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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장수 문순득의 4개국 표류기

bundy 2021. 7. 30. 11:52

조선 후기 신안군 일대에서 홍어를 거래했던 어물장수였다. 신안군 일대 섬을 왕래하며 주로 홍어를 거래했는데 문순득이 거주했던 곳은 신안군 우이도()였다. 1801년 12월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기위해 태사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유구국(, 류큐, 지금의 오키나와)에 표착하였다. 문순득과 일행은 3개월을 머물다가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탔는데 이때에도 풍랑을 만나게 되어 필리핀으로 밀려가 마닐라에 표착했다. 여송국(, 현 필리핀)에 머물면서 현지 언어를 배웠고 그곳에 전해진 서양의 문물을 접하였고 약 9개월을 머물다가 마카오, 광둥, 난징, 베이징을 거쳐 1805년 1월 고향 신안군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다시 홍어를 거래하기 위해 흑산도에 들렀다가 흑산도에 유배온 정약전을 만나게 되면서 풍랑을 만나 일본과 필리핀까지 표류하며 보고들은 바를 전해주었다. 정약전은 문순득의 체험담을 토대로 표류한 날짜별로 경험을 기록한 표해시말()이라는 책을 지었다. 문순득의 표류기는 정약전을 통해 정약용에게도 전해졌으며, 여송국에서 사용하는 화폐의 유용함을 전해들은 정약용은 조선의 화폐개혁안을 제안하였다. 또한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제자인 이강회()를 우이도로 보내 문순득을 만나게 하였고 그를 통해 외국의 선박과 항해에 관해 소상한 기록인 운곡선설()을 집필하였다.

1801년(순조 1년) 제주도에 표착한 배에서 5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과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 어느나라에서 온 사람들인지 알길이 없자 조선의 조정에서는 청나라 사람으로 여기고 심양으로 송환하였다. 하지만 청나라 사람이 아니라며 다시 조선으로 송환되었다. 이들 뱃사람들은 제주도에 9년 동안 머물게 되었는데 1809년 필리핀 언어를 아는 문순득이 이들이 여송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마침내 고향인 여송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순조실록에 기록되어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순득 [文淳得] (두산백과)

 

표해시말의 말미엔 112개의 한국어 단어를 한자로 적은뒤 류큐어(81개)와 필리핀어(54개)로 싣고 있어

언어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이미 100여년전에 이 책이 완역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는 2005년에 완역본을 발간하였다.