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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따오를 간 이유는 단지 중국어도 배우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좀 더 다가가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면 말을 배워야겠다는 절실함때문이었다. 물론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늘어봐야 얼마나 늘겠냐만 결국 ㅡ 한 달은 지금의 어느정도 기본적인 회화라도 가능하게 된 시발점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시작은 미미하지 않는가.

지금 다시 들어보니 들리기도 하고 저 상황들이 떠오른다. 훗
아침 식사전에 동네 한 바퀴 조깅을 하고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빡시게 공부한다. 식사후엔 가까운 시내에 나가 그네들의 사는 방식들에 더부살이 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뭐 항상 그렇지만 사람들 사는 곳은 다 같다. 웃음,짜증,두근거림,호기심 뭐 그런 것이 다르겠냐. 다른 생활방식은 색다른 시선과 또 다른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중국을 너무 몰랐구나라고 하는 생각들은 그 한 달 내내 여전하다.
대학생들이 과외교사로 중국어를 가르쳤는데 다 좋은 학생들이다. 생각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그들은 소녀였고 새침떼기 아가씨였다. 순수쪽이 더 가깝다고나 할까?

가끔 함께 공부했던 형,동생들이 보고 싶기는 하다. 뭐할까?
잘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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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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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어디라고는 모르겠다. 그 저 가고 싶다는 생각.
어디서 그런 생각이 오는 걸까? 체게바라때문인가? 그 것도 아니고 잉카나 마야 문명에 대한 궁금증일까? 아니면 브라질의 삼바축제? 흠..
여느 대륙들을 떠올리다 보면 함께 묻어나는 그림들.
중남미는 내게 건강하면서도 풋풋한 웃음과 손내밀면 잡아줄 것 같은 그런
편안함을 준다. 왜냐고? 몰라. 그냥 그래. 하긴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큭. 역마살인가? ㅋㅋ

종로역을 지나다가 그 곳 어디에서 왔을 그들의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저 사람들은 한국에 와 있다.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고 노래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어떻게 살아가는 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 좋은 경험과 기억만 가지고 갔으면 한다.

중남미에 가고 싶다. 어디냐고,.. 뭐 딱 집으라면 우선 쿠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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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웬에선 5~6군데의 농장에서 일한 거 같다. 보웬에서 한 달쯤 지났을 까? 그 때 쯤 " 호주에서 나는 과일은 다 내 손을 거쳤나?" 하는 중얼거린 기억이 있는 걸러 봐서는 꽤 많은 과일을 딴 거 같다. 뒷날 케언즈의 콜스에서 쇼핑을 하다 보면 쌓여있는 과일들을 보면서 슬며시 웃던 기억이 있으니까. 기억에 남는 농장이 있다. 매니저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기억의 이유가 지금까지 만나본 매니저중에서 그는 상당히 과격한 스타일의 매니저였기 때문이다. 그 곳은 토마토농장이었는데 contract이 아닌 hourly였다. 시간당 8$정도. 하루 8시간 일해서 64$이다. 길게 뻗은 농장을 따라서 각 줄마다 사람들을 배치하고 사람들이 그 줄을 따라 토마토를 따며 앞으로 나가면 매니저는 뒤를 따라가며 누가 일을 잘 못하는 지 감시하는 그런 곳이었다. 30여명정도가 일을 하다 보면 눈에 띄게 못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이의 바로 뒤에 따라가서 그 사람 일을 도와주는 데 보통 사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딴다. 그러면 일을 하던 이는 심적 부담을 갖게 되는데 한 동안 그렇게 해 주다 그래도 진도가 안 나가면 머라고 중얼 거리며 인상을 쓴다. 다음엔? sack 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심한 언사가 오가기도 했는데 거의 주먹다짐 일보직전 까지도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객 입장에선 빨리 돈을 벌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했고 대부분이 관광비자로 와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하고 있는 자체가 불법인 때문도 있었다. 때문에 그런 그의 태도에 대해 항변을 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그런 그에게 잘 보이려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똑같은 거 같다. 그런 그도 나에겐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관심을 보였는데 그 건 주위에서 들은 트리니티에서의 내 생활때문이었다. .


고딩때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것중 하나가 바로 합기도 였다. 온수동에서 자취할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이던 오류동의 대원합기도. 당시 홍콩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었고 학생들도 태권도및 합기도 등, 각종 체육관을 많이 찾곤 했다. 난 누구에게 맞기 싫다기 보다는 때려주고 싶은 치기(하지만 때린 적은 없다- 그래도 맞은 거 같다 -.-;;)로 그 곳을 다녔는데 합기도를 선택한 이유는 똑같은 돈 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매력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발차기에 매료되어 발차기 하나만으로 1년 넘게 버텼다. 한 동안은 새벽이면 동네 뒷산에 올라 애꿎은 나무를 두들기고 새벽반 뛰고 저녁에 뛰고 야간에 뛰고 정말 미쳤었다.
덕분에 1년이 약간 지나 2단을 딸 수 있었지만 체육관 사정으로 거기서 끝내고 말았다. 휴~! 그 때의 친구들. 보고 싶군. 정운형은 지금 머할려나.

