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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주일을 밀리엄베일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구가하며 한가로움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후, 이젠 괜찮아. 또 가야겠지. 지애는 나의 의견을 따랐고 우린 다음 목적지를 호주에선 아름다운 해변과 다양한 수상 레포츠로 세계의 베낭족들이 찾는 Airlie beach로 정했다. 우린 독일인 부부에게 떠난다는 말을 했고 몇 일뒤에 그 곳을 떠났다. 독일인은 우리를 데려왔던 곳까지 배웅해 주었고 우린 아쉬운 작별을 그들과 해야 했다. 이렇게 한적한 날들을 다시 찾을 날이 있을까? 어쩜 그 것은 지난 3개월동안 궁핍한 이유로 지칠 듯이 자신을 내 몰던 생활속에서 모처럼 드러 누웠던 목가풍의 여유 때문 이었는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음, 여기서 고백을 하나 해야 할 것같다. 기실 호주에서의 많은 기억들, 특히 에어리 비치나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의 기억은 녹이 슬어 쩌걱 거리는
뇌세포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다 대충 그거다 싶은 것을 어렵사리 끄집어내는 것들이다. 그 것들을 조립하다 보니 무슨 쓰기 싫은 반성문을 쓰는 것 마냥(써 본 사람은 안다. 나? 말도 마라! 반성문 일주일만 쓰면 재인이만큼 한다. 반성문 길라잡이.책을 쓰겠다.) 무얼 써야할 지 머리에서 쥐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곳에서 내내 가지고 다녔던 다이어리에 기록을 했지만 꼼꼼하지 못한 성격인대다가 그 곳에서는
이 글들에서 보는 것처럼 감상적이기보단  현실에 급급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 페쥐들을 엮어가는 데는 부족함이 많다. 거기에다가 원래 이 홈페쥐 제작 의도자체부터가 타인을 위하지 않은-전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었던 까닭에 내 기억의 것들을 꺼내는 데 이렇게 힘이 들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타인을 의식함으로 생기는 부적절한(하~! 이 말이 이런 때도 쓰이는 군) 자신과의 문제들. 공연한 게시판, 그리고 잡다한 사족들. 이런 것을 바란 건 아닌데 말이다. 물론 와주는 방문객들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남을 배려하기에는 아직 자신조차 추스리지 못하는 작은 내가 한심스럴 뿐이다.
하지만 아직 남을 위해 봉사하거나 착한 일 해보겠다고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행여나 섭섭해 할 방문객이 있을까 하는 당치 않은 우려로 다시금 사족을 달아본다. 아마 이 글이 올라갈 쯤엔 어떤 이는 나의 무성의 내지는 게으름에 실망내지는 웃음을 날릴지도 모르지만, 흠 어쨌든 미안함을 전하며 이 경험담을 계속해 나간다. 그 건 어짜피 나와의 약속이어서 말이다.

에어리 비치에 들어서기전 고개가 하나 있다. 그 곳을 올라서면 아래로 쭈욱 뻗어 나가는 시내가 보인다. 막 평지에 내려섰는가 싶을 때 왼쪽으로 돌아선다. 터미널이다. 역시 에어리 비치도 수많은 젊은이가 찾는 곳이라 터미널앞에는 테이블 하나만을 놓고 백팩을 홍보하는 이들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이 곳 저 곳에 물어본 결과 그 중 가장 저렴한 곳인 13 BEGLEY란 곳에 숙소를 정했다. 13 BEGLEY는 에어리 비치앞 바다인 휘츠선데이(Whitsunday)제도가 잘 보이는 언덕바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메인 스트리트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백팩커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중에서 13 BEGLEY가 단연 돋보이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에 들어서면 자그마한 풀장이라고 하긴 머하고 동네 목욕탕만한 풀이 있고 그 위로 3층을 더 올라가서 잡은 방. 그 곳은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기에 그 곳에서 있는 몇 일동안 식사준비는 저녁 한 끼만 하면 되는 적어도 우리에겐 혜택이라 할 수 있는 괜찮은 곳이었다. 지금 잠깐 TNT를 뒤적이다보니마침 그 곳 광고가 있어서 옮겨보는게 좋을 듯 하다.

