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다버그에서의 생활도 어느 덧 끝이 나간다. 스쿠바 기간중 롤러 블레이드를 타다가 다친 무릎의 생채기로 때때로 일을 하면서도 계속 나오는 고름으로 이렇게 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몇 일 쉬게 되었다. 지쳤나 보다. 따분함에 지친 것 같다. 스쿠바 자격증도 땄고 비록 갖고 있는 돈은 700여$에 불과하지만 5000km pass가 있고 해 보겠다는 의지가 나에겐 밑천이었다. 어딜가야 죽겠냐 라는 자신감. 그렇게 살아왔으니 머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풋! 번디의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댔다. 사실 번디의 주변 경관은 시드니나 케언즈 또는 골드코스트같은 호주의 여느 도시처럼 뚜렷하게 구분되는 매력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이 곳에서 지낸 3개월 가까운 기간이 나에겐 충분한 기억의 도시가 되기엔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다시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번디의 생활도 끝이 나간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 뭐 할까?
귀국하고 나서 처음에는 연락을 했는데 일상에 파묻혀 기억속에만 남은 사람들. 번다버그. 이름마저 가물 가물한 국민대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자주 놀러가던 시티 백팩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무척 외국인과 잘 어울리던 활발한 놈이었다. 나이도 동갑이어서 마음이 통한다 싶어 더욱 그 놈과 많은 애기를 나누었는데 언젠가 가 보니 자리에 없어 동생들에게 물어보니 칠더스(Childers)로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 칠더스로 향한 것은 순전히 여자 때문이었다. 혹시 그 놈이 보더라도 오해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글을 이어나가겠다. 처음 그 놈을 보았을 때부터 그 곳에는 한국여자가 드물게 한 명이 있었는데 매우 활달한 성격의 아가씨였다.그런데 그 아가씨가 번디에 일이 없자 칠더스로 향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번디에서 한 2~3시간 내륙쪽에 있는 그 곳은 번디가 일이 없을 때에도 일이 많았다고 들었다. 눈치가 있어 보이는 경희대 다니던 동생이 아마 그 아가씨 찾아 갔을 거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일뒤 다시 찾아 갔을 때 그 놈 풀이 죽은 모습으로 누워 있길래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것이었다. 번디에서 키워왔던 그의 연정?이 칠더스에서 꽃을 피우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얼마 뒤 그는 예전의 모습을 되 찾았지만 친하게 지내던 놈이 잘 안 풀리니 안 되 보였다. 하물려 그 것이 여자와 결부된 일임에야, 한국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데 이국에서야 그보다 못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흡사 광수 일기의 광수씨처럼 생긴 그의 모습이 참 정이 많게 생긴 놈. 훗 날 그 놈은 또 한 번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이 놈이 마리화나에 빠져서 한 참을 헤맨 사건이다. 힘들게 벌어 온 돈을 몽땅 그 것에 써 버린 것이다. 외국 친구들과 잘 어울리다 보니 마리화나가 합법적인 일부 유럽국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배워 버린 것이다.(야, 너 혹시 이거 보더라도 화는 내지 마라 우리의 동생들을 위한 거라 생각하고 웃어 넘겨라. 연락하고 임마!) 하지만 호주는 불법이다. 힘들게 돈 몇 푼 벌어서 그 걸 그대로 연기로 날려 버렸다는 소리에 황당하기도 하고 또 화도 나기도 하고 착잡하던 기분. 내가 찾아 갔을 때 이 놈은 침대에 누워 맥이 풀려 초췌한 모습이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야 대화를 나누어 주는 정도여서 아쉬움만 더 했지만 말이다. 번다버그를 떠나서 훗날 보웬(Bowen)에서 그 곳에서 경희대 동생을 만나게 되어 그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어딘가로 내려갔다고만 들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시 연락을 했을 때 물었더니 허허 하고 웃더니 대마초 재배하러 내려갔다고 웃는 것이다. 후훗! 다행히 학업에 열중하는 듯해 이런 저런대화를 나누고 후일을 약속하며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하지만 다음에 한 번 만나자는약속만큼 애매한 것도 없는 것처럼 그 걸로, 쩝! 이 글 보거든 화내지 말고 연락이나 해라. 졸업했겠구나. 시절이 하수상한데 좋은 곳에 취업이나 했으면 좋겠다.
