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서의 삼개월 정도의 생활. 길게 말할 것도 없는 단순한 생활이었지만
사람들을 또 만나고...헤어지고.... 도대체 사람처럼 어려운 건 없는 거 같다.
어딜 가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두근 거리는 떨림 만큼이나 생소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감동을 주며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아무런 의미없는 만남도 꽤나 많은 거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일까. 기억하는 사람은?  하~ 이런 것들을 애기 하려 하면 난 언제나 뻘쭘하다고 하나? 가기는 가야겠는데 길을 잃은 아이처럼, 막차를 놓친 사람처럼, 배고픔에 끊인 라면 냄비 엎어진 마냥 곤혹스럽다. 단 한 사람을 만나도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만남 하나 있으면 내 인생 행복하겠다. 제길~ 이런 -.-; 그 수많은 사람들은 다 어딜 간건지 모르겠다. 머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아침 느즈막이 일어나면 시내로 나가기 전에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세트를 사 먹는다. 2,500원, 때론 먹지 않고 포장을 해서 다음 장소인 구미도서관에서 먹기도 한다. 가는길에 빼어든 교차로 한 부. 구미 도서관으로 오면 신문을 먼저 본다. 그리고 교차로를 빼어들어 볼펜으로 밑 줄을 그어간다. 처음엔 눈치 보이던데... 조금 지나니 머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누구 눈치보고 살았나. 휴.. 그래. 이젠 눈치보지 말자. 그리고 나서 공중전화를 찾아 그 곳에서 이 곳 저 곳에 전화를 한다. 될 수 있으면 면접 날짜는 같은 날에 잡도록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나선 물류 관리사 책을 다시 펼쳐든다. 내가 물류관리사를 공부하는 건 물류관리사에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자격증이 아니라 목표였다. 보이지 않는 확실한 건 내가 설정한 목표뿐이었다. 그 목표를 보며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 목표 잃은 사람의 그 빈 마음은 당신도 알리라. 그 황량함. 마치 모래바람만이 이는 어느 들판, 또는 사막, 풀 한 포기 없는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이 있어 그나마 외롭지 않았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 역시 무언가 목표를 찾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동료의식? 또는 동질성? 지하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온다. 도서관에서 여인숙까지 오는 길에 시내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개천이 흐른다. 그 개천 주위로 풀들이 나 있고 누군가 세워놨을 징검다리들. 여인숙까지는 천천이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다. 도서관까지는 희망을 품고 갔고 또 여인숙을 향할 때는 먹물을 뿌려놓은 듯한 암울함을 허우적 대며 걸어간다. 어둠이 내리면 난 구미 시내를 나선다. 무언가를 찾아서 말이다. 주머니에 돈은 몇 푼 되지 않았고 또 쓸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다. 갈 곳도 없고 찾아 올 사람도 없엇지만 난 뻥 뚤려 있는 무언가를 메워나가고 싶었을 지 모른다. 여인숙에서 길 가는 저 끝까지 걸어간다. 막다른 골목을 다시 왼쪾으로 돌려 걸어나간다. 20분쯤 걸으면 처음 도착할 때 보았던 구미역이 보인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 걸어 나간다. 쭈욱... 그렇게 돌고 돈다. 술에 취해 비틀 거리는 사람들, 연인인 듯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옷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는지 한 참을 보는 소녀, 이 곳에 다시 태양이 뜨겠지. 나는 또 걸어다닐 거야. 나도 술에 취해 비틀 거리고 싶었다. 아니 술에 안 취해도 무엇에 취하고 싶었다. 이 작은 구미 시내에 돌아다닐 곳이 없는 것일까.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 간판 아래로 경사가 가파른 좁은 이층 계단을 올라간다.이층 계단을 올라가서 왼쪽으로 세 걸음, 그러면 좁다란..아주 좁다란... 아마 사람들이 설마 이 곳에 관심도 아마 두지 않을 것이다. 일제 치하 독립투사를 숨겨두던 방이었을 지도 모른다. 쭉 걸어가서 다시 왼쪽으로 걸어가면 막다른 곳에 나의 방이 있다. 아무도 없는 곳. 이 곳에 내 방이 있다. 허름한 이불하나. 그리고 앞이 탁 막힌 창문. 난 그 곳에 누워 다이어리를 펼친다. 별 볼일 없고 누구에게 들킬 거 같은 지금 나는 나를 적어 나간다. 적어 나간다. 앞으로도 계속 적어 나갈 것이다. 이 기록들은 나의 삶의 하나 하나의 궤적을 관통하여 나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같이 할 테니 말이다. 나에겐 사명과도 이 의식은 경우는 다르겠지만 어느 중국 고서 아마 전국시대 오왕 합려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말고. 어쨌든 그 분이 쓸개를 핥으며 과거를 기억하는 그 것에 빗대고자 한다. 억지로라도 말이다.