1박 13$
(YHA/VIP)
우리의 블랙퍼스트 클럽에서
매일 아침 공짜 식사!

달걀과 베이컨
그리고 콩.
토스트와 밀.
차와 커피.

  • 에어리비치
    중심에서200 M
  • 최신 시설
  • 탁트인 전경
  • 체육시설과 풀장
  • 일광욕을 위한 발코니
  • 4개의 부엌
  • 에어컨 (여름철)
  • 매일밤 시내유명
    퍼브예약. 할인가능
  • 바메큐장
  • 버스터미널까지 픽업
  • YHA_+VIP는 할인

휘츠선데이의 모든
Sailing과 Diving예약
 
모든 overnight예약시
1박의 숙박 공짜
사물함도 공짜
marina까지 교통편도 공짜
주차장도 공짜 

Freecall(In Qld)
1800 633 845

이 쿠폰을 가져오면 첫 숙박료 2$ 할인
(예고없이 상기요금은 바뀔수가 있음)

흠 정말 대단해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머 이런 것들을 그대로 믿고 가면 실망할 듯. 호주의 모든 관광에 관한 모든 것 -그 것이 여행지이던, 숙박시설이든, 놀이시설이든-  브로셔에 나와 있는 것들은 과대광고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아침 식사는 참 괜찮았다. 흠, 양이 작은 것이 흠이지만 말이다. 참 이 곳의 거의 모든 백팩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했지만 안하는 곳도 한 두곳이 있었다.휘츠선데이는 호주에서도
유명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거기에서도 중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한 뻑가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글쎄, 책을 보니 그레이트 베리어리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잘은 모르겟지만 하여간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서 잠깐여
Airlie에서 Bowen -여기에서 2개월 넘는 기간을 지냅니다. 여기서도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섭섭하고 아쉬운, 그리고 즐거운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16$인가? 가진 돈이 그 거밖에 없어서 방세도 밀리는 절대절명?의 난제에 봉착하게 되지만, 장하다 재인이, 대한의 남아 재인이,^.^

그리고 Cairns 여기에서 에공, Job을 구하면서 보웬에서 허리팔아 돈 번거 몽땅 까먹는 건지, 중국식당에서 디쉬워셔 일주일만에 잘립니다. 시간당 6$ 하지만 또 아침부터 밤까지 아니 새벽까지 다리품 팔며 돌아 다니다 국제공항의 면세점에서 일하게 됩니다. 시간당 15$ 여기서 제가 생활했던 거 애기하면 부러울걸여? 요약하면, 집 2층짜리 렌트해서 (물론 가전기기 일체 내 꺼!) 방 하나 세주고 오전엔 공항에서 일하고 오후엔 낚시하고 밤엔 나이트! 좋~~~았는데,

글다가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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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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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nes water에서의 팜스테이는 한가롭기만 한 날들이었다. 아침 8시경에 식사를 하고 정원의 갖가지 수목들에 물을 주고 가끔 잡초제거와 화분갈이를 하며 비료들도 주고 말이야. 어떤 책에선가 그런 식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침을 시작한다는 누구의 글이 있던데  이 시간은 그런 시간이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 것들과의 대화 수목들에 비료를 주며 그 매케한 냄새를 수목과 화초들이 좋아하는 냄새라고 생각을 해 본다. 나 또한 싫어할 이유가 없는 냄새들.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화분들과 수목들 사이를 걷노라면 젖어드는 평화로움. 아침 햇살은 내 주위를 맴돌고 지애는 그 한 가운데서 미소를 짓는다. 이름모를 동물들이 간혹 나타나 정적을 깨우긴 하지만 그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기 할 일을 잊은 듯 멀뚱거리다가 이내 알았다는 듯 사리지는 존재들. 가끔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곤 하며 나도 grocery의 식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점심나절이면 독일인 부부와 알젠티나 걸과 함깨 앉아 자유를 애기하고 평화를 말한다. 그들은 vegitarian이어서 음식들 모두가 가공되지 않은 것들이고 대지에서 자라난 것들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져 버린 음식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린 옷가지와 베낭을 메고 그 곳을 빠져 나온다. 도로까지 재잘 거리면서 나와 지나는 차들을 무작정 기다린다. 행여나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가는 차를 말이다. 30분, 1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털털 거리는 꽤 오래된 차가 저 만치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나는 베낭을 흔들고 왜 이제 오느냐며 요란을 떤다. 포장되지 않은 곳이라 뽀얀 먼지를 휘날리며 내 앞에 멈취서는 자들. 때론 짚차일 때도 있고 트럭일 때도 있고 벤일 때도 있다.
아무렴 어떠랴.


