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왜 태국처럼 발전하지를 않는가, 이유가 무얼까? 과거의 경험이 있는 나라인데
왜 이리 발전이 더딜까. 날이 더워서 사람들은 게으르고 특히 남자들은 책임감이 없다. 뭐 그런거?
정치가 불안정한 것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정치는 생활이다.
최근의 마닐라는 마치 이명박 시절의 서울처럼 도처에서 공사판을 벌이고 있다.
건설경기가 작년 GDP를 끌어올렸다고 한다. 과거 대한민국처럼 성장판이 열린 것일까.
하지만 대한민국의 그 것과는 달리 모두가 잘 살고자 하는 노력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부자와 빈자의 길이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처럼 양단간에 경계해 있다고나 할까.
어쩜 과거의 한국보다는 지금의 한국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펌글을 참고해 보자.
필리핀의 정치변동과 정치과정, 정영국- 일부 발췌
-1972. 계엄령 선포 이전 필리핀 정치 구조는, 후원-수혜체제(patro n-client relation)를 기반으로 한
과두엘리트체제 : 거대가문 엘리트들이 지역주민들에게 소작제공, 영농자금대여 혼사 등을 통해
후원을 제공하고, 주민들을 선거에서 '지지투표'로 보답. 행정부와 관료는 과두엘리트가 지배하는
정당과 의회에 의해 통제
그러나 1960수입대체산업의 수형적 팽창의 한계와 농산물가격의 폭락으로 대지주들과 자본가들의
지속적이 후원이 약화됨. 그리하여 단기간의 유동적인 관계로 변모, '금권과 암살, 폭력(3g)에 의한
동원체제 대체...
-필리핀 정당 정치 특징
거대가문 출신 과두 엘리트들의 이익과 편의 중심으로 형성
전통적인 양대 정당은 민족주의당(np), 자유당(lp).
필리핀 정당정치는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나 사회적 갈등구조 반영못하고, 정당정치와
사회갈등 구조가 단층화된 관계에 놓임.
마르꼬스 시정에는, 필리핀 공산당의 무장게릴라 세력인 신인민구(npa) 급속 확산, 민다나오섬
일대 무슬림 모로 분리독립운동 확대.
-민주화의 진전과 한계
1986 아끼노 여사 중심으로 '2월혁명', 마르꼬스 권위주의 체제 붕괴. 그러나 전통적인
'엘리트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결과 초래
이유 1) 과두엘리트 정치적 기반인 토지불균등분배가 마르꼬스 하에서도 개선되지 못하여 수원,
수혜체제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지속, 2)아끼노정권이 구체제 과둥엘리트 연합체
과두 엘리트 지배의 상하양원과 지방정부의 구성이 아끼노 정부의 사회경제적 구조 개혁을 위한 조치에
중대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 결국 토지개혁법도 제정 못함.
경제적 회복도 못함.
-->1992. 5. 마로스 대통령. (국민의 힘 연합). 경제회복 가능.
-지방자치
1980년에 중단된 필리핀 지방자치단체가 1988년 복원. 그러나 지역 과두엘리트들이
대거 선출직 공직 장악. 정치적 족벌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문제 시급.
-무력 정치투쟁
1)모로 분리독립운동
9세기 이후 이슬람 전파.
스페인 식민통치와 함께 강력한 종교 동화정책으로 300여년간 무슬립에 의한 모로전쟁 지속.
미국은, '융화정책'. 그러나 미국 식민통치시기에 남부지역으로 이주.
필리핀 정부는 1950년 후크단의 무마조치로 농민봉기 가담 농민들을 민다나오 일애 토지 불하.
무슬림들은 '내적 식민지배'에 시달려 왔음.
1972 마르꼬스 대통령 게엄 이후 모로민족해방전선(mlr)의 무장독립운동 본격. -->1979년 남부 14개중에
무슬림 자치주 허용하는 '트리폴리 협약' 체결. 그러나 국민투표 요구함으로 무산.
1989. 남부 4개주에 대해 자치 실시 -민다나오 무슬림자치지역(armm).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투쟁.
극단적 무장투쟁세력 아부사야프..
