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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시내를 걸었다.
시내라고 해야 약 100여m되는 메인 스트리트주위로 기념품 가게와 펍,
그리고 여행객들이 여비를 마련할려고 들고 나온  잡동사니들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곳들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지금 몇 가지 기억을
찾아드는 는 것들이 있다. 태권도, 킥복싱, 가라테등 다양한 무술잡지들.
문신(tatoo) 한국에선 그냥 스치고 마는 태권도 도장이지만
그 곳에서 태권도 도장을 보며 파란눈의 외국인이 우리말 구령을 부치며
발차기하는 모습은 감흥이 다르다. 이 것들은 뒤에 애기하겠다.
생각이 난다면 말이다.

지금 애기하고픈 건 New age문화다. New age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지만
신비주의같은 것 이라고 하면 대충 맞을 것 같다. 여느 종교에 국한되지도 않고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듯한, 그들의 음악이 당당히 Hit차트에 들어가고
그들의 콘서트가 여기 저기에서 열린다. 그리고 도시라면 꼭 어디엔가
New age문화가 풍기는 가게가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향긋한 향초가 타오르고
있고 벽에는 외계인, 천사, 정말 신기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들, 그리고 듣기에도 너무 편한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있는 곳. New age관련 서적, 점설술,
목걸이 등등.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꼭 가보기를. 미묘한 분위기가
압도하지 않고 아우르는 곳이다.
호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 큰 나라에
정말 도시들은 아담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들이 든다. 개발이라고 하나?
그런 이름으로 본을 유치해서 빌딩도 세우고 세계제일, 세계최대의 것들을
 만들면 좋다고 달라들 자본가들이 세계에는 깔려 있을텐데 말이다.
세계 3대 미항이라고 하는 시드니도 가면 생각보다 크지 않음에 -서울과 비교해서 말이다- 갸우뚱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없을래나? 없음 말고!


수퍼에 들어가서 제일 싸고 양 많아 보이는 것들을 뒤적거리다가
어렵사리 몇 개를 고르고 나왔다. 정말 먹음직 스럽게 반짝이는 과일들이
때깔좋게 자리하고 있다. 스테이크 해 먹음 좋을 고기들,
그리고 각종 음식물들이 눈을 현란하게 하고 있었다.아침을 먹고 나와
 점심도 굶고 이제 저녁무렵이 되어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나와 있으면서
고른 것들은 너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들. 쌀 2kg짜리와 빵 세일들어간 것
몇 센트짜리. 그리고 시들어가는 야채 하나. 기껏해야 채 3$도 안 되는 것들.
만만한게 고추장이라 고추장국을 끓이기 위한 재료일 뿐이었다.
나는 괜찮았지만 지애는 얼마나 배가 고플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색도,
또 다른 음식물들에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 것이 더 안스러웠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 거리를 더 걸었다. 우리가 할 수 잇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New age류의 것들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 이 것 저 것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주인한테 물어보며 여러 가게들의 장식품을 구경하며 말이다. 그렇게 걸어오다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풍겨나오는 맛 댕기는 음식내가 코를 자극했다. 지애도 마찬가지리라. 잠깐 나는 고민을 했다. 보드를 보니
저녁식사를 4달러 95센트에 제공한단다. 10달러내면 10센트가 남는군. 흠,
나는 가게로 들어섰다.   한산했다. 나는 가장 고급스러보이고 가장 폼나 보이는 자리에 그리고 거리가 보이는 자리를 골랐다.
자주 왔던 것처럼. 웨이트리스에게 별 것 아닌 몇 마디를 아주 유창(유치?)하게 휘둘렀다. 지애는 그저 바라만 본다. 웨이트리스가 가고 나는 씨~익 웃었다.
레스토랑을 나오며 지애는 정말 맛잇는 식사였다고 배부르다며 고맙다며
연신 재잘대고 있다. 그런 지애를 바라보며 나도 웃어주엇다. 
 


다음날 시내를 돌다가 번디에서 같은 방에서 지냈던 조단과 닉키등
그 때의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 인연이, 우린 반가움에 부둥켜 안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번디에서 친하게 지냈기에 말이다.
아직 번디에 있고 지금은 잠시 닐에게 애기하고 놀러왔다고 한다.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흘,... 그러지 못하고
헤어졌다. 니키는 정말 귀엽게 생긴 아가씨였다. 물론 키는 나만하지만,
종종 번디에서 술에 취해 나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던 프린세스에선
많은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던 아가씨였다.나는 헤어지는 아쉬움에 포옹을 하고 그 녀의 볼에 뽀뽀를 해 주었다. 문득 에어리로 들어오기전 올라서던 언덕이
보였다. 저 언덕을 넘어가면 무엇이 있을까? 주위에 무언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백팩들도 몇 군데 있던 것 같았는데 말이야. 지애에게 나는 내 의도를 말했다.
반응이 신통찮다. 뾰루퉁~! 하~! 왜 그러냐고 하자 니키에게 뽀뽀하는 것을 봤다며 어떤 사이냐고 묻는다. 어떤 사이? 친구 사이! 친구사이에 뽀뽀하냐?
그냥 씨~익! 웃고 만다. 지애와 다니면서 싸움이 없었던 것은 서로간의
짧은 어학으로 시시콜콜 따지고 계산하는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도 한데 오히려 그런 경우는 없었다.
신뢰와 이해가 있었기 대문이 아닌가 싶다. 히치를 하려다가 그냥 걸어가는게
나을 것 같아 터벅 터벅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더없이 맑은 하늘과 저 아래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차들이 가끔 지날 뿐이다. 너무나 조용한 도시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라고 해야 하나. 언덕을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저 아래에는 또 다른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치 서울 어느 교외의
주택단지를 보는 듯한 기분. 우린 그렇게 걸어다니다가 마을 앞에서
히치를 해서 다시 백팩으로 돌아왔다. 안내 데스트에서 가져온 몇 장의
크루즈 브로셔를 내 놓고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한 참을 망설이다가
예약한 것은 45$짜리 크루즈. 점심과 Z-Ski와 스노클링이 포함된 가격이었다.