오늘은 어디로 갈까나. 그래. 그 독일인 부부가 애기한
4miles beach를 가보자.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Town of 1770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쿠크 선장이 퀸즐랜드 땅에 처음 도착한 곳. 1770년. 그래서 그 곳이 Town of 1770. 호주인들은 과거를 사랑하고 현재를 기뻐하는 존재들 같다. 여느 나라처럼 미래, 발전, 진취적이라는 이름으로 무모하게 자연을 파괴하며 도시를 건설하고 국민을 다그치지 않는다. 하늘이 내려준 자연의 축복일까? 짧은 그들의 역사속에 이뤄진 국민성일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와 달리 역사적인 질곡이 적은 나라. 어쩜 그런 그들의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형성하는 것인지, 독일인 부부는 4마일즈 비치가 너무 아름답다며  이른 아침에나 한 낮의 한적함속에는 수영복도 안 입고 누드로 활보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도를 보여주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고 우린 그 곳으로 가고 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에서 내렸다.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허전한 정적속에서 일순 당황함. 그래두 브로셔에서 보면 많은 관광객들이 웃고 떠드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그림같은 집들과 띠엄 띠엄 있는 가게들, 그리고 관광객이 끌고 온 듯한 몇 대의 차들. 어느 관광객에게 물어보니 4마일즈 비치는 저 안 쪽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단다. 우린 다시 히치를 하고 들어갔다


보인다. 굴곡진 바위뒤로 아스라이 트인 해변가가 말이다. 하~! 저 위에 보이는 언덕바지에서 보면 어쩜 다 보일지도 모르겠다. 더 걸어 올라가 보자. 길 가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 주택들. 이런 곳에서 살면 심심할까? 아님 재미있을까? 도시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조금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다. 언덕위에서 바라본 해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정말 독일인 부부말처럼 누드로 해변을걸어다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 파도만이 움직이고 모래알만이 반짝이는 곳이었다. 바람은 한 없이 부드러웠다. 이렇게 편안한 하루를 그 곳에서 보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발 자욱을 남겨본다. 지애는 내 이름과 지애의 이름을 모래사장에 적어보기도 한다. 발아래 찰랑 거리는 바닷물에 젖어보며 해변을 하염없이 걸어보기도 한다 히치 하이크를 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밤이면 매서운 찬 바람이 들어와 덜덜 떨었다. 오죽하면 백열 전구를 끌어안고 잤겠는가. 이제 이 곳에도 차가운 바람이 온 대지에 스며들고 있엇다. 그런 모진? 밤을 보내구 아침나절의 따스한 햇살이 반작이는 들판으로 나가면  새로운 세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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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하염없이 호주의 도시를 떠 간다. 이대로 계속 달리면 어디로 갈까. 어둠이 창가를 스치기 시작한다. 창밖을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창밖만 내다 본다. 가끔 뜬금없이 바보같은 짓을 할 때가 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지금에도 말이다. 그럴 때 혼자말을 한다. 너 바보 아냐? 그리곤, 씨~익 하고 웃어 버린다. 어릴 때 염세관에 빠진 적이 있다. 글쎄, 그 것이 정말 염세주의라 말할 수 있는 건지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염세관이었고 허무주의였다. 오랜 만에 펴든 일기장에 이런 글이 보인다.