면접을 보기로 한 날, 버스를 타고 구미공단에 간다. 참 멀리도 간다. 버스를 내려선다. 구미공단. 주위엔 정말 공장들만 보이고 상가들도 보이지 않는 삭막한 분위기다. 회색빛 콘크리트빛 도시 어쩌구 하지만 여기 보단 낫다. 정류장에 채용공고판이 보인다. "경력자 구함" 가끔 보이는 여공 모집. 틈이 안 보인다. 휴... 길을 물어 육교를 건너 어딘지 모를 그 곳을 간다. 아스팔트 아래에서 태양의 열기와 머리 끝에서 쳐내려오는 태양빛을 이고 간다. 왜 이렇게 더운지... 그래도 없는 사람들은 겨울보단 여름이 더 낫다고 했지. 누구는 태양을 흠모해 그를 향해 따라다니는 해바라기로 환생했고 누구는 태양의 눈부심을 살인의 이유로 댔고 삼국유사의 누구는 하늘에 떠있는 두개의 태양줄 하나를 화살로 쏘아 떨어트렸고 누구는 태양에 날개의 초가 녹아 에게해에 떨어지고 누구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했다가 말았고 누구는 지금 아스팔트위로 걸어간다. 그 것도 처량하게 말이다. 이력서를 주면 흘낏 본다. 그리고는 왜 여기까지 왔느냐.(먹고 살라고), 대학나와서 왜 공돌이 생활 하냐(먹고 살라고) 제길... 가서 기다려라.(언제 연락 줄건데) 그렇다. 이왕이면 다홍치마고 초록은 동색이라 그 곳에서 무슨 일 났다고 타향사람을 뽑겠는가. 오판이었다.
그래서 들어 간 곳이 레스토랑. 더블백을 들쳐메고 여인숙에서 20여분쯤 걸어 온 구미에서 제일 크다는 곳. 50여평쯤 되는 안마당엔 고급 차량이 그득한 곳이었다.돈많은 사람들에게 IMF는 남의 일이었다. 4일 일한다. 대학생활중 알바로 술집 웨이터 경험을 기반삼아 레스토랑에 지원했건만 술과 음식은 달랐다. 고급 양식집이라 두 명만 들어와도 가져가는 음식 가짓수만 20여가지가 되었는데 다른 직원은 양 손에 음식을 열 가지씩 들고가서 바쁜 점심시간을 효과적으로 조율 할 수 있었다. 한 손에 들고 가는 것 조차도 위태한 내 모습을 지배인이 우려한다. 휴... 내가 이 걸 해야 하나. 하루의 일이 끝나면 11시쯤. 청소를 마치고 지하의 기숙사로 돌아오면 12시. 그 때부터 술을 마신다. 물론 나는 피로에 잠을 이루고 싶었다. 3시정도까지 술을 마신다. 뒤척이다 잠이 들다 일어나면 9시. 다시 씻고 준비하고 식사하고 11시쯤 일층의 레스토랑으로 출근한다. 11시 퇴근, 3시까지 술마시고... 이 건 아니다.

더블백을 들쳐메고 다시 좁다란 2층 계단으로 올라와야 했다. 구미 시내의 간판들. 한 시간 3,000원 하던 노래방, 80%며 90% 쓰여있던 가게들. 구미시내를 거닐면 다들 힘든 사람들 같았다.
그래. 우리나라에 쉽지 않은 사람들이 나뿐이겠는가. 그 것이 위안이 된다. 제길~ 그렇게 다시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칠곡의 한 공장에서 면접을 보잔다. 연락은 내가 했고 말이다. 칠곡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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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dy

아나키스트이기보단코스모폴리탄리영희선생이그러더라추구하는건국가가아니라고진실이라고말이야그울림을가슴깊이가지고있는데그게참참쉽진않아진실을위해넌무엇을할수가있냐진실이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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