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떴다. 전날 술마셔도 비행기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벌떡.

시간은 빠르다. 때에 따라선,

 

마닐라 도착. 

똑같다. 사람도 똑같고 공항도 똑같고 비행기도 똑같네.

마닐라 노란택시 기사 꼼수도 똑같다.

미터 꺾으라니 미터 보여주기만 하네. 한참 가도 안 올라가는 미터기.

350페소 달라는 것. 그렇겐 못하지. 250주었다네.

우리나라도 그랬었지 하는 생각은 뭐야. 하긴 요즘도 그런다는데,

 











 

 

비가 내린다.

지금이 우기인가? 내가 알기론 11월이 우기로 알고 있는데 다행이 택시에서 내리니

비가 그쳤다.

일식집에서 먹은 저녁. 쩝.

정말 음식 못한다. 하긴 주방에 전부 필리피노인데 일본 음식 맛을 알까.

마닐라를 떠날때면 매번 아쉬움이 들었었는데 이번은 그렇지 않다. ㅎ 안 좋은 일을 연달아 4번을

만나니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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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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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선 처음처럼이 참이슬보다 비싸다.

처음처럼은 90페소, 참이슬은 88페소.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서 그런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어슬렁 거리다가 들어간 로칼음식점.

74페소. 달짝지근한 바베큐와 계란후라이, 그리고 정체불명의 무언가 뿌려진 밥과 야채 한 줌.

먹을만 하다. 감사히 먹었다. 도중에 만난 10대의 노점상 아이는 이 곳에서 산 39페소 음식을

맛나게 먹고 있었다. 형과 함께 땅콩등을 파는데 어찌나 음식을 맛나게 먹는지,


지인과 함께 한 저녁식사. 이렇게 많이 나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나왔다. 삼겹살 1인분 300페소.

더구나 이렇게 한 쪽에서 구워주기까지 한다. 친절하고 맛깔스런 음식에 칭찬을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올라오신다. 불편하신 것 없느냐고, 일행이 물어보니 식당을 새로 인수한 지 1주일 정도

되었다고 한다. 청기와 식당. 강추.


매 번 길에서 자기 가게 놀러오라는 친구가 있는데 나는 그런 곳 안 간다고 안간다고 하다가 지난 3월에

다음에 오면 가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삐끼질을 한 지가 한 3년. ㅎㅎ

질긴놈. 결국 이 번에 와서 마침 일행과 함께 갔다. 미쉐린. 두시간 놀다가 들어왔다. 이런 곳은 사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일행과 이런 대화, 저런 대화나누면서 노래도 부르다가 들어왔다.

생각보단 비싸지도 싸지도, 4,000페소.



한국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확실히 저렴하지. 그래서일까. 가끔 돈지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마사랍코리안 이란 말이 나왔는지 모르지. 하긴 나도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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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따오로 읽기도 하고 한국음인 청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지명은 참 뭐라고 말하기 애매한

경우가 같은 한문을 사용하면서도 발음이 다른 이유이기 때문이리라. 돌아보면 무엇이든지 애틋한

것일까. 기분좋은 기억만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돌아보면 안 좋았던 기억도 그러려니 한다. 이유가 

있겠지 하는 거다. 처음 본 북한사람? 칭따오에는 북한에서 운영하는 북한 식당이 있고 가슴에

북한국기의 뱃지를 차고 있다. 돈이 없어서 먹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닌 것

같다. 칭따오의 리춘지역.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좋은 이미지를 주었던 중국사람들. 아침에도

밤에도 광장에서 함께 모여 단체로 춤을 추는 모습은 생소하면서도 특이했다. 자유로이 모여서

운동을 하고 춤을 추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 이른 아침이면 들려오는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를 들으면서

일어난다. 가본 시장은 삶의 활기를 느끼는데 부족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시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중고품도 나와서 판매를 하고 한 쪽에서는 어른들의 머리를 깎아주며 돈을 받는 간이 이발소?도 자리를 잡고 있다. 



맥주 한 병에 량콰이우를 잘 못알아들어 25위안으로 듣고 100위안밖에 없어서 고민했던 시간. 큭,



이제 7년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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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지하철엔 CCTV가 있다. 정확히는 심천 지하철에 있다. 그런데 그 동안 왜 못본거지?

어쨌꺼나 이번에 보았다. 전에는 없었던걸까? 흠. 하여간 생소한 모습이라 촬영한 모습이다.
심천의 경우는 지하철 노선이 
4개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출퇴근 시간에도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신도림역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아 
정확한 인구가 얼마인가 싶은데 중국에 있는 이들에게 물어봐도
제각각이다. 몇 백만에서 천만이 
넘는다는 애기까지. 가장 많은 인구가 나온 것은 1,400만까지 보았고
적게 나온 곳은 2백만 정도. 인터넷을 종합해 본 결과 1.400만이 맞는 것 같다.

 어쨌거나 다음 정보에는 이렇게 나온다.



이번에도 그 할아버지를 만났다. 흠.. 심천에 올 때마다 보게 되는 원숭이와 함께 하는 할아버지.

처음에 보았을때는 시골에서 막 올라오신 분이 아닌가 했는데 아마도 이 곳 어딘가에서 사시는 것 같다.

3,4차례 보았지만 낮에는 보지를 못했고 저녁에만 만나게 된 할아버지. 

얼마 안되는 돈을 드리고 사진 촬영 동의를 구하고 몇 컷을 ㅉ기은 사진이다.


저 할아버지도 가족이 있겠지?

저 원숭이는 할아버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저 할아버지는 원숭이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수어지교水魚之交가 바로 저런 모습이겠지.

원숭이 수명은 보통 29년이라고 한다. 지금 몇 살일까.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같은 날 같은 시간에 ...


