 하이크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워낙 여행객이 많은지라 묵인하고 있지만(실제로 투어 에이전시에서 나누어주던 여러 책에선 히치하이크가 호주에선 금지되어 있다고 안내글을 볼 수 있다.), 쌕 당한 이후 히치를 한 이후 번디에서 시내를 나갈 때는 히치를 많이 이용했다.   신호등에 멈춰 서있는 차를 보면 그 옆으로 다가가 좀 태워달라고 때 쓰는? 내 모습이 지애는 재미있어 보였나보다 지애는 방 구조가 특이해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내 방으로 들어가면 그 곳에 또 문이 있는 작은 방에 다른 여자 여행객들과 방을 쓰고 있었다. 더블침대가 2개 있는 곳! 여자들이 쓰는 방이라 어느 정도는 깨끗하지만 칙칙함은 남아 있었다.번디에 온지 얼마 안 되었던 지애는 나와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는데 나는 그녀에게 과거의 역사를 물었을 때 그 녀가 우리 한국의 초등학생 정도의 역사지식 (한,일관계에 있어서의)정도밖에 없음에 자못 놀랐다.. 하지만 그 건 다른 일본인에게도 물었을 때 그 건 마찬가지였다.
일본 위정자들이 그들의 과거를 밝히지 않으니 젊은 그들이 우리가 과거에, 그리고 현재의 일본에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서 의아해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신세대역시 우리의 역사에 무관심하지는 않은 지 반성해 볼 일이다.지애는 일본의 현대 젊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젊은 여성 자기 주장이 있었고 그 만큼 개성도 뚜렷한 아가씨였다. 시내에 놀러가 무엇을 먹어도 그 녀는 더치페이를
고집했고 어디 보러가자고 하면 그 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곳으로 혼자서 가곤 하는 아가씨였다. 요즘 일본의 아가씨들이 그런가? 그렇다고 들었다. 그 곳에서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참 잘 어울렸다. 무슨 음식을 하면 같이 나누어 먹었고 또 같이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그 곳에서 만난 일본인들이 좋아서 그런걸까? 아마 그 건 아닐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젊은 가슴으로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미래에 사는 젊은이들이 미래를 위해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겐 살아야 할 날이 더 많기에.

sack당한 이 중에 smith라는 영국인이 있었다. 영어공부를 코치해주던 그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풀장을 가기도 하곤 했는데 스미스라는 친구는 나의 영어발음을 무시?또는 바꿔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던 친구였다. 나는 발음을 미국식으로 하려 애썼고 스미쓰는 미국식 영어는 미국밖에 안 쓴다. 유럽에선 전부 영국 영어를 쓰고 있고 이 곳 호주도 영국식 영어를 쓰는데 왜 미국영어를 고집하느냐는 투였다. 어쩔 때는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는데 난 우리나라는 미국영어를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을 해도 여전한 그의 고집.하지만 내 고집도 만만치 않지. 호주는 영국 영어에 가깝다. 물론 영영사전을 보면 호주 영어 특유의 구분이 있지만 최근에는 미국영어에 가까워지고 있는 편이다. 아니 미국 영어를 많이 쓰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호주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마치 유행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미국영어 특유의 음악같은 운율이 아마 고급스러워 보이는 지도 모른다. 어쩜 전 세계로 뻗어가는 미국의 힘이 그들의 문화를 전파하는 지도 모른다.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보여지는 헐리우드의 영영화를 통해, NBA의 농구를 보며 또는 팝송을 들으며 미국의 문화에 익숙해 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됐든 스미스는 영어를 많이 도와줬고 그런 일로 티격대곤 했지만 재미있는 친구였다. 휘파람 불면 "삐삐"하고 소리나는 중국제 열쇠보조 장치를 사와 한 밤중 자는 모두를 깨우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느라 한 바탕 부산하게 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그는 넉살 좋게 코를 골았고 또 무슨 냄새나라의 왕자같이 그의 몸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정말 그는 씻지를 않았다-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도 결국엔 닐이 하도 일을 주지 않아 다른 곳으로 백팩을 옮겼지만 가끔 놀러와서 닐을 원망하곤 했다. 사람들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자기에게 잘 해 주는 이에게 잘 해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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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중국 방문목표 이상의 성과를 이루었기에 만족스러웠다.
물론 가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시작이 중요한 것 아닌가.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나머지 단추를 끼워야 겠지.
그 건 내가 할 일.