부엌으로 가서 쌀을 씻고 밥을 앉히고 국을 위한 물을 올리고
부엌의 여기저기를 살펴서 공용의 식품들이 있는지 뒤적거려 보기도 했다.
백팩의 부엌은 많은 이들이 잠시 머물렀다 가면서 놓고가는 음식물들이나
혹은 깜박 잊고 가는 것들이 항상 한 켠에 있었다. 파스타라든가,
기타 야채류같은 것들이 말이다. 고추장도 떨어져 가는군, 이 거 하나가지고
잘도 버텼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그 때는
고추장을 조금이라도 덜 쓰려했고 음, 기분 좋은 날엔 고추장을 많이 넣어서
국 끓였는데 고추장을 많이 넣은 날엔 맛있다고 방긋 웃고는 했다.
정말 맛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있었다. 고추장 하나로 말이다.
또 다시 강조하는데 고추장과 된장을 가져갔으면 한다.
말그대로의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간다면 모르지만 경제적인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이왕이면 된장 보다도 고추장이 더욱 유용하다.
고추장은 고기, 야채, 비빔, 내지는 볶음등 쓰임새가 다양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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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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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주일을 밀리엄베일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구가하며 한가로움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후, 이젠 괜찮아. 또 가야겠지. 지애는 나의 의견을 따랐고 우린 다음 목적지를 호주에선 아름다운 해변과 다양한 수상 레포츠로 세계의 베낭족들이 찾는 Airlie beach로 정했다. 우린 독일인 부부에게 떠난다는 말을 했고 몇 일뒤에 그 곳을 떠났다. 독일인은 우리를 데려왔던 곳까지 배웅해 주었고 우린 아쉬운 작별을 그들과 해야 했다. 이렇게 한적한 날들을 다시 찾을 날이 있을까? 어쩜 그 것은 지난 3개월동안 궁핍한 이유로 지칠 듯이 자신을 내 몰던 생활속에서 모처럼 드러 누웠던 목가풍의 여유 때문 이었는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음, 여기서 고백을 하나 해야 할 것같다. 기실 호주에서의 많은 기억들, 특히 에어리 비치나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의 기억은 녹이 슬어 쩌걱 거리는
뇌세포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다 대충 그거다 싶은 것을 어렵사리 끄집어내는 것들이다. 그 것들을 조립하다 보니 무슨 쓰기 싫은 반성문을 쓰는 것 마냥(써 본 사람은 안다. 나? 말도 마라! 반성문 일주일만 쓰면 재인이만큼 한다. 반성문 길라잡이.책을 쓰겠다.) 무얼 써야할 지 머리에서 쥐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곳에서 내내 가지고 다녔던 다이어리에 기록을 했지만 꼼꼼하지 못한 성격인대다가 그 곳에서는
이 글들에서 보는 것처럼 감상적이기보단  현실에 급급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 페쥐들을 엮어가는 데는 부족함이 많다. 거기에다가 원래 이 홈페쥐 제작 의도자체부터가 타인을 위하지 않은-전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었던 까닭에 내 기억의 것들을 꺼내는 데 이렇게 힘이 들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타인을 의식함으로 생기는 부적절한(하~! 이 말이 이런 때도 쓰이는 군) 자신과의 문제들. 공연한 게시판, 그리고 잡다한 사족들. 이런 것을 바란 건 아닌데 말이다. 물론 와주는 방문객들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남을 배려하기에는 아직 자신조차 추스리지 못하는 작은 내가 한심스럴 뿐이다.
하지만 아직 남을 위해 봉사하거나 착한 일 해보겠다고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행여나 섭섭해 할 방문객이 있을까 하는 당치 않은 우려로 다시금 사족을 달아본다. 아마 이 글이 올라갈 쯤엔 어떤 이는 나의 무성의 내지는 게으름에 실망내지는 웃음을 날릴지도 모르지만, 흠 어쨌든 미안함을 전하며 이 경험담을 계속해 나간다. 그 건 어짜피 나와의 약속이어서 말이다.

