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류라는 말은 아마도 오타니 쇼헤이때문에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1982년 해태 창단멤버로 입단하였으나 당시 14명으로 시작한 빈약한 선수진으로 인해 투타겸업을 하며
투수 10승에 타점왕까지 기록했던 김성한.
구원투수로 올라와서 동점만들고 마지막에 역전타를 때리기까지한 경험도 있었던 이도류다.
이러한 이도류생활은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이어진다.
하긴 당시 프로야구 투수들의 기록을 보면 지금과 비교하면 가히 혹사수준의 투수운용을 보여준다.
원년 다승왕인 박철순은 22승, 심지어 장명부는 30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투수는 선동렬"도 1986년에 24승을 했다. 정말 지금의 프로야구는 이들의 피와땀,
그리고 눈물이 점철되어 만들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당시 해태 1986년엔 타격3관왕을 두고 김성한, 김봉연, 한대화가 2경기 남겨두고 경쟁할 정도였다.
가희 해태왕조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재끼며 선수생활을 해태에서 시작하여 해태로 끝을 낸 해태 타이거즈맨이었다.
그리고 감독생활을 해태에서 시작하며 기아 타이거즈의 초대감독이기도 한 김성한.
그가 남긴 기록들은 굵직 굵직하다.
KBO 최초로 '시즌 30홈런', '20-20 클럽', '통산 1,000안타', '통산 2000루타', '통산 700득점' 등이 그 것들이다.
어쩌면 당시의 해태 타이거즈의 선수단은 다른 지역과는 다른 호남민의 염원을 담고 있었기에
그런 기록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그럴지 모르겠다. 그게 도대체 뭔데?
그 건 호남민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거다. 설명하기는 더 어려운거다.
1982년 창단한 해태 타이거즈는 1999년까지 5월18일 광주에서 홈경기를 한 번도 치르지 못했다.
프로야구를 탄생시킨 전두환 군사정권이 5월18일 광주 무등경기장에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5월18일 치른 11번의 원정 경기 중 해태는 호남 연고인 쌍방울에게만 2패했을 뿐 다른 팀과의 9번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해태가 5월18일은 어김 없이 광주에 없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5월18일은 한 번도 우리가 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수들의 마음이었죠.
5월18일의 패배는 우리 호남인들의 가슴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슬픔의 방’에 담긴 김성한 전 해태타이거즈 감독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어쨌거나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접기 위해 당시 실세였던 허삼수의 주도로
통행금지해제와 더불어 3S정책이 현실화된다. 12시 넘으면 바깥을 못다녓다. 실제상황이었다.
그렇게 심야극장이 나오고 나이트클럽이 활성화되고 불야성을 이룬다.
그런 시대였다.
다큐 인사이트 - KBS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 제5편 왕조] 1982년 각 지역 연고팀을 중심으로 한 프로야구 시대가 열리지만 끝까지 후원 대기업을 찾기 어려웠던 광주. 우여곡절 끝에 한 제과업체가 맡아
vod.kbs.co.kr
프로야구단 창설은 어찌되었거나 국민들의 꽉 막혔던 마음을 뻥 뚫어 주기는 한 것 같다.
지금까지도 당시의 해태 선수단 만큼 막강한 타선과 투수진을 보유했던 팀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4학년때 나는 광주의 수창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곳에서 진흥중학교를 졸업 하기까지 약 5년간 생활을 하면서 야구, 해태의 야구에 흠뻑 빠져버렸다.
1번 김일권부터 시작해서 김준환,김성한,김봉연,김종모,김무종,차영화,이상윤등.
그러고 보니 이종범조차 투수를 제외한 야구의 전 포지션을 경험해 보았으니
해태의 선수단이 참... 이 걸 뭐라고 애길 해야 할 지 참 빈곤한 선수층이었던 모양이다.
모기업인 해태가 돈이 없으니...
초등학교 시절 홈런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나오는 프로야구선수카드를 모아서
그 것으로 카드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서로 카드를 내 밀고 홈런이나 타율등이 더 세면 이기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카드들을 주머니속에 넣고 다니며 흐뭇해 했는데 말이다.
카드를 모으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아이스크림 살 돈이 없으면
그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뒤를 졸졸 쫓아가서 껍질을 버리면 거기에서 그 카드를 득템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가끔 프로야구를 보기는 한다. 해태에서 기아로 바뀌었지만 어릴 때 느꼈던 두근 거림같은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뭐 그냥 스트레스 해소꺼리라고나 할까? 그냥 오락꺼리 이상의 것은 아닌가 보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 인 건지 더 중요한 것이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들 어릴 때의 기억이고 추억이고 돌아보면 웃음 머금을 수 있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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