심천에서 거래처가 있는 종산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근 2년만에 가는 곳이라
버스정류장을 찾지 못해 로후역을 30분정도 헤맨 것 같다. 26도라고는 하지만
체감하는 것은 30도이상이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타게 되었다.
중국의 고속버스는 버스표에 보험료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필요 없을 때는 표를 사기전에 말을 하면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사고를 대비해서인지 이렇게 디카로 승객을 하나 하나 찍는다. 예전에는 생수도 주든데 언제부턴지 주는 장거리 버스가 없어진 것 같다. 아마도 원가절감의 일환이겠지.
종산에서 계약을 마치고 거래처와 함께 찍은 사진. 무척 큰 식당이었는데 이 식당은
식자재를 자체해결할 정도로 규모가 무척 크다.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음식 답게 차림표가 이렇게 장황하다. 3년가까이 왔다 갔다 해도 아직까지 음식을 주문하지 못한다. 쩝. 다음엔 시도를 해 봐야 겠다.
종산시내를 거닐다가 본 이연걸 광고모습. 아마도 젊었을때 모습같다. 식사에서도 그이 애기가 나왔는데 중국인이 보는 이연걸은 성룡보다 우위인듯 하다. 중국의 정통무술을 제대로 배웠기에 그런가보다.

이렇게 시내 곳곳에서 작은 상자안에(마치 공중전화부스처럼)들어가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워낙 중국이 넓기에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는 시외전화비도 만만치 않으리라. 그래서 이런 인터넷 전화를 이용하곤 하는데 저렴하다. 물론 국제전화도 가능하다.

종산은 의류시장으로도 유명한 것 같다. 광저우보다는 작겠지만 이런 의류시장이 꽤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종산의 명동쯤 되는 곳이 아닐까. 터미널에서 다리하나를 건너면 잘 꾸며진 상가를 만나게 되는데 건물도 20세기즈음의 양식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건축물들로 연이어져 상가를 꾸며놓았다. 중국을 다니면 이렇게 역사적인 위인과 관련된 건축이나 동상등, 구조물이 많은 데 그 것이 부러운 건 왜 일까. 그들의 일상에 있는 위인들이 부러울 뿐이다.

길을 걷다가 만난 장미화환. 스티로폼 비슷한 것으로 장미모양을 만들었는데 광섬유가 중간에 한 가닥을 넣어서 밤에 빛을 받아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 퍽이나 예뻐보여 한 다발 샀다. 한 다발이 100송이다.

종산에서 묵은 Ibis호텔. 우리나라의 모텔정도의 수준이지만 서비스는 훨씬 이상이다.
185위안. 그리고 아침식사는 뷔페 스타일로 15위안이다. Ibis를 찾아보니 독일의 호텔체인.

식당 내부모습이다.
종산의 작은 터미널. 이 곳에서 5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또 터미널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내렸다. 그 곳에서 심천갈때는 80위안이고 이 곳에서 표를 사면 75위안이다.
왜 그렇지? 미스테리하지만 뭐 여기서 샀다.

버스안에 CCTV발견.

중국음식은 나하고 궁함이 딱이다. 하긴 뭐 중국음식만 그랬던가. 없어서 못먹지.
그래. 난 다 잘먹는다. ^^;;

심천에서 가장 저렴할 듯한 발맛사지 발견. 로후역근처에 있다. 한시간에 15위안.
보통은 35위안 이상이다.

기내식 나오기전에 나온 음식. 예전의 땅콩이 낫다. 이거 오징언가???
뜯을때 조심. 잘못하면 내용물중 국물이 튀어나옴. -.-;;