그 것이 어쩜 낫지 않을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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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천은 3월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기억에 화창베이에서 비만 내리면 어디서 나왔는지 우산을 파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지하철이나 건물입구를 봉쇄?하곤 우산을 팔던 모습이 아마 이 때쯤 이었나 보다.

중국에 처음 발을 내 디딜땐 우산 쓰는 사람이 정말 흔하지 않았다. 으례 비를 맞고 걸어가는 사람들.

그런데 점점 우산 쓰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지금은 비가 오면 우산을 대부분 쓴다.

3월의 심천은 조석으로 쌀쌀하다. 오후엔 따듯한 날씨이지만 저녁이 되면 서늘한 바람과

온방이 되어 있지 않은 숙소에서 잠을 이룰땐 장롱에 들어있는 이불까지 꺼내어 돌돌말고

잠을 이루곤 한다. 심천의 일반적인 가정은 온방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먹거리를 찾아 삶의 다양한 방법론을 내세운다. 물론 이런 방편들은 다른 이들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영향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일거리를 내세우곤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참 피곤한 삶이다.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이 말속엔 삶이란 그런건가 하는 철학적인 표현되

되겠지만 어떤 이에겐 참 고단한 말이기도 하다. 

 

 

 

화창베이의 상징과도 같은 사이거광창의 뒷편으로 가다가 찍은 사진이다. 흐린 날씨다.

 100층빌딩. 심천의 위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빌딩이겠지만 아직까지 공실이 꽤나 있는 듯.

계속 임대안내를 알리는 전화번호가 LED조명으로 뜬다.

 스테이크. 한국에서는 못,안 먹는 스테이크를 여기서는 먹어본다.

 홍콩으로 가는 버스.

 거래처에 갔다가 찍어봤다. 관우상인가. 공장 입구에 세워놓았는데 결국 자기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거아닌가.

 

 범브. 이름이 범브라고 해서 화끈함이 보이는 듯해서 집어왔다.

 아래도 범브.

 결국 범브맞은 닭다리.

 그런데 고량주 안주엔 컵라면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국물이 함께 해야 하는 소주에 익숙해서일까?

 공구세트.

 

 심천의 지하철안. 참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심심해서겠지. 지하철을 매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이렇게

찍어본다.

 


다시 방문할 심천. 중국. 이제 도전이라 이름할 만 하겠다.

지금까지는 얌전하게, 안전하게, 무난하게 했다면 이젠 달리해야지.

정말 중국생활이 시작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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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문은 대만과는 가장 가까운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대만을 향한 포가 있다는 곳.

지금은 양안관계가 좋아져 대만의 투자가 왕성한 곳이지만 과거 적대국가였을때는 긴장감이 도는

곳이었을게다. 남북한과 같은 긴장감이랄까? 하긴 뭐 지금 남북한이 정권에 따라 냉온탕을 오가는

관계라 어쩜 중국과 대만보다 더 긴장감이 도는 곳일지 모른다. 외국에서 보기엔 말이다.

 

심천의 거래처에서 첫 거래한 제품이 알고보니 하문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중국의 사이트를 계속 써치하면서 알게 된 것이었다. 결국 하문에서 생산한 제품을 심천의 협력회사에서

마진을 넣고 다시 무역회사에서 우리에게 자신의 마진을 넣어서 공급한 제품이라 이중마진이 들어간

것이었다. 마진도 마진이지만 생산과 공급에 있어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가 않다보니

첫 거래때 생고생을 했지만 그 덕에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문의 거래처와 연락이 닿고 하문에 도착하여 업체를 만나고 다시 거래를 재개했지만 한 번의

거래에 그치고 말았다. 그 업체 사장의 마인드가 미래보다는 현재를 추구한다고나 할까? 자신들은

완성품을 만들어봐야 마진이 별로 없고 타사의 mp3 케이스만 만들어도 마진이 더 좋다는 것이다.

실제 그 회사의 공원들은 mp3케이스를 만들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력을 개발하고 경쟁해서 이겨나가기

보다는 큰 회사에서 주는 하청으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회사를 운영한다면

항상 미래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그림은 계속 수정해가면서 하나의 청사진으로 보여지고 비전이라 불리워지는 것은 아닌지.

 

 

하문엔 그 업체 하나 보고 왔기에 하문에 있다가 심천이나 광저우를 가곤 했다. 두 차례 방문한 하문은

높은 빌딩과 잘 나뉘어진 구획들이 마치 계획도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호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고급바나 클럽들도 있었는데 아직 중국어가 서툼에도 불구하고 택시기사들은 친절하게 아무문제 없이

잘 데려다 주곤 했다. 어느 클럽에서 마신 술. 몇 군데를 가 보았지만 보통 양주는 500위안선.

 

두 번의 하문 방문길에 한 번은 심천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고 또 한 번은 기차를 타고 광저우를 갔다. 비행기는 2시간 안 쪽이지만 기차는 약 30시간 이상 걸린 것으로 기억이 든다. 그렇게 장거리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짐들도 부피가 크고 다양한 먹을 거리를 사 들고 들어온다. 꼭 빼 놓지 않는 것은

바로 차다. 기차에는 따듯한 물을 공급해주는 온수기도 있을 정도로 중국인의 차사랑은 남다르다. 

 

하문의 꽤 아름다운 사진들이 많이 있는데 몇 번의 컴퓨터를 바꾸고 포맷하면서 사라진건지 외장하드에

숨어 있는지 다시 찾아봐야 겠지만 하문은 일뿐만이 아니라 관광지로도 꽤 아름다운 곳으로의 가치가 있고 다시 한 번 방문도 해 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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