"비관론자는 낙관론에 비관하는 게 아닌 비관론에 낙관하는 자이다"

다시 써퍼스에서 버스를 타고 간 곳은  Milliam vale. 지애의 말로는 독일인 가정이라고 했다. 내가 우프회원이 아니라고 하자 별일 없을 거라고 일단 오라고 했는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쯤 그 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지애 야마다. 처음 만났을 때 한국이름과 비슷하다고 했더니 무엇이 좋은지 활짝 웃던
동그랗던 눈이 생각난다. 번디에서 첫 날. 여자가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을 하고서는 마치 전투에서 돌아온 군인처럼 자랑스럽게 애기하던, 그 때까지도 일본인은 돈이 많아서 그런 곳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더군다나 여자는 더욱 말이다. 그래서 더욱 연약할 것 같던 일본 아가씨. 마나미로 인해 일본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면 지애는 일본도 한국의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게 되었다. 친구가 말이야. 얼마를 갔을까? 차 타기전에 물었던 밀리엄 베일에 왔는지 운전기사분이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는다. 다 왔냐고 묻자 다 왔단다. 외국 관광객을 많이 태워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올라타고 차가 출발할 무렵, 불안한 마음에 이 차 밀리엄 베일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안 간다고 차 잘못 잡았다고 너스레를 떨던 넉살좋은 그의 미소를 뒤로 하고 차를 내렸다. 저 만치 전화 부스가 보인다. 수화기를 들면서 뿌듯한 마음은 무언지, 내 이름은 쟈니... 우핑...지애... 잠시 후 지애가 받는다. 이제 30분뒤면 만나겠군.

하늘아래 이 곳만 있는 걸까. 셀프 주유기가 몇 대있는 작은 주유소. 한 편에 덩그러니 놓여진 전화 부스. 그리고 편의점에서 졸고 있는 아가씨. 언제 봐도 모래알 처럼 수없이 반짝이던 별들. 저 중 하나가 이 곳으로 떨어지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며 너털 웃음 짓던 남반구의 밤하늘. 이런 곳에서 담배 한 개비를 핀다면 좀 멋있게 보일테지. 영화의 한 장면같이 말이야. 관객은 없더라도 말이야. 베낭 한 켠에 짱박아 둔 Malboro를 말아본다. 40센트에 50개비의 담배를 말 수 있는 담배 종이와 1달러가 조금 넘는 새하얀 필터들. 그리고 14$가량하는 말보로 빨간 딱지. 영어 단어 연습할 때 혀 굴린답시고 Marlboro 와 Clean을 지껄이곤 했다. 말보로는 이후 케언즈 공항의 면세점에서 근무하며 마일드 세븐(88이 없다)에 자리를 내어주기전 까진 나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늘 옆에서 불살라 준 충실한 동행이었다. 어느새 익숙해져 손가락 끝에서 몇 번 비틀리고 마무리로 입술을 대면 한 까치의 말보로가 수줍은 듯 손가락사이에서 맴돈다. 그렇게 몇 까치를 더 말았을 때 저 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친다. 베낭과 작은 가방, 그리고 롤러 블레이드를 챙긴다. 이 놈의 롤러 블레이드를 팔아 버리는 건데 중얼 거린다. 지애가 뛰어 나온다.