석양이 멋있다. 귀국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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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가 없는 날엔 여행객들은 각자의 활동을 한다. 이미 많은 수의 여행객이 스킨 스쿠버 다이버 라이센스를 따고 나가기 시작했고 또 시내의 PUB(호주의 선술집)에서 경마를 하기도 했고 가까운 바다로 나가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한 번은 닐이 일거리가 없는 날 사람들을 바닷가로 나르기 시작했다. 밴으로 말이다. 우리 몇 몇은 도시락을 만들어 바닷가로 향했고 그 곳에서 점심을 같이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뜨거운 태양아래 젊은이들은 잘 어울리는 모습이 아닌가. 우린 그 날 썬형의 제의로 거금을 걷어 엄청 큰 소 뼉다구와 양배추, 그리고 갖은 양념을 사서 저녁을 근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소 뼉다구는 호주에서 개먹이로 파는 것이라고 한다. 그 것도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처럼 정말 소 뼉다구가 아닌 살코기가 정말 많이
붙어 있어 뼉다구를 파는 건지 소고기를 파는 건지 모를 정도의 것이 개의 먹이. 하기야 인구는 적고 먹을 것은 풍부하니 그럴 지도 모른다. 우리는 웃으며 호주인들이 만약에 우리가 먹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웃고 말았다. 어쨌든 모처럼 우리는 영양보충을 했고 맥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한 번은 주급을 타서 맥주 한 박스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다음 날 저녁 없어졌다. 아마 번다버그를 떠난 누군가가 가져갔나 보다. 백팩에는 이런일이 가끔씩 일어나곤 했다. 또 스푼이나 볼(bowl)에는 돈이 걸려있는 상황이라(deposit) 잃고나서 부주의하게 놓여진 다른 이의 것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농장생활을 하다보면 서구인에 대한 어느정도의 인식은 깨지게 마련이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 서구인은 남을 잘 배려한다.? 글쎄 어쩌면 그 이유가 우리나라에서는 당시만 해도 대학생만 가능하다시피 한 비자였고, (지금은 정 반대지만 말이다) 중국같은 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깨어있는 사람이지만 미국,프랑스,영국 등 소위 선진국에서는 어중이 떠중이가 모이기
마련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던 곳은 12명이 자는 데 9시면 소등. 그 넓지도 않은 곳에 작업복이며 작업화며 또 베낭이여 짐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잡지들과 음식꺼리들, 푸하~ 내가 이렇게 쓰고 보니 참 지저분할 것 같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대로 봐 줄만 한 것 같다. 앞으로도 여러 백팩을 거치지만 이 이 곳. 그 중에서도 내가 묵던 방이 깨끗치 못했으니 말이다. 그 건 어쩜 남자들만 쓰기에 그러한 지도 모른다. 다른 방은 남녀 공용 이었는데 또 남자들만
쓰더라도 인원수가 적은 데 우리방은 제일 큰 방이었다. 방의 배정이라든가, 일의 배정같은 것, 닐의 입김이 닿는 곳에는 인종차별이 아닌가 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고 내가 언젠가 홀랜드인에게 말을 했을 때 그도 수긍하는 면이 있어 보였다. 남녀 공용인 방에서는 생활하는 여자들도 거리낌없이 옷을 갈아 입고는 했다. 나야 보지 못했지만 일행에게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렇게 말하드라. 한 번은 누굴 찾으러 그 방을 들어갔는데  거들이라고 하나? 얇은 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내 물음에 아무 거리낌 없이 대답하였다. 한국여자는 어떻게 했는 지 모르겠다. 내가 생활했던 당시는 한국여자들은 없었고 내가 번디(번다버그의 애칭)를 뜬 이후로 한국여자들도 많이 왔다고 한다. keitie's farm에서의 일도 마무리 지어가고 있었고 1주일에 이틀 이나 사흘 정도의 휴일엔 -일요일과 아직 안 딴 도마토가 익지 않아 익기 기다리는 하루나 이틀, 또는 비가 내리면 다음 날 일은 하지 않는다. 땅이 그만큼 질척거리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시내 중고가계에서 35$주고 산 롤러 블레이드를 끌고 번다버그 시내를 돌아다녔다.

