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모든 걸 지영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정희와 난 지영을 쫓아 다녔고
그렇게 해서 비자에 입국도장을 찍고 시드니 공항내부로 들어섰다.
정희는 pick up 서비스를 신청한 상태라 워킹 홀리데이 협회에서
나온 사람을 찾고 있었고 나는 지영에게 우리도 그 사람에게
한 번 부탁해 보자는 애기를 했다. 하지만 웬 걸,
내 또래의 남자는 내가 웃으며 애길 꺼냈을 때 한국에서 신청한
사람들만 태운다는 차가운 대답만 들어야 했다.
어짜피 pick up서비스를 신청할 땐 약 5만원 가량의 돈을
한국의 워킹 홀리데이 협회에 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으니
머 할 말은 없었다.
그래, 이제 모든 건 나 혼자 해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에게 의존하려 하지 말자. " 다시금 머리를 흔들고
있을때 지영은 두리 하우스로 가자는 애기를 꺼냈다.
" 두리 하우스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잖아요.
책에서 보니까 주인도 한국사람이고 하니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쪽으로 우선 가보죠"
공항을 나서자 밀려드는 더위와 피곤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가자고 정희에게 말했다. 택시 기사는 우리의 베낭을
직접 트렁크에 실어줬고 난 생소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사람이 마음이 약해지면 감동도 쉽게 받나 보다.

두리 하우스에 도착하고 보니 요금은 약 23불 정도.
팁을 합해서 25불을 지급했다. 당시 환율이 호주 1$당 800원정도.
약 2만원 가량의 요금이었다. 그 곳은 책자에서 말하는
남반구 최대의 환락지구라는 킹스크로스에 위치한 곳이었다.
두리 하우스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2층의 카운터에서
지영의 유창한 영어 (난 지영이가 미국에서 살다 오지 않았는가
의심스러웠다)로 남미 쪽의 청년에게 일 주일간 방세 95$을 내고
나는 2층의 도미토리에 침대 한 칸을 얻었다. 침대가 6개가
놓여 있는 그 곳은 마침 홀랜드인 3명이 있었다. 나는 짐을 정리했고
영어 사전과 영어 회화 책인 interchange를 꺼내는 걸 잊지 않았다.
창 밖을 보며 담 배 한개비를 물었다. 호주 안내 책자를 들척이며
이 곳에 대해 외우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 산 뒤로
한 번도 들척이지 않던 책. 정말 그렇게도 무관심할 수가 잇었는 지,
저녁 무렵의 시드니는 한국의 초가을과 같은 날씨였고
그 것은 날 더욱 힘들게 했다. 어쩜 이 글을 보는 어떤 이는
내가 심약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그 심정들이 나 개인의 소심함에서 비롯된다
할 지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최소한 나보다는
준비를 착실히 해가는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이다.

지영이 머무르게 된 곳은 여자들만 쓰는
싱글베드 2개. 2층침대가 하나 있는 계단 옆의 방이었다.
그 곳에 찾아 갔을 때 그 곳에는 일본 여자가 있었고
그녀의 이름은 마나미란 걸 알게 되었다. 여자치고는
큰 키에 일본인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나미와 간단한 인사
-결국은 Hello와 Where are U from정도-를 했고
정희와 난 근처의 woolwolthy라는 대형 수퍼마켓에 가서
저녁부터 해결을 해야 했다. 지금은 한국도 대형 슈퍼 체인의
형태가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신기하기만 한 그 곳 -제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계산대에서도 바코드로 인식하는-에서
라면중 제일 싼 saving 상표가 붙은 라면을 4개와 쌀 1kg을 샀다.
수퍼를 나오며 영수증을 꼭꼭 챙기던 정희는,
" 우리는 호주 국민이 아니라 세금을 낼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제품에는 다 세금이 붙어 있는데 귀국 할 때 세금을
환불 받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나는 지영에게 내 영수증을 같이 주며 웃음을 지었다.