에어리 비치에 들어서기전 고개가 하나 있다. 그 곳을 올라서면 아래로 쭈욱 뻗어 나가는 시내가 보인다. 막 평지에 내려섰는가 싶을 때 왼쪽으로 돌아선다. 터미널이다. 역시 에어리 비치도 수많은 젊은이가 찾는 곳이라 터미널앞에는 테이블 하나만을 놓고 백팩을 홍보하는 이들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이 곳 저 곳에 물어본 결과 그 중 가장 저렴한 곳인 13 BEGLEY란 곳에 숙소를 정했다. 13 BEGLEY는 에어리 비치앞 바다인 휘츠선데이(Whitsunday)제도가 잘 보이는 언덕바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메인 스트리트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백팩커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중에서 13 BEGLEY가 단연 돋보이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에 들어서면 자그마한 풀장이라고 하긴 머하고 동네 목욕탕만한 풀이 있고 그 위로 3층을 더 올라가서 잡은 방. 그 곳은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기에 그 곳에서 있는 몇 일동안 식사준비는 저녁 한 끼만 하면 되는 적어도 우리에겐 혜택이라 할 수 있는 괜찮은 곳이었다. 지금 잠깐 TNT를 뒤적이다보니마침 그 곳 광고가 있어서 옮겨보는게 좋을 듯 하다.

1박 13$
(YHA/VIP)
우리의 블랙퍼스트 클럽에서
매일 아침 공짜 식사!

달걀과 베이컨
그리고 콩.
토스트와 밀.
차와 커피.

  • 에어리비치
    중심에서200 M
  • 최신 시설
  • 탁트인 전경
  • 체육시설과 풀장
  • 일광욕을 위한 발코니
  • 4개의 부엌
  • 에어컨 (여름철)
  • 매일밤 시내유명
    퍼브예약. 할인가능
  • 바메큐장
  • 버스터미널까지 픽업
  • YHA_+VIP는 할인

휘츠선데이의 모든
Sailing과 Diving예약
 
모든 overnight예약시
1박의 숙박 공짜
사물함도 공짜
marina까지 교통편도 공짜
주차장도 공짜 

Freecall(In Qld)
1800 633 845

이 쿠폰을 가져오면 첫 숙박료 2$ 할인
(예고없이 상기요금은 바뀔수가 있음)

흠 정말 대단해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머 이런 것들을 그대로 믿고 가면 실망할 듯. 호주의 모든 관광에 관한 모든 것 -그 것이 여행지이던, 숙박시설이든, 놀이시설이든-  브로셔에 나와 있는 것들은 과대광고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아침 식사는 참 괜찮았다. 흠, 양이 작은 것이 흠이지만 말이다. 참 이 곳의 거의 모든 백팩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했지만 안하는 곳도 한 두곳이 있었다.휘츠선데이는 호주에서도
유명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거기에서도 중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한 뻑가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글쎄, 책을 보니 그레이트 베리어리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잘은 모르겟지만 하여간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서 잠깐여
Airlie에서 Bowen -여기에서 2개월 넘는 기간을 지냅니다. 여기서도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섭섭하고 아쉬운, 그리고 즐거운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16$인가? 가진 돈이 그 거밖에 없어서 방세도 밀리는 절대절명?의 난제에 봉착하게 되지만, 장하다 재인이, 대한의 남아 재인이,^.^

그리고 Cairns 여기에서 에공, Job을 구하면서 보웬에서 허리팔아 돈 번거 몽땅 까먹는 건지, 중국식당에서 디쉬워셔 일주일만에 잘립니다. 시간당 6$ 하지만 또 아침부터 밤까지 아니 새벽까지 다리품 팔며 돌아 다니다 국제공항의 면세점에서 일하게 됩니다. 시간당 15$ 여기서 제가 생활했던 거 애기하면 부러울걸여? 요약하면, 집 2층짜리 렌트해서 (물론 가전기기 일체 내 꺼!) 방 하나 세주고 오전엔 공항에서 일하고 오후엔 낚시하고 밤엔 나이트! 좋~~~았는데,

글다가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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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nes water에서의 팜스테이는 한가롭기만 한 날들이었다. 아침 8시경에 식사를 하고 정원의 갖가지 수목들에 물을 주고 가끔 잡초제거와 화분갈이를 하며 비료들도 주고 말이야. 어떤 책에선가 그런 식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침을 시작한다는 누구의 글이 있던데  이 시간은 그런 시간이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 것들과의 대화 수목들에 비료를 주며 그 매케한 냄새를 수목과 화초들이 좋아하는 냄새라고 생각을 해 본다. 나 또한 싫어할 이유가 없는 냄새들.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화분들과 수목들 사이를 걷노라면 젖어드는 평화로움. 아침 햇살은 내 주위를 맴돌고 지애는 그 한 가운데서 미소를 짓는다. 이름모를 동물들이 간혹 나타나 정적을 깨우긴 하지만 그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기 할 일을 잊은 듯 멀뚱거리다가 이내 알았다는 듯 사리지는 존재들. 가끔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곤 하며 나도 grocery의 식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점심나절이면 독일인 부부와 알젠티나 걸과 함깨 앉아 자유를 애기하고 평화를 말한다. 그들은 vegitarian이어서 음식들 모두가 가공되지 않은 것들이고 대지에서 자라난 것들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져 버린 음식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린 옷가지와 베낭을 메고 그 곳을 빠져 나온다. 도로까지 재잘 거리면서 나와 지나는 차들을 무작정 기다린다. 행여나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가는 차를 말이다. 30분, 1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털털 거리는 꽤 오래된 차가 저 만치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나는 베낭을 흔들고 왜 이제 오느냐며 요란을 떤다. 포장되지 않은 곳이라 뽀얀 먼지를 휘날리며 내 앞에 멈취서는 자들. 때론 짚차일 때도 있고 트럭일 때도 있고 벤일 때도 있다.
아무렴 어떠랴.