그의 집은 Grocery다. 우리가 하는 일 또한 Watering이라고 하는 화초에 물뿌리기. 그리고 Weeding. 오전만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우핑이었다. 그의 집은 우프에 가입되어 있는 농가였기에 우퍼들을 위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 날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나를 위해 그 들은 음식을 준비해 줬고 그들의 따듯한 배려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우핑회원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말을 했고 그들의 잠깐 멈칫하는 표정. 이내 왜 우핑회원을 받는 지에 대한 이유. 그 것은 만약의 사고시 우핑회원 가입시 자동으로 가입되는 의료 보험 때문이라고 말 한다. 어떤 우핑 경험자들의 말을 들으면 매일 아침 말의 분뇨를 치고 건물 짓고 고생만 하다가 돌아온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편한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 부분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말이다. 다행이 나는 농장주를 잘 만났다고 해야 할까? 그 곳에서 일 주일간 호주의 전원을 만끽하고 떠난다. 그 곳에는 이미 알젠티나의 19살 된 아가씨가 우핑을 먼저 하고 있었다. 그 녀는 몇 개월전에 이 곳에서 우핑을 하다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왔단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란다. 그 녀는 집 본채 바깥에 있는 캐러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도 다른 국민성을 갖고 있지만 어딘가 비슷한 점은 존재하지만 알젠티나와 이 쪽은 틀린 점이 너무 많은 건 같다. 그 곳에 있는 동안 식사 시간후 약 30여분간 여러 가지의 주제를 놓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지곤 했다. 각 국가간의 생활상이라든가 국민성을 약간이나마 엿 볼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부족한 어휘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지만 귀기울여 주었기에 나의 어학실력도 많이 늘었다. 난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든 베낭여행객이든 우핑을 권하고 싶다. 비록 일 주일이었지만 3주 이상 한 곳에서 있는다면 어학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 곳의 민영방송중 하나인 sbs에서는 호주에 온 여러 민족들을 위해서 각 국의 영화를 틀어주기도 했는데 한국영화를 할 때면 한국영화한다고 다 같이 모여 보기도 하며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기도 하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반전 주의자였고 평화주의자였다. 마치 존 레넌의 Imagine 처럼 말이다.


참 그 곳에서의 당혹스런 기억 한 토막.

언젠가 식탁에서 각국의 음식에 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애기가 나와서 나는 나대로, 지애는 지애대로 애기 하다가 지애가 내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며 부추기는 바람에 다음 날 저녁은 내가 준비하기로 되었다.나는 내가 만드는 것은 한국요리도 아니고 단지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이라며, 양념들이 없기에 별루라고 애써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은 한국음식을 맛 보고 싶다고 극구 청하는 것이었다. 이런,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고추장을 이용해서 이 것 저 것 야채와 함께 만들었지만, 훗! 지애나 좋아할까. 만들면서 풍기는 고추장내에 눈살을 찌푸리던 그 알젠티나 아가씨는 다 만들어진 그 것을 한 숟갈 뜨고는 못먹을 것을 먹은 것 처럼 솓가락을 내려 놓을 때의 그 무안함. 나는 그렇다 쳐도 추천한 지애는 어떤 기분일까. 어쨌든 그 날은 그 알젠티나 걸에게 서운한 정도를 넘어서는 기분을 갖고 있었다. 독일인 부부는 성의를 생각해서 인지 끝까지 한 그릇을 비웠는데 그 것도 곤욕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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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 써퍼스에서 하릴없이 시간만 주기고 있자니 답답키만 했다. 무엇을 해야 하나. 분명 어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말이다. 기운 내라.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넌 쉬고 있는거야. 이런 생각으로 써퍼스의 밤거리를 걷곤 했다. 나같은 이방인에겐 너무나 화려해서 감히 범접하기 힘든 곳. 가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쉬이 말을 부치기가 힘들었다. 자격지심일까? 다음에 이 곳에 다시 온다면 그 때는 정말 써퍼스를 만끽하리라.

