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교육은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지금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지, 인성교육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 어린데, 아직 모를 수도 있지 뭐 이런 저런 생각들과 함께 교차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들도 여전하다.


오랫만에 본 박일준씨. 어릴때 참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목소리는 여전하다. 현재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 그의 아들은 그의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도움을 준다. 어떻게 보면 부자지간의 화목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박일준씨의 걱정이 그 것이다.  아들의 독립을 원하는 박일준씨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는 

독립이 어렵다는 아들.  부모세대처럼 일자리가 많은 것도 그리고 안정적인 것도 아니라는 

아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젊은이의 목소리다.



mbc스페셜 부모독립프로젝트.

어쩌면 아이들 독립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독립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벌어서 아이들 뒷바라지 해주고 난 다음에 노후보장이 되지 않은 부모들을 적지 않다.

도로위를 힘겹게 폐지가 가득한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부부에서부터 가끔 신문에 보이는

고독사하는 사람들. 나까지만 해도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어쩌면 내 아이들은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지도 모른다. 아니 자유로울 거 같다. 

지금도 부모를 모시지 않고 사는 자식들이 많고 자식들은 부모보다는 본인의 자식에

신경을 쓰는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지도 모른다.


부모의 노후를 자식에게 맡기던 전통이 비단 유교사상에서만 나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농경시대이후 자리잡은 오랜 전통문화이겠지만 3백년 남짓하는 자본주의가 변화를 

만들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는 지난 역사가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이니 말이다. 

나또한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살고 계시며 농사를 지으시고 

나는 서울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나의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것이 부모님의 뜻이기도 하시다. 물론 더 연로해 지신다면 상의를 해 보아야 할 

문제지만 말이다.


어느 할아버지 이야기다.  젊었을 때 나름 건실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5형제의 대학, 

결혼, 집까지 모두 마련해주었건만 자신을 노후를 생각해 주는 자식이 없다. 

소송끝에 자신의 노후자금을 준 딸에게서 돈을 얼마간 받았지만 그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아무리 자식들에게 퍼주더라도 

자신의 노후자금만은 남겨 놓으란다.


캥거루맘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부모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들.

한중일의 유교문화권에서는 이런 사회적인 추세도 닮아가는 거 같다. 캥거루세대들.

이미 일본에서는 1990년대부터 사회문제화가 되어 현재 일본의 캥거루족은 약 300만명으로 

지난 1990년 112만명, 2000년에는 159만명을 기록한 데 이어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전통문화가 점점 단절되며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에서 젊은이들이

점점 더 독립할 여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시대의 반영일까? 2,30대를 넘어 40대까지도 

확산되는 캥거루족들은 사회적 부담을 늘리고 결국 비혼,미혼자의 증가로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트리는 이 사회가 마주하고 당면과제가 되었다.


사회적인 대책마련을 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며 mbc스페셜 "부모독립프로젝트"가

보여주는 것도 그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캥거루족들과는 새삼 다른 제목이다.
결국 캥거루족들은 부모의 은퇴를 늦추고 
노후를 분안정하게 만들며 이로 인한 

건강한 사회의 불안요소가 된다. 청년들보다 더 많은 기성세대들이 일하는 사회. 

그 사회속에서 지금 현재의 부모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라고나 할까.


어느 가족은 학업을 중지하고 회사를 그만두며 세계일주를 계획한다. 세계일주를 하던 과정에서

가족간의 갈등은 소멸되며 서로가 더 의지하고 누군가 더 나서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제시하면 하나로 뭉치고 또 독립심을 길러간다. 지금 딸은 미용계로 진출해서 중국시장을

개척중이고 형제는 스타트업의 CEO로 활약중이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가정의 대화다. 자신이 어릴 때 모국에서 엄마에게 요리를 배웠던 것처럼

한국의 아이에게 요리를 가르쳐줄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칼을 이용할 때라고 한다. 엄마가 와서

조심하라, 칼 조심하라고 매 번 아이를 걱정하던 모습이 본인은 이채로웠단다. 생각해 보면

과도로 칼에 손이 베이면 얼마나 크게 베일 것이며 큰 사고가 날 까. 설사 베인다 하더라도 아이는

칼의 위험성을 알고 다음엔 더 조심하게 될 것이다. 실수를 하면서 배우는 아이들. 어쩌면 우리는

그 것을 조심성이라고 하면서 실수를 막으면서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어느 며느리의 글이었는데 본인은 시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하면서 몇 가지 일화를 적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인상적이다. 시골에는 방안에 난로가 있는데 아이들이 겨울에 추우니 가까이 가게 되고 

또 만직도 하는데 할머니는 가많이 둔다고 한다. 대신에 데일 것에 대비해서 약을 미리 준비하며

지켜본다고 한다. 처음에 겁먹으면서 호기심을 만질 때 살짝 다쳐봐야 불의 무서움을 알 것이고 

더 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강제하지도 않으면서 또 아이들의 

안전까지 대비하는 현명한 모습이 아닌가.



이제 막 수능을 마친 딸에게 부모는 독립을 말한다. 1년의 준비기간후 독립. 하지만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삶도 있는데

언제까지 너희들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단호함에 아이들도 일견 수긍하는 듯 하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하나 하나 아이를 보살피고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주는

부모. 그 것이 과연 옳은 모습일까. 자신의 노후는 어떻게 설계할 것인다.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고 보살피고 책임져 주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나 또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방향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아이의 길을 가는 것 아이 스스로이지 내가 아니다. 하지만 내 미래는

아이가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문제다. 언젠가 나의 손을 떠나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갈 아이들, 그리고 남은 나와 아내의 인생.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비단 캥거루족이 아니더라도 요즘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비슷한 거 같다. 나 조차도 아이들의

결혼식까지는 내가 책임져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에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국은 '낀 세대'라는 의미로 '트윅스터(Twixter)'라고 부르며, 캐나다는 직업을 구하러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에서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 일본에서는 '기생독신'이라고 합니다. 영국은 부모 퇴직연금을 축낸다는 뜻에서 '키퍼스'라고 하며 프랑스에서는 이를 '탕기 현상' 혹은 '탕기 세대'라고 부릅니다. 영국의 키퍼(Kipper(Kids in Parents Pocket), 이탈리아에서는 밤보시오니(Bamboccioni)큰아기라는뜻. 결혼이후에도 부모와 동거하는

신캥거루족, 독립해 살다가 다시 부모품으로 돌아오는 리터루족등이 있다. 


자본주의, 세계화의 어두운 단면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계층간 이동이 더욱 어려워지고 

부의 세습은 공고화되는 세상.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변화일 뿐이다. 그 변화를

충격을 최소화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 생각해 볼 현명한 자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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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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