트리니티 백팩커스는 상당이 깨끗한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선 마리화나같은 것이 돌아다니기도 했고 백팩내의 각 유니트 배치가 동떨어져서 조금은 삭막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다 보웬에 온 지 9일 뒤에 지애가 일본으로 가기 위해 케언즈로 간 뒤 젖어드는 허전함을 풀기위해서 일이 끝나면 유니트 뒤에서 지난 기억속의 발차기며 낙법이며 형을 연습하곤 했는데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이 관심을 끌었나 보다. 그래도 한국은 태권도의 종주국이 아닌가. 한국인이 발차기며 낙법을 연습하니 그들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을까? 어떤 이는 나와 함께 같이 운동을 하기도 했고 가르쳐 달라고 해서 한 동안 조금 가르쳐 주기도 했다. 피식~!
농장의 매니저는 평소 킥복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자기 말로는 그 자신도
아마추어 선수로 뛰었다는 애기를 했었으니까, 언제부턴가 내게 다가와 호주의 누구를 아느냐며 킥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이라느니 어제는 술먹으러 갔다가 어떤 자식 패고 왔다느니 묻지도 않은 애길 꺼내곤 했다. 하여간 난 점심식사 이후에 혼자서 푸쉬업이며 이런 저런 간이 운동으로 몸을 풀었다. 매니저는 그런 내 모습에 쟈니는 스테미너가 넘친다며 농담을 하곤 했다. 어쨌든 나는 그 농장에서 보웬을 떠날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었고 매니저는 내가 떠날 무렵 술 한잔 하자며 가기 전에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준다. 평소에 나뿐 놈! 하며 싫어하던 놈도 헤어질 무렵되니 얼굴에 칼자국이 있어 더욱 인상 드럽던 그 얼굴이 "이 놈 또 언제 볼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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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발을 내 디뎠다.
큭, 3년전에 말이다. 계속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며
고민만 할 수 없는 문제. 결국 하나 하나 해결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코엑스 무역협회에서 무역학 강의도 들어보고
무역관련 커뮤니티와 글들을 섭렵하다가( 사실 뭘 알아야 섭렵하지)
중국행 티켓을 끊었다. 배편을 말이다.

이 동영상은 그저 중국에 대하여 호기심반 두려움반에서 호기심이
반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찍게 된 것이다. 가지고 있던 PMP로
찍은 것. 해상도는 그다지 좋지 않지만 지난 기억을 반추하기엔
썩 만족스러운 정도다. 욕심 많아서 뭐하나. ㅎㅎ

이촌지구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것들이다.
좋은 동네던데 말이다.
이 때 아마도 놀랐던 것이 광장의 규모라고나 할까?
그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놀라웠다.
공산주의 국가와 광장. 그런데 그 광장에서 춤을 추고 운동을 하고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 말이다.

어딜 가나 세상은 똑 같다. 중국의 어디인들, 한국의 어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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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약 3일의 짬을 내었다.
중국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말이다.
뭐 그런거지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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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로 옮겼다. 우리가 얻은 방은 이층 침대가 놓여있는 작은 방이다.
지금까지 생활해 본 가운데 가장 시설이 잘 된 곳이엇다.
이 곳 저 곳을 돌아디녔지만 번디의 프린세스보다 청결하지 못한 곳은 없었다.
 이후에도 말이다. 유리로 환희 트인 문을 열면 보이는 탁자와 테이블이
놓여있는 거실. 왼쪽편으로는 전기 오븐이 있고 큰 냉장고가 놓여있다.
그리고 방이 두개. 방에는 옷가지와 짐을 넣을 수 거울 달린 농이 서 있었다.
트리니티에는 이러한 구조의 건물이 여러개가 있었다. 쥔은 UNIT 라고
구분을 했다. 백팩을 둘러싸고 있는 호주의 나무들. 정말 호주라는 것이
실감날 정도로 내부가 넓은 곳이다. 백팩을 나와 2,3분 정도 걸으면
바다에 빠질 수 있었고 백사장을 걸을 수 있었다. 보웬에 간다면 트리니티를
추천하고 싶다. 한 가지 흠이라면 시내에서 멀다는 것이 있지만 매일 시내를
왕복하는 백팩소유의 벤이 있어 그리 불편한 문제는 아닐 것 같다.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거리에는 울월씨와 호주 슈펴체인의 양 축을 이루고 있는
coles가 있고 거기서 또 20분을 걸어야 시내가 나오는 트리니티.
한 쪽 켠에 포맷볼 데이블이 놓여있고 같은 건물에 비디오 시청실이 있으며
세탁기도 있었다. 전화기가 놓여있는 트리니티 백팩커스.