사실은 나도 마리화나에 대한 썩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순전한 호기심에 말이다. 호기심 때문에 인생 쫑한 작자가 많다는데, 언젠가 영국친구가 권해서 몇 모금을 해 봤는데 으~~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저 몸이 붕붕 뜬 것 같은 기분. 지애가 놀라서 무슨 일이냐구 물어보는데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데 어쩔 줄 몰라하는 지애. 그 건 마치 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것을 또 케언즈에서 경험하게 됬으니, 아직 범죄시효가 지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행여나 높으신 분들이 볼 까 무섭다. (에그 무서버-이런 글 썼다고 또 괘씸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쩝!) 번디를 떠나기로 하면서 가지고 있는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물단지이던 노트북과 옷,책을 보내며 65$이라는 피같은 거금이 들었다. 짐을 정말 줄여가기 바란다. 호주에서 많은 것을 하겠다고 애초에 욕심을 부리는 것도 무리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말을 해 본다. 영어도 배우고 여행도 한다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 과연 그 목적에 걸맞게 호주를 갖다 온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 또한 그러지 못해서 그런 사람이 부럽기는 하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지만 다음에 신혼여행을 간다면 내가 걷지 못한 호주 서부 지방을 그 녀와 함께 걷고 싶은 계획으로 미루고 나니 아쉬움은 덜하다. 그 동안 일하던 농장에서 일을 마치고 스쿠바 라이센스도 딴 후 나는 다음 목적지인 프레이저 아일랜드로 가기 위한 관문인 하비 베이(Harvey bay)를 예약했다. 5000Km 패스를 터미널에서 사 놓았기에 차비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패스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호주를 전국일주 하는 것부터 거리별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는 구간별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자신의 경로에 맞추어서 구입을 해야 한다.
떠나는 그 전날밤 나와 함께 가고 싶어하던 눈치가 역력하던
지애는 내가 프레이저 아일랜드로 간다고 하자 자기도 그 곳에 갔었다며 나의 여행경로를 물었다. 나는 프레이저로 가서 사파리 투어를 마친 후Surfers Paradise로 갈 것이다. 그 곳에는 한국인이 많다고 하니 일자리를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애기했다.
아래층 티브이 룸에선 심슨이 시작됐는지 왁자지껄 소리가 들렸고 복도에선 간간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정말 번디 아니 호주의 밤 하늘은 지겹도록 별이 많다. 저 별들이 다 떨어진다면 난 어디에 숨을까? 지애는 나와 같이 가고 싶다며 전에 갔을 때에도 하비베이 까지만 갔고 사파리 투어를 하지 못했다며 이번에 꼭 가고 싶다고 한다. 나는 서퍼스로 가야 하지만 너는 북쪽으로 올라 갈 거잖아.난 혼 자 가겠다. 그 녀가 눈물을 보인다. 일본인들은 대체적으로 눈이 크다. 그 눈에 맺힌 눈물. 왜 나에게 눈물을 보이는 걸까. 여자가 눈물이 흔해도 안 되지만 남자도 여자의 눈물에 약하면 안 된다. 말이 쉽다. 일본인들은 대체적으로 눈이 이쁘다. 눈만을 봤을 땐 말이다. 남자들도 하나같이 눈썹이 짙고 풍성하다. 물론 다야 안 그렇겠지만, 내가 표를 물었을 때 자기도 패스가 있다며 당일 가면 표가 있을 거라며 미소를 짓는다.
나도 웃고 만다. 닐에게 내일 check out한다고 말하겠다며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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