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wn town duty free shop.
시간당 15$이 넘는 pay. 시원한 근무환경. 여기서 근무하게 될 줄 몰랐는데 결국 나에게 온 거야.
유치할 지 모르지만 행복하다. 쉐리단 스트리트에서 이 곳까지 오는데 자전거로 약 이십분이
걸린다. 공항에 도착하면 한 곳에 자전거를 채워두고 공항으로 들어간다.
이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탑승객들이 통과하는 문을 지나 내부직원용 도어에
카드를 넣고 들어간다. 그러면 공항내부보다 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의 땀을 식혀주며
더욱 시원하게 해 준다. 면세점안으로 들어가서 끝에 있는 직원용 휴계실에서 와이셔츠로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고 나오면 9시. 근무시간은 하루에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하지만 페이가 커서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다. 매니저가 주류를 맡으라고 했지. 즐비하게 놓인
각종 주류와 함께 기념품,초코렛등을 맡는다. 이 매장엔 한국인이 두 명이 있다.
두 분 다 일본에서 적지 않은 기간을 살다 오신 분들이다. 한 분은 결혼해서 일본에서 살다가
호주로 이민온 분이고 또 한 분은 나이가 나보다는 어린 아가씨다. 일본어를 아주 능숙하게 하는,
일본에서 삼 년 살다 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 아가씨와 함께 주류를 팔았다.
주로 일본 손님은 그 아가씨가 했고 그 외 영어권의 손님이 오면 내가 판매를 하곤 했다.
매니저가 말하기를 일주일에 만명의 고객이 온다면 그 중에 일본인이 팔천명이고 한국인이
일천명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꼬냑을 좋아한다. 그러니 고가의 꼬냑을 팔 수 있도록 푸쉬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틈틈이 주류 박스에 기재된 내용을 읽으며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 떠듬거리며 유치하면서도 과장된 제스춰로 설명을 하곤 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일본인은 아주 좋아했고 그 것들을 구매하곤 했다. 일본인들은 여행을 갔다가 귀국할 무렵 아는 이들에게 선물을 해 줄 요량으로 많은 것들을 사 갔지만 그 건 아주 작은
기념품에서부터 쵸코렛등 사소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담배같은 것도 말이다.
마나미의 말로는 일본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들을 선물해주기 좋아한다고 한다.
그 것이 예의상일 지는 몰라도 말이야. 10시30분에 쉬는 시간 10분은 공항내의 탑승객 흡연실에
가서 담배를 피는 것이 좋았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짧은 대화지만 이야길 나누다 보면
나도 탑승객으로 이 자리에서 담배를 필날이 있겠지 하며 귀국하는 날을 기다려 보기도 한다.
면세점 내의 동료들은 무척 친절하고 근무 조건도 무척 좋았다. 농장에서 과일따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았었으니 비교가 되지. 후훗, 요즘도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코엑스 같은 곳에서
푸드 코트들을 볼 수 있고 또 쇼핑몰들에선 일반화 되는 것이 푸드코트인 것 같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그 푸드코트에서도 한 쪾에선 열심히 접시를 닦고
있는 이들이 있다. 한 번 유심히 본다면 말이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자전거 페달을 가볍게 밟으며 케언즈의 바람을 즐긴다.
조금 여유가 생기고 부터는 pears 뒷 편에서 낚싯대를 드리운다. 경제적인 구속에서 해방되고
느끼는 그 편안함은지난 호주에서의 7개월의 고단함에서 오는 것일 꺼다. 그럴꺼야. 이 모습을
재이닐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말야. 호주에 처음 와서부터 나를 걱정해주던 사람들.
난 호주에서의 7개월들을 생각하며 내가 스쳐간 사람들을떠 올리며 궁금증을 케언즈 바다로
날린다. 어떤 이들은 진심으로 날 위해줬고 안타까워 했으며 잘 되기를 바래주었다.
모두가 그렇진 않았다. 그 것이 나로부터 인한 것일지라도 무시하거나 피하는 이들을 볼 때는
호주라는 곳에서의 외로움, 그리고 고독은 곱절로 다가오고 있었다.
케언즈에서도 만난 사람들은 많았다. 인생은 어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 아닐까.
그 것이 꼭 사람이 아닌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 들은 나의 일자리를 부러워 하기도 했고 지난 7개월의 호주 생활을 술자리에서든 이야기 하면 관심을 보이곤 했다. 그들 중에는 집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고 어학원을 다니면서 쉐어를 구해서 여유있게 사는 이들도 있었고
나처럼 농장에서 일하다가 돈을 모아 올라온 이들도 있곤 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며
내가 자신을 보일 수 있었던 건 어색하지만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던 영어 실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학원을 다니면서 체계적인 공부를 하면서 어학실력을 키우고
있었지만 난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호주의 적지 않은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들이 나와 같이
또는 더 어렵게 노력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 그 것 이었을 것이다. 젊음이라는 것을 믿고 호주 이 낯선 땅에 내려
누군 어학원을 찾을 때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한 끼의 식사와 잠자리가 절실하기도
했던 많은 사람들. 나 또한 이러한 모습들을 훗 날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도록
오늘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하려 한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현실에서도 말이야.
그래야지 그런 이야기들이 결코 묻히지 않겠지. 그러려면 난 더욱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고
말이야. 아마 너희들도 그럴거야. 지금의 어려움은 과거가 되는 거야.
그리고 우린 미래에 있는 거야. 그 건 꿈이고 희망이야. 절대 희망을 놓치진 말아.
지금의 과거가 빛나는 빛깔로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을거야.
그런 날들을 위해 우린 열심히 사는 거지. ^^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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