오늘은 어디로 갈까나. 그래. 그 독일인 부부가 애기한
4miles beach를 가보자.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Town of 1770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쿠크 선장이 퀸즐랜드 땅에 처음 도착한 곳. 1770년. 그래서 그 곳이 Town of 1770. 호주인들은 과거를 사랑하고 현재를 기뻐하는 존재들 같다. 여느 나라처럼 미래, 발전, 진취적이라는 이름으로 무모하게 자연을 파괴하며 도시를 건설하고 국민을 다그치지 않는다. 하늘이 내려준 자연의 축복일까? 짧은 그들의 역사속에 이뤄진 국민성일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와 달리 역사적인 질곡이 적은 나라. 어쩜 그런 그들의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형성하는 것인지, 독일인 부부는 4마일즈 비치가 너무 아름답다며  이른 아침에나 한 낮의 한적함속에는 수영복도 안 입고 누드로 활보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도를 보여주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고 우린 그 곳으로 가고 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에서 내렸다.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허전한 정적속에서 일순 당황함. 그래두 브로셔에서 보면 많은 관광객들이 웃고 떠드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그림같은 집들과 띠엄 띠엄 있는 가게들, 그리고 관광객이 끌고 온 듯한 몇 대의 차들. 어느 관광객에게 물어보니 4마일즈 비치는 저 안 쪽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단다. 우린 다시 히치를 하고 들어갔다


보인다. 굴곡진 바위뒤로 아스라이 트인 해변가가 말이다. 하~! 저 위에 보이는 언덕바지에서 보면 어쩜 다 보일지도 모르겠다. 더 걸어 올라가 보자. 길 가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 주택들. 이런 곳에서 살면 심심할까? 아님 재미있을까? 도시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조금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다. 언덕위에서 바라본 해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정말 독일인 부부말처럼 누드로 해변을걸어다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 파도만이 움직이고 모래알만이 반짝이는 곳이었다. 바람은 한 없이 부드러웠다. 이렇게 편안한 하루를 그 곳에서 보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발 자욱을 남겨본다. 지애는 내 이름과 지애의 이름을 모래사장에 적어보기도 한다. 발아래 찰랑 거리는 바닷물에 젖어보며 해변을 하염없이 걸어보기도 한다 히치 하이크를 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밤이면 매서운 찬 바람이 들어와 덜덜 떨었다. 오죽하면 백열 전구를 끌어안고 잤겠는가. 이제 이 곳에도 차가운 바람이 온 대지에 스며들고 있엇다. 그런 모진? 밤을 보내구 아침나절의 따스한 햇살이 반작이는 들판으로 나가면  새로운 세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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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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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하염없이 호주의 도시를 떠 간다. 이대로 계속 달리면 어디로 갈까. 어둠이 창가를 스치기 시작한다. 창밖을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창밖만 내다 본다. 가끔 뜬금없이 바보같은 짓을 할 때가 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지금에도 말이다. 그럴 때 혼자말을 한다. 너 바보 아냐? 그리곤, 씨~익 하고 웃어 버린다. 어릴 때 염세관에 빠진 적이 있다. 글쎄, 그 것이 정말 염세주의라 말할 수 있는 건지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염세관이었고 허무주의였다. 오랜 만에 펴든 일기장에 이런 글이 보인다.

"비관론자는 낙관론에 비관하는 게 아닌 비관론에 낙관하는 자이다"

다시 써퍼스에서 버스를 타고 간 곳은  Milliam vale. 지애의 말로는 독일인 가정이라고 했다. 내가 우프회원이 아니라고 하자 별일 없을 거라고 일단 오라고 했는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쯤 그 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지애 야마다. 처음 만났을 때 한국이름과 비슷하다고 했더니 무엇이 좋은지 활짝 웃던
동그랗던 눈이 생각난다. 번디에서 첫 날. 여자가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을 하고서는 마치 전투에서 돌아온 군인처럼 자랑스럽게 애기하던, 그 때까지도 일본인은 돈이 많아서 그런 곳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더군다나 여자는 더욱 말이다. 그래서 더욱 연약할 것 같던 일본 아가씨. 마나미로 인해 일본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면 지애는 일본도 한국의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게 되었다. 친구가 말이야. 얼마를 갔을까? 차 타기전에 물었던 밀리엄 베일에 왔는지 운전기사분이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는다. 다 왔냐고 묻자 다 왔단다. 외국 관광객을 많이 태워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올라타고 차가 출발할 무렵, 불안한 마음에 이 차 밀리엄 베일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안 간다고 차 잘못 잡았다고 너스레를 떨던 넉살좋은 그의 미소를 뒤로 하고 차를 내렸다. 저 만치 전화 부스가 보인다. 수화기를 들면서 뿌듯한 마음은 무언지, 내 이름은 쟈니... 우핑...지애... 잠시 후 지애가 받는다. 이제 30분뒤면 만나겠군.