결국은 농장으로 다시 돌아 가야 하는가하는 초라함에 가슴 조이며 침대 한 켠에 세워져 있는 베낭의 귀퉁이에서 백팩 정보지를 빼 내었다. 농장 주변의 백팩에는 일자리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이 되어 있어서 좋은 정보가 된다. 물론 100% 믿을 것은 못된다. 그 중에 눈에 뜨이는 Bowen. 그래 이 곳으로 가자. 조금 더 버텨 보자. 농장에서 말이야. 영어 공부나 하지 머, 이런 자기합리와 호주에서 농장생활만 하다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괴리감속에 자신이 그렇게 왜소해 보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지애가 가자고 할 때 같이 갈 것을 하는 아쉬움. 내가 나약해 진 걸까? 여전히 저 바닷가에선 누군가는 써핑보드에 몸을 맡기고 파도를 즐기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텐데 말이다. 지랄,.. 욕이 나왔다. 누구에게 향하는 걸까? 이런 제길, 어쨌든 여길 뜨자고 결심하니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내일 뜨기로 하고 써퍼스의 마지막 야경을 구경하고자 거리로 나섰다. 써퍼스는 밤이 아름다운 도시다. 언제고 다시 간다면 그 아름다움에 취하고 싶은 곳이다. 10시쯤 되었을까? 지애와 같이 갈 것을, 하는 아쉬움으로 더욱 허전함에 절어 다니다가 문득 지애가 보여준 유스호스텔 티켓이 생각이 났다. 동경에서 끊어 왔다던 유스호스텔 숙박권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그래, 지애는 유스호스텔을 이용하겠지. 락 햄프턴이라고 했으니 그 곳의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걸어보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락 햄프턴의 유스호스텔 전화번호 몇 개를 알아 내었고 몇 번의 전화를 걸쳤을 때였다. 남자와 여자가 있는 곳이 분리되어 있다고 해서 여자쪽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군가 수화기를 든다. 나는 쟈니라고 하는데 그 곳에 야마다 지애라고 하는 일본 아가씨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통화를 부탁한다고 했지만 그 아가씨는 모른다고 한다. 순간, 같은 일본인끼리는 잘 알리라 생각되어 일본인을 바꿔달라고 했고 이어 일본 아가씨가 받는다. 그 녀는 지애가 여기 있다고 하며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지애를 부르는 소리가 저 만치서 들린다. 곧 이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 쟈니야.

지애는 락 햄프턴에서 남쪽, 번디에서 3시간 북쪽으로 올라가는 Milliam vale이란 곳으로 간다고 했다. Farm staying. Woofing과는 일맥 상통한 것이지만 우핑의 경우 우프회원이어야 하지만 팜 스테이의 경우는 일반 농가의 주인이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광고를 내어 여행자들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국의 낯 선사람을 집에 들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진데 다민족 국가이기에 가능한 제도인지도 모른다. 밀리엄 베일은 또 어딜까 지도를 찾아 보니 내륙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다. 내륙지방은 사막 때문에 덥다는데,... 지금 그 것을 따질 땐가.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 놓아란다고, 별 생각을 다 한다. 내 앞에 일이 놓여 있다는 건 어쩜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 그 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운 것도 없을 것같다.