프린세스에서 시내를 지나 철길을 건너면 작은 공원이 있다. 그 곳에는 번다버그를 가로 지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공원쪽에는 작은 동물원이 있고 건너편에는 Botanic garden과 저 멀리 있었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크로커다일 던디를 보았다. 일 주일에 한 번 feedig time이 있고 그 시간에 사람들이 악어의 움직임을 보려고 모여든다. 난 주위의 많은 새들가운데 닭이며 병아리며 많이 있길래 하등 다를 것도 없는 그 닭들이 내가 모르는 특별한 종류인 줄 알았었다. feeding time에 그 걸 알고 나서 얼마나 웃었든지,
보타닉 가든은 드 넓은 호수 주위로 작은 열차 선로를 놓고 그 위로 열차-열차는 아니고 아주 작은,-를 타고 폼 잡는 곳이었다. 내가 갔을 때는 공사중이어서 타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드 넓은 곳에 이름모를 수목들과 꽃들과  번디의 유적들이 모여 있고 박물관도 있어 참 아기자기 한 곳이다. 역사가 짭은 호주에서
유적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지만 번디 초기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번디는 Rum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호주를 떠나는 사람들이 면세점에서 Bundy rum을 사 갈 정도로 말이다. 그 곳 공장은 시내 외곽에 있어 프린스하곤 가까운 편이지만 가 보진 못했다. 입장료 얼마 내고 들어가면 생산 과정을 견학하고 번디 럼을 시음한다고 한다. 번디를 떠야 겠다고 생각할 무렵 스쿠바 라이센스라도 따갈 요량으로 등록을 하던 날. 처음 번다버그로 도착할 무렵 보았던 스쿠버 마크가 떠 올랐다. 터미널 바로 앞의 그렇게 세련되지 못했던 건물,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에 스쿠버 장비가 떠 올랐다. 이런 걸 감개무량이라고 하나? 등록비
호주에서 제일 싼 149$이었지만 medical test에 30$과 이 것 저 것해서 200$ 정도 들지만 여전히 호주에서 제일 싸다. 이유는 바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별로 볼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Great Barrer Reef라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바다가 이 곳 번디에서 시작한다지만 사실 번디는 바닷속에서 고기 구경도 드물게 한다. 참고로 G.B.R은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당시 호주에는 약 10여개의 문화유산이 지정되어 있었다. 그런 연유로 결국은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는다고나 할 까. 3박 4일 코스인데 하루는 실내에서, 하루는 풀에서 그리고 이틀은 바다로 나간다. 처음 신청을 하면 한국어로 된 manual을 주는 데 생활영어도 고만 고만한데 전문용어를 써가는 강의를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결국 믿을 건 그 한국어로 된 manual뿐인데, 사실 스쿠바는 위험한 요소도 분명 갖고 있어서  처음 신청을 하면 Diving master인 강사는 그 책을 주며 공부를 하고 어느 정도 이해 하겠거든 연락을 다시 하라고 한다.

04,27 x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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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디는 번다버그의 애칭이다. 도시에 애칭을 부치는 자유.

그 일 이후로 다시 1주일을 지내다가 나에게 돌아온 일은 `스쿼시'라는 야채를 따는 일이었다. 스쿼시.  농장주는 Dunn, 많은 과일을 따 보았지만 힘은 힘대로 들고 돈 안 되는 일이 바로 이 것을 따는 것이다. 농장에서 사실 힘 드는 것은 없다. 여자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허리가 무척 아프다는 것! 그래서 혹시 농장에 갈 작정이라면 차라리 신신파스 같은 조그만 걸루 왕창 사갔으면 한다. 물론 그 곳에도 맨소래담 비슷한게 있긴 하지만 조금 비싼 거 같고 무겁지도 않으니 말이다. 상비약이라고나 할 까? 머 한 참 뒤에는 아픈 게 정상인 것처럼 아픈대로 일하지만 처음 보름간은 정말 허리가 내 허리가 아니었다. 이 후 농장에 있는 동안 약 4개월은 신경통을 달고 다니는 것 같다. 글세 허리가 튼튼해 진다면 모를까. 이 건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호소하다시피 말하는 통증이다. Backpain을 연발하며 서로 웃다 보면 잠시 넘기기도 하지만 잠 잘 무렵 좋은 침대도 아닌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음. 청정원 마요네즈 TV CM에 보면 보이는 끝이 안 보이는 그 밭을 배경으로 두 꼬마들이 웃음을 짓는 데 그 뒷모습을 보고 호주의 농장을 상상하면 비슷할 듯하다. 전부 다야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컨트랙인 줄 알고 정말 허리를 피지 않고 따며 작업 후에 주어질 급료를 계산하고 있었는데 어라! 그 건 시간급이었다. 쩝! 어쨌든 Dunn은 나보러 베스트 워커라며 입에 칩이 말라라 칭찬을 했지만 속쓰림은 어디에 하소연하노. 몇 일 뒤 다시 주어진 일은 번다버그의 하이라이트였던 keities농장의 egg tomato. 정말 달걀같이 생긴 토마토를 색깔 구분해서 갖고 다니는 바켓에 채울 때마다 매니저가 각자에게 나누어진 표식을 꽂아 놓고 일이 끝난 후 그 표식을 계산 하는 일이었다. 내 경험에선 이 게 가장 짭짤한 벌이었던 것 같아. 물론 내가 경함한 과일따기에서 만 말이다. 그 건 컨트랙이었고 그 만큼 뛰어다녀야 했다. 그 곳에서 한 태국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뛰어다니며 밥먹는 시간 마저도 아까운 듯 도마토를 따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 는 영국 여자-애인이 아닌 가 싶다-와 함께 다녔는데 둘이 정말 일을 잘 했다. 마치 돈 벌러 호주에 온 사람들 처럼 말이다. 나도 그런 계획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학교 등록금을 호주에서 벌어 온다는 -오래 전에 지워 버렸고 그 저 남은 기간 별 탈없이 잘 있다 갔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열심히 뛰면 100불 이상은 챙길 수 있었다. 다른 이는 나를 부러워 했지만 지금까지 일도 못하며 보내온 시간을 보상한다는 생각에 땀을 흘려야 했다.