하늘아래 이 곳만 있는 걸까. 셀프 주유기가 몇 대있는 작은 주유소. 한 편에 덩그러니 놓여진 전화 부스. 그리고 편의점에서 졸고 있는 아가씨. 언제 봐도 모래알 처럼 수없이 반짝이던 별들. 저 중 하나가 이 곳으로 떨어지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며 너털 웃음 짓던 남반구의 밤하늘. 이런 곳에서 담배 한 개비를 핀다면 좀 멋있게 보일테지. 영화의 한 장면같이 말이야. 관객은 없더라도 말이야. 베낭 한 켠에 짱박아 둔 Malboro를 말아본다. 40센트에 50개비의 담배를 말 수 있는 담배 종이와 1달러가 조금 넘는 새하얀 필터들. 그리고 14$가량하는 말보로 빨간 딱지. 영어 단어 연습할 때 혀 굴린답시고 Marlboro 와 Clean을 지껄이곤 했다. 말보로는 이후 케언즈 공항의 면세점에서 근무하며 마일드 세븐(88이 없다)에 자리를 내어주기전 까진 나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늘 옆에서 불살라 준 충실한 동행이었다. 어느새 익숙해져 손가락 끝에서 몇 번 비틀리고 마무리로 입술을 대면 한 까치의 말보로가 수줍은 듯 손가락사이에서 맴돈다. 그렇게 몇 까치를 더 말았을 때 저 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친다. 베낭과 작은 가방, 그리고 롤러 블레이드를 챙긴다. 이 놈의 롤러 블레이드를 팔아 버리는 건데 중얼 거린다. 지애가 뛰어 나온다.


그의 집은 Grocery다. 우리가 하는 일 또한 Watering이라고 하는 화초에 물뿌리기. 그리고 Weeding. 오전만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우핑이었다. 그의 집은 우프에 가입되어 있는 농가였기에 우퍼들을 위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 날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나를 위해 그 들은 음식을 준비해 줬고 그들의 따듯한 배려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우핑회원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말을 했고 그들의 잠깐 멈칫하는 표정. 이내 왜 우핑회원을 받는 지에 대한 이유. 그 것은 만약의 사고시 우핑회원 가입시 자동으로 가입되는 의료 보험 때문이라고 말 한다. 어떤 우핑 경험자들의 말을 들으면 매일 아침 말의 분뇨를 치고 건물 짓고 고생만 하다가 돌아온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편한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 부분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말이다. 다행이 나는 농장주를 잘 만났다고 해야 할까? 그 곳에서 일 주일간 호주의 전원을 만끽하고 떠난다. 그 곳에는 이미 알젠티나의 19살 된 아가씨가 우핑을 먼저 하고 있었다. 그 녀는 몇 개월전에 이 곳에서 우핑을 하다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왔단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란다. 그 녀는 집 본채 바깥에 있는 캐러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도 다른 국민성을 갖고 있지만 어딘가 비슷한 점은 존재하지만 알젠티나와 이 쪽은 틀린 점이 너무 많은 건 같다. 그 곳에 있는 동안 식사 시간후 약 30여분간 여러 가지의 주제를 놓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지곤 했다. 각 국가간의 생활상이라든가 국민성을 약간이나마 엿 볼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부족한 어휘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지만 귀기울여 주었기에 나의 어학실력도 많이 늘었다. 난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든 베낭여행객이든 우핑을 권하고 싶다. 비록 일 주일이었지만 3주 이상 한 곳에서 있는다면 어학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 곳의 민영방송중 하나인 sbs에서는 호주에 온 여러 민족들을 위해서 각 국의 영화를 틀어주기도 했는데 한국영화를 할 때면 한국영화한다고 다 같이 모여 보기도 하며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기도 하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반전 주의자였고 평화주의자였다. 마치 존 레넌의 Imagine 처럼 말이다.


참 그 곳에서의 당혹스런 기억 한 토막.