밀리엄 베일(Milliam Vale)에서 합류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서퍼스를 홀가분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날 9$가량 하는 와인을 하나 사서 같은 방의 영국인,일본인과 마셨다. 내일 간다고 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술 마시면 혀가 잘 굴러가서 그런 걸까?  평소의 영어보다 잘 나온다. 아마 긴장 되지 않은 속에서 두뇌의 활동이 보다 활발해져서 그런건 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랬다. 영어를 잘 하려면 외국 친구와 술을 많이 마시라고,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그냥 가볍게 넘길 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웃고 떠들며 소리를 질렀다. 백팩안에는 퍼브가 따로 있어서 그 곳에서의 소음이 우리의 웃음을 덮어 버렸다. 이 백팩은 일 주일에 한 번씩 가면무도회가 있어서 백팩에서 준비한 옷가지들을 입고 얼굴에 페인팅도 하며 각자의 특이한 모습을 뽐내곤? 했는데 내가 머무른 날 중 그런 날이 있었다. 나는 참여하지 못하고 구경만 했지만 말이다. 그 날 지애에 대한 설레임과 밀리엄 베일에 대한 기대로 충만한 밤이었다. 역시 난 운이 좋은 것 같다. 넌 운이 좋은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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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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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초창기였다.
첫제품이 성공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후 업체와의 문제로 인해
원청지를 찾다가 나선 하문 초행길.
하문은 대만과 가장 가까운 대륙연안이어서 해변에는 포가 설치되어 있다는
조금은 서먹서먹해지는 설명을 듣고 출발 했다.
우리는 보지 않고 행하지 않고 단순히 들리는 풍월만으로 또는 첫느낌만으로
얼마나 쉽게 단정을 짓는지.
하문이 그랬다.
심천과 비슷한 위도대일꺼다. 날씨도 비슷한 아열대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시원해서 심천과는 또 다른 정취를 풍기는 곳이다.
심천은 습기가 많아서 끈적끈적거린다고나 할까?
중국 특구중에 한 곳이라 고층빌딩들과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의 모습들이
오히려 심천보다 더 살기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젠 거래처도 없어서 언제 갈 지모르지만 래미안 민박 아주머님의 맛갈스런 음식도
탐이 나고 너무나 평안했던 민박이었는데 말이다. 바로 앞의 시장도 괜찮았고
아저씨와 들이키던 바이주도 말이다. 지나가는 것들은 이렇게 남기는 기억의 향기가
진하다. 아쉬움이 있기에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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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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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터벅 터벅 걸어온다.
엄습하는 외로움. 호주에 첫 발을 내 디딜을 때만해도 안 그랬는데,
번다버그로 출발하더 그 날, 터미널을 찾으면서 이랬을까.
하비에이 터미널은 무척 넓다.
저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너무나도 한적한 빈 터들.
하지만 난 움직여야 했다. 난 서퍼스로 가야 했고 그곳에서
잡을 구해야 했기에 말이다.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고
내일 이곳을 떠난 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했다.
우선 경찰서에 가서 분실 신고를 하고 접수증을 받아야겠지.
이미 해는 저물고 있었다. 깔리는 어둠으로 더욱 혼자임을 느끼던
그 곳에서 경찰서 찾기를 30여분. 다행히 경찰서는 Olympus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 경찰서 간판을 보고
들어섰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경찰서 업무가 끝났나?
경찰서도 문을 닫나 싶었지만 리셉션으로 보이는 곳은 불만 켜 있고
경찰관은 없었다. 유리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설마 경찰서가 문을
닫으랴 해서 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excuse me" "Nobody there"를 연발하며 말이다.
내일이면 이 곳을 떠야할 텐데 촉박했다. 얼마를 흔들었는지 모른다. 저 귀퉁이에서 느릿 느릿 경찰관이 걸어 나온다.
반가운 마음이었고 그는 의아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되는대로 프레이저에서 카메라를 잃어 버렸고 보험에 들었기
때문에 경찰관의 접수증이 증거로 필요하다고 애기를 했다.
다급하니까 말이 어떻게든 나온다. 물론 문법같은 것을 따지며 하는
그런 대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가 알아 듣고 있다는 것이 어딘가. 영어는 많은 경험을 쌓으며 늘어나는 것 같다. 그는 차분히 들어주고 나의 말을 확인한 후 나의 여권을 보았고 접수증을 써 주었다.
그 곳에는 그의 이름과 소속.그리고 접수번호등이 적혀 있었다
한국의 경찰과는 다른 느낌. 마치 어떤 가게에 손님으로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친절했다면 억지일까?

올림푸스로 돌아왔다. 잠시 누웠다가 베란다로 나가 담배 한 가치를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서퍼스 파라다이스. 지금은 비수기라는데 과연 일자리가 있을까? 지금도 지애는 버스를 타고 있겠지?
락 햄프턴이라,..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번디의 친구들은
잘 있을까? 머리속에서 들고 일어나는 상념의 가지들. 나는 한 끼의
식사를 준비했고 그 것들을 먹어야 했다. 때론 먹는 게 얼마나 사람을 구속시키는 건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이 건 물론 그런 적이
있었다는 과거형이다. 대과거형으로 쓰고 싶다). 정말 미워했던
부류중에 한 사람이 취미가 식도락이라는 사람들이었다. 먹는다는 것, 잔다는 것,이런 기본 적인 것들에 회의를 품어본 사람은 알리라.
내 기분을, 침대위에는 짐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었고 지애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얄미워 보이는 밤이다. 그 날 덴마크에 입양된 한국인을
만났다. 그리고 재일교포도 보구, 덴마크 여성은 나에게
자기의 이름을 한글로 써 보이며 어떻게 읽는지 물어봤고
 한문으로는 어떻게 쓰는 지도 물어보았다. 나는 한글만으로 정확한
한문을 알 수는 없다고 말하자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자기의이름이 한국에서 어떻게 불리는 줄 알아서 기쁘다고
했다. 그 날 잠을 어찌 잤는 지 모르겠다. 대충 잤겠지.
다음 날 올림푸스 밴을 타고 터미널로 왔고 서퍼스 표를 한 장 끊었다. 내내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돌아다녀야 하는 걸까?
인생이 참 뭐 이따위냐. 젠장.
그래, 여행이라 생각하자. 그냥 서퍼스도 갔다 왔다고 말하면 되지 머,
여행이 별거냐. 푸~! 제길. 도대체 버스를 몇 시간을 타는 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4시간만 버스를 타도 빨리 내리고 싶었는데,
이제 그 정도는 우스울 것 같았다.

