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던 거 같다.
가난과 같은 것들에 절대적 기준이 어디있을까만 말이다.
초딩(난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ㅠㅠ)4학년때 할머니댁에서 다녔다. 할아버지는 복덕방으로
소일거리가 아닌 주업을 하셨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 자전거는 할아버지의
애마와도 같아서 일주일에 한 번은 세차를 하곤 하며 반짝이는 빛을 발하였다.
할머니는 가끔 할아버지가 일로 나가셨을때 손님이 찾아오면 구부정한 허리를 어렵게
피시고 안내를 하곤 하셨다. 동네에는 세탁소, 점빵, 오리탕집이 4거리의 모서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가끔 오리탕집에서 오리고기를 얻어오셔서 집안에 식탁분위기를
바꾸곤 하셨다. 식탁에 풀만 올라오다가 어쩌다가 기름이 둥둥 떠있는 국이 올라오면
왜 이리 입에 침이 고이던지 말이야. 쩝! 항상 먹는 정부미에 그 반찬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난에 대하여 깊은 생각은 없었나 보다. 친구들과 잘 어울렸으니 말이다. 산등성이에
올라가 있는 친구집을 헉헉대며 올라가서 김치와 밥을 비벼 먹으며 계란을 몰래 후라이를
해서 먹기도 했는데 말이다. 점빵 습격사건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동네 점빵이 아니다.
우리동네에서 학교를 가려면 동네를 지나 도로로 나가야 했고 그 도로에는
자동차 고치는 곳이 몇 군데 있었고 자동차 고치는 곳 끝나는 무렵에 작은 점빵이 있었다.
주인이 할머니셨는데 그 당시 오락에 빠져서 밤까지 오락실에서 아저씨들 옆에 앉아
삥?을 뜯다가 돌아오다가 이 곳 저 곳을 배회하다가 지날 때면 할머니는 종종 졸고 계셨다.
손님이 오면 그 때 눈을 뜨시며 게산을 하곤 의자에 앉아 다시 조셨다.
아마 오리온에서 나온 미니캬라멜이었던거 같다. 150원이었던가?. 조그만 캬라멜이 하얀 비닐에
쌓여서 10개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던지.. 그 점빵에서 바깥편엔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었고 그 위로 캬라멜이나 껌등 조그만 먹을 거리들이 있었다.
어느날 밤. 아마 여름이었을 것이다.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안고 그 냉장고아래에 앉아
조그마한 손을 내밀어 캬라멜을 손에 잡히는대로..두 새개? 냅다 뛰었다.
물론 사람들이 눈치 채지 않게 말이다.
콩당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어디까지 뛰었을까. 죄책감보다는 누가 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더 들었다. 나쁜 놈이었을까? -.-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번째 습격을 할 때였다. 역시 냉장고 아래에 살짜기 앉아서 주변을 살피며 손을 더듬 거리며 캬라멜을 찾고 있을때였다. 뭐냐!
헉! 할머니셨다. 목소리만 듣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집의 반대방향으로 말이다. 할머니는 뭐라 뭐라고 하셨지만 들리지 않았다. 쿵쾅쿵쾅...사람들이 보면 어쩌나. 내 얼굴 기억하면 어쩌나. 짧은 다리로 난 숨도 쉬지 않고 달렸는데 눈물이 나는 건지 후끈 후끈 얼마나 달렸을까?? 한 10분을 그렇게 달린 거 같다. 우리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부를 돌아서 집에 들어가 숨죽인채 그날 밤을 보냈다. 그 뒤로는 물론 그 점빵은 근처도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고 보니 할머니한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점빵도 조그마 했는데 말이다. 할머니 죄송해요. ㅠㅠ 쓰고보니 나쁜 넘이었네.
할머니. 착하게 살께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