언젠가 식탁에서 각국의 음식에 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애기가 나와서 나는 나대로, 지애는 지애대로 애기 하다가 지애가 내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며 부추기는 바람에 다음 날 저녁은 내가 준비하기로 되었다.나는 내가 만드는 것은 한국요리도 아니고 단지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이라며, 양념들이 없기에 별루라고 애써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은 한국음식을 맛 보고 싶다고 극구 청하는 것이었다. 이런,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고추장을 이용해서 이 것 저 것 야채와 함께 만들었지만, 훗! 지애나 좋아할까. 만들면서 풍기는 고추장내에 눈살을 찌푸리던 그 알젠티나 아가씨는 다 만들어진 그 것을 한 숟갈 뜨고는 못먹을 것을 먹은 것 처럼 솓가락을 내려 놓을 때의 그 무안함. 나는 그렇다 쳐도 추천한 지애는 어떤 기분일까. 어쨌든 그 날은 그 알젠티나 걸에게 서운한 정도를 넘어서는 기분을 갖고 있었다. 독일인 부부는 성의를 생각해서 인지 끝까지 한 그릇을 비웠는데 그 것도 곤욕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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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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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터벅 터벅 걸어온다.
엄습하는 외로움. 호주에 첫 발을 내 디딜을 때만해도 안 그랬는데,
번다버그로 출발하더 그 날, 터미널을 찾으면서 이랬을까.
하비에이 터미널은 무척 넓다.
저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너무나도 한적한 빈 터들.
하지만 난 움직여야 했다. 난 서퍼스로 가야 했고 그곳에서
잡을 구해야 했기에 말이다.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고
내일 이곳을 떠난 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했다.
우선 경찰서에 가서 분실 신고를 하고 접수증을 받아야겠지.
이미 해는 저물고 있었다. 깔리는 어둠으로 더욱 혼자임을 느끼던
그 곳에서 경찰서 찾기를 30여분. 다행히 경찰서는 Olympus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 경찰서 간판을 보고
들어섰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경찰서 업무가 끝났나?
경찰서도 문을 닫나 싶었지만 리셉션으로 보이는 곳은 불만 켜 있고
경찰관은 없었다. 유리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설마 경찰서가 문을
닫으랴 해서 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excuse me" "Nobody there"를 연발하며 말이다.
내일이면 이 곳을 떠야할 텐데 촉박했다. 얼마를 흔들었는지 모른다. 저 귀퉁이에서 느릿 느릿 경찰관이 걸어 나온다.
반가운 마음이었고 그는 의아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되는대로 프레이저에서 카메라를 잃어 버렸고 보험에 들었기
때문에 경찰관의 접수증이 증거로 필요하다고 애기를 했다.
다급하니까 말이 어떻게든 나온다. 물론 문법같은 것을 따지며 하는
그런 대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가 알아 듣고 있다는 것이 어딘가. 영어는 많은 경험을 쌓으며 늘어나는 것 같다. 그는 차분히 들어주고 나의 말을 확인한 후 나의 여권을 보았고 접수증을 써 주었다.
그 곳에는 그의 이름과 소속.그리고 접수번호등이 적혀 있었다
한국의 경찰과는 다른 느낌. 마치 어떤 가게에 손님으로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친절했다면 억지일까?

올림푸스로 돌아왔다. 잠시 누웠다가 베란다로 나가 담배 한 가치를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서퍼스 파라다이스. 지금은 비수기라는데 과연 일자리가 있을까? 지금도 지애는 버스를 타고 있겠지?
락 햄프턴이라,..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번디의 친구들은
잘 있을까? 머리속에서 들고 일어나는 상념의 가지들. 나는 한 끼의
식사를 준비했고 그 것들을 먹어야 했다. 때론 먹는 게 얼마나 사람을 구속시키는 건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이 건 물론 그런 적이
있었다는 과거형이다. 대과거형으로 쓰고 싶다). 정말 미워했던
부류중에 한 사람이 취미가 식도락이라는 사람들이었다. 먹는다는 것, 잔다는 것,이런 기본 적인 것들에 회의를 품어본 사람은 알리라.
내 기분을, 침대위에는 짐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었고 지애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얄미워 보이는 밤이다. 그 날 덴마크에 입양된 한국인을
만났다. 그리고 재일교포도 보구, 덴마크 여성은 나에게
자기의 이름을 한글로 써 보이며 어떻게 읽는지 물어봤고
 한문으로는 어떻게 쓰는 지도 물어보았다. 나는 한글만으로 정확한
한문을 알 수는 없다고 말하자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자기의이름이 한국에서 어떻게 불리는 줄 알아서 기쁘다고
했다. 그 날 잠을 어찌 잤는 지 모르겠다. 대충 잤겠지.
다음 날 올림푸스 밴을 타고 터미널로 왔고 서퍼스 표를 한 장 끊었다. 내내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돌아다녀야 하는 걸까?
인생이 참 뭐 이따위냐. 젠장.
그래, 여행이라 생각하자. 그냥 서퍼스도 갔다 왔다고 말하면 되지 머,
여행이 별거냐. 푸~! 제길. 도대체 버스를 몇 시간을 타는 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4시간만 버스를 타도 빨리 내리고 싶었는데,
이제 그 정도는 우스울 것 같았다.