1970년대까지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의 리딩국가이면서 쌀 수출 세계 1위였던 국가. 풍부한 광물자원과
비옥한 토지, 그리고 해양자원이 있음에도 그들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기득권세력들이 대를 이어
물려가는 사회구조가 단연 으뜸일 것이다. 스페인의 혼혈들, 중국인들, 필리핀의 상류층들은 전형적인
필리피노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거나 그 후예다. 스페인은 말할 것 없고 미국인들이
30년 넘게 통치를 했으니 어쩜 그 혼혈들도 있을것이고 일본인의 잠깐이지만 지배에 이어 여행객들이
몰려들면서 일본,한국, 이젠 중국인들까지... 필리핀의 역사가 기구하기까지 하단 생각이 든다.
말라테펜숀앞에 있는 커피빈 앤 티리프.
말라테에 내가 알기로 하나밖에 없는 전통시장가는 길에 본 제사. 10일간 이렇게 돌아가신 분과 함께
한다고 한다. 안쪽에는 관이 있고 그 곳에 사자가 누워있다.
체육관이 있는데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서 시멘트는 까지고 놀이기구는 망가졌지만 그 속에서도 아이들은 이렇게 운동을 하고 서로들만의 놀이를 한다. 하긴 아이때는 무엇을 해도 즐거웠었던 때였던 것 같다.
체육관뒤로 어두운 곳에서는 이불 하나를 덮어서 자는 사람들이 10여명 된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말이다. 비가 오면 어디로 갈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으니 자구책일까. 집들마다 필리핀의 전통 음식을 판매하거나 바베큐를 팔기도 하고 작은 먹거리들을 파는 집들이 많다.
말라테에 있는 전통시장이다. 길 양편으로 미용실이며 식당, 펍등이 있고 좌측 안쪽으로는 고기나 생선등 각종 야채,과일들을 판매한다.
이 곳에서 한 식사. 로컬스토어들이라 모두 필리피노들을 위한 필리핀만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50페소. 맥주는 41페소에 펍에서 샀다. 바보같이 ㅋㅋ 산미겔 라이트가 세븐일레븐에서 31페소에 팔고
로컬스토어에선 28페소에 판다.
깜작 놀랐다. 바로 앞에서 개 한마리가 어눌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시장안이다. 저녁이라 그런지 몇 몇 군데 가게는 문을 닫았다.
각종 과일들을 판매하는 곳.
필리피노들은 참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같이 노래를 참 잘 부른다.
어쩜 고단한 하루를 노래로 풀어버리기 위해 기를 쓰고 노래부르는 지도 모른다.
로컬마켓을 지나 도로를 건너 발길 닿는 곳까지 가 보는거야.
어둑 어둑 한 곳에서는 컴퓨터 몇 대를 바깥에 두고 사용료를 받는 미니피시방이다. 1페소에 1분으로
동전을 집어넣으면 1분씩 올라간다.
리메디오스 서클로 돌아와 한 잔의 산미겔을 마신다. 산미겔 필센.
이 곳에서 일하는 스탭은 한 달에 6천페소를 받는다고 한다. 결혼을 했지만 적은 페이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는 스탭의 미소엔 체념일까 아련함이 녹아 있다.
168인터넷까페. 왜 그리 한국인들이 많은지, 필걸들은 지직스나 인섬니아 가기전에 시간때우는 듯 하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아래와 같은 안내문이 보인다. 그런데 작은 펍등엔 변기뚜껑도 없고 앉는 자리가
따로 없는 경우도 있어서 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저렇게 앉는 경우도 있다. 어쩜 그러다 보니 버릇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낮에 본 로컬마켓. 마침 비가 와서 북적함이 덜해 보인다.
닭다리, 낡날개등을 튀겨서 판다. 15페소. 작은 거은 10페소. 대체적으로 필음식이 짠편이다.
아마도 날씨탓일지 모른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필리핀도 사행성놀이를 즐기는 것 같다.
사설경마장일까. 필리핀도 이렇게 경마를 중계하면서 마권 판매소가 동네 여기저기에 있는건가?