서퍼스에 대한 기억이 적다. 서퍼스를 띠엄 띠엄 봐서 그런가 보다.
4일간의 체류기간이 짧다면 짧을 수도 있겠지만 가슴에 와 닿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단 한 시간의 기억가지고도 책 한권을 쓸 수 있다고 행각을 한다. 아마 서퍼스에 대한 강한 인상이 남지 않아서 인가보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도시. 기억에 남는 대로 끄적거려 본다.
터미널엔 써퍼스에 있는 백팩의 직통전화가(무료) 있어서 이 곳 저 곳에 전화를 걸어 가장 싼 곳을 택했다.
너무 멀어도 안 되기에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저렴한 곳을 찾았다. 단 1불의 차이었지만
아직까지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방을 구하고
시내를 돌아다녀 본다. 써퍼스 파라다이스. 써퍼들의 천국.
그래 바닷가가 좋다. 파도가 써핑하기에 알맞게  치고 그 위로 써핑을 즐기는 사람들. 서핑을 즐긴다. 일자리를 찾는다. 하 하 하!
아침 나절부터 일어나서 가장 번화가인 Orchid av.를 거닐며
일거리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은 비수기라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답변만을 들으면서 공치면 바닷가로 나가 미팅에서
바람맞은 사람 심정으로(사실 이 기분은 모르지만 짐작에, 아니
실연당한 기분으로, 이 건 당해봐서 안다.) 바닷바람을 맞곤 했다.
바다에 잠겨서 즐거워 웃고 마냥 떠드는 사람들. 번디에서 떠나기
얼마 전 써퍼스에서 올라 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가 써퍼스로
간다고 하자 극구 말렸었다. 그는 써퍼스에서 같은 백팩을 쓰던
외국인과 친해져서 그 외국인이 일자리도 알아주고 외국인이 떠날 때는 자기가 갖고 있던 써핑보드를 주고 가서 해변에서 써핑보드를 타곤
했다던 부러운 기억의 소지자였다. 그의 우려를 뒤로 하고 이 곳에
왔는데 푸하~! 참. 당시 난 프레이저에서 얻은 발바닥 상처 때문에
바닷물도 아닌 모래사장 근처에서만 맴돌며 그 것들을 보고 있었다.
참. Surfer's paradise라는데, 이 곳까지 와서 모래사장에도
못들어가고 바닷물근처에도 못 간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그렇게 이틀간을 보내며 밤에는 일본인이나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들은 저녁이면 나이트에 가서 흠씬 놀다오곤
했는데 나갈 때는 분명 혼자인데 아침에 일어나면 둘이 누워있곤 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그런 거 신경쓸 것이 있겠는가. 써퍼스는
부르조아들의 천국이었다. 거리에는 세계 유명 브랜드의 식당과
상품점들. 그리고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들. 일본인만을 위한
편의점이 있다. 쩝! 그런데 이상한 건 그 곳 거리는 무척 좁다는 사실. 그 건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그 곳은 남부에서 브리스베인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인데도 불구하고 길은 편도 2차선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 번은 일본의 스모선수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의상으로 서퍼스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가끔 호텔에서 일본 스모선수들을
초대해서 스모를 소개하는 것 같았다. 서퍼스가 일본의 자본에 의해서 발전한 것인만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케언즈가 일본의
자본에 의해서 키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의
좀 이름있는 섬들은 일본인 것이다. 세상에 그게 다 부러울 때도
있던데 사람 마음처럼 오락가락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 사업가들이 해외에 땅을 사두면
그렇게 욕을 하고 그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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