 가끔 번다버그 시내를 돌아다니며 근처의 호스텔에 있는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지내기도 했다. 저마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 무슨 사연이든 들여다 보면 귀를 기울이면 가슴 저미는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친구들, 친구들이라 부르기엔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이 대부분 인지라 머 하지만 그 곳에서 그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호주까지 오게 된 경유야 필설로 다 하랴만 말이다. 지금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안고 그 곳에 갔겠지만 말이다. 호주에서 만난 이들은 대학생이 대 분분이었지만 삼성 반도체의 연구원에 다니다 경험을 쌓겠다는 이유로 퇴사하고 나온 사람, 학교 졸업하고 온 사람, 휴학계 내고, 백수 건달로 집에서
부모 돈으로 카페 사장하다가 재미 없다고 놀러 온?, 동생. 참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았다. 번다버그에서는 많은 일본인들을 만났는데 이상한 것은 일본 여자들은 부침성이 좋은데 남자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글쎄...... 어느 서양의 인류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지 아마,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중국인 요리사를 두면 그 남자는 행복한 거다"라고, 하지만 프린세스에 있던 한국인들은 거의 다가 성격이 활발해서 같이 일하던 다나까와 쯔꾸미등 일본인 친구들은 우리와 잘 어울렸다. 다나까는 일본에서 우편을 배달하는 차의 운전기사를 하다가 호주로 온 28의 형이었고 쯔꾸미는 노가다며 이 것 저 것을 하다 이 곳으로 온 동생이었다. 그리고 이름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인도에서 3개월 살다가 온 일본 남자 켄지. 대학교 다니다 온 ??등 번다버그에서도 보웬에서도 그리고 케언즈에서도 만난 일본인들은 정말 친절하고 성실했다. 처음 정이 들기 힘들지만 정들면 쉽게 친해 질 것 같은 사람들. 특히 "신"은 보웬에서 만나 케언즈까지 정말 끈끈한 정을 쌓은 일본 친구다. 그의 도움도 받았고, 그렇게 쉬는 날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며 대화를 나누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면서 만나던 사람들이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지금은 한국에서 뭘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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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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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Rules

No Alchole in the Hostel, only in the Beer Garden

No smoking in the hostel only in TV area

In the morning, before work

No Vistors on the Premises unless you check them in at office first

No Drinkiing, Eating or Smoking in the vans.

Genaral Information
Bike Hire $2(leave keys as deposit) Video hire $2(leave keys as deposit)
There are Sings around the Hostel Read Them.
Shopping Runs are every Monday and Thursday at 6.15pm
Sheets-You are responsible for the washing of your own sheets.
When checking Out Please Return Fitted sheet-Top Sheet-Pillow
and Pillow Slip or $5 for such item will be charged.

Telephone
Please direct all incoming calls to (071) 511 334
(Phone Messages ONLY taken for flats)
FAX (071) 511 334 After 8am-before 8.30pm ($3.00 to send)

Mail
can be sent to this address and will be available in the pigeon holes
near the back door


Prince of Wales Backpackers
22 Princess Street
Bundaberg 4670
Queensland Australia


We will post your mail as long as you put a stamp on it.

Deposit
pots and pans are in the offise (leave keys as deposit)
If you don't clean your pot $5.00 will be charged to get your deposit back
Plates, Bowls, Cups-$1 each Knife,Fork,Spoon-50c each
(Only 1 of each item refunded when you check out)
Food Crate-10$ Lock-$2
Blankets-$10
All money deposits are refunded when you leave.

Work
Are you colour blind? You can't pick tomatoes if you are
Please ensure you provide each employer with the following:
Employmentdeclaration form (in office)
Bank details for direct credit where applicable

Tax File Number
Tax Number must be applied for
Please make sure your name is on the work roster if you want to work
If you don't get up in the morning you will lose your job.
We don't pick you up if you get the sack
if you get the sack twice
we can't guarantee you work after that
Take Food, Hat and plenty of Water when working

CHECK OUT TIME IS 10am
No Cash Refunds unless by prior arrangement
if you want to work the day you check out you must pay for another night.
Office clloses 9pm every night
The week rate has to be paid in advance
if the rent is not paid on time
the day rate will be char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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