보웬은 참 조용한 도시다. 한 동안 일이 일찍 끝나거나 토요일 같은 날은 병기,영민을 쫒아 처음으로 접한 Tab라고 쓰인 경마장을 찾아 경마에 손을 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베팅을 하려면 경마장을 가야 하지만 호주는 Tab라는 곳에서 모니터를 앞에 두고 호주의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경마에 베팅을 할 수가 있었다. 병기는 가끔 하루 일당만큼도 벌어서 맥주를 사곤 했다. 잘 생긴 얼굴의 부산 사나이인 병기는 성격이 활달하고 모난데가 없어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강남대를 다녔던 영민은 노래를 참 잘 불렀다. 밤이면 기타를 들고 거실에 나와 기타를 치면 외국인들도 모여들어 박수를 치며 관심을 보였다. 호주는 복권도 많고 추첨도 많고 요즘의 한국을 보는 듯하다. 슈퍼체인에서 승용차를 거는 모습은 그 땐 생소했으니 말이다. 영민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워서 케언즈에서 반찬은 참 잘 먹은 거 같다. 김치가 있다는 것 하나로 말이다. 트리니티로 옮겼을 때 일주일치 방삯을 내고 모니 남는 건 60$정도.
일주일 방세가 90$가량이었으니 다음 주 방삵은 없는 것이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호기있게 지애와 콜스를 가서 이 것 저 것을 음식꺼리를 샀다. 그런 생각들은 지금까지 보내 온 호주에서의 생활에서 배운 것? 터득한 것? 여유같은 것이 아닐까. 콜스에서 트리니티까지 걸어오면서 군것질 꺼리까지 샀다. 콜스 앞에는 작은 호수가 있어서 그 곳에 앉아 호숫가를 노니는 이런 저런 새들의 날개짓을 보며 말이다. 날씨 좋다. 다음 방삯을 내야 할 날이 다가왔다. 일이 주어 지지 않아 수중에 돈이 없던지라 나는 쥔을 찾아갔다. "나 돈 없다. 일이 주어지면 돈 갚겠다. 나 여기서 한 석달 있다 갈거다." 몇 일뒤에 일이 나왔다.
처음 방을 얻었을 때 룸메이트로는영국인 아니 스코들랜드의 귀여운 아가씨 Sarah Rollo가 쓰고있었다. 호주에 오기전 멜 깁슨 주연의 Brave Heart를 감명깊게 본 지라 그 애기를 하며 스코틀랜드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치마입고 악기 부는 남자들하며 이런 저런 애기를 하자. 사라도 한국에 관심을 가진다. 지애와 난 쉽게 사라와 친해졌다. 같은 방을 쓰는데다 워낙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은 사라. 항상 우리 유니트는 사라의 친구들로 차 있던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어울리고 있었다. 옆 방에는 23살먹은 Hieth라는 뉴질랜드인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확실치 않지만 난 히쓰라고 불렀다. 히쓰의 영어만 그런 건지 뉴질랜드 영어가 그런건지 조금 발음이 특이했다. 히쓰는 사라를 좋아했다. 사라가 있는 곳엔 히쓰의 모습도 보였으니 말이다. 한 2주일뒤 사라가 케언즈로 갔을 때 외로워 보이던 히쓰! 언젠가 일이 끝나고 와서 보니 씨익 웃는 그의 입에서 이빨 두 개가 없어진 것을 알았고
나는 누가 그랫냐고 따지듯 물었지만 뒤에 알고 보니 히쓰가 더 많이 상처를 줘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 못했단다. 하여간 큰 키와는 달리 정말 순진해 보이던 히쓰. 언젠가 술에 취해 쓸쓸한 듯 사라가 보고 싶다며 말하던 히쓰의 푸른 두 눈엔 연민이 가끔 비치곤 했다. 사라에게 전화도 못하고 그 저 주소와 전화번호만 갖고 있다던 뉴질랜드에서 온 히쓰와는 정말 친하게 지냈다. 참, 나에게 사라는 떠나며 다이어리에 글을 남겨 줬는데 스캐너가 없어서 아쉽다. 그 글의 내용을 옮겨본다.

Sarah Rollo
Saint Giles Manse 18 Reidhaven street,
Elgin, Moray Scotland. U.K\
01243 537212

Dear Johnie,
Please feel free to write ant time to practise your English.
I 'll definetely write back - for sure -
maybe I 'll see you in Scotland -
You are welcome to stay at my house.
Love from Sarah
                 XXXX
 
뒤에 찰리라는 영국인에게도 메시지를 받았는데
도저히 알아 볼수가 없었다. 그냥 웃고 말았는데
-그 걸 스캔떠야 하는데-
사라는 정성스럽게 또박 또박 써 주었다. 찰리가 악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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