필리핀은 해산물도 풍부하고 먹을거리도 풍부해 보인다. 보이기엔 말이다. 그런데 왜 그 것들이 돌지를
않는걸까.
생선은 참 싸다.
벽에는 라디오가 걸려있어서 필리핀의 음악을 들을 수가 있다. 둔탁한 소리이지만 말이다.
밥알을 들고 움직이는 개미들.
마치 나 어릴 적 동네 골목길을 보는 듯 하다.
미용실엔 남자미용사가 가위질을 하는데 가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게이? 같다.
잠을 자는 고양이. 피곤한 걸까. 하긴 마닐라의 한 낮의 무더위는 가많이 있어도 피곤하다.
사진을 찍었더니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눈을 감은체,
아무리 봐도 먹을 것이 많은 것 같은데 말이다. 왜 돌지를 않을까. 돈이 안 돈다.
사람들은 어떨때 돈을 쓸까. 어떤 때 돈을 쓰지 않을까.
멀리서 바라본 시장.
에전에 전주식당은 맛이 괜찮았는데 이번에 갔더니 영 아니다. 이제 여긴 못 갈듯 하다. 필리핀 아가씨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혼혈이 유달리 많고 또 그 영향에 따라 외모에 영향을 미친다.
calle5를 오랫만에 찾아갔다. 참 노래를 잘 한다. 로컬클럽인 calle5에선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
로컬펍이라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일과후 이 곳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춤을추고 노래를 듣는다.
필리핀에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있었다. 라몬 막사이사이.
승용차 한대를 정지시킨 경찰은 교통단속에 걸린 기사에게 예를 갖춘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교통규칙을 위반했습니다."
"경찰관의 지시에 딸라 길 한쪽에 정차하고 기사는 공손히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시의 한복판 사거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죄송합니다만 운전면허증을 보여주십시오.
"아차. 옷을 갈아입느라고 깜빡 잊고 면허증을 안가지고 나왔습니다. 미안합니다.
기사는 또 한번 이렇게 사과를 했다.
"차를 운전하시는 분은 언제나 면허증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것을 모르셨습니까?
"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경찰은 수첩과 펜을 꺼내면서 다시 기사에게 말했다.
"그럼 당신의 이름과 직업을 말씀해주십시오.
"이름은 라몬 막사이사이, 직업은 대통령입니다.
이말을 들은 교통경찰관은 깜짝 놀라며 부동자세로 말했다.
"각하! 제가 미처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각하께서는 교통규칙을 위반하셨으므로 법에
따라 정해진 벌금을 내셔야 합니다.
"물론 그래야 되겠죠."
재치있는 대통령은 즉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관은 재빨리 벌금고지서를 써서
대통령에게 건네고
"각하! 안녕히 가십시오."
하며 다시 한번 힘차게 경례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교통규칙을 위반한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일반시민과 똑같이 벌금을 물었다.
이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어 세계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다.
필리핀의 역대 대통령중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서 그나라 국민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게 된 원인중의 하나는 이렇게 법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것을
스스로 보여준 지도자였다는 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후 그의 업적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뜻으로 만든 막사이사이상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할만큼 명예스러운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 나라 사람중에서도 여러분이
이상을 받았다.
- 여성운동에 앞장섰던 김활란 박사
-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운 김용기 장로
- 평생 인술을 베푼 의사 장기려 박사
- 겨레를 바른길로 이끈 사상가 장준하 선생
- 평생 아동을 위해 몸 바친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생
- 산골에도 마을 문고를 보급한 독서운동가 엄대섭 선생
등이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받게 될것이다.
* 한나라의 대통령이면서도 말단 경찰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며 벌금을 내는 겸손과 재치가 그를
역사상 훌륭한 지도자로 만들었으며 명예스러운 상까지 만들게 한것이다.
역사상 위인에겐 시대가 기회일지도 모르지만 필리핀을 보고 있노라니 필리핀에게도
라몬 막사이사이는 기회였던 것 같다. 너무나 짧은 기회.
어쩜 우리에게도 고 장준하선생,김대중대통령,노무현대통령이 기회는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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