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감정이 아니다. 남는 것은 감정이지만 이성으로 다가서고 다층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은 진실이고 실체가 아닌가. 그 것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본다.
영화는 혹시 모를 감정적인 소모를 피하기 위해 훈민정음의 창제설가운데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였다고 서두에 나온다. 이러면 된 거 아니야? 영화적인 상상력조차도 이런 이유로 막아내면 또 다른 무언가도 당연히 막아낼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믿으면 되는 것이다. 이 영화로 인하여 신미가 창제했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지 않은가. 그 정도의 역사적 실체에도 자신감이 없다면 그 것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의심할 수도 있다는 반증일게다.
일본의 승려가 그토록 염원하던 팔만대장경을 선대인 태종이 주기로 약속을 했다며 일본의 승려들은 막무가내로 목숨을 내어놓겠다는 식으로 팔만대장경을 내어달라고 한다. 당시 불교를 숭상하던 일본은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에서 쉽게 내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태조때부터 조선포로를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을때마다 주었던 팔망대장경 인쇄본은 일본의 불교발전에 크나 큰 기여를 한다. 그래서일까. 일본은 인쇄본을 계속 요구하였는데 나중에는 팔만대장경 원판을 요구하는 것이다. 태종이 약속을 했다고 하는 것처럼 주려고 했으나 신하들이 반대하여 주질 못했다. 다만 경기도 여주 신륵사 인쇄본을 일본에 건넸다고 한다. 1381년 간행된 것으로 총 587상자에 4천995첩이나 된다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이렇게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하지만 팔만대장경의 인쇄본을 너무나 많이 주었기에 대장경 인쇄본중 가장 오래된 것이 교토 오타니 대학도서관에 있고 한국에는 1865년 강원도 월정사에 있다고 한다. 영화와는 달리 세종때도 일본의 노력은 가열차서 세종 6년 대규모 사신단이 토산물을 바치며 영화와 같이 죽음을 각오하며 받아오려고 했으나 사신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고 이번에 이 것을 주면 나중에 또 어떠한 요구를 할 지 몰라서였다고 한다.
영화는 세종의 정말 하해와 같은 그 심성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설마??? 아무리 세종이라도 그렇지. 할 정도로의 관대함을 보여준다. 소현황후와의 이야기들은 역사의 면면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그 막중한 역할을 해 준 전미선씨가 보고 싶어진다. 이 영화때문에 말이다.
이 건 백 십분동안의 눈호강이다. 최근에 이런 역작을 볼 수가 있었던가.
나랏말싸미 영화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솔직히 말할께. 이 영화 안티들 대부분, 너 말고 말이야. 오해말고 들어. 개독교가 전파한 종교파시즘의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공자가 성인인 것처럼 부처도 성인이다. 예수가 바란 것은 사랑이 충만한 세상인거지. 나만 믿으란 거 아니잖아. 그런거야? 너희들이 그 따위로 행동하니까 개독교가 된거야. 어짜피 너희들의 나라잖아. 지금은, 지금은 말이야.
너희들이 그 난리를 치는 것처럼 훈민정음도 쉽게 만들어진게 아니야. 그게 이 영화야.
영화는 만들어진 이후 배포되는 시기, 그리고 세종과 신미대사의 이야기로 후반부를 장식한다. 만들어진 것도 중요하지만 배포되기까지의 그 기나긴 여정의 이야기다.
영화는 영화로 보자. 안 보면 되는거다. 왜곡이라고? 그 건 보는 사람들의 평가인거야. 역사를 후대가 평가하는 것처럼 영화도 본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그 평가에 대해 내가 OK면 보는거다. 아니면 안 보면 되는 거다. 이 정도 여유는 있잖아? 더구나 이 것때문에 세종의 업적을 의심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 누가 그의 애민정신을 의심할 것인가. 그의 업적들은 홍익인간 그 자체아닌가. 나는 그가 한글을 만들지 않았어도 위대한 왕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위대한 왕들이 너무나 많다. 대한민국은 정말 위대한 나라였다. 그 어느 역사의 페이지를 펼쳐도 위대한 나라였다.
솔직히 말해보자. 보지도 못한 넘들이 까는 거고 불교가 나라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가에 배아파하는 개독교들이 까고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에 부나방 불에 띄어들듯이, 망둥이가 뛰니 함께 뛰는 꼴뚜기는 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