서퍼스에 대한 기억이 적다. 서퍼스를 띠엄 띠엄 봐서 그런가 보다.
4일간의 체류기간이 짧다면 짧을 수도 있겠지만 가슴에 와 닿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단 한 시간의 기억가지고도 책 한권을 쓸 수 있다고 행각을 한다. 아마 서퍼스에 대한 강한 인상이 남지 않아서 인가보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도시. 기억에 남는 대로 끄적거려 본다.
터미널엔 써퍼스에 있는 백팩의 직통전화가(무료) 있어서 이 곳 저 곳에 전화를 걸어 가장 싼 곳을 택했다.
너무 멀어도 안 되기에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저렴한 곳을 찾았다. 단 1불의 차이었지만
아직까지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방을 구하고
시내를 돌아다녀 본다. 써퍼스 파라다이스. 써퍼들의 천국.
그래 바닷가가 좋다. 파도가 써핑하기에 알맞게  치고 그 위로 써핑을 즐기는 사람들. 서핑을 즐긴다. 일자리를 찾는다. 하 하 하!
아침 나절부터 일어나서 가장 번화가인 Orchid av.를 거닐며
일거리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은 비수기라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답변만을 들으면서 공치면 바닷가로 나가 미팅에서
바람맞은 사람 심정으로(사실 이 기분은 모르지만 짐작에, 아니
실연당한 기분으로, 이 건 당해봐서 안다.) 바닷바람을 맞곤 했다.
바다에 잠겨서 즐거워 웃고 마냥 떠드는 사람들. 번디에서 떠나기
얼마 전 써퍼스에서 올라 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가 써퍼스로
간다고 하자 극구 말렸었다. 그는 써퍼스에서 같은 백팩을 쓰던
외국인과 친해져서 그 외국인이 일자리도 알아주고 외국인이 떠날 때는 자기가 갖고 있던 써핑보드를 주고 가서 해변에서 써핑보드를 타곤
했다던 부러운 기억의 소지자였다. 그의 우려를 뒤로 하고 이 곳에
왔는데 푸하~! 참. 당시 난 프레이저에서 얻은 발바닥 상처 때문에
바닷물도 아닌 모래사장 근처에서만 맴돌며 그 것들을 보고 있었다.
참. Surfer's paradise라는데, 이 곳까지 와서 모래사장에도
못들어가고 바닷물근처에도 못 간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그렇게 이틀간을 보내며 밤에는 일본인이나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들은 저녁이면 나이트에 가서 흠씬 놀다오곤
했는데 나갈 때는 분명 혼자인데 아침에 일어나면 둘이 누워있곤 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그런 거 신경쓸 것이 있겠는가. 써퍼스는
부르조아들의 천국이었다. 거리에는 세계 유명 브랜드의 식당과
상품점들. 그리고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들. 일본인만을 위한
편의점이 있다. 쩝! 그런데 이상한 건 그 곳 거리는 무척 좁다는 사실. 그 건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그 곳은 남부에서 브리스베인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인데도 불구하고 길은 편도 2차선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 번은 일본의 스모선수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의상으로 서퍼스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가끔 호텔에서 일본 스모선수들을
초대해서 스모를 소개하는 것 같았다. 서퍼스가 일본의 자본에 의해서 발전한 것인만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케언즈가 일본의
자본에 의해서 키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의
좀 이름있는 섬들은 일본인 것이다. 세상에 그게 다 부러울 때도
있던데 사람 마음처럼 오락가락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 사업가들이 해외에 땅을 사두면
그렇게 욕을 하고 그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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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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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날 8시경, 지애의 성화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준비를 하고 나니 밖에서 투어를 가는 다른 여행객들과 투어에 사용되는 짚차들로 웅성거렸다. 각 짚차별로 배정을 받고 여러 도구 -식기류나 기타 잡다한 것들-들과 연료까가지도 할당 받는다. 이런 모든 것들에는 bond라고 하는 보증금이 붙어 있어서 분실하게 되면 bond를 못받게 된다. 운전하는 호주인은 나이가 21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는지, 그 호주인은 무척 활달하고 농담을 잘 해서 투어 내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캐나다에서 뉴질랜드에서 세계 여기 저기에서 온 젊은이들이 Toyota 짚차속에 앉아 있다. 누가 머랄 것도 없이 각자 소개를 하고 보니 나는 나이가 많은 편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는 내 나이를 무지 어리게 본다. 정말 무지하게 말이다. 케언즈에서는 미성년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카드를 만들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게 아마 18세 이상임을 증명하는 것일게다. 17센가? 큭! 어쨌든 2박 3일간의 프레이저 투어는 시작이 됐다. 거금 90$이 투자된 호주 최초의 투어였으니 그 만큼의 기대는 당연하지 않을까? 운전하는 호주인은 연신 Pasta!를 중얼거리고 있었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까지도 나의 영어에 반신반의 하던 터라 으레 하는 애기들.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현재 몇 개월 체류중이고 번다버그에서 올라왔다. 앞으로 어디로 갈 거다. 너 거기 가 봤냐? 어떻냐? 너는 어디서 왔냐? 호주는 얼마동안 있었냐?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등, 이런 애기가 끝나고 보면 정말 어려워진다. 그 때분터는 머리에 열나기 시작한다. 후훗! 지애는 나보다 영어를 잘 했는데 그 건 이미 나 보다 10개월 가까이를 더 호주에서 체류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호주를 돈 것 같았다. 퍼스, 멜버른 등, 멜버른은 참 좋았다고 한다. 그 곳에선 퍼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말이다.