킹스크로스는 밤이 되면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갈때 들리는 한국말과 일본말,
그 건 나이트 클럽에서 호객하는 소리였다.
그들은 우리가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말로 했다가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다시 한국말로 호객하는 것이다.
네온사인과 형형색색의 불빛들, adult shop, 그리고 PUB들,
우린 백패커스로 돌아왔고 저녁을 각자 해결했다.
방 한쪽에 창문으로 통하는 곳에 샤워실이 있었고 그 곳에는
전기오븐이 있었다. 코일이 감겨있어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으면
코일이 가열되는 방식의 오븐. 한 쪽 싱크대엔 식기류가
아무렇게나 팽개쳐 있었다. 그 것들은 공용이었다.
saving라면을 먹으며 생각한 것은 한 끼를 해결했다는 것!
영어를 공부한 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우선 의사 소통이나
하자는 뜻으로 책자를 들척이다 지영에게 찾아 갔을 때
지영은 마나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나미는
그 곳에 온지 3개월이 되었고 그 뒤로도 만난 다른 일본인과는
다르게 영어를 잘 하는 편이었다. 항상 누구에게나 웃는 표정을
지어주었고 상냥해서 백패커스에서는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한국인이 나, 정희외에 3층에 1명이 있었는데
그는 백패커스 청소를 해주며 숙박비를 면제 받고 있었다.
나는 지영과 우선 내일은 워킹 홀리데이 협회를 찾아 가기로 했다.
당장은 그 곳 밖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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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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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03 정권시절 호주 그리고 캐나다와 협정을 맺어
젊은이들끼리 상호 자유롭게 ? 방문하여
문화교류를 하자는 뜻에서 맺어진 협정이지요.
처음에는 영연방에 한하여 가능했지만 점차 확대되어
나갔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한국만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 일 양국간의 협정을 맺어서 일본도 갈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dear Japan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97년 3월 14일 출국하여 그 해 일 년을 못 채우고
IMF구제금융을 받던 12월 그 것도 24일에 입국하였죠.
당시 호주에서는 한국의 경제상황에 많은 관심을 보였거든요.
한국은 호주의 두 번째 무역 상대국이었으니 당연할 지도 모르죠.
첫 째요? 일본이죠. 전 그 때 공항 면세점에서 part timer로
근무하면서 고생쫑 행복쨍을 누리고 있었는데 고 놈의 IMF가
절 부르더군요. 비장한 마음으로(정말 비장했음)
일찍 들어가 보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으로 귀국을 했는데...
이 후 정말 실감나는 IMF한파를 겪었죠.
아니 겪고 있죠.  여러분 처럼요.

이 곳에선 제가 경험한 10여개월의 호주 생활들을
정리해 보렵니다. 얼마전 TV에서 보니 그 날강도 같은
워킹홀리데이 협회가 엄청 컸드라구요.
근무하는 사람들이 몇 십명단위로 말이죠.
제가 갈 때만 해도 4명인가, 5명인가 그랬거든요.
누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나 캐나다 가는데 협회에 등록해서
간다고 하면 도시락 싸가면서 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더덩넘들같으니,....흠, 어쨌든 앞으로 올라올 내용들은
비록 제 개인적인 내용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틈나는 대로 올릴께요.
우선 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기 그 처음으로
제가 들어간 비용을 어느정도 정리해 봤습니다.


워킹홀리데이협회가맹비(수속관련 일체 포함)

비자및 기타

출국시 소지금액

약 110만원

약10만원

약80만원


워킹홀리데이 협회 가맹비에는 싱가폴 항공 1년오픈 티켓
당시 80만원인가 85만원정도에 협회에서 끊었다고 하더군요.
헐,..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지만, 그러니까
약 200만원 들어갔군요.
히휴~~ 내 돈. 제 기억에 근거한 대략 산출입니다.
정말 저는 피같은 돈 다 끌어 모아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귀국할 때 가지고 온 것 빼면 쌤쌤이네요. 쌤쌤??
후훗! 똑같다는 콩글리쉬 아시죠? 그런데 외국인들도 잘만 알아듣더군요.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시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연재되는 글들을 지켜 봐주세요.


wrt xeus 01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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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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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최대의 환락가인 킹스크로스 입구에 서 있는 코라콜라 입간판.
아...저 코크 한잔을 호주에서 8개월만에 마셨다.

번다버그를 떠나면서 친하게 지낸 친구들과 함께. 지금 어디에 있을까. 너무 아쉽다.

당시 케언즈까지 가면서 이용하였던 티켓. 나라가 커서인지 이런 종류의 티켓이 많다.

번다버그 시내. 참...아름다운 곳이다. 외국이라서 그런가? ㅋ

오픈워터 라이센스를 따고 기념으로!

에어리비치에 있는 상어기념관. 뭐 그다지 볼 것은 없지만,

아그네스워터 주변의 누드비치. 쩝. 정말 아무도 없어서 누드로 다녀도 될 듯 하다라는 의미에서의 누드비치?

캐나다에 있던 마나미가 보내준 사진. 어디있는 거니?

에어리비치의 어느 백패커스

1주일 우핑을 했던 독일인 가정.

보웬. 벽이란 벽에는 이렇게 벽화가 모두~

케언즈 공항 면세점에서 일하면서!


참 시간이 찰라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자세한 경험담은 http://someday.dreamwiz.com 한 때는 유명했던 곳이랍니다. ^^;
헉...홈페이지 서비스 종료. 아~~ 도대체 몇 번째인지 원.
서비스 종료하면 또 옮겨야 하는거야? 참. 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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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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