Toyota는 하비베이의 외곽지역을 돌아 선착장에 도착했다. 영화속에서 보는 그런 길이다. 프레이저까지 가기까지의 길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선착장에는 프레이저로 가는 정기선으로 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승선이 시작되어 우리는 선내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 바람이 세차게 지애의 머리를 날린다. 바다가 좋다.
산을 오른뒤의 해방감을 들어 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다는 언제든지 가슴을 열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좋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바다가 좋을 뿐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프레이저로 가는 걸까. 선착장에 도열해 있던 수많은 차가 배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배는 고동을 울리며 출발을 알렸다. 움직인다. 아주 천천히, 바다에 끌려가길 30여분. 저 만치 프레이저가 보인다. 울창한 수풀로 우거진 섬이 보인다.길게 쭉 뻗쳐 내린 섬이 곱게도 생겼다. 검푸른 바다위로 파도가 물줄기를 휘감는 곳. 우리는 2층과 아래층을 돌아다녔다. 2층에는 각종 기념품과 간단한 음식류를 팔고 있었고 사람들은 갑판에 나와 끊임없이 주절 거리고 있었다. 순간 불어온 강풍이 내 모자를 날린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지금도 어디론가 떠 내려 가고 있을까.

프레이저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신호에 따라 차에 탑승을 하고 배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프레이저의 수풀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덜컹거리는 진동과 함께 우리도 환호성을 질렀다. 열대림을 지나며 보이는 건 어느새 해변으로 나온 Toyota. 호주인은 나에게 운전을 해 보겠냐구 물었다. 닌 해변가를 달리며 소리를 지르며 어떤 열기에 휘감겨 차를 몰았다. 뒤 따르며 앞서가는 Toyota사이로 해변가의 바닷물이 솟구친다. 그렇게 한 참을 달려 우리는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은 공원과도 같이 조성된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프레이저 기념품 가게에서 이 것 저 것을 구경하며 호주에서 처음 갖는 투어를 만끽했다. 다시 출발해서 다다른 어느 호숫가! 에메랄드 빛이 이런 걸 보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한없이 빠져 들 것만 같은 호수의 맑은 물결이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함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이 되어 우리는 야영지를 찾았고 그 곳에서 텐트를 치고 나무를 모아서 불을 부쳤다.

바비큐를 하고 한 쪽에선 각자 준비해 온 식사와 술을 꺼내 들었다. 말도 쉬이 통하지 않는 그 곳에서 그렇게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여행은 마술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를 잊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를 떠난다는 것. 내 모습을 잊는 것. 어쩜 그 것이 자기의 본 모습인지도 모른다. 밤늦게까지 떠들고 놀았다. 바닷가를 걸었고 하늘의 별을 셌으며 야영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하! 그런데 그 곳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릴 줄이야, 나는 지나온 휴게소에서 놓고 온 것을 알고 호주인에게 다시 가 보자고 했고 그는 흔쾌히 같이 가 주었지만 카메라를 찾진 못했다. 혹시나 여느 책에서 보았던 서양에서의 분실물 습득애기가 떠 올라 가게 곳곳에 물어봤지만 허사였다. 난 여행자 보험을 떠 올리며 아마 분실물 보험도 들지 않았나 싶어 다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프레이저에서 내가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커다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말이다. 다른 베낭객들에게 들은 대로 하비베이에 돌아와서 경찰서에 가서 분실신고와  함께 신고증을 받는다.그 게 또 가관이었다. 푸~! 이 건 다음 편에 애기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다시 섬을 돌기 시작했다.이른 아침의 기운은 서늘한 바닷바람으로 몸을 움츠리게 했고 점심때는 뜨거운 햇살이 바다에  빠져 들게 했다. 우리는 교대로 차를 몰았고 Toyota에 몸을 맡기며 프레이저를 즐겼다. 섬전체가 거대한 모래섬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운 모랫살이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저만치에 언젠가 낮선 호주에 내려 절망을 간직한 체 사라져 갔을 이름 모를 선원들을 태웠던 난파선이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난파선. 난파선. 가야 할 목적지를 잃은체  낮선 곳에 결국 순응하고 마는 난파선.

우리는  또 다른 호수에 도착했다. 이미 친해진 다른 친구들과 호수에서 물장난을 치며 서로 물을 먹이기도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나를 빠트리려 쫓아오는 그들을 피해 달아나기도 하며 흥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프레이저에서 제일 큰 호수로 관능적인 모래  언덕위로 태양의 뜨거운 입김이 작렬한다. 가는 모래알들처럼 많은 우리의 기억들은 어디에서 반짝이고 있을까.
 
아쉬울 수밖에 없던 그 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 우린 하비베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이제 록 햄프턴으로 가는 지애와 아쉬운 헤어짐의 시간. 말없이 얼굴만 본다. 때론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할 때가 있다. 그저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었다. 지애는 나에게도 북으로 가자고 했지만 난 서퍼스에 가야했다. 서퍼스에서 안 된다면 너에게 가겠다고 했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넓은 곳에서. 그리고 지애는 갔다. 차창너머로 지애의 눈물이 보인다.

프레이저는 유엔에서 정한 세계문화유산중의 하나이다. 거대한 모래섬. 고운 모래알과 태양이 어울리며 바다를 향해 다가갈 수 없는 연민을 부르듯 한